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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으로 감사 고후1:15-20 (10.11.21)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은 쓰는 단어는 4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믿음과 은혜와 감사와 아멘입니다. 이 4가지는 언제든지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중에서도 아멘은 모든 성도들이 합창하듯이 하는 말입니다. 모든 기도의 끝에는 언제나 아멘으로 화답을 하고, 말씀에 은혜가 있을 때에도 아멘으로 화답을 합니다.
목사는 설교 중에 성도들이 아멘이라는 화답이 나오면 힘이 납니다. 왜냐하면 그 말에 동의한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화답이 없으면 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목사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는 아멘만 잘해도 충분히 힘을 줄수 있습니다. 아멘을 할 때는 웃은 얼굴로 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얼굴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아멘이 진심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생활 속에서 아멘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이라는 말은 그 말에 동의한다는 말이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이라는 말은 내가 받아들이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말씀에 아멘 할 때마다 그 아멘 한 말씀은 여러분의 소유가 됩니다. 여러분의 것이 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아멘을 많이 하면 그만큼 여러분의 영이 말씀으로 풍부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멘을 많이 하시길 바랍니다. 아멘은 여러분의 삶을 긍정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아멘으로 여러분의 삶이 주님의 은혜와 은총으로 가득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어느글에 보니
(청주시 청석교회에 조동식 집사님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 조동식 집사님은 대학 교수입니다. 자기 집안은 14대째 외아들만 태어났답니다. 14대 외 아들인 형님이 일찍 결혼을 하여 형수님이 시집을 왔는데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어머니가 형수님을 모시고 교회에 목사님을 찾아가서 “목사님 우리 집에는 자손이 귀하니 시집온 우리 며느리가 아들을 많이 낳도록 안수 기도를 해 주세요”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이 새 며느리에게 아들이 많이 생산되도록 안수 기도를 하고 “아멘”하라고 했는데 이 젊은 색시가 부끄러워하면서 “아유 몰라유”그러면서 ‘아멘’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시어머니가 답답해서 “아멘”하라고 재촉해도 또 “몰라유 창피해유” 그럽니다. 목사님이 또 간절히 기도한 후 ‘아멘’하라고 해도 또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때 시어머니가 안달이 나서 “아멘, 아멘”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아멘”을 한 시어머니가 임신을 하여 10달 후에 애기를 낳았는데 그게 바로 조동식집사 자기랍니다.)
오늘은 감사주일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 그리고 그것을 우리 인간들에게 주셔서 우리가 살아 갈수 있도록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 사실에 아멘 할 수 있다면 그 아멘의 감사의 아멘이 되어 집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나에게 주셨다는 것의 신앙고백이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멘의 또 다른 의미는 감사에 있는 것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여러분의 삶의 모습 속에 아멘으로 감사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시 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사도바울의 자신에 대한 변론의 이야기가 배경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인가 하면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방문하는 일들을 약속했었는데, 그때마다 바울에게 사정이 생겨서 그 방문계획을 4번씩이나 번벅하지 않은면 안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놓고 고린도교회안에서 바울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울의 신실성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 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지금 마케도니아교회 성도들이 준비한 헌금을 가지고 각 교회 대표단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갈 계획을 세우고 이 계획을 고린도교회에 전달한 것입니다. 즉 고린도 교회도 이 헌금에 동참을 하면 바울이 그것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헌금문제와 관련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이 보여준 행동은 신실하지 못하고 언행이 일치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그런 사람에게 이런 거액의 헌금을 맡길 수 있느냐? 는 의문은 제기 한 것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자기 자산의 모습을 변론하면서 오늘 본문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즉 그의 변론에 대해서는 그는 철저하게 자신은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계획이 몇 번이 번복이 되더라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언제나 “예” 가 되겠다는 것과, 더불어 예수그리스도께서도 바로 그런 삶을 살았다는 사실로 자신을 변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긍정적인 믿음에 대해서 아멘
