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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
1964년
1월1일부 미터법시행
한국 인구증가율 높아 산아제한권장
첫정유공장 설립
2월 삼분의혹사태.무제한송선
국산세단 신성호 생산
5월 21일 - 대한민국, 무장 공수단 군인들의 법원 난입 사건 발생.
동경올림픽
6월 3일 - 서울시 일원에 비상계엄령 선포, 6·3 항쟁 발발
10월 1일 - 일본 고속철도 신칸센(新幹線) 개통.
10월 10일 - 제 18회 도쿄 올림픽 개막.8월 24일 - 중앙정보부, 통일혁명당 지하 간첩단 사건 수사 발표
9월 22일 - 대한민국 군사원조단 140명 최초로 베트남 도착.
10월 16일 - 중화인민공화국, 최초의 핵실험 실시
11월30일 1억불수출기념차 수출의 날지정
60년전 러일전쟁 발발. 한일의정서체결
경운궁이 불타며 중요문서와 고전이 사라졌다.
이완용 정계 재진출.
1604년 초신성 폭발
서애 류성룡이 63세 때 징비록을 집필했다.조선 선조가 임진왜란때 공을 세운 사람에게 공신을 책봉함.
60년전 중종 : 조선 제 11대 국왕사망
조선 인종즉위. 사림의 대거 정계진출
59년전 을사사화로 대거 축출됨.(이언적 형량을 적게함. 이일로12월 사직. 3년후 유배)
58년전 스페인 펠리페2세 즉위.
스페인 안트베르펜 군인들 반란
50년전 상파울루가 건설되었다
주세붕사망.김시민탄생
40년전 사망한 페르디난트 1세는 근세 이후 1차 세계대전 때까지 중부 유럽을 호령한 오스트리아계 합스부르크 가문과 합스부르크 제국의 시조가 되는 인물이다
막시밀리안 2세 등극.
30년전 샤를 9세사망.프랑스 왕국의 국왕. 발루아-앙굴렘 왕조의 마지막 왕.
앙리 3세 즉위
15년전 스페인 남부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인구 절반이 준다.화란으로 이동.
앙리 3세뒤를 이어 매부였던 앙리 드 부르봉이 즉위해서 부르봉 왕조의 앙리 4세가 되었다
10년전 당항포해전
10년후 1614년 이수광이 《지봉유설》쓴다
영창대군 사망.
20년후 1624년 이괄의 난이 발생하다.
네덜란드가 에스파냐의 저항을 물리치고 타이완 섬남부에 거점을 마련하였다.
30년후 영국령 아메리카에서 메릴랜드 식민지가 성립되었다
40년후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는 베이징에 입성하여 중국 전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50년후 계갑대기근.인조에 이어 효종4~5년차에 대기근발생.
이은 현종 1~2년.11~12년차도 대기근.
갑술환국 다음1~2년차도 대기근발생한다.
백두산폭발
60년후 목성의 대적반이 처음 발견되었다
프랑스 동인도 회사, 프랑스 서인도 회사 설립
1244년 하이메 1세때 발렌시아는 완전히 아라곤에 정복당했다. 1244년 아라곤과 카스티야 사이에 날인된 협정으로 그때까지 두 나라가 새로이 획득한 영토들에 관한 경계선 문제가 해결되었다.
킵차크 한국과 차가타이 칸국이 건국된 다음해.
60년전 1184년 2월에 명종이 소금장사 출신 이의민을 공부상서에 임명하였다
리스본 포위전에서 포르투갈 잠수부들이 지휘함을 침몰시켰으나 무슬림 군대는 그를 바탕으로 성벽을 타고 넘어가 도시를 함락하였으나 유수프의 전사 소식을 듣고 수천명의 포로와 함께 후퇴하였다.
- 야쿱 알 만수르가 무와히드 왕조 제 3대 술탄이 되었다.
-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가마쿠라에 공문소와 문주소를 설치하였다.
50년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6세가 잉글랜드의 왕 리처드 1세의 몸값을 받고 그를 석방시켰다.
