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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미토)
1978년
총선에서 야당승리
최은희,신상옥 실종. 동일방직 쟁의
312개 수입자유화 조치
압구정현대아파트 특혜분양 부동산투기대책수립.퇴폐풍조만연.
통일주체국민회의 박정희 당선
고리원자력 1호기 가동
자연보호헌장 선포.
9월 16일 - 이란서 대지진 발생, 1만 5천여 명 사망
10월 7일 - 대한민국에서 홍성 지진이 발생하다
야권득표율이 여당에 앞섬.
60년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해.
조선서당 억제.신설불가-
이동휘가 아시아최초 한인사회당 설립
서재필, 정한경, 민찬호, 안창호, 이승만 등이 미국 워싱턴에서 신한협회를 조직하였다.
여운형, 장덕수, 조동우, 김구 등이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단을 조직하였다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 등이 모여 독립운동 진행을 논의하고 대중화, 일원화, 비폭력의 3대 원칙을 결정하였다.
사상 가장 치명적인 감염병으로 기록된 지난 1918년 스페인 독감의 병인 기전은 100년후 규명했다.
미국은 100년동안 팍스아메리카를 유지중이다.
장작림이 만주3성 관할하는 군벌이 됨.
단기서.조곤이 합작 북양정부의 중심이 됨.
1618년 무오년이다.
(승괘60)대과괘.
광해군이 다른 신하의 신임을 잃는 일이 발생한다.바로 인목왕후를 유폐한다.
3개의 혜성이 나타나고
서양은 30년 독일의 최후의 종교전쟁이 발발한다. 이전쟁 결과 개신교의 승리로 네덜란드와 스위스가
독립하고 프랑스,스웨덴의 영토가 늘어나고 합스부르크가는 위축된다. 독일땅은 황폐해지고 영방국가화하여 비스마르크 출현전까지 중심권에서 벗아나게 된다.
1618년 러시아-폴란드 사이의 전쟁은 데울리노 휴전(Truce of Deulino)으로 종결되었다. 양국은 14년 6개월의 휴전을 약속했다. 폴란드는 점령지를 그대로 자국 영토로써 확정하였고, 러시아는 폴란드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을 지킬 수 있었다.
65년전 가와나카지마 전투
1553년 음력 4월, 무라카미 요시키요의 요청을 받은 나가오 가게토라는 5천의 군을 이끌고 시나노 가와나카지마로 출병한다.(제1차 가와나카지마 전투). 그러나, 하루노부와 가게토라는 서로 대치만 한 채 5월에 양군은 함께 철퇴한다.
60년전- 엘리자베스 1세가 영국 여왕으로 즉위하였다.임진왜란 선봉 고니시 유키자카 탄생
50년전 오라녜 공 빌럼 1세가 합스부르크 왕가에 선전포고하여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시작됨.
40년전 영국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혼 곶과 드레이크 해협 발견
30년전 영국의 해군과 에스파니아의 무적함대가 교전
20년전 - 앙리 4세, 낭트 칙령 발표.
-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조선에 주둔하던 왜군 전군 철수.
- 노량해전. 이순신 사망.
10년저 대동법실시
10년후 영국 의회 《권리청원》(Pattion of Right)를 당시 국왕 찰스 1세에게 제출하다.
샤 자한, 무굴 제국의 왕위에 오르다.
20년후일본 - 시마바라 봉기가 장기전 끝에 진압됨.
- 조선 - 조창원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임(장렬왕후)
30년후 베스트팔렌 조약 체결. 30년 전쟁 종전.
40년후 파리 외방전교회가 창설되었다.
8월 청의 요청으로 조선의 제2차 나선정벌
50년후 봄베이에 영국령 동인도회사가 설립되었다.
스톡홀름에 유럽의 첫 국영은행이 설립되었다
현종9년 8이때부터 조선의 공주들은 시집가서 아들이든, 딸이든 일체 자식을 보지 못했다. 자식이 아예 없는 경종과 순종 황제는 일단 빼고 현종, 영조, 정조, 순조의 딸들은 자식을 낳지 못했고 숙종, 헌종, 철종, 고종 황제의 딸들은 요절
60년후 조선에서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허적작품
1258년(대과괘60)수천수
고려도 4년간 따뜻한 기후가 끝나고 한랭해진다.