오늘 본문 18절에 보면 “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고합니다. 무엇이든지 긍정적이 대답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믿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예스맨”이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스코틀랜드 출신의 희극 작가인 ‘대니 월리스’의 자전적인 소설인 “예스 맨(2005)”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NO”라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살며, 바깥출입을 잘 하지 않고 혼자서 집에 틀어박혀 지내면서 매사에 부정적인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항상 “안 된다”, “싫다”, “귀찮다”를 입에 달고 살았지요. 그런 그가 친구의 권유로 “긍정적인 사고” 와 관련된 프로그램에 가입하면서 인생이 180도 바뀌기 시작합니다. 모든 일에 “YES”라고 대답하는 것이 그 프로그램의 규칙이었는데요. 이 규칙에 따라 그는 “오케이”, “할 수 있다”, “기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고, 또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여러가지 과정을 겪으면서 사람은 여러 가지 혼란과 소동도 경험하지만, 그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기회를 접하고, 또 다양한 사람들을 알아 갑니다. 주인공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예스라고 말하고 그렇게 행동했더니 나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기회들이 더 많이 생기더라.” 그러면서 “YES라고 했다면 찾아왔을 수많은 기회를 그 동안 NO라고 하는 바람에 내 쫓겨왔다”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해병특수수색대 특수부대 출신이라 교육을 모두 통과해야 특수 요원이 됩니다 기본교육 수색교육도 받고 7일동안 밥도 물도 안주고 스스로 해결하게 합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는레서 낙하산을 짊어지고 뛰여 내려야 합니다 바다속 잠수 훈련도 해야 합니다 산속에 들어가 레펠 훈련도 하고 삼군의 특수 교육을 다 바아야 합니다 모든 교육에 YES 즉 아멘 해야 하고 교육을 다 받아야 특수 요원이 됩니다 NO 하고 안받으면 즉시 퇴고 당해서 일반 해병으로 되돌아 갑니다 그래서 해병대 들어가서 기본교육과 특수교육 다 포함해서 1년정도 특수 교육을 받습니다 저는 작고 부족하지만 성경에서 배운 아멘의 신앙이 있어서 특수 요원이 되어 대한민국 1%가 된 사람입니다
연약하고 약하니 훈련 하셔서 특수 요원 되게하시고 또 해외 여러 나라에 보내셔서외국에서 7년을 훈련 하신후에 새벽에 기도할때에 4년째 “야 네인생이 무엇이냐? 음성을 듣고 3년동안 성경을 읽어 깨다고 인생은 사나 죽으나 하나님께 영광 영혼 구원 이라는 말씀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신학을 열심히 배워 목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하나님 말씀이면 바울의 아멘의 정신과 군대정신 YES맨으로 예 아멘 으로 살려고 최선을 다 합니다
여러분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YES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내 눈에는 부정적인 것으로 보여도 그것 마져도 우리가 “YES” (예) 라고 하면 우리의 삶은 긍정적으로 뒤바뀌어질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울은 예스맨이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바울은 지금 고린도로 가려던 계획이 4번씩이나 바뀌게 되는 일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된 이유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놓고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바울을 줏대없는 사람, 으로 몰아가지만 바울을 분명하게 고백하기를 나는 사람의 눈치를 살펴가면서 예, 아니오! 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언제나 “예” 라고만 말하는 사람이다 라는 사실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순종 즉 “예” 라는 대답을 할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본다면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 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요구 앞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이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알았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의 신앙을 얼마나 욕을 했을까요! 어떻게 자기 아들을 칼로 잡아서 짐승처럼, 불에 태워서 번제로 드릴 수 있을까! 이 얼마나 잔인한 하나님이고, 그리고 잘못된 신앙에 빠져있는 아브람인가! 하면서 얼마나 비난을 살 수 있는 일입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라고 대답하기 위해서는 따라야할 믿음이 많이 있습니다. “예”라고 대답하기 위해서 치러야할 희생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 희생과 오해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것을 주신다는 믿음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되게 하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러나 그때가 되면 주님이 그때 왜 우리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시고, 그 앞에 예라고 하게 하셨는지를 알 수 있는 날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무조건 “예”라고 말씀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선한 것으로, 좋은 것으로, 결국에는 우리에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주님이 주셨던 그 은혜, 그 좋은 것에 감사하는 것처럼, 결국에는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고 “예” “아멘”했던 것들이 여러분에게 축복으로 닿아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2. 감사의 믿음에 대해서 아멘
그리고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19절에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고 합니다. 예수님은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니오 라고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예”라고만 대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예수님도 아니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금식후에 예수님께서 꼭 마귀에게 시험을 받아야만 하셨겠습니까!