- 라이 인근의 전투에서 셀주크 제국의 마지막 술탄 토그릴 3세가 호라즘 왕조의 술탄 알라 웃딘 테키시와의 싸움에서 전사하여 하마단인근에 남아있던 셀주크 제국이 멸망하였다
40년전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나코 절벽 전투에서 몽골군이 나이만 - 자다란 군대를 대파하고 구르베수를 사로잡았다.
몽골 군이 메르키트를 공격하였다.
테오도루스 1세가 니케아 제국을 건국하였다
30년전 금선종이 금나라의 수도를 중도에서 남경 개봉부로 옮겼다
- 부빈 전투에서 필리프 2세의 프랑스 왕국군이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4세와 잉글랜드의 존 왕의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부뱅 전투)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8세가 안달루시아의 베이자를 포위하였으나 이베리아 반도를 덮친 기근으로 식량이 부족해지자 철수하였다.
20년전 제국 군대가 5차 탕구트 원정을 감행하여 서하의 수도인 흥경 (인촨)을 포위하였다.
서하의 헌종 이덕왕이 몽골에 항복하고 인질을
바치는 대가로 국가를 보전하였다.
남송과 금나라가 화의에 합의
10년전 금멸망.몽고3차침입
10년후 몽골의 6차 고려 침공으로 20만명이 학살되었다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테오도루스 2세 라스카리스가 이끄는 니케아 제국군이 아센 1세가 이끄는 제2 불가리아 제국군을를 격파하였다.
20년후 몽골 제국군이 사할린을 침공하였다.
독일의 튀링겐 계승 전쟁이 종결되었고 헤센 주가 튀링겐으로부터 분리되어 자유주가 되었다
30년후 에드워드 1세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전함 900척과 병사 3만 5천으로 구성된 여몽연합군이 합포를 출항하며 제 1차 일본 원정이 시작되었다.
40년후 원나라 군대가 버마의 뜨가웅을 함락한 후 남하하여 한린을 포위하였다.
맘루크 왕조의 술탄 알 만수르 칼라운이 예루살렘 왕국과 정전 협정을 맺었다. (1290년에 어긴다.)
노가이 칸이 이끄는 킵차크 한국이 두번째로 헝가리를 공격하였다.
50년후 테무르 칸이 원성종으로 즉위하였다.
제노바 공화국와 베네치아 공화국 간의 2차 제노바 전쟁이 발발하였다.
포르투갈과 잉글랜드 간의 동맹이 성립되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 프랑스의 필리프 4세가 서로에게 선전포고 하였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의 꼭두각시 왕 존에게 프랑스와의 전쟁에 종군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스코트 - 프랑스 동맹, 독립 전쟁의 발단)
60년후 1304년 충렬왕 국학에 대성전이 완성되다
원나라와 여러 칸국들이 화의를 맺어 몽골 울루스의 내전이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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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4년샤를로망은 884년 초의 바이킹족과의 전투 중에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결국 사망하고 왕국은 삼촌인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뚱보 카를에게 넘어갔다. 이로서 일시적으로 샤를마뉴의 제국은 다시 짧은 시간 동안 명목상 통일된다.
당나라 황소의 난으로 멸망위기
60년전 824년 당목종사망 경종 즉위
콘스탄티노플 대주교 포티우스가 로마 헌법을 발표하며 로마 교황이 비잔틴 제국의 황제에게 충성 서약할 것을 주장하였다.
바스크 인들이 2차 론세스바예스 전투에서 카롤링거 (프랑크) 군대를 격파하여 팜플로나 왕국(나바라 왕국)이 건국되었고, 이니고 아리스타가 초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선암사 창건
50년전 신흥사가 창건되었다.
40년전 루트비히 2세가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
30년전 용주사가 창건되었다.호리크 1세 : 데인족의 왕사망
20년전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차르 보리스가 비잔틴 제국의 황제 미카일 3세를 대부로 삼고 세례를 받으며 그리스 정교로 개종하였다.
10년후 894년 궁예독립
20년후 후고구려의 왕 궁예가 국호를 후고구려에서 마진으로 변경하였다.
