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7일 – 출항전날
오전 5시 어제 밤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그러나 푹푹 찌는 날씨였다. 자다말고 거실의 선풍기를 가져다 틀어 놓고 잠을 청했지만, 결국 오전 5시에 깼다. 땀을 흘려 몸이 아주 끈끈하다. 오늘은 김기자님 부자와 하루 종일 Galle 에 머물다, 저녁에는 에이전트 Nuwan의 집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스리랑카 가정의 일반적인 저녁 메뉴다. 마침 김기자님 아드님의 생일이라, 케익을 사서 조촐한 파티를 하기로 한다.
시간이 부족할지 모르니 아침부터 엔진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점검을 마치고 엔진룸 덮개를 닫는다. 시동을 걸어보고 싶으나, 오늘 마리나 안의 쓰레기가 어마무시하다. 엔진냉각수 입구가 막힐까봐 마리나 쓰레기가 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어지럽게 널려 있던 물건들도 항해 시 굴러다니지 않게 치우고, 콕핏을 물청소 한다. 빨래를 널고, 주변을 둘러본다. 떠날 준비가 된 것 같다. 바람이 상당히 좋다. 이대로라면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수도 있겠다.
8시 20분. 호주 선장 Gavin이 온다. 위스키를 들고 왔다. 뭐지? 존이 전해 주라는 선물이다. 하, 너무 감사하다. 그러나 나는 뭘 주지? 고민이다. 한국서 가져온 것도 없고. 엊그제 한국 식품 좀 줄까? 하니 거절했다. 매운 것 못 먹는단다. 궁리 끝에 이탈리아에서 사온 파스타와 토마토소스 2병을 주기로 한다. 진짜 유럽의 맛이니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 파스타와 소스를 비닐에 잘 챙겨 둔다.
존의 배는 오늘 출항 못한다. 회사에서 아직 출항 지시가 오지 않았다. Gavin의 요트도 토요일(20일) 출항 예정이라고 하니, 제네시스가 가장 먼저 출항하게 생겼다. 그러지 뭐.
9시 30분. 김기자님 부자가 왔다. 배에서 잠깐 촬영하고 존의 터그보트로 간다. 가지고 간 파스타와 토마토소스 2병을 전달한다. 존의 회사에서 언제 출항 할지 정해주지 않아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존이 오늘 오후 사하나비치에서 서핑을 한단다. 우리도 오후에 일마치고 사하나비치로 가기로 한다.
11시 30분. 툭툭을 타고 700 루피(3,073원)에 해피 바나나로 간다. 바나나 비치도 외국인들이 많은 곳이다. 양양의 분위기 인데 건축물은 유럽식이 많다. 아마 유럽인들의 식민지 시대 휴양지 같다. 해피 바나나는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다. 여기서 2,200 루피(9,660원)짜리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다양한 스테이크를 주문해서 같이 맛을 본다. 김기자님이 쏘셨다. 너무 감사합니다. 강릉 안목 바닷가에 온 것 같은데, 건축물이 유럽풍이고 서양 사람들이 많다. 바나나 비치 거리를 걸어서 구경한다. 이국적인 정취다.
아까 타고 왔던 툭툭을 콜 한다. 1,400 루피(6,147원)에 Galle 기차역에 들렀다가 GAC 사무실로 가기로 한다. 그런데 이 툭툭이 Galle 기차역에 다 가서 고장이 났다. 우리는 걸어서 기차역으로 가고, 툭툭 기사는 고장 난 툭툭을 밀고 간다. 툭툭 기사에게 1,000루피(4,391원)를 주었다. 기차역에서 내일 콜롬보 가는 기차를 예매 하려던 김기자님이 웃는다. 예약은 안 되고 내일 오후 2시 45분 기차를 직접 와서 표를 사야 하는데, 1인당 금액이 500 루피란다. 두 사람이 1,000루피(4,391원)다. Galle 기차역에서 GAC 사무실까지 툭툭을 타고 700루피에 도착, 에이전트와 이야기를 나눈다. 내일 오전 7시 30분에 에이전트가 마리나로 올 것이고, 거기서 전기, 물, 모두 금액 체크하고, GAC 사무실에 와서 카드로 계산을 마치면 된단다. 다만 마리나 비용 2,400루피(10,539원)는 현지 루피로 준비해야 한다는데 좀 수상쩍기는 하지만 뭐.
오후 2시 40분. 김기자님 아드님 생일 축하 준비용으로, 근처 케익 가게에서 제일 큰 초콜릿 케익을 산다. 3,560루피(15,632원)다. 김기자님 아드님에게 ‘내가 스리랑카 Galle에서 젤 큰 초컬릿 케익 산걸 잊지 말라’고 장난을 친다. 어차피 저녁 7시에 에이전트 Nuwan의 집에서 스리랑카 전통 식사를 대접받기로 했으니, 그 집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면 된다. 케익을 사서 GAC 사무실에 맡기고, 우리는 사하나 비치로 걸어간다. 약 500미터 거리다.
