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산 바로 알기' 스토리텔링 - 시민답사②
'내사랑 부산, 바로 알자'
제2코스 답사: 서낙동강의 나루들
2014년 7월 11일 (토)
소담재(강서구 강동동 4848-28, 제도로 267). 051-941-0370 연밥 전문식당
<사전에 주문해야 한다.>
정원이 참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식후 공연에 관한 설명~ 13:37
큰망께소리의 예능보유자 하정규(河正逵, 1938년생)님의
'금강산 타령, 노래가락, 청춘가, 창부타령, 뱃노래' 창이 있었다.
죽림삼거리. 앞에 보이는 산이 오봉산(五峰山,45m-웹엔 표시없음)이다.
죽림마을은 오봉산의 동쪽 롓 가락면의 중심지로서
서낙동강(이곳 사람들은 죽림강이라 한다) 서편 강안에 일찍부터 자리잡고 있었던
죽림리의 본 마을이다. 옛날 오봉산이 섬이었을 때 대밭(竹林)이 무성하여
홍수라도 나면 이 섬이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대섬(竹島)처럼 보였기 때문에
죽림마을이란 이름으로 불렀다. 마을의 북쪽으로 호박샘이 있어 붙여진
고정(古井)마을이 있고, 그 북쪽으로 죽림평야 한 가운데 지역으로
옛날 이곳을 용이 등천한 곳이라 하여 용등(龍嶝)마을로 불리는 마을도 있다.
죽림 삼거리 강동교, 건너편 낙동강오리알집이 보인다.
명지 쪽으로 뼏는 서낙동강 줄기~
강동교 밑 죽림삼거리에서 죽림마을의 역사와 대변청과 해창,
그리고 가락오광대, 김해죽도왜성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대변청(待變廳-비상시에 대비하여 설치하는 관청 ):
1646년(인조 24년) 외부로부터 낙동강 안으로 쳐들어 오는 외침을 막기 위해
김해부사 이상경(李尙敬, 자는 이석<頤奭> 1609~1674)이 이곳에
대변청과 화약고를 설치하고 전함(黃字號) 한 척을 배치하였고,
1649년(효종 원년)에는 박경지(朴敬沚) 부사가 세곡수납을 위한
해창(海倉)과 화약고를 설치 하기도 한 곳으로 지리적으로 중요한 요충지 였었다.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후일 효종>이 청나라 볼모로 잡혀
심양으로 갔을 때 이상경이 호위하였고 이때 무게있고 장정(壯靜) 한 처신은
봉림대군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북섬나루(부산 강서구 대저중앙로215번길 63)로 이동
북섬나루는 강서구 대저동 서연정마을 동쪽을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수로(水路)의
북쪽 서낙동강과 만나는 물가에서 서낙동강 건너 김해시 대동면 주중리 신안마을로 오가던
나루로서 대저쪽에서는 대저(대지)나루로, 신안마을에서는 신안나루 터러 불렀다.
북섬나루~
길이 약 180m의 상수도인데 시설 후 실제 수도물이 공급된 적이 없었다하며
그 옛날에는 아이들이 이곳에 올라가 놀이터가 되었다는 데,
철거도 비용 문제 때문에 현재까지 방치된 상태란다.
서낙동강 하중도인 신안치등섬을 대저 사람들이 북섬이라 부르면서
나루 이름도 북섬나루라 불렸단다. 대저양수장에서 200m 가량 북쪽에 위치한
북섬나루터는 지금도 나루터의 모습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고
옛날 주막 주모 문덕조님이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다.
북섬나루터 주막 주모 문덕조(文德祚, 83세) 할머니.
옛날처럼 나룻배 기다리며 막걸리 마시는 선객들이야 없지만 탁주, 소주도 팔고 담배도 판다.
붉은 벽돌집이 옛날 주막이였다. 부산 강서구 대저중앙로215번길 63
대동수문 위쪽 낙동강 물가에 '물 위의 집'들
마지막 어부와 장어각시~ 2012.10.23 KBS1 TV방송
장어각시
배를 타고 다니는 게 아니라 배를 실고 다니는 떠돌이 어부/ 박남용
"힘든 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으나 어디에서나 장어를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제일 소원이예요"
2012년 1월 2일 부산일보에 [주경업이 만난 洛東江 사람들] 첫번째로 소개한 인물이다.
"장어잡이 50년 박남용씨" 소개하였듯 반세기를 낙동강과 함께 살아오고 있다.
15살 때부터 50년 동안 장어를 잡아 온 박남용씨는 낙동강하구의 마지막 장어잡이 어부다.
봄부터 여름철에는 주낙으로 장어를 잡는다. 오후 6시쯤 주낙을 깔고 밤 11시 넘어 걷으러 간다.
장어가 강바닥으로 뱀처럼 동면하러 들어가는 10월 이후 겨울에는 갈퀴로
일일이 강바닥을 훑어가며 잡는다. 하지만 하구둑이 생긴 뒤 장어는 자취를 감췄고,
그는 트럭에 배를 싣고 전국을 떠도는 신세가 됐다. 장어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환경은
기수역(汽水域). 바닷물과 밀물이 만나는 기수역에서 장어는 바다로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하지만 하구둑으로 인해 기수역의 물길은 막히고 자연산 장어의 수는 1%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낙동강에서 장어를 잡았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 버렸고, 박남용씨는 마지막 어부가 되었다.
<인용> http://blog.joins.com/eskang/13555931
장어잡이 낚시줄~
낙동강하구의 마지막 장어잡이 어부, 박남용(朴南龍· 65)님의 수상 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