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에 가을
2009.9.27
행사장은 늘 분주 하지 많은 않은 곳 인가 보다. 유독 이번 행사가 그러한듯 하다.
어두워지는 하늘에 반항이라도 하듯 도시에 불빛은 늘어가고 행사 마지막 날은 다른 직원들에게 맏긴채
짧은 주말을 즐기기 위해 하나 둘 불빛이 모여드는 고속도로로 들어서니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다.
단지 지난여름, 그리고 어느 해 먹었던 오천원짜리 어죽 맛을 잊지 못해 그 맛에 끌려 비싼 기름값 들여 가는 것이 아니라고 심하게 부정하며 가고 있었다.
인삼에 고장인 금산에 가는 것이며 선물할 인삼을 사러가기 위해 주말을 택한 것이다.
그해 여름밤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어죽집을 찾았으나 재료가 떨어졌다며 손님을 받지 않던 식당에서 나와 찾은 저녁식사가 추어탕 이었다.
금산에서의 추어탕은 평생 맛보지 못할 맛없는 추어탕이었고 금산에서는 어죽 이외에
다른 먹거리는 먹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 머릿속에 각인 된 터라 휴게소를 이용하여 저녁을 먹고 도착한 금산이다.
인삼축제기간이 내일까지란 커다란 입간판이 보였고 미리 둘러 보기 위해 축제장 안으로 들어섰다.
밤 10시가 넘은 축제장 안은 아직도 시끌벅적한 열기가 가득했다.
그중에서도 먹거리가 가장 풍성했다. 인삼장국, 인삼파전, 인삼튀김, 인삼막걸리, 인삼김치 등등등
씁쓸함과 함께 또한번 머리를 쥐어뜯는 후회를 하고는 생각이 바꿔졌다. 금산에서는 방아잎이 들어간 추어탕만 먹지 않으면 된다.
인삼을 파는 가계는 모두 닫혔고 축제장 안을 메우고 있는 것은 포장마차와 먹거리 간식을 파는 노점상,
시끌벅적 사람들이 모인 곳은 각양각색에 모양을 만들어 내는 채칼장수와 헌것을 새것같이 닦아내는 광약장수였다.
열띤 경쟁이라도 하듯 마이크를 목에 걸고 똑같이 반복되는 멘트로 지나는 사람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오늘만 반값이라는 광약장수는 간간이 마술도 보여주며 오천원짜리 지폐를 수북이 쌓아 놓은 것이 단연 우세했다.
시골장터를 보는 듯 흥미롭고 그 옛날 학창시절 4일과 9일에 광천읍내에 서던 오일장을 생각나게 한다.
버스통학을 했던 나는 학교에서 터미널 까지 가는 길에 항상 오일장이 서면
시장 초머리에 다라에 가득 담긴 순대를 파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이백원 만큼이면 아줌마 손바닥 길이정도 순대를 끈어 배를 가르고 소금을 뿌려서 휴지에 감아 주셨었다.
그러면 우린 삼삼오오 모여 순대를 먹으며 갖가지 입을 꺼리, 먹을 꺼리, 약장수와, 엿장수
또는 정말 장애인인지 장애인을 가장하고 고무 튜부로 다리와 배를 감싸고는 고무줄, 좀약, 옷핀 등이 가득담긴 좌판을 밀며 배로 기어서 다니던
행상들의 볼거리를 보며 가다보면 어느새 터미널에 도착해 있곤 했다.
축제장안의 열기는 밤이 깊도록 끝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었다.
주말아침, 비가 온다는 예고가 있었다.
새벽안개가 곱게 물든 산자락을 조용히 휘감은 모양새다.
뾰족뾰족한 전나무를 감싸고 산과 산 사이에 골을 타고 내리는 듯 흐르는 듯
그렇게 가을을 알리는 가랑비가 내 가슴까지 차분하고도 포근하게 주말아침
행복한 그림처럼 내게 왔고, 밤새 전등을 못살게 굴던 하루살이 떼도 빗속에 묻혔는지 잠잠하기만 하다,
늣은 밤이어서 보지 못했던 산장도 한적하니 산과 잘 어울리는 한 폭에 수채화가 되어 눈에 들어 왔다.
여름날 아침처럼 아침겸 점심은 어죽과 도리뱅뱅이다. 비좁은 식당 입구에 서서 5분에서 10분은 족히 기다려야 자리가 난다. 주위에 어죽집이 많았지만 유독 줄을 서서 먹어야하는 곳은 이곳 원골식당뿐이다. 역시 맛은 변함이 없다 옛날 연탄불 위에 올려놓을법한 손잡이가 위로달린 프라이펜에 한번 기름에 튀겨내고 맛스러운 양념을 바르고 가지런히 누워있는 빙어들... 감칠맛 나는 맛은 소주 한 병을 거뜬히 비울만큼 최고의 안주가 되었다.
듬성듬성 보이는 수제비와 쑥갓에 향긋함이 더하면 담백한 맛이 일품인 어죽은 어디에서나 맛볼수 있는 맛이 아니다.
옆자리엔 오십대 중반정도 되시는 아저씨와 부모님 되실것 같은 70~80대 할머니 할아버지 께서 드시고 계셨다.
할아버지에 머리는 백발이셨으나 정정해 보였고 할머니는 쪼그라든 입가에 주름이 많은 것이 이가 이원치 않으신듯 했다.