30년후 비잔티움 제국과 불가리아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갈리시아의 오르도뇨 2세가 레온 왕국의 왕도 겸하게 되며, 레온 - 갈리시아 왕국의 판도는 코임브라 백작령, 포르투 백작령, 갈리시아 왕국,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을 포함하게 된다. 이 동군연합은 10여년간 지속된다.
40년후 - 마자르족들이 이탈리아의 도시 파비아를 불태웠다.
기나라가 멸망하였다
1차 불가리아 제국의 황제 시메온이 라쉬카 (세르비아)를 점령하였다. 세르바아는 930년에야 재차 독립한다
50년후 맹지상이 후촉을 건국하고 후촉의 초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운주 전투에서 유금필의 맹활약으로 고려가 또다시 후백제에 승리하자, 웅진 이북의 30여 성이 고려로 넘어감으로써 서부 전선에서도 고려의 우위가 굳어지다. 이후 후백제는 기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60년후 944년 광평시랑 한현규와 예빈경 김염을 진(晋)나라에 보내어 왕위를 계승한 것을 알리고 거란족을 쳐부순 것을 하례하였다.
이복 동생 왕요와 왕소가 왕위에 도전하고 있음을 눈치챈 왕규(王規)는 945년(혜종 2) 이 사실을 알렸다
524년 신라 법흥왕이 울진 봉평 신라비를 세운다. 백제 성왕 2년 524년 양(梁)나라 고조(高祖)와 국교를 강화하여 양 고조로부터 "지절도독 백제제군사수동장군 백제왕(持節都督 百濟諸軍事 綏東將軍 百濟王)"에 책봉되었다
60년전 464년 유송 효무제 죽고 전폐제 즉위
464년 자비왕 7년 신라 내에 주둔한 고구려병 100인을 살해하며 고구려 영향에서 나옴
50년전 - 율리우스 네포스가 포르투스에 도착하여 군대를 이끌고 라벤나에 입성하여 서로마 제국의 황제인 글리케리우스를 퇴위, 유배시키고 자신이 황제가 되었다.
개로왕 전사
40년전 알라리크 2세가 서고트 왕국의 왕이 되었다.
발라시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30년전 동부여가 고구려에 합병되었다.
룽먼 석굴이 착공되었다.
북위의 효문제가 다퉁에서 뤄양으로 수도를 옮겼다
20년전
동고트 왕국군이 베오그라드를 약탈하였다.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이 건설되었다.
지증왕이 국호를 신라로 정하였다
10년전 법흥왕 즉위
10년후 파푸아 산에서 저항하던 겔리메르가 비잔틴 제국에게 항복하며 반달 왕국이 멸망하였다
톨레도가 서고트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20년후 베트남에서 이남제에 의해서 전 레 왕조가 세워졌다.
비잔티움 제국의 베살리우스 장군이 오트란토를 공격하던 토틸라 왕의 동고트 왕국군을 격퇴하였다.
30년후 관산성 전투 : 백제의 왕 성왕이 백제군을 이끌고 신라의 관산성을 공격하였으나 신라군에게 패배고 전사하였다.
- 볼투르노 강에서 비잔티움 제국군이 프랑크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50년후 티베리우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김유신어머니 만명부인탄생.
60년후 진평왕 584년까지 조모(할머니)인 사도왕후 박씨가 섭정을 맡았다
서기 164년 아달라이사금 봄 2월에 용이 서울에 나타났다.
60년전 104년 파사이사금 7월 실직곡국이 신라에 반란하나 곧 진압되다
다뉴브 강을 가로지르는 트라야누스 다리가 건설되었다.
로마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50년전 트라야누스 개선문이 완공되었다
41년전 123년 3월에 결국 일본과 화친해 이 때부터는 거의 80년 가까이 일본군이 신라에 쳐들어오는 기록이 없어진다
30년전 빌라 아드리아나가 완공되었다.
일성 이사금이 신라 7대 왕이 되었다
20년전 - 충제(후한)가 2살의 나이로 후한 제9대 황제가 되었다.
제방(堤防)을 수축하고 전야(田野)를 넓게 개간하도록 명하였으며, 백성들이 금은주옥(金銀珠玉)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10년전 아달라이사금 즉위
1년후 길선의 백제도주후 백제와의 평화가 깨짐.
