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계절의 작품 다시 읽기/아동문학
동심(童心), 사막의 오아시스
김태두/아동문학가
아동문학을 시 ․ 소설 ․ 희곡의 3대 양식으로 갈래 짓는다면 동시(동시조)와 동요는 시로, 동화 소년소설은 소설로, 아동극과 아동용 시나리오는 희곡으로 유별될 수 있다.
지난 호 아동문학 분야에 반갑게도 이 세 갈래의 작품들이 골고루 하나씩 선보였다. 동시조의 강수성 님과 동화의 권유현 님, 그리고 동극의 이한영 님 작품이 그것이다. 분야야 다르지만 동심을 품고 있는 점에서는 모두 아동문학이란 장르 한 보따리에 싸인다. 아동문학은 주제나, 구성, 문체 등 다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동심이 살아 있어야 한다.
동심이란 무엇인가? 흔히 동심=천사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는 사고방식은 잘못이다. 동심의 사전적 의미는 어린이의 마음, 또는 어린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을 뜻한다. 모름지기 아동문학가는 순진한 감정의 번득임과 자연스러운 양심에 호소해서 아동 특유의 환몽 세계를 그림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아름다움과 슬픔의 황홀경에 잠기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자면 우선 동심의 경지에 허심탄회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동시조 ‘가련한 분재’는 나무를 친구로 삼아 마음을 나누는 동심이 벌써 제목에 나타나 있고, 동화 ‘치키와 같이 울다’에서도 제목에서 동물을 사랑하는 동심을 읽을 수 있다. 단 아동극본 ‘파락호 김용환’은 제목에서 성인 냄새를 풍긴다. 작자는 이 점을 염려하여 따로 각주를 달아놓았다. 파락호는 애국지사를 숨기기 위한 가짜 얼굴이며 김용환은 어린이들이 존경하고, 친구로 삼을 수 있는 인물이다. 보통 어른으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즉 세속에 야합하지 않고, 순진무구한 애국심을 지닌 이 마음이 동심이 아닐까? 따라서 세 작품 모두 동심에 기초한 동심을 담은 작품이라 아름차다.
각론으로 넘어가 먼저 동시조를 상재한 강수성님의 ‘가련한 분재’부터 함께 다시 감상하기로 하겠다.
강수성님은 경남아동문학회의 원로 작가로서 먼저 희곡이 197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하였고, 다음 ‘아동문예’에 동시로 당선된 역량 있는 만능 작가다.
그해 연간집에 ‘홀로 섰는 나무’ ‘꽃과 나무에게도’ 등 금싸라기 같은 작품을 발표하고, 극본도 1992년 연간집에 ‘물방울의 기도’라는 작품을 올려 극작가의 면모를 과시했다. 이번에는 또 동시조를 선보였다.
엄마 아빠 따라서 간 통영의 남망산에서
죽어가는 소나무 한 그루를 보았어요.
커다란 나무인데도 앙상하게 서 있는.
모두 4연으로 된 연시조인데 첫 연에서는 중장과 종장을 환치시켜 놓아 극적인 묘를 살렸다. 이 연의 중심은 단연 종장에 있지 않고 중장에다 옮겨놓은 ‘죽어가는 소나무 한 그루 본 일’이다.
부모와 함께 남망산으로 구경 갔으면 여러 가지 볼거리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작품 속의 화자는 유독 죽어가는 소나무에 관심이 쏠렸다. 이것은 자연을 사랑하고, 동식물을 친구로 여기지 않는다면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을뿐더러 들어와도 관심이 없는 법이다. 저 소나무가 어째서 여기에 있으며 왜 죽어가고 있을까?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자연과 예술의 관계를 표현한다는 것이
오히려 나무를 병들게 하였으니
매미들 수풀 속에서 통곡하고 있었다.
시조의 형식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종장 둘째마디라는 것은 시조를 접한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중장까지는 3․4조를 기준으로 나아가다가 갑자기 3․5조로 껑충 뛰는 것은 흐름을 극적으로 하려는 장치로 바로 소설의 클라이맥스에 해당된다.
위 동시조의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1,2연에서는 본 것, 3,4연에서는 생각한 것, 느낀 것으로 짜여져 있어 일반적인 운문의 흐름이다. 작자는 이 4연의 종장에 모든 것을 품어내었다. 즉 작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매미를 통해 슬피 울고 있는 것이다. 자연 속에 잘 사는 걸 예술을 표현하다고 분재를 만들어 아까운 나무를 왜 죽이느냐? 이 나쁜 인간들아!
다음은 동화 권유현 님의 ‘치키와 같이 울다’를 감상해 보고자 한다.
