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공원에 가서 평화의 소녀상을 만났다. 해남아이쿱생협의 이명숙 선생님께서 해남평화나비의 활동과 평화비에 대해 소개해주셨다. 이 해남 평화의 소녀상은 2015년 12월 12일 제막식을 했는데, 전남지역에서 첫 소녀상이었다고 한다. 소녀의 맨발, 할머니인 소녀의 그림자, 그 그림자속 가슴에 새겨진 흰 나비... 상징들이 현실로 살아나 마음이 너무 시리다. 이 추운 마음을 녹여주는 것이 바로 평화나비와 같은 따듯한 분들이 하시는 일이겠다.
소녀 할머니에게 먼저 인사를 드리고 평화순례를 시작한다.
오늘 순례의 길잡이는 *** 님이시다.
해남공원 근처에 있는 서림공원으로 갔다. 서쪽에 있는 숲, 서림은 비보숲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전해온 마을숲이다. 팽나무(?) 아래로 <기미독립선언 기념비>가 있는데, 그 뒤는 단군의 영정을 모신 단군전이 있다.
해남지역의 3.1운동은 4월 6일, 11일 장날에 맞춰 읍내의 장터 등에서 일어났는데, 3.1독립선언에 고무된 10대의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만세운동을 이끌었다는 점이 특징인 것 같다.
해남서초등학교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 자녀들을 위한 학교였다.
한 때는 이곳에 서북청년단이 훈련하고 기거하던 곳이라고 한다.
해남군청앞 광장 5.18 민주항쟁 사적지. 표지석에 적혀있는 글
"이곳 해남 군청앞 군민광장은 당시 해남군민에게 5.18을 알린 최초의 장소이며, 많은 시민들이 모여 민주화를 위한 집회를 자주 열었던 곳이다. 또한 시민들이 해남경찰서를 점거하고 자체시위대를 결성, 군부집단에 항거하였으며, 완도와 진도군민에게도 항쟁의 불을 붙이는 등 민주화운동을 확산시킨 5.18민중항쟁의 역사적 향쟁이다."
해남에는 이런 사적지가 6곳이 있다. 우슬재, 해남군청, 해남중학교, 상등리국도변, 군부대앞, 대흥사입구 등
광주에서 민간인 학살의 만행이 알려지자 광주 분만 아니라 전라남도 전체로 시위가 확산되었다. 화순-나주-함평-무안-목포-영암-해남-진도 등 여러 지역에서 항쟁이 거세진다. 해남에서는 읍민 3천명이 이곳에 모여 대회를 했다고 한다. 해설하신 분도 당시 자신이 어렸을 적인데 "장날에 계엄군과 시민들이 달리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참석하신 분이 노란 평화나비를 순례자들에게 달아주셨다.
다음에 이른 곳은 천변교이다.
읍내리 매일시장 인근은 해방이후 미군주둔지였는데, 미군정은 그전부터 활동했던 인민위원회를 부정하고 탄압했다. 이곳은 또한 나부주대의 민간인 학살지이기도 하다. 나주부대사건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나주경찰부대가 해암읍을 거쳐 완도로 후퇴하면서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현재 해남군에서만 00명이 학살되었다고 밝혀졌다.
옛 금강탕이 있던 곳. 이곳이 과거에 해남읍 장터였던 곳이다. 해남 3.1운동 발원지이다. 장날을 이용해 해남공립보교생 김규수, 김현태, 신건희 등이 주도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이 만세운동 때 용문사 세평스님이라는 분이 태극기를 만들어주고 잠적했는데, 아무도 그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세평이라는 이름이 아마도 世平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아마도 그와 같이 이름 모를 꽃들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동초등학교. 서초등학교가 일본인 자녀들이 다녔다면, 동초등학교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다녔던 곳이다.
해남 우슬재 해남광장에 있는 해남항일운동 추모비다. 앞에 있는 표지석에는 1885년~1945년가지 일제 강점기 동안 왜군들에게 참살, 순국, 투옥되신 순국애국지사님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갑오농민혁명, 의병활동, 3.1만세운동에서광주학생독립운동까지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노력들이 있기에 우리가 있음을 다시 한 번 새긴다.
해남항일운동추모비와 나란히 서있는 6.25 참전기념탑, 베트남전 참전기념탑.
이 간극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는 우리 사회가 맞춰야 하는 지난하게 어려운 퍼즐이다.
김남주 시인 생가에 왔다. 시인의 대표작들이 적힌 시비들. 낯익은 시들을 시비들을 보니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갑다.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라고 노래했던 시인. 시를 한줄 한줄 읽어가다 보니, 오늘 해남순례길이 그렇게 꽃이 되고, 새가 되고, 불이 되고, 반란이 되었던 이들을 만나고 온 길이었다는 생각.
시인의 집앞에 있는 푸른 밀밭이 풍경을 더욱 살아나게 하는 것 같다. 비에 젖어 더욱 생생함을 더하는 밀밭 앞에서 순례자들 함께 찰칵. (사진 좌로부터, 해남순례를 준비하느라 애쓰신 김경윤 시인, 김남주 기념사업회 회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삼열, 이하윤, 박두규, 박소정 은빛님. (이하윤, 박두규, 박소정 은빛님들은 전남순례단 본대로 13일 동안 함께 걷는다.)
생가의 작은 정원에 마련된 시비 앞에서 상념에 젖는 순례자들.
전남순례 진행을 맡아 애쓰고 계신 박소정 선생님.
독방 감옥.
김남주 생가는 게스트하우스로도 사용되고 있다. 순례단은 오늘 이곳에서 머문다.
저녁에는 해남아이쿱생협 모임방에서 해남지역분들과 대화모임을 가졌다.
이삼열 은빛님은 "지금 남북정상 이후 많은 국민들이 환상과 기대를 갖고 있는데, 좀더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전쟁을 안하는 것뿐 아니라(종전) 전쟁의 가능성 자체를 배제하는 평화체제를 이루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민족중흥의 시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국민들이 보다 차분하고 냉철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평화체제의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참석자들과의 대화에서는 "지금은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다. 평화체제로 가는 길의 진도를 먼저 빼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고,"평화체제가 무엇인가 하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지역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