10년후 엘레우테리오가 13대 로마 교황이 되었다
20년후 황건적의 난
석씨왕 벌휴이사금즉위
30년후 고구려의 국상 을파소가 진대법을 실시하였다.
제2차 이소스 전투 : 이소스 평원에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이끄는 군대가 동방의 대립황제 페스케니우스 니게르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후 조조가 업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
50년후 초고왕이 진과에게 명하여 군사 1천을 이끌고 말갈의 석문성을 공격하여 취하도록 하였다.
- 구수왕이 백제 6대 국왕이 되었다.
조조가 헌제황후 복씨와 그 일가를 모두 처형하였다
BC 197년. 로마 및 연합군 지휘관은 티투스 퀸크티우스 플라미니누스, 마케도니아 군 지휘관은 필리포스5세 키노스케팔라이 전투에서 지중해 최강이라 불리우던 팔랑크스와 신예 강자 레기온이 붙어 그리스가 승리
BC 197년 진희가 반란을 일으켰고 고조는 친정하였다. 진희는 토벌되었다
60년전 베트남의 고대 국가 구낙(甌雒)의 초대 국왕이자, 마지막 국왕. 왕호(王號)는 안양왕(安陽王)즉위.
10년후 남월1대 조타즉위
60년후 문왕이 남월 2대 왕이 되었다
bc557년 부처탄생 추정
이스라엘이 분열된지 5년째인 르호보암 즉위 5년(BC917년)에 시삭 1세는 병거 1천2백승, 마병 6만명과 그외 언청난 병력으로 팔레스틴의 원정길에 올랏다
중원갑자
1784년
8월 27일 - 첫 풍선기구가 에든버러에서 제임스 타일러에 의해 만들어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유명한 등차수열의 합 공식, (n(n+1))/2를 7세 때 생각해 냄.조선의 실학자 유득공이 발해에 관한 역사서인 《발해고(渤海考)》를 저술함
60년전 영조, 조선 21대 국왕으로 왕위에 오름.
50년전 프로이센 왕국의 작곡가 바흐에 의해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가 작곡되었다.
대영제국의 시인 포프가 인간론을 출판하였다.
40년전 툴롱 해전이 발발, 프랑스-스페인 연합해군이 영국 해군을 격파(!)
- 예카테리나 대제가 표트르 3세와의 결혼을 위하여 러시아 정교로 개종.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 프리드리히 대왕이 프라하를 함락.
30년전 프렌치 인디언 전쟁
- 영국군과 프랑스군 사이에 주먼빌 글렌 전투가 발생하였다.
- 조지 워싱턴이 이끄는 영국군이 프랑스군에게 항복하다. 프랑스군은 기사도에 입각하여 영국군을 석방시키다.
20년전 조선 통신사를 통하여 고구마가 일본에서 조선으로 전래되다.
영국의 하그리브스가 제니 방적기를 발명하였다.
북사르전투에서 영국 군이 벵갈 군대를 격파하였다
10년전 미국독립전쟁
16년후 노론벽파 집권
10년후 이란 카자르왕조 개창
20년후 이운규탄생.120년후 최제우 탄생
30년후 - 대 프랑스 동맹군이 파리를 점령하다.
- 루이 16세의 동생이 왕위에 추대되면서 부르봉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다.
40년후 영국 네덜란드가 협정을 맺어 네덜란드는 보르네오 남부와 자바 섬 북부 (아체) 를, 영국은 믈라카를 지배하기로 하였다. (2년 후 시행)
- 루이 18세의 뒤를 이어 샤를 10세가 프랑스의 왕으로 즉위하다.
50년후 독일 연방 가맹국 사이에서 관세동맹(Zollverein)이 체결되다.
