
이지 라이더(Easy Rider 1969) : 파국이 예정된 자유와 평등을 향한 질주
데이스 호퍼(Dennis Hopper) 감독
1960년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원자폭탄으로 얼룩진 20세기에 대한 비판의식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 매카시즘으로 얼어붙었던 1950년대를 지나 60년대에 도착한 미국은 좌파 경향의 사회운동(흑인, 여성의 권리운동과 반전운동)과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으로 흥분과 혼돈이 교차하고 있었다.
사회운동은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날로 심각해져 가는 베트남 전쟁과 거듭되는 암살사건(케네디 형제,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은 1970년대의 패배를 암시하고 있었다. 장르-스타-스튜디오 시스템의 공식으로 운영되던 할리우드 영화는 급격한 사회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발표된 1967년은 ‘혁명의 해’로 불릴 만큼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1960년대 젊은이들의 복잡한 감정을 영화로 담아낸 결과였다.
데니스 호퍼의 1969년 작 <이지 라이더>는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결정판이었다. 빌리(데니스 호퍼)와 캡틴 아메리카(피터 폰다)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미국을 찾아서’(캡틴 아메리카의 가죽 점퍼와 헬멧과 모터사이클에는 성조기가 그려져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올리언스까지 여행을 떠난다. 돈은 마약 밀매로 마련했고, 일용할 양식은 마약과 마리화나이다. 그들의 여정에 히피들과 변호사 조지 핸슨(잭 니콜슨)이 스쳐 지나간다. 히피들은 문명을 거부하고 기존의 질서를 비판하면서 무한한 ‘자유’가 허용되는 새로운 삶과 기독교의 원시공동체를 꿈꾸고, 조지(조지 워싱턴?)는 전쟁과 빈곤, 지도자와 모든 인생고가 사라져버린 평등한 사회를 이야기한다.
영화는 자유와 평등을 명시한 미국 독립선언의 실현 불가능성,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 역사에 대한 회의로 빠져 들어간다. 모래땅에 씨를 뿌리는 히피들은 이상주의자들이며, 알코올 중독에 빠진 조지는 허무주의자일 뿐이다. 빌리와 캡틴 아메리카는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마르디그라(사육제의 마지막 날)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지만, 축제의 제물로 바쳐진 것은 기성세대(또는 보수주의자들)의 총에 맞아 죽는 그들 자신이었고, 남은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파산이었다.
노예시장으로 악명 높았던 뉴올리언스에서, 실패했다고 고백하는 두 사람은 미국 역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에 할리우드식 영화 만들기에서 벗어난 방법이 영화의 주제를 뒷받침한다. 스타를 배제하고, 카메라를 스튜디오에서 야외로 옮기고, 장르를 패러디하는 저예산의 독립영화. 서부영화의 와이어트 어프와 빌리 더 키드는 캡틴 아메리카와 빌리가 되고, 서부에서 동쪽으로 무대를 옮긴 그들은 영웅이 아니라 패배자가 된다. 동성애를 암시하는 버디 무비와 가정이 없는 로드 무비의 형식, 록 다큐멘터리와 뮤직 비디오를 예견하게 하는 반전 무드의 록 음악 사용……. 고전적 영화문법에 정면으로 도전한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와 미국 언더그라운드 운동의 기수 케네스 앵거의 <떠오르는 전갈궁>은 참고서가 되었다.
“위대한 영화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었을 때 오류가 발생한다”는 고다르의 예언처럼 데니스 호퍼와 아메리칸 뉴시네마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1970년대의 보수주의 물결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모두 빼앗기고 덧없이 시들어갔다.
ㅡ김경욱(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