아니! 예수님이 금식을 해야할 필요가 있으셨을까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금식을 하셨고, 시험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를 앞두고 예수님의 고민은 정말로 심각했었습니다. 정말로 NO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것을 “예”로 받아들이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래야만 인류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런 사명을 가지시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모든 상황을 감사함으로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라고 하는 따뜻하고, 안전한 집을 지어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속에 들어가면 밤에도 춥지 않고 편안해질 수 있는데, 우리는 교회라는 곳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교회가 있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내가 놀고 싶고, 누리고 싶은 것도 못하게 느낍니다. 교회가 있어서 왠지 불편한 느낌을 많은 사람들이 같습니다. 나를 죄인 취급 하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준비해주신 정말로 좋은 곳이라는 사실, 정말로 따뜻한 곳이라는 사실, 정말로 안정한 곳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불편하게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교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앞에 십자가라는 것을 놓았습니다. 얼마나 불편합니까!, 얼마나 싫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지 않고 “예”라고 대답하시고 순종을 걸음을 걸아 가셨습니다. 오히려 저 십자가로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예수님은 감사로 받아들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에게도 예수님에게는 모든 것이 예만 되셨던 것처럼, 우리 앞에 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섭리의 믿음에 대해서
오늘 본문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고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들을 긍정적으로 “예” 했다면 그것은 또 나의 것으로 “아멘” 하라는 것입니다. “아멘”한 것은 감사입니다. “아멘”한 것은 찬송입니다. “아멘”한 것은 영광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는 “예”라고 말하기가 힘이든것도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예수밖에서는 그런것들이 충분히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예수 안으로 끌고 들어오면, 즉 예수 안에서 처다보게 되면 무엇이든지 “예”가 될수 있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믿음 안에 있을 때에 모든 것이 "예“가 되지, 예수 안 믿으면, 세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거절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예수 안에 있어서는“예” 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있는 섭리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나보고 “예”라고 대답하라고 요구 하실 때에는 반드시 그것을 통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애 속에서는 모든 것이 “예”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곳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예수님처럼 “예”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계획을 수없이 바꾸는 일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는 일이 되었다 하다라도, 그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고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은 하나님 말씀 앞에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 진정한 감사의 삶이되기 때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아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드리고, 그것이 지금 내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상관없이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주신 것들이라고 한다면, 비록, 땀을 흘리고 일을 했지만, 열매가 없고, 결실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그것도 감사로 받을 수 있어야 “아멘”의 신앙이 되어 집니다.
한해의 결실이 매년 풍부할 수 만은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때로는 실패를 할수도 있고, 때로는 빈손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하나님 앞에서는 감사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것 마져도 하나님앞에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여야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는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고, 오늘의 상처와 아픔을 주신 주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내일의 기쁨으로 바꾸어 주실 줄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환경을 “예”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아멘”으로 감사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믿음은 더욱 성숙해지고, 풍성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부정적 인 것도 긍정적인 것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큰 복으로 찾아오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감사의 수준인 하박국선지자의 감사 “비록 무화가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이런 놀라운 신앙의 성숙을 이루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