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31절
삼월에 : 1908년 3월
박장근(朴壯根, ? ~ ? ) : 본관 고령(高靈), 본명 춘백(春栢). 순창 농암 사람이며, 농사를 짓고 살았다.
정미(丁未, 1907)년 가을, 순창 농암(지금의 전북 순창군 쌍치면 종암동 농바우(淳昌郡 雙置面
鍾岩洞 籠岩))에서 동학을 신봉하다가(일진회원 교운 1-21) 상제님의 성예(聲譽)를 듣고 추종하였다.
상제님께서 자신의 집에서 공사를 보실 때 수종을 들었다. 고부화액(백의군왕 백의장상 도수)후
불경한 패설을 일삼다가 의병에 맞아 뼈를 다침(교운 1-31), 정씨(鄭氏)와 결혼하여 1남(正甫)을
두었다. 고부화액(1907년 12월 25~1908년 2월 4일) 이웃 마을 피노리 이화춘이 살고 있음.
이화춘(李化春, 1870~1908) : 본관 전주(全州), 본명 함교(咸敎), 경오(庚午, 1870)년에 순창 피노리
(지금의 전북 순창군 쌍치면 금성리(淳昌郡 雙置面 金城里))에서 부친 이우윤(李愚潤)과 모친 최씨
(崔氏) 사이에 장남(長男)으로 태어났다. 전북 순창군 쌍치면 금성리 요동(淳昌郡 雙置面 金城里
繞洞)에 거주하면서 농사를 짓고 살았다. 고부화액(백의군왕 백의장상 도수)후 상제님께 불경한
패설을 하므로, 신명들이 벌을 주어 인근 먹상리에서 일을 보고 돌아오던 중 의병들에게 총을 맞아
죽었다. 의병에게 총살. 이 부분에 대해 가족들은 이화춘이 외출하였다가 동네에 들어설 때의병
으로 오인되어총을 맞고 죽었다고 한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그 가족들은 손가락으로 그 장소까지
가리키며 자세히 증언해 주었다. 재고의 여지가 있다 부인 유옥호(柳玉鎬)와의 사이에 아들
대종(隊宗)을 두었다.
1장 32절
김경학 집 : 태인 백암리
관건(綸巾) : 비단으로 만든 두건.
사배 : 절을 함에 있어 하느님과 천자(天子)에게는 4배, 부처에게는 3배, 조상신에게는 2배 산사람
에게는 1배를 한다.
태인 백암리 : 당시 전북 태인군 남촌일변면 백암리이다.마을에 흰 바위가 많아 백암리이고 흰바위는 순수함과 평화를 상징한다.
1장 33절
도통(道通) :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통함.
선령(先靈) : ① 선조의 영혼. ② 선열의 영혼.
조상신(祖上神) : 4대조 이상이 되는 조상의 신. 조상대감(祖上大監)이라고도 한다. 4대봉사(四代
奉祀)라 하여 4대조까지는 신체(神體)를 마련하고 기제사(忌祭祀)를 지내나, 조상신은 시향
(時享)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러나 조상신은 자손을 보호한다고 하여 어느 가정에서나 정중히 받든다(두산동아백과사전).
씨족신(氏族神) : 같은 조상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씨족공동체의 수호신으로 믿는
신이나 정령(精靈). 공통의 조상을 신격화한 경우가 많고, 또한 동식물을 조상으로 생각하는 토템
신앙의 경우도 있으며, 또 조상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신을 공동으로 숭상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그 신을 믿는 사람들이나 집단의 이해(利害)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에
그 신을 위하는 각종 의례가 씨족적으로 행해진다. 조령숭배 신앙도 넓은 뜻에서는 씨족신이며,
씨족들이 합동으로 지내는 시향제(時享祭) 등이 씨족의례가 된다(두산동아백과사전).
1장 34절
1장 35절
정북창(鄭北窓, 1506~1549) :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 온양(溫陽). 자 사결(士潔). 호 북창(北窓).
이름 염(鄭薕), 별호는 용호대사(龍虎大師)라 부름, 시호 장혜(章惠). 궁을가를 지음, 1530년
(중종 25)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음률에 밝고 현금(玄琴)에도 정통하여 장악원(掌樂院)주부가 되어
가곡을 지도하였다. 천문․의약에도 조예가 깊어 관상감(觀象監)․혜민서(惠民署) 교수를 겸임하였
으며, 뒤에 포천현감(抱川縣監)이 되었으나 병으로 사임하였다. 유․불․선(儒佛仙)은 물론 복서(卜筮),
한어(漢語)에도 모두 정통하였고 문장과 산수화(山水畵)에도 능했다. 제학(提學)에 추증되었고,
저서에 《북창집(北窓集)》 《동원진주낭(東垣珍珠囊)》 《유씨맥결(劉氏脈訣)》 《북창비결
(北窓秘訣)》 등이 있다. /
조선의 학자이자 도인.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단객(丹客)으로 박학다식하여 유교와 도교와 불교에
모두 정통하였으며 음악과 천문과 의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관직은 포천현감(抱川縣監) 자리에
오른 적이 있는 정도이며, 평생 자연과 술을 벗삼아 유람하기를 좋아하였다. 가까이 지낸 벗으로는
서경덕(徐敬德)과 박지화(朴持華) 등이 있으며 모두 속된 세상보다는 고담준론과 산수(山水)를
즐기는 이인(異人)들이었다. 25세 때 3일 동안의 수도로 백리 밖의 일을 훤히 알았다고 하며 이로
부터 천문, 지리, 의학, 산수등 배우지 않고 저절로 통하여 천리 밖의 일도 생각만 하면 알게
되었다고 한다(두산동아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