중세 유럽의 기록에 따르면 1258년 여름 이상저온 현상과 함께 대홍수가 발생했다. 그해 흉작으로 대재앙이 발생한 것은 불문가지. 최근 고고학자들은 영국 런던에서 발굴된 수천구의 해골 더미의 추정 연대가 1258년으로 확인했다. 당시 이상저온 현상의 원인은 대규모 화산 폭발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됐을 뿐 화산 폭발이 일어난 장소는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조휘와 탁청이 고려지방관을 죽이고 몽고에 항복하자 몽고는 쌍성총관부를 설치한다.
최양백은 최항의 유지를 충실하게 받들었다. 최항이 죽었을 때 그는 빈틈없고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먼저 최항의 죽음에 대해 보안을 철저하게 유지했다. 최고 권력자의 죽음이 섣불리 새어 나가 생길 수도 있는 혼란을 미연에 차단한 것이다. 김준과 이봉주에게도 전혀 알리지 않고 최항의 사저 밖에서 머물고 있던 선인열에게 먼저 은밀히 알렸다. 이어 최양백과 선인열은 삼별초 군사들을 급히 소집해서 어수선한 순간을 틈타 다른 곳에서 일지도 모를 군사적 움직임을 원천 봉쇄했다. 그리고는 최항의 죽음을 모두에게 알렸다.
최우에게서 최항으로 넘어갈 때 삼인방이 이끄는 가노 집단이 큰 역할을 했지만 최항에게서 최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는 가노 집단이 완전히 소외된 것이다. 아마 김준은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1258년최의는 점차 심복 중 유능(柳能)·선인열(宣仁烈)·최양백만을 총애하여 신임하고 가병 지휘관 김인준과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 등을 멀리함으로써 정치적으로 소외시켰다. 이에 불만을 품은 김인준과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은 신의군 장교들과 함께 모의하여 반최의연대세력(反崔竩連帶勢力)을 형성하였고, 1258년 3월에 무오정변을 일으켜 최의를 살해하였다. 이로써 4대 60여 년 간에 걸친 최씨무신정권이 붕괴되었고 형식적으로나마 왕정이 복고되었다.
최항의 뒤를 이은 최의(崔竩)가 최양백(崔良伯)·유능(柳能) 등을 신임하고 김준을 멀리하는 데 불만을 품고, 1258년(고종 45) 유경(柳璥)·박송비(朴松庇) 등과 모의, 최의,최양백를 죽이고 왕정복고를 꾀하였다.
김준은 이로 인해 장군에 오르고 위사공신(衛社功臣) 2등이 되었다. 그러나 정치의 실권이 유경에게 돌아가자 동생 김충(金冲)과 함께 고종에게 참소해 유경의 승선직을 파면하게 하고, 그의 일당인 우득규(禹得圭)·김득룡(金得龍) 등을 참살하고 경원록(慶元錄)은 유배보냈다.
오스만 초대황제 오스만1세탄생
1255년 훌라구가 세운 일 한국에 의해 압바스 왕조 멸망.
몽케칸은 쿠빌라이를 문책하여 남송을 공격할 것을 종용한다.
60년전 독일 십자군이 비블로스를 탈환하고 다마스쿠스 방향으로 진군하며 토론을 포위하였다. 예루살렘 왕국과 트리폴리 백국의 영토가 맞닿게 되었다.
1198년 옹칸은 테무진에게 알리지도 않고 메르키트족을 급습하고 그 노획물을 혼자서 독차지하였다. 이러한 옹 칸의 욕심과 그로 인한 전리품 분배 과정의 인색함은 둘 사이의 불화를 싹트게 만들었다.
독일 십자군 대부분이 레반트를 떠났다.
만적의 난이 발발하였다.
리처드 1세와 필리프 2세간의 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존이 프랑스 기사 18명을 생포하였다.
예루살렘 왕국과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알 아딜이 서로의 영토를 인정한다는 평화 협정을 맺었다.
하인리히 6세의 갓 태어난 아들 프리드리히가 시칠리아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50년전 서하 북부지방을 유린한 몽골제국군이 철수하였다.
칭기즈칸이 금나라 황제의 조서를 거부하였다.
오이라트가 몽골 제국에 복속하였다.
수부타이의 몽골 제국군이 메르키트 부족의 잔당을 평정하였다.
사미원이 금과의 화의를 이끈 공으로 남송의 재상으로 승진하였다.
40년전 몽골 제국이 서요의 군대를 격파하였다.
제베가 지휘하는 몽골 제국군이 쿠출룩의 서요로 진군, 종교의 관용을 베풀어 발라사군과 카슈가르에 무혈입성하여 신나이만을 멸망시켰다.