헌종이 조선의 24대 국왕으로 즉위하다
60년후 1844년 나폴레옹하 장군이었던 칼 14세 요한 사망하여 아들이 스웨덴왕 즉위
영락제 : 명나라 제3대 황제사망
명의 영락제 1424년 진중에서 병사할 때까지 5차례의 친정(親征)을 하여 영토를 확장시켰다. 티베트와 필리핀, 수마트라, 인도 등으로부터 조공을 받았고, 변경의 소수민족을 억제할 목적으로 구이저우 포정사사(貴州布政使司)를 설치하여 변방 소수민족의 움직임을 통제하였다
60년전 덕흥군은 1364년 음력 1월 원나라의 지원을 받아 최유와 함께 원나라군 1만 명을 이끌고 고려의 서북면에 침입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최영과 이성계에 의해 섬멸되었다.
주원장은 1364년 진우량의 근거지인 우창,이후 후베이 성, 후난 성(湖南省)을 모두 점령하고 장시 성을 차지했다. 1364년 주원장은 스스로 왕이 되어 무왕(武王)이라 선포했다.
스웨덴의 왕 마그누스 4세와 하콘이 페위되고 메클렌부르크 공작 알베르트가 왕으로 즉위하였다.
샤를 5세가 프랑스 왕으로 즉위하였다.
50년전 최영이 제주도를 공격해 원(元)의 목호 세력을 진압함(목호의 난)
자제위(子弟衛) 홍륜과 최만생이 개혁군주 고려 공민왕을 살해함.
40년전 야드비가가 폴란드의 여왕으로 즉위하였다.
카라 무함마드가 흑양 왕조의 군주로 즉위하였다.
명 홍무제가 과거제를 정비하였다.
명나라에서 서안종루가 건립되었다
30년전 조선이 개경에서 한양으로 천도하였다.
정도전이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였다.
한양에 경복궁과 종묘가 지어지기 시작하였다.
오스만 제국의 위협을 느낀 보스니아 왕국이 헝가리 왕국에 자발적으로 복속하였다.
오스만 제국군이 아나돌루 히사르를 건설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였다. (~ 1402년)
20년전 토리노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10년전 지기스문트가 제창하여 대립 교황 요한 23세가 남독일 보덴 호반의 콘스탄츠에 소집한 기독교의 공의회인 콘스탄츠 공의회가 시작되었다
10년후 -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 등이 해시계 앙부일구를 제작하였다.장영실이 자동 물시계 자격루를 제작하였다.
30년후 오스만 제국과 헝가리, 폴란드군 간에 바르나 전투가 발발하였다.
역서 칠정산이 편찬되었다.
전세제도인 공법이 실시되었다.
30년후 로디 조약이 체결되어 피렌체, 나폴리, 밀라노 간의 분쟁이 종식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세르비아를 공격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가 편찬되었다.
40년후 1464년 메디치가 코지모가 사망하자 피렌체 당국은 조례를 통해 그에게 “국부(國父, Pater patriae)”라는 칭호를 수여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생전에 좋아하였던 고대 로마의 시인 키케로에게 부여되었던 영예로운 호칭이기도 하였다.
세조 10년(1464년)에 마지막으로 환구단 제사를 지내고 중단
50년후 부르고뉴 공작과 프랑스 왕 사이에서 부르고뉴 전쟁이 발발하였다.
조선시대 오례의 예법, 절차에 관해 기록한 책인 국조오례의가 완성되었다
60년후 포르투갈에서 지원을 끌어내는 데에 실패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포르투갈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에스파냐로의 여정을 떠나 이듬해에 도달한다.
조선성종 경국대전편찬
1063년 송 인종이 붕어 했을 때에 대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조윤양의 13번째 아들 영종이 제5대 황제로서 즉위 했다. 영종은 파탄하고 있던 재정을 재건하기 위해서 개혁에 착수하려고 했지만,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이 강하고, 또 영종 자신도 병약하고, 재위한 지 불과 4년 만에 병사했기 때문에 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60년전 하인리히 2세가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다.폴란드 왕국이 보헤미아를 상실하였다
요나라군이 송나라로 진격하였다.
1004년 송나라와 요나라가 전연의 맹을 맺음(1004년)
50년전 스벤 1세가 급사하자, 그의 아들 크누트가 잉글랜드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40년전 콘라트 2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며 잘리어 왕조가 열리게 되었다.
