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心身건강을 위한 웰빙 산행
‘얼음의 추억’ 빙벽등반 妙味 만끽
해가 바뀔 때마다 건너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강이 있다. 겨울이라는 이름의 강(江)이다. 얼음다리를 놓으며 무자(戊子)년 한 해가 저물고 그 얼음 다리를 녹이면서 기축(己丑)년 한 해가 시작되었다. 혹독한 추위가 여러 산들의 계곡물과 폭포, 강하천을 꽁꽁 얼어붙게 할 때 오히려 이러한 추위를 반기며 혹한이 빚어내는 ‘얼음의 벽’을 오르면서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빙벽등반 마니아들이다.
빙벽등반가들은 매년 겨울마다 얼음의 벽, 즉 자연이든, 인공이든 수직의 빙벽을 순례하며 겨울을 즐기다가 기세등등하던 동장군(冬將軍)의 세력이 약화되며 남쪽으로부터 불어오는 훈풍에 얼음이 녹는 것을 아쉬워하곤 한다. 지난 겨울동안 이들 빙벽등반가들과 함께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매주 일요일과 공휴일마다 전국의 빙벽장과 얼음폭포를 찾아다니며 빙벽을 등반하였다.
2008년 12월 28일 춘천시 남면 강촌1리의 봉화산(487m) 구곡폭포(높이 50m) 빙벽을 위시하여 1월 1일, 3일, 4일, 11일 충북 영동 박달산의 송천 빙벽장, 18일 강원도 화천의 딴산 빙벽장, 23일, 24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3리 설악산 소승폭포(80m) 빙벽, 2월 1일 춘천시 강촌 구곡폭포 빙벽, 2월 8일 영동 송천 빙벽장, 2월 15일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3리 설악산 매바위 인공폭포(높이82m) 빙벽장 등을 순례하며 모두 11차례 약 20m 내지100m에 달하는 수직의 빙벽에 매달려 온 힘을 다해 오르내림을 반복하였다.
처음에는 빙벽화에 부착한 크램폰이 벗겨져 밑으로 떨어지게 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고 20m 내지 30m쯤 올라가다가 번번이 팔 힘이 달려 되돌아 하강하면서 그때마다 언뜻 볼 때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매달려보니 절대로 만만한 등반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곤 했다. 반반해 보이는 수직의 높은 바위벽도 아무런 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올라가는데 하물며 ‘머리위로 아이스 바일을 얼음벽에 찍어 손으로 당기면서 등산화에 부착한 크램폰으로 얼음벽을 찍으며 오르는 빙벽등반이 무엇이 그리 어렵겠는가’ 라는 단순한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막상 빙벽에 붙어 오르노라면 추위도 아랑곳없이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팔의 힘이 소진되면서 부득이 후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숨은 턱에 차오르고 팔 힘이 소진될 무렵 옆으로 오르는 등반가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이거 노동 중에서도 상노동입니다”라고 말을 건네면 “아이고 저도 지금 죽을 맛입니다”라고 응대하면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힘겹게 아이스 바일을 찍으며 오른다. 하강한 후에 다시 눈이 마주쳐 “이거 부모님 심부름이라면 하겠습니까” 라고 물으면 대개 주저 없이 “아마 아무도 할 사람 없을 겁니다” 라고 대답을 한다.
그렇다. 너나 할 것 없이 제가 좋아 하니까 죽을 기를 쓰면서 올라가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면 “이렇게 위험한 행위를 누구 잡으려고 하라고 합니까” 라는 대답과 함께 절대로 오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등산용품을 개발, 판매하는 회사에서 직원들의 암벽 및 빙벽등반 교육을 등산학교에 위탁해 실시할 경우 한두 번 하는 시늉만 하다가 그만 두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는 게 사계(斯界)의 통설(通說)이다.