조치의 몽골군이 2차 키르기즈 원정을 나섰다.
무칼리의 몽골군이 태원과 평양을 함락하였다
30년전 무르시아가 무와히드 왕조의 지배를 거부하고 바그다드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를 떠받들며 사실상 독립하여 3차 타이파 분열기의 서막이 열렸다.
라도슬라브가 세르비아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보두앵 2세가 장 드 브리엔느의 섭정을 받으며 라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툴루이 임시칸
20년전 몽골군이 모스크바를 점령하였다.
몽골의 침입으로 황룡사가 소실되었다.
크메르 제국이 루앙프라방을 상실하였다.
태국의 수코타이 왕조가 수립되었다.
부탄의 토와드라 사원이 건설되었다..
20년후 마르히펠트 전투에서 루돌프 1세의 신성로마제국과 라디슬라우스 4세의 헝가리 왕국의 연합군이 오토카르 2세의 보헤미아 왕국군을 상대로 격파하였다. 여기서 8만여명이 동원되어 중세 기사끼리 싸운 최대의 전투가 되었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오스트리아 지배를 시작하였다.
- 안도라가 아라곤 왕국으로부터 독립했다.
30년후 교황 니콜라오 4세가 이교도 쿠만 인들을 포용한 헝가리의 왕 라디슬라우스 4세를 파문하고 그에 대한 십자군을 선포하였다.
쩐흥다오가 이끄는 베트남 군이 2차 백등강 전투에서 원나라 군대를 대파하여 후퇴시켰다
나얀의 전사 (1287.7) 후에도 이어지던 반란이 세계 최초의 권총까지 동원한 원나라 군에게 진압되었다
50년후 룸 셀주크 튀르크가 멸망하였다.
영국 에드워드 2세가 대관식을 치렀다.
독일의 왕 하인리히 7세가 신성로마제국황제로 선출되었다.
헝가리 왕국의 앙주 - 카페 왕조가 시작되었다.
고려의 건축물인 수덕사 대웅전이 건립되었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가 최초의 실내 테니스 코트를 설립하였다.
60년후 충숙왕 원나라에 보내는 무리한 세공을 삭감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보기도 했으며, 당시 백성들의 큰 고통이었던 공녀나 환관들을 원으로 보내는 것을 줄여 달라고 청원하기도 했다. 사심관폐지
898년 (감괘60)지풍승
궁예가 송악에 도읍하다. 후삼국시대가 시작되다
샤를 3세가 서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60년전 신라의 상대등으로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김명이 이홍과 함께 군사를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켜 희강왕의 근신들을 살해하고 이에 희강왕이 궁중에서 목매어 죽은 김명의 난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김명이 신라의 왕위에 즉위하여 신라 제 44대 왕인 민애왕이 되었다.
50년전 바이킹 습격자들이 아키텐의 수도인 보르도를 점령하였다.
사라센족이 라구사를 점령하였다
40년전 애설볼드가 웨식스의 왕이 되었다.
30년전 포르투갈 왕국의 전신인 포르투갈 백작령이 성립되었다. (포르투 일대)
10년후 이극용 사망.
13년후 911년 프랑켄 공작 콘라트 1세가 새로운 왕으로 추대했다. 이로서 동프랑크 왕국 또는 독일 왕국은 서프랑크 왕국과 완전히 단절되게 된다.
20년후 918년 콘라트 1세가 아들없이 죽자 당시 유력자였던 작센 공작 하인리히 1세가 콘라트 1세의 지명을 받은 후 공작들의 선출을 거쳐 왕이 된다(919년).
30년후 동프랑크는 헝가리.폴란드.체코지역을 평정하고 자리집는다.
60년후 나이지리아의 은리 왕국이 세워졌다. (~1911년)
60년후 - 고려 전기의 학자 쌍기의 건의에 따라 최초의 과거제가 실시되었다
538년 (수산건60년)지수사
백제가 사비로 천도하다.백제가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다.일본에 불교 전함
3월 - 동로마 제국, 로마 근교 밀비우스 다리에서 동고트군을 격파하다.
60년전 백제 삼근왕 해구가 신흥 세력인 은솔 연신(燕信)과 대두성에서 반란을 일으키는데, 왕이 좌평 진남(眞男)에게 명령하여 군사 2천 명으로 토벌하게 하였으나 패하였다. 다시 덕솔 진로(眞老)에게 명하여 정예 군사 5백 명을 거느리고 해구를 공격하여 죽인다. 연신이 고구려로 달아나자 그의 처자들을 체포하여 웅진 시장에서 목을 베었다.
