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박씨(咸陽朴氏)의 대종회(大宗會)와 종친(宗親)여러분★
“함양박씨(咸陽朴氏)”란 존재(存在)는 대종중(大宗中)이 있어야만
함양박씨(咸陽朴氏)라는 사회적(社會的)인 구성체(構成體)를 인정(認定)을 받음과 동시(同時)에 그들과 함께 사회적(社會的)대열(隊列)에 동참(同參)할 수가 있는데 우리의 대종회(大宗會)는 이름뿐이고 사회적(社會的)인 자격(資格)도 같추지 못하고 있는 현실정(現實精)을 나열(羅列)해 보겠습니다.
함양박씨(咸陽朴氏)의 시조(始祖)는 고려조(高麗朝)에 문과(文科)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내시고 함양군(咸陽君)에 봉해지신 박선(朴善)을 우리의 시조(始祖)로 받들고 고려(高麗)를 지나고 이조(李朝)시대(時代)의 영조(英祖)대왕(大王)36년까지 700여년간(餘年間)을 우리의 시조(始祖)로 잘 모시고 지나왔었는데 1760年度에 밀양(密陽)박세욱(朴世旭)이 신라소원록(新羅溯源錄)을 발표(發表)함으로서 함양박씨(咸陽朴氏)대종회(大宗會)에서도 회장(會長)남순(南淳)과 부회장(副會長)시언(始彦)이 경명왕자(景明王子)의 확인(確認)도 없이 속함대군(速咸大君)의 단비(壇碑)와 설제단(設祭壇)을 해 놓고 시제(時祭)를 지내오는데 2004年度 대종회장(大宗會長)성종(聖鐘)이 速咸大君이하의 5世代를 追加해서 38年間을 지내와도 감히 大宗會長이 해 놓은 것을 大宗會의 任員, 理事, 顧問, 宗事硏究員들 까지도 反對하는 사람은 없었고 표성비(表誠碑)까지 세워주었으니 時祭를 올릴때는 야단 법석이니 大宗會와 宗事硏究員들에게 까지 호소문(呼訴文)을 올렸어도 始祖公墓所聖域化碑까지도 速咸大君을 올려 놓았으며 영명재지(永明齋誌)에까지 올려 놓으려 하니 자라나는 後孫들에게 무었을 전해줄것인지??. 이제는 나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力不足)이니 종친(宗親)여러분의 힘을 뫃아 신임(新任)대종회장(大宗會長)과 대종회(大宗會)의 앞날을 위해서 총력(總力)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라(新羅)54대(代)경명왕(景明王)의 실존왕자(實存王子)라면 당연(當然)히받아 들였을것인데 밀양박씨(密陽朴氏)들이 신라(新羅)전통(傳統)을 이어받으려고 규정공파(糾正公派)에서 조작(造作)한 것을 알고서도 받아들였다는 함양박씨(咸陽朴氏)의 존재(存在)가 고작 남들이 만들어놓은 허수아비에 놀아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理解)를 할 수가 없다.
밀양박씨(密陽회朴氏)들은 박세욱(朴世旭)이 신라소원록(新羅溯溯源)밀양박씨(密陽朴氏)규정공파(糾正公派)1662년임인보(壬寅譜)에
서 박건회(朴建會)가 발행(發行)한 경명왕자(景明王子)8대군(大君)을 분봉(分封)한 것을 백년후(百年後)에 발표(發表)한 것을 시작(始作)으로 계속해서 아래와 같은 박씨(朴氏)선원(璿源)세보(世譜)
까지 조작(造作)을 해서 세상(世上)을 흔들어 놓고있는 것을 함양박씨(咸陽朴氏)의 대종회(大宗會)가 못버리고 있는 것은 부사공파(副使公派)에서 세무(世茂)때부터 시조(始祖)로 바들어온 속함대군(速咸大君)을 어떻게 버릴수가 있느냐고 항변(抗辯)을 하고 있는
우리 대종회(大宗會)의 종사(宗史)연구위원장(硏究委員長)은 속함대군(速咸大君)의 괘변(卦變)을 지지(支持)하는 확실(確實)한 전거(典據)를 제시(提示)해서 함양박씨(咸陽朴氏)들의 대중(大衆)앞에서 분명(分明)한 답변(答辯)을 요구(要求)합니다.
박씨(朴氏)선원(璿源)세보(世譜)
밀양박씨(密陽朴氏)들이 조작(造作)한 박씨선원세보(朴氏璿源世譜)신라(新羅)기원후(紀원후)二千十二年(1955)을미(乙未)단양절(端陽節)해백공(海伯公)후예(後裔)영화(永和)근발(謹跋)
아래에 올려저 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들이 조작(造作)한 박씨선원세보(朴氏璿源世譜)의 정체(正體)를 확인(確認)해 보시고 이런 것을 밑고서 속함대군(速咸大君)을 우리의 시조(始祖)로 믿을수가
있는지를 함양박씨(咸陽朴氏)의 대문중(大門中)에서 확정(確定)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7. 5. 31.
만오 박노용 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