빙벽등반의 세계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한 치의 흐트러짐이나 안일한 생각 없이 정신 집중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온 몸의 힘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순간의 방심과 오판은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가슴에 새기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또한 처음에는 대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고난도의 등반을 여러 차례의 반복훈련과 불굴의 도전을 통해 결국 어떠한 난관도 극복해내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 매력 중의 하나라 하겠다.
생애 첫 빙벽등반으로 춘천시 강촌의 구곡폭포(약 50m) 오버행 구간을, 선등자(先登者)가 위에서 온 힘을 다해 당겨준 덕택에 ‘어거지’로 간신히 오르긴 했지만 처음부터 워낙 난이도 높은 험난한 코스에 도전해 힘겹게 씨름을 한 탓인지 빙벽에 대한 두려움을 일찍이 극복할 수 있었다. 영동의 송천 빙벽장은 인위적으로 물을 뿌려 얼려 만든 인공빙벽장이어서 다양한 형태와 높이, 경사도를 지닌 여러 코스로 구성되어 있을 뿐더러 경부고속도로에서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 등 많은 장점을 갖고 있어서 늘 등반가들로 북적대는 모습이었다.
물론 송천 빙벽장 등반 둘째 날인 1월 3일, 약 20m 가량 빙벽을 오르던 한 등반가가 바닥으로 추락하는 끔찍한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도 하고 수차례 낙빙(落氷)에 어깨 등을 맞아 구급차로 호송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문득 전쟁터에 나와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지만 위험 속에서도 최대한 안전을 도모하며 등반을 반복했다. 특히 금년에는 ‘빙벽등반의 고수’를 포함해 네 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우리 팀은 등반 팀의 리더인 김 용기 선생의 철저한 안전의식 고취와 반드시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지도 덕택에 10여명의 동반자들 중 크게 다치거나 다른 불상사 없이 빙벽등반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기축년 설 직전인 1월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오른 설악산 소승폭포의 빙폭 등반은 기온 영하 20도에 강풍이 부는 악조건 속에서 80m의 수직빙벽을 10여명 전원 완등함으로써 여러 가지로 잊기 어려운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방금 본 소변의 물줄기가 땅에 떨어져 20센티미터도 못 가서 얼어버리는 혹한 속에서도 해맑은 얼음에 반사되는 햇빛은 자연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연출하였고 전혀 딴 세상, 별천지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신비감을 자아냈다.
2월 15일 설악산 매바위에서 약 80m의 수직빙벽을 완등하는 것으로 지난 겨울 2달 가량 돌아다니며 사귄 ‘얼음과의 추억’은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 빙벽의 중간 지점에서 주먹만 한 얼음덩어리에 오른 쪽 눈썹 아래 부위를 부딪치고 며칠 계속된 따뜻한 기온에 녹았던 얼음이 다시 언 탓으로 아이스바일을 찍을 때마다 예리한 얼음조각들이 튕겨 나와 왼쪽 눈썹이 시작되는 곳과 양쪽 눈 사이에 약간의 피가 맺히는 작은 상처를 입었다. ‘헤어지기 섭섭하다’는 얼음의 애교로 받아들이고 속초시의 바닷가로 나가 회를 곁들인 하산주(下山酒)로 빙벽등반을 마무리하였다. 올 겨울 처음으로 ‘얼음과 헤어지는 것도 섭섭한 일’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별천지/설악산 어느 계곡/소승폭포 빙선(氷仙)이여/그리고 매 바위 빛나는 얼음이여, 안녕/한겨울 정들었던/화천 딴산 바위얼음이여/ 햇빛 머금은 송천 빙벽이여/그리 찬 것만은 아닌 가슴으로/만나던 인연/어쩔 수 없이 가는 세월과 함께/추억만을 남기고/이제는 정녕 가려는가, 안녕, 안녕…”
<김 윤세/전주대학교 대체의학대학 객원 교수>
* 이 글은 한국산악회 회보에 게재하기 위해 쓴 것이라 여러 사정상 우리 등산학교 김용기 교장 선생님과 동문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말과 내용 소개를 못하였음을 깊이 이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