동고트 왕국 - 부르군트 연합군이 리구리아를 공격, 약탈하였다. (~539년 3월)
백제의 성왕이 도읍지를 웅진에서 사비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다
50년전 테오도리쿠스 대왕이 이탈리아의 왕을 자칭한 오도아케르를 공격하라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제노의 명을 받고 동고트군을 이끌고 북부 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카바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40년전 소보권이 남제 6대 황제가 되었다.
10년후 후경이 이끄는 양나라군이 동위의 장군 모용소종이 이끄는 대군에게 대패하였다.
후경이 수양에서 간신들을 죽인다는 명분을 내걸며 반란을 일으켰다.
후경이 양나라의 수도인 건강으로 진격하였다.
비잔틴 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이탈리아의 벨리사리우스를 다시 본국으로 불러들인다
20년후 힐데베르트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면서 프랑크 왕국의 영토가 그의 형제인 클로타르 1세에게 돌아가게 되었고, 클로타르 1세가 프랑크 왕국을 재통일하게 된다.
아바르족과 슬라브족이 발칸 반도의 판노니아 일대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발호로 인하여 기존에 이 지방을 차지하고 있었던 랑고바르드족이 북부 이탈리아로 점차 이동하게 된다.
30년후 랑고바르드족이 북부 이탈리아에 랑고바르드 왕국을 세웠다.
황초령,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가 세워졌다.
40년후 신라가 위덕왕의 백제를 알야산성을 공격하였다.
신라의 진지왕이 중국의 진(육조)에 사신을 보내 수교하였다.
50년후 바흐람 추빈이 이끄는 1만 2천명의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돌궐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랑고바르드족의 군대가 군트람이 이끄는 부르군트 왕국의 침략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수의 양견은 돌궐이 자주 침입하자 장성을 세운 뒤에 성 수십 곳을 쌓아서 장성 이남으로 넘어오지 못하게 했고, 이후에 화친을 맺어 북방을 안정시켰다.
이후 혈연으로 맺어진 귀족들의 저항과 반감을 극복하고자 남벌을 진행하여 개황 7년(587년)에 후량을 공격하여 멸망시켰고 589년에는 진을 공격하였다
60년후 고구려-수 전쟁 : 영양왕이 고구려군을 이끌고 수나라의 요서 지방을 공격하여 고구려-수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후 수문제가 수나라군 30만명을 동원하여 수륙양면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전염병과 장마, 태풍에 의한 피해 등에 의하여 고구려군에 대패한 뒤 퇴각하였다
서기 178년 에게 해를 휩쓴 대 지진에 의해 폐허가 되었음.
선비족 단석괴는 왜인(倭人)이 그물질을 잘 한다는 말을 들은 바 있어 이에 동으로 가서 왜인국(倭人國)을 공격하여 왜인들의 1천여 가를 잡아온 뒤, 그들을 진수 위로 이주시킨다는 최초의 왜인기록
60년전 고구려의 태조대왕이 예맥과 함께 후한의 현토를 공격하였다.
60년후 연왕 공손연이 위나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사마의가 이를 토벌하고 공손연을 처형하였다
bc183년 전한소제 형 소제(少帝)가 여태후에 살해되었고 의해 소제가 황제로 즉위했다.
로마의 군인, 정치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사망하다.
60년후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로마의 호민관에 선출되었다
60년전 스파르타의 왕 아기스 4세가 스파르타의 입법자인 리쿠르고스의 제도를 참고하여 가난한 시민들에 대한 채무 감면을 실시하고 토지와 부의 분배를 실시하였다.
bc543년 자산은 중국 춘추 시대 정나라의 정치가로 처음으로 법령의 조문을 명문(銘文)으로 제정함
반경 ( 盤庚 , BC 1290~BC 1263 년 ) 은 국력이 쇠약해져 제후들이 입조 조차하지 않자 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분위기를 일신하기 위하여 재위 14 년 되던 해 은 ( 殷 ) 으로 천도
무오년은 정사년에 이은 양인살이니 강한 숯불이다.
삼복더워가 생각나는 순간이니 무덥고 푹푹 찌는 상황이다.