내 엄마, 아버지께서도 어죽을 좋아하시는데.. 지금도 좋아하실까... 이 금산에 어죽 맛을 보셨으면 분명 맛있다 하셨을 것이다.
괜한 비로 인해 차분했던 마음이 조금은 훈훈함과 동시에 착착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깍아지는 절벽으로 이뤄진 산, 그 밑으로 흐르는 꽤나 큰 강, 원골유원지에 강에도 가을색이 완연했다.
돌산 사이사이에 먼저 떠나려 옷을 갈아입은 낙엽송, 물속에 반쯤잠긴 바위, 푸른색을 잃고 그대로 휘청거리는 갈대,
난 그해 여름과는 사뭇 다른 쓸쓸하게 속을 휜히 내비치며 소리 없이 비를 받아 유유히 흐르는 또 다른 분위기에 조급해지는 마음을 추수려야 했다.
가을색을 띄우며 내리는 비는 나에 차 주변으로 계속 따라오고 있었고,
어죽집에서 인삼축제장으로 가는 길에 길가는 각양각색의 소국과 코스모스로 나에 감탄사는 지칠줄 모르고 환한 미소가 가득한 채 계속 이어졌다,
차에서 내리고 싶었다,
안개꽃마냥 작은 꽃들이 가로수를 대신해서 가을을 말해주고 가을이란 계절속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었다.
인산축제장은 어제와는 또 다른 행상들과 갖가지의 행사들로 메꿔저 있었다.
인삼주 시음회, 금산을 알리는 콩트, 인삼으로 만든 제품 시연회, 체험장, 등등. 많은 이파를 모으기 위해 전국 치어리더 대회까지 개최 중이었다.
단연 인삼 직거래장터에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어디에서 온 사람들일까. 어디로 가는 사람들일까, 임시주차장도 부족해서 도로를 점거하고 주차장으로 쓰고 있었다.
주차장시설이 미비해 많이 걸어야 하는 불편함이 아쉬웠다.
아직 빗방울은 금산 축제장 안을 배회하고 있었고 갈길이 먼 나는 발길을 재촉했다.
고속도로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한적한 여유를 찾아 국도로 올라오기로 했다.
시음장에서 마신 독한 인삼주 때문일까 그는 차에 오르자마자 운전하는 내게 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가만가만 차창을 적시는 비와 국도변 코스모스길까지
그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혼미해지는 행복감으로 말을 잊었다.
가로수길의 코스모스의 여러 가지 색도 예쁘지만, 들녘이 온통 코스모스 밭을 이루고 있었다.
비오는 가운데 우산을 받쳐들고 사진 찍는 연인도 눈에 띄었다.
가을은 코스모스가 있어서 좋고 그로인해 어릴적을 기억할 수 있어서 좋다.
지금처럼 벼 이삭이 패이고 나면서부터 신작로 길가에 코스모스가 즐비하게 피면
학교가 끝나자마자 신작로 옆에 자리한 논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참새를 쫏으러 달려가곤 했었다.
누렇게 익어가는 논두렁에 허수아비가 아버지에 낡은 옷을 입고 서 있으면
나와 동생은 긴 장대에 비닐 조각을 달아 가끔씩 휙 휙 내저으며 훠어이~~ 훠어이~~ 내지르곤 했다.
신작로에서 공기돌을 주어 치마가득 담아다 신작노와 논을 연결하던 개울 다리위에 공기돌을 펼쳐 놓고 공기놀이도 하고
머리키만큼 큰 코스모스 사이로 들어가 숨박꼭질도 하고
코스모스를 색깔별로 따서 다리위에서 한송이 한송이 따서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면 빙글 빙글 돌며 물위로 떨어져 떠내려가는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신작로에 한 시간에 한 번씩 버스가 지날때면 그 버스에 탄 사람들을 동경하며 손을 흔들고는 버스가 지나면서 일으키는 먼지로 대번 고개를 논쪽으로 돌리고 눈을 질끈 감곤 했었다.
지금처럼 들판은 누런 황금빛이고 길가에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었었다.
그러나 논을 지키던 허수아비도 장대를 휘두르는 아이도 없다.
코스모스 밭에서 사진을 찍는 연인, 가족만이 즐거운 표정으로 한폭에 그림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을 뿐이다.
행사와 축제가 많은 가을은 내게 옛날이라는 기억을 가져다 주고 그리움을 만들어 낸다.
한 십년쯤 지나서 다시 금산 축제장을 찾는다면, 이 길을 지난다면,
또 다른 풍경과 감정앞에서 그때는 두가지의 옛날을 기억해 낼 것이다
첫댓글 시골이라해도 옛날 풍경이 없지요? 그래도 추억을 더듬어며 보는 축제의 맛은 동심으로 돌리기에 충분할겁니다.빙어에 쇠주 좋지요,ㅎㅎ.담번에 만나면 추어탕한그릇할까요,ㅎㅎㅎ.
미소님 반갑습니다. ^^ 덕분에 좋은 구경 눈으로 실컷 했습니다. 맛있는 인삼 음식들 먹어 보고 싶네요.. 추억까지 덤으로 가져 오셨군요.. 따뜻한 글들이 참 정겹습니다. ^^*
미소님 그날 저도 금산인삼축제장에 있었는데..부슬부슬 내리는 인삼축제장에서 오가며 서로 스쳐지났을지도 모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