렘노스 섬 전투에서 비잔틴 군대가 에게 해로 쇄도하던 키예프 루스 군대를 격파하였다.
시리아 지방의 미르다스 왕조가 파티마 왕조로부터 자치를 획득하였다.
중국 송나라의 사천 일대에서 세계 최초의 지폐가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30년전 조이의 노력으로 그녀의 남편이 미하일 4세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레온 왕국이 나바라 왕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은 레온 속국 신세로 독립)
포르투갈 백작이 코임브라 인근을 점령하였다.
20년전 고려에서 북방 민족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건설하기 시작한 천리장성을 완공하였다.
송과 서하 간에 경력의 화의가 성립되었다.
송나라를 대표하는 병법서이자 세계 최초로 화약의 제조술이 기록된 무경총요가 완성되었다
10년전 초신성 폭발
10년후 동로마 제국의 황제 미카일 7세가 정교와 가톨릭 간의 통합을 약속하며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였다.
20년후 셀주크 제국이 안티오크를 점령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대립교황 클레멘스 3세의 주관으로 대관식을 치렀다.
30년후 레몽 4세가 툴루즈 백작으로 즉위하였다.
송철종이 신법을 전면 부활시켰다.
- 도널드 3세가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었다
40년후 하란 전투에서 아르투크 왕조의 소크만이 지휘한 셀주크 제국군이 안티오키아 공국과 에데사 백국의 십자군을 격파하여 에데사 백국의 군주 보두앵 2세를 포로로 만들었다. 이후 탕크레드가 에데사 백국의 섭정이 된다.
- 알폰소 1세가 아라곤 왕국과 나바라 왕국의 왕이 되었다.
톡테킨이 다마스쿠스의 에미르가 되어 부리 왕조가 세워졌다. (셀주크 제국의 봉신)
50년후 여진족 연맹장 완안아구타가 거란에 선전포고 하였다-출하점전투
여진의 아쿠타가 맹안모극제를 제정하였다.
고려 예종의 요청으로 송나라가 황실 악기를 보내주었다
60년후 1124년 고려 인종 이자겸은 다른 가문에서 왕비가 배출될 경우 외척 세력이 자신에게 장애가 될 것을 우려하여 1124년에는 셋째 딸을, 이듬해에 넷째 딸을 인종에게 시집보내 왕비로 삼게 했다
704년 동로마 제국, 이슬람의 킬리키아침공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다.
시시움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원정군이 우마이야 왕조군을 섬멸하였다.
압둘라 이븐 아브드 알 말리크가 지휘하는 이슬람군이 아르메니아를 공격하였다
60년전 644년 12월, 당 태종이 30만 병력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
이슬람의 2대 정통 칼리파 우마르 이븐 알카타브가 페르시아계 노예인 피루즈 나하반디에게 암살당했다.
53년전 야즈데게르드 3세가 651년 메르브에서 살해당하면서 사산 왕조는 완전히 멸망했다
50년전 신라 제 29대 왕 태종무열왕이 최초의 진골 출신 왕으로 즉위하면서 신라 왕가의 성골 가계가 끊어지고 진골들의 왕위 세습이 시작되었다.
아르메니아 전역이 이슬람(정통 칼리파 정권)의 치하로 들어갔다.
40년전 사비성에서 일어난 백제 유민들의 백제 부흥 운동이 진압되었다.
30년전 안압지가 축조되었다.
이슬람 세력이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였다
10년후 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에브로 강까지 도달하였다. 아브드 알 아지즈는 에보라, 산타렘, 코임브라를 함락하며 포르투갈 중심부 (타호 강 유역) 를 점령하였다
20년후 무슬림 세력이 비잔티움 제국이 다스리는 발레아레스 제도, 사르데냐, 코르시카를 습격하였다
30년후 프랑크 왕국군이 프리시아족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40년후 야지드 3세가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가 되었다.
위구르족이 동돌궐을 멸망시키고 위구르 제국을 건국하였다.
50년후 알만수르가 아바스 왕조 제 2대 칼리프가 되었다.
당나라의 승려 감진이 일본에 설탕을 소개하였다.