납음天上火 천상화는 산하를 온난하게 하며 우주에서 비추는 불이다
화기운이 강한 양상원갑자엔 전쟁이 종료되고 무인이 집권한다
음상원갑자(축토)엔 백제,고려가 화북세력 한군현,거란족과 싸운다
양중원갑자엔 지진이나고 분열
음중원갑자엔 바다건너 전쟁이 많았다.
1798년
나폴레옹이 카이로를 점령.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이 나폴레옹 원정대를 수송해 온 프랑스 해군을 격파. 이로써 나폴레옹 원정대는 이집트에 발이 묶이게 된다
폴란드-러시아 전쟁 (1792년)
프랑스 혁명 전쟁 (1792 ~ 1802년)
아미앵 조약
코시치우슈코 반란 (1794년) vs 러시아
1차 이탈리아 원정 (나폴레옹, 1796 ~ 1797년)
캄포 포르미오 조약
이집트 원정 (나폴레옹, 1798 ~ 1801년)
60년전 스위스의 수학자 베르누이에 의해 베르누이의 정리가 세워졌다
오스만-사파비 전쟁 (1730 ~ 1735년)
콘스탄티니예 조약 (1736년)
폴란드 왕위 계승전쟁 (1733 ~ 1738년)
빈 조약
6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 7차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1735 ~ 1739년) -> 니스 조약 / 베오그라드 조약
50년전 몽테스키외가 저서 법의 정신을 출간.
조선 통신사가 일본을 방문하였다.
폼페이의 유적지가 재발굴되기 시작하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강화회담이 엑스라샤펠에서 개최되다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전쟁 (1740 ~ 1748년)
아헨 조약
40년전 루이스버그 전투가 일어났다.
청나라가 유목제국 준가르를 멸망시켰다.
린네가 이명법을 고안하였다
프렌치 인디언 전쟁 (1754 ~ 1763년)
7년 전쟁 (1756 ~ 1763년)
파리 조약
10년전
1788년 여름에 참담한 폭풍우가 프랑스 전역에서 상당량의 곡물들을 완전히 못쓰게 만들었다
영국의 속주로 전락해있던 네덜란드는 통치국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일으켰다. 블랙 리벨리온이라고 명명된 그 내란은 네덜란드의 패배로 막을 내린다
8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1787 ~ 1792년)
이아시 조약
러시아-스웨덴 전쟁 (1788 ~ 1790년)
8차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1788 ~ 1791년)
시스토바 조약
10년후 프랑스군이 바티칸을 점령. - 이베리아 반도 전쟁: 마드리드의 시민들이 프랑스군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킴. 다음날 프랑스군에 의한 대량 학살이 자행
영국-덴마크 전쟁 (1801년)
나폴레옹 전쟁 (1803 ~ 1815년)
오스트리아 전쟁 (1805년) -> 프레스부르크 조약
독일·폴란드 원정 (1806 ~ 1807년) -> 틸지트 조약
9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1806 ~ 1812년)
부쿠레슈티 조약
20년후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저술.
- 칼 14세 요한이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 베르나도트 왕조가 시작되다.
- 칠레가 스페인에게서 독립을 선언.
- 미국 의회에서 토론 끝에 새로운 주가 연방에 편입될 때마다 성조기에 별을 추가할 것을 결정
미국과 영국간의 국경 합의가 이루어져서 북위 49도가 국경으로 정해짐.
이베리아 반도 전쟁 (1808 ~ 1813년)
제2차 오스트리아 전쟁 -> 쉔브룬 강화
러시아 원정 (1812년)
영미 전쟁 (1812 ~ 1815년)
겐트 조약
30년후 1848 혁명의 해이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열망이 폭발했지만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운명이 극명하게 교차했다. 1991년까지 140여 년 동안 세계를 풍미하게 되는 공산주의 운동의 시발점인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었다.
김정희 유배풀림
10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1827 ~ 1829년)
아드리아노플 조약
폴란드 11월 봉기 (1830 ~ 1831년
40년후 보통선거를 요구하는 차티스트 운동이 영국에서 거세지다. 인민헌장이 발표되다.
- 미국 정부에 의해 체로키 족이 강제로 이주당하다. (눈물의 길)
- 빅토리아 여왕의 대관식이 거행되다
50년후 전 유럽을 뒤흔든 1848 혁명의 해이다. 민족주의와 자유주의의 열망이 폭발했지만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운명이 극명하게 교차했다. 1991년까지 140여 년 동안 세계를 풍미하게 되는 공산주의 운동의 시발점인 <공산당 선언>이 발표되었다
60년후 프랑스 파리에서 나폴레옹 3세에 대한 폭탄 암살 시도가 일어났으나 실패로 끝났다
- 다윈이 자연선택설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1438년 옥스포드대 전신이 건립되다
몽고가 오이라트만 강성
킵차크칸국. 북원위축
조선의 과학자 장영실이 자동 물시계 옥루를 만들었다.