오후 3시 20분. 사하나 비치에 도착해 보니 존과 크루들도 도착해 있다. 각자 3,500루피(15,369원) 씩을 내고 서핑 교육을 받는다. 나는 내일부터 항해라 힘을 아껴야 한다. 현지 루피도 다 썼다. 음료수를 마시며 김기자님 부자가 서핑 하는 것을 촬영한다. 파도가 아주 좋다. 1시간 후 쯤엔 김기자님 부자도 보드 위에 서서 잠깐씩 전진한다. 역시 의지의 한국인들이다. 돈 낸 만큼 열심히 교육을 받는다. 존은 약 15분간 연습하더니 바로 포기.
오후 4시 30분. 일단 마리나로 돌아온다. 와보니 벌써 전기 콘센트를 빼놓았다. 오늘은 진짜 더운 날이다. 오늘 저녁에 선풍기 없이 어떻게 자라고!!! Nuwan 에게 S.O.S. 를 해 전기를 다시 연결한다. 선풍기를 틀어도 몸에서 땀이 줄줄 흐른다. 얼른 샤워하고 선풍기를 안고 있다. 2시간 휴식이다.
오후 6시 30분. 마리나 입구에서 김기자님 부자를 만나, 7시까지 GAC 사무실에 Nuwan을 만나러 갔다. 7시 10분이 되어 Nuwan이 왔다, 그는 바이크를 타고 앞장서고, 우리는 툭툭을 타고 따라갔다. 200루피. 그의 집에 도착하자 조용한 시골 마을의 주택가 분위기다. 집이 아담하고 스리랑카 가정 중에서는 괜찮은 살림의 가정이다. 그런데...
갑자기 마당에 반딧불이가 막 날아다닌다. 여기저기서 반짝인다. 마당에 반딧불이라니 너무 신기하다. 집안에 들어가니 Nuwan의 아내와 세 아들, 막내딸, 그리고 처제의 딸이 있다.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반겨 준다. 김기자님 아드님의 생일 축하 파티를 한다. 케익을 자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또 여자 조카와 딸이 함께 우리를 위해 춤을 춘다. 너무 귀엽고 멋지다. 우리 딸은 언제 자라서 내게 저런 예쁜 춤을 보여 줄까? 흥겨운 분위기에서 케익과 함께 밀크티가 나오는데 이런 이런! 맛이 너무 훌륭하다. 먼저 스리랑카 전통방식으로 손을 사용하여 식사를 어떻게 먹는지 배웠다.
그런데, 여기는 불교문화 방식으로 손님이 먼저 식사를 하고 돌아가면, 그때 가족들이 식사를 하는 거란다. 우리가 식사를 하고 돌아가야 그때 식사를 하는 것이다. 신기하다. 결국 우리 셋이 식사를 했다, 너무 맛나다. 이들의 환대에 너무 감사하다. 나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나는 Nuwan에게 당신의 스리랑카 전통 식사가 훌륭하다고 인사하고, 한국 전통 방식은 아이들에게 적당한 용돈을 주는데, 나는 작은 돈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에게 대표로 돈을 주면 당신이 아이들에게 쪼개주면 안 되겠냐고 묻자, 우리 집안의 대장은 아내라며 아내에게 주라고 한다. 나는 50달러를 건넨다. 마음의 인사다.
우리가 떠나야 식사를 할 것 같아서 서둘러 먹고 단체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툭툭이 오는 동안 마당에서 기다리는데 반딧불이가 막 날라 다니고, 둘째 아들이 원숭이보다 빠르게 나무에 올라간다. 거기서 스타 열매를 따서 잘라 준다. 완전히 별 모양 열매인데 달고 시원하다.
진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다. 이들의 환대에 가슴 저릴만큼 감동한다. 우리보다 조금 더 선진국인 이탈리아에서도 까를로의 온 가족이 우리를 환대해 주었다. 우리보다 후진국인 스리랑카에서도 Nuwan 가족의 말도 못하게 정다운 환대를 받았다. 이들이 혹시 한국에 오면 나도 이들과 같은 방식의 가족 환대를 할 수 있을까? Nuwan은 존경받고 위엄있는 아버지다. 부럽다. 한국의 가정은 이들과 뭐가 다를까? 우리는 뭘 놓치고 있는 것일까? 생각이 많은 저녁이다. 내일 오전 9시 출항이다. 말레이시아 랑카위까지 9일간 항해다.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