피핀 3세의 프랑크 왕국군이 롬바르디아 왕국군을 격퇴하였다.
59년후 당대종 763년, 토번의 장수 다짜뤼공(達扎樂宮)이 20만 군대를 이끌고 공격해 장안을 11일간 점령당하기도 하는 엄청난 수모를 당함
344년 백제(百濟) 비류왕(比流王) 41년 / 계왕(契王) 원년
60년전 284년 신라(新羅) 미추 이사금(味鄒泥師今) 23년 / 유례 이사금(儒禮泥師今) 원년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기독교 박해로 유명
50년전 왜군이 신라의 장봉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하지 못하였다.
40년전 백제에서 군사를 보내어 낙랑군의 서쪽 현을 빼앗았다.
분서왕이 낙랑의 자객에게 살해당하고, 비류왕이 백제 11대 국왕이 되었다.
성한이 건국되고 이웅이 성한 제 1대 황제가 되었다
30년전 로마 제국의 내전 중 하나로서, 키발라이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군이 리키니우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대방군이 고구려에 의해 멸망하였다.
10년후 동진의 환온이 은호를 탄핵시키고 군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전진을 공격하였으나 군량 부족으로 퇴각했다.
12년후 석씨대신 김씨 내물왕등극
20년후 발렌티니아누스 1세가 동생인 발렌스에게 로마 제국 동부의 통치권을 위임하였다.
왜가 군사를 일으켜 신라를 공격하였다
30년후 암브로시우스가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었다
40년후 고국양왕이 고구려 제18대 국왕이 되었다.
침류왕이 백제 제15대 국왕이 되었다
인도의 승려 마라난타가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였다
50년후 후연의 모용수가 서연을 멸망시켰다.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수곡성에서 백제의 침략군을 격퇴하였다.
장수왕탄생.
전진의 황제인 부등이 서진의 걸복건귀에게 원군을 청하였으나 요흥의 군대가 먼저 도착하여 부등의 군대를 격퇴하였고, 부등은 살해되었다. 이후 부등의 장자인 부숭이 황제에 오르지만 걸복건귀의 군사에게 쫓겨나 땅을 빼앗긴다. 부숭은 구지의 양정에게 신세를 졌으나 구지의 양정이 걸복건귀에게 졌고, 그도 이 때 같이 죽으면서 전진은 멸망했다
프리기두스 강에서 테오도시우스 1세의 군대가 유게니우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고, 유게니우스는 처형당하였다. 이후 테오도시우스 1세는 로마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되었다.
훈족이 다뉴브 강을 넘어 고트족 마을들을 약탈, 파괴하였다.
60년후 404년
고구려가 후연을 쳐서 유주(허베이)를 함락시켰다
bc17년 3월, 백제 온조왕이 족부(族父:왕의 7촌 형제) 을음(乙音)을 우보로 삼았다.
60년전 동부여왕 해부루는 bc77년 곤연鯤淵에서 제사 지내고 금와왕을 얻었다.
40년전 - 사로국(신라)이 건국되고 박혁거세가 신라의 초대 군주(거서간)가 되었다
20년전 bc37년 삼국사기 고구려 건국
1년전 백제건국
20년후 남해 차차웅이 신라 제 2대 왕이 되었다. 혁거세 시체가 4군데로 피살된 것으로 본다.
30년후 로마 제국의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하였다.
- 티베리우스가 로마 제국의 두번째 황제가 되었다.
고구려의 유리명왕이 아들 무휼을 태자로 삼았다.
고구려의 오이와 마리가 2만 명의 고구려군을 이끌고 양맥(梁貊)을 멸망시켰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죽은 이후 라인 강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나 게르마니쿠스가 이를 진압하였다.
39년후 신나라 멸망.
신라의 수도 금성(현재의 경주시)에 성이 세워지다.
50년후 장도릉 : 후한의 도교 사상가탄생.
60년후 44년에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다시 낙랑을 정복하여 살수(薩水) 이남을 한나라 영토로 하였다고 한다
기원전 1817년 곧 세누스레트 1세에서 3세의 통치기간을 가리켜 세누스레트 왕들의 시대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