최치운 등이 원나라 왕여가 편찬한 무원록에 주해를 더하고 음훈을 붙인 의서인 신주무원록을 편찬하였다.
페루에서 잉카 제국이 건국된다.
1438년 3월 18일에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의 이전 단계 격인 독일의 국왕으로 선출되었지만 정식 황제로 대관하지 못했고 알브레히트2세
60년전 로마에서 교황 우르바노 6세가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으나 프랑스의 추기경들이 이를 무효라고 선언하며 대립교황인 클레멘스 7세를 선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로마와 아비뇽에 각각 한 명의 별개의 교황이 존재하게 된 서방 분열이 일어났다. 이 분열은 1418년 콘스탄츠 공의회에 의해서 정상화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50년전 명나라 장수 남옥이 이끄는 15만 대군이 부이르 호수에서 원평종을 습격하였다. 이후 평종은 카라코룸으로 탈출하다 투울 강 근처에서 이수데르 조리그투에게 살해당하며 쿠빌라이 계열의 원 황실은 단절된다.
- 위화도 회군이 벌어졌다
.4차 베네치아-제노바 전쟁 (1377 ~ 1381년)
포르투갈-카스티야 전쟁 (1383 ~ 1385년)
40년전 조선 태조가 양위, 정종이 왕이 되었다.
- 델리 전투에서 티무르가 투글루크 왕조군을 대파하고 델리를 파괴하였다. 10만 이상의 포로,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마자파히트 제국이 싱가푸라 왕국을 정복하였다.
튜튼 기사단이 고틀란트 섬을 점령하였다
30년전 지기스문트가 헝가리-폴란드 연합군을 이끌고 보스니아를 공격하였고, 도보스 전투에서 보스니아의 왕 트브르트코 2세가 지기스문트에게 대패를 당하였다.
10년전
이츠코아틀이 아즈텍 제국의 초대 황제에 즉위하여 테노치티틀란 건설을 시작하였다
278년만에 스페인에 멸망.
백년 전쟁 3기 (랭카스터 전쟁, 1415 ~ 1453년)
5차 폴란드-튜튼 전쟁 (1422년)
멜노 조약
5차 폴란드-튜튼 전쟁 (1431 ~ 1435년)
리투아니아 내전 (1432 ~ 1438년)
10년후 바르나 십자군 (1443 ~ 1444년)
6차 폴란드-튜튼 전쟁 (1454 ~ 1466년)
12년후 토목의 변
장미 전쟁 (1455 ~ 1485년)
20년후 - 마티아스 코르비누스가 헝가리의 국왕에 즉위하였다.
- 포르투갈의 아폰수 5세가 북아프리카의 Ksar es-Seghir를 정복하였다.
단종사망
1차 베네치아-튀르크 전쟁 (1463 ~ 1479년)
7차 폴란드-튜튼 전쟁 (1467 ~ 1479년)
30년후 세조사망.성종즉위
1차 베네치아-튀르크 전쟁 (1463 ~ 1479년)
7차 폴란드-튜튼 전쟁 (1467 ~ 1479년)
40년후 성종대 경국대전을 비롯한 동문선 등 발행.
50년후 - 바르톨로뮤 디아스가 희망봉(폭풍의 곶 / 카포 다 보아 에스페라나)에 도달하였다.
스코틀랜드 제임스3세사망.
60년후 무오사화가 일어났다.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였다.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가 캘커타에 도착하며 인로 항로를 개척하였다
1078년 런던탑의 White Tower 가 세워짐.
고려 문종 송과 정식 국교 재개하여 전성기를 연다.
무라비트 왕조가 세우타를 포위하였다. 도시는 해상 지원을 받으며 1083년까지 저항하게 된다.
송나라의 철강산업이 연간 12만 5천 톤을 생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영국은 19세기에 달성)
60년전독일과 폴란드 간의 전쟁이 바우트젠 평화조약으로 종결되었다.- 비잔틴 제국 군대가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마지막 저항군 지도자를 생포하였다. (불가리아의 멸망) 폴란드 왕국의 볼레스와프가 페체네그로부터 키예프의 항복을받았다
요나라 군대가 고려를 침공하며 3차 여요 전쟁이 발발하였다.