권유현 님은 1991년도 경남문학 신인상 ‘할배나무’가 동화로 당선되어 입문하였다. 그 후 농민문학상, 계몽아동문학상, 아동문예, MBC창작동화 당선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 중견작가이다. 그가 장학사 시절에 학교를 방문하는 길이면 어린이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여 갔다. 이렇게 어린이를 사랑하는 분이 어떻게 아동문학을 멀리할 수 있겠는가. 그는 선생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동화를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치키는 우리 집에서 기르는 몸집이 작은 개입니다. 아버지 말로는 열두 살이 지났다는데, 사람으로 치면 예순이나 일흔 살쯤 되는 늙은 나이라 합니다.
이 동화는 제목에 나타난 바와 같이 늙고 몸집이 작은 개-치키를 기르며 정이 든 화자-나는 치키의 슬픔을 같이 나누는 다정한 감정의 소유자다. 작자의 세상사를 세밀하고도 따스하게 살피는 눈썰미는 주위의 소소한 사연들을 재미나는 이야기거리로 만드는 재주로 나타난다.
그러니까 그저께의 일입니다.
가방을 메고 막 집을 나서려는데, 치키가 뭘 물고 들어서는 것이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입에 문 것이 쥐인가 했지요.
그것이 쥐가 아니라 치키가 낳은 새끼였다. 이로써 이야기는 발단되는데 작자는 줄거리의 단순한 흐름에 변화를 주기 위해 동화에서 가능한 금기시 하는 소급법을 썼다. 이 글은 숫자를 붙이지 않았지만 6단위로 나뉜다. 그 배열이 4-2-1-3-5-6으로 동화로서 다소 혼잡한 구성으로 난해할 수 있겠으나 내용이 유기적으로 통일성이 있어 무난하다고 본다.
모두 걱정을 했습니다. 그동안 치키는 더 늘어지고 맥이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눈 아래 길게 흘러내린 자국이 있는 걸 보면 치키도 꽤 운 것 같아요. 나도 그 모습에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고요.
치키는 결국 죽은 새끼를 낳은 것이다. 짐승이지만 새끼 죽음을 슬퍼하는 저런 아픔이 있구나! 화자의 슬픔 또한 옮겨와서 밤새 앓아 병원까지 가는 사연은 읽는 이의 내면을 파고든다. 이 글은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해 소리 높여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읽는 이가 끝없이 되새김하게 한다.
끝으로 이한영 님의 아동극본 ‘파락호 김용호’를 들추어 보자.
이한영 님은 경남아동문학회 연간집 2001년호에 극본 ‘새봄이의 탄생’을 올린 후에 한 해도 그르지 않고 꾸준히 한 우물만 파는 성실한 극작가이다. 그의 탄생은 경남아동문학회를 풍성하게 하고, 기름지게 한다.
그는 발로 뛰는 부지런한 성품을 지녀 이번 작품도 아마 직접 안동까지 다녀와 고증을 거친 후 아동들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각색하였을 것이다.
아내 :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아이고 이 무슨 변괴더냐? 세상에 세전종답 18만평을 야금야금 노름으로 날리더니, 이번엔 종택까지 노름빚으로 넘긴단 말이 대체 웬 말이란 말이오? 어흐흐흑! 아이고 흑흑!
딸 : (어머니를 붙들어 일으키며) 어머니, 제발 고정하세요. 이런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첫 장면이다. 김용호의 주변인물들이 먼저 등장하고 있다. 우리 독자들은 벌써 각주를 통해 김용호가 파락호의 탈을 쓴 애국지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진작 등장인물들은 이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비난하는 대목에서 이 극본의 재미가 쏠쏠하게 전해진다. 또한 살아있는 회화와 극의 프로세스가 개막에서 폐막까지 자연스러운 추이를 보이고 운행되어 전체적 융합을 가진 점도 돋보인다.
용환 : (숨을 헐떡이며) 광복을 보고 가니……아무 ……여한이 없네.
친구2: (용환의 손을 잡으며) 그리고 용환이, 이제 자네의 행적을 가족들에는 털어놔도 되지 않겠나? 어찌 사람이 이리도 모진가?
용환 : (고개를 저으며) 선비가 뜻을 세워 한평생 소신껏 살았으면 됐지……무슨 해명을 하겠는가?
대단원의 막이 내리는 장면이다. 죽어서도 파락호로 남겠다는 순애보다. 동심을 길러내는 마중물 같은 희생이 깔려 있다. 그 유언 같은 한 마디를 지키기 위해 50년이란 세월 속에 묻고 지냈다면,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의 숭고한 뜻을 받드는 것이 아니라 직무유기다. 이 묻힐 수밖에 없었던 숨은 사연이 좀 더 강렬하게 어필하였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아무튼 아동문학은 동심이 필요충분조건이다. 동심을 바탕으로 쓴 세 작품은 사막에 오아시스란 동심을 꽃피어 오가는 길손들의 목마름을 충분히 적셔 줄 두멍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