2일만에 고려의 요격으로 성공적 방어시작.
50년전 독일왕 하인리히 3세의 즉위식이 거행되었다.
- 로마누스 3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크누트 대왕이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서하 (미냑)의 이원호가 스스로 황제국임을 칭했다.
사라고사 토후국을 통치하던 투지비 가문이 쫓겨나고 후드 왕조가 세워졌다.
30년전 서하의 경종 이원호가 피살되고 의종 이양조가 즉위하였다.
잉글랜드를 침략한 바이킹 군대가 격퇴당하였고, 생존자들은 플랑드르로 달아났다. (잉글랜드에 대한 최후의 바이킹 침공)
잉글랜드 국왕 참회왕 에드워드가 켄트 지역의 샌드위치 기반의 함대로 도버 해협을 봉쇄하며 플랑드르 백작과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노르웨이 국왕 해럴드 할드랄다에 의해 오슬로가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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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노르망디 공작(Duke) 윌리엄은 1088년 영국을 정복한 후 봉신국으로 취급했다
20년후 1차 십자군 비잔틴 제국이 룸 셀주크로부터 스미르나, 에페수스, 사르디스를 탈환하였다.
- 십자군이 알레포의 리드완을 패배시켰다.
보두앵 1세가 우투르메르 (레반트/샴) 의 첫 십자군 국가인 에데사 백작국을 설립하였다.
- 안티오키아 공방전에서 십자군이 안티오크를 함락했다. 안티오크 공국의 수립
30년후 헝가리 왕국의 콜로만이 슬로바키아의 니트라 공국을 멸하고 합병하였다.
윤관의 고려군이 동북9성을 개척하였다.
루이 6세가 프랑스의 왕이 되었다.
- 데볼 조약 : 안티오키아 공국의 보에몽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알렉시오스 1세에게 충성 서약을 하였다.
40년후 보두앵 2세가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 되었다.
- 그레고리오 8세가 대립교황으로 선출되었다
- 알 무스타르시드가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로 즉위하였다.
- 요한네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금나라 군대가 거란의 동경 요양부를 함락, 요동을 정복하였다.
송나라와 금나라가 해상의 맹약을 맺고 요나라에 대한 연합 전선 구축을 합의하였다
50년후 금나라 군이 회북 지방을 평정하였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요한네스 2세가 도나우 강 근처에서 헝가리인들을 격퇴하였다.
모술의 아타베그인 아미드 앗 딘 장기가 아르투크 왕조로부터 알레포를 인계받았다. 장기 왕조의 시리아 - 이라크 경영이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이 실질적인 독립을 얻었다.
대월 리 왕조의 신종이 즉위하였다.
참파가 베트남을 공격하였다.
60년후 금나라와 남송 당국이 일단 화의에 합의하였다
시리아 알레포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약 20만 명이 사망하였다.
718년
이슬람 제국이 유럽대륙의 이베리아 반도(※스페인+포르투갈.)를 718년~1492년까지인 무려 총 774년 동안 직접적으로 통치, 지배할 동안 건축한 굉장히 세련되고 화려한 궁전인 알함브라 궁전이다.
펠라기우스가 이베리아 반도 북부의 아스투리아스 지방에서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총독이던 무누자의 군대를 몰아내고 기독교 왕국인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세우면서 아스투리아스의 초대 왕이 되었다. (코바동가 전투)
60년전 콘스탄스 2세가 발칸 반도에 대한 원정을 착수하여 아바르족을 격퇴하였다.
658년 7월 이라크 중부에서 마주쳐 싸운 결과 알리군의 승리로 끝남. 그러나 이로 인해 알리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무아위야군과 더 이상 싸우기에는 역부족이 됨. 무아위야는 시리아를 이슬람속의 독립국으로서 계속 지배하며 이집트 지배권까지 획득하게됨.
3년후 우마이야왕조 개창
50년전 고구려멸망
40년전신라의 승려 의상이 범어사 운암사, 한천사를 창건하였다
20년후 롬바르드 인들이 동로마의 이탈리아 총독부가 위치한 라벤나를 점령하였으나 동로마-교황 군에게 쫓겨났다.
세바르가 불가리아의 칸이 되었다
40년후 당나라의 하남 절도사 최광의 휘하의 병력이 사사명이 이끄는 반란군에게 격파당하였다.
아랍인 해적과 페르시아인 해적들이 당나라의 광저우를 약탈하고 파괴했다.
이바디 세력이 카이로완에 이맘국을 세웠다
50년후 프랑크 왕국의 왕 피핀 3세가 죽은 이후 그의 두 아들인 카롤루스와 샤를이 왕국의 영토를 분할 상속하였다.
카롤루스 대제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아우렐리우스가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왕이 되었다
60년후 코르도바 토후국을 공격하기 위한 원정에서 돌아오던 프랑크 왕국군이 바스크족의 기습에 당하였고 이 전쟁 도중 군사지도자 롤랑이 전사하였다. (론소보 전투, 후에 롤랑의 노래의 배경이 됨)
358년 : 3년 봄 2월, 내물왕이 시조묘에 직접 제사를 지냈다- 보랏빛 구름이 묘당 위에 감돌고 신기한 새가 시조묘의 뜰에 모였다.
60년전 기림 이사금이 신라 15대 왕이 되었다.
백제의 책계왕이 백제를 공격하던 낙랑군과 맥인에 맞서 분전하다가 적병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분서왕이 백제 10대 왕이 되었다.
50년전 유연이 전조의 황제로 즉위하고 연호를 영봉으로 개원하였다.
로마 제국의 황제 갈레리우스는 전,현직 황제들을 소집한 후, 그의 주도로 막센티우스의 무단 쿠데타와 발레리우스 세베루스에 대한 임의적 처형을 단죄, 그 아버지 전 황제 막시미아누스의 재퇴임, 리키니우스의 서방 정제 취임 등을 결정하여 공포했다. 그 결과로 11월 11일 리키니우스가 취임했다.
40년전 전조 제 3대 황제인 유총이 사망하고 유찬이 제위를 이어받았으나, 주색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하였다가 외척인 근준에게 살해당하였다. 이후 유요가 전조 제 5대 황제가 된다. 유요는 석륵을 조공으로 임명하여 근준을 공격하게 하였다. 근준은 패배한 뒤 얼마 안 가 내분으로 인해 살해당하였다
30년전 석호가 후조군을 이끌고 전조를 공격하였고, 전조 제5대 황제 유요가 이에 반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유요는 이 여세를 몰라 낙양을 포위하였으나 곧 석륵의 군대에 반격을 당해 크게 패배하여 포로가 된 뒤 처형당하였다. 이후 유희가 전조 6대 황제가 된다
20년전 전연 건국
11년전 성한나라는 여전히 막장이었으며 그틈을 타고 동진의 환온이 정벌하여 347년에 멸망했다
2년전 김씨내물왕이 즉위.
20년후 하드리아노폴리스 전투 : 하드리아노폴리스 근처에서 고트족 군대가 황제 발렌스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발렌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30년후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테오도시우스 1세의 부하들에 의해 처형당했다.
걸복건귀가 서진 제2대 군주가 되었다.
바흐람 4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40년후 손자인 모용보는 단속골과 난한의 반란으로 죽음
50년후 테오도시우스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 파비아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하여 스틸리코파 군인과 관료들이 대거 살해당하였다.
-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가 스틸리코를 처형하였다.
60년후 테오도리크 1세가 서고트 왕국의 왕이 되었다
전해 등극한 눌지왕 복호와 미사흔은 418년 박제상을 시켜 돌아오게 하다.
BC 3년- 헬레니즘 시대 도래하다
BC3년에 금성과 목성이,BC7년에는 목성과 토성이각각 회합현상을 일으킴
60년전 로마 제국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탄생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가 페니키아, 유대를 점령하였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에서 약 1만 2천명의 유대인을 학살하였다.
카틸리나가 로마 내에서 무장 봉기를 일으켜 로마 공화정을 전복할 계획을 세웠다. 집정관 키케로는 카틸리나가 이런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수집하지 못했으나 원로원 최종 권고를 얻어내고 카틸리나 탄핵을 발표하는 등 카틸리나를 압박하였다.
60년후 탈해왕2년차
BC363년 시작된 이집트 제31왕조 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이집트 2차 점령기이다.이스라엘의 멸망 BC 723년 아시리아의 국왕 샬마네세르 4세와 사르곤의 공격을 받아 몰락했다다마스쿠스 아랍인이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였으나, BC 723년 아시리아에게 멸망하여 쇠퇴하였다.
BC 723년에는 일본의 초대왕인 神 武王의 아버지로 보이는 彦波弗唅을 일본에 파견 하였다는 기록도 나온다
모세는 BC1443년경에 일어난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지도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