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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
1981년은 민주세력은 탄압받고 쿠데타로 정권잡은 군인들이 3S정책으로 국민을 기망하기 시작한다.
중국 등소평이 1981년부터 1983년까지는 국가원수직에 있었다
2월 2일 - 교육채널 KBS 3TV(컬러방송)와 KBS 교육라디오(FM) 개국 (현 EBS).
1981년 1월 한파: 대한민국 기상관측 사상 공식 최저기온인 영하 32.6도(경기도 양평군)가 관측된 한파.양평 외에도 충주(-28.5℃), 홍천(-28.1℃), 원주(-27.6℃) 등 중부 내륙 지역에서 역대 최저 기온이 기록되었다.
60년전 중국 공산당이 창당되었다
이르쿠츠크 고려공산당 창당.
김사국의 서울청년회 창설.
복드 칸 복위, 몽골이 중국으로부터 독립했다. 외몽골 출병 종식.
자유시참변. 독립군 무장해제 당한다
이후 올가강전투.이만전투 김경천활약
1921년에 상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부인하는 계층에 의하여 소집이 강조된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는 2년 만인 1923년 1월 3일 개막되었는데, 국내의 각 지역단체 대표 140여명이 모인 가운데 공산당계가 20%를 점하고 있었다
이해 해체.
50년전 권업회는 1911년 5월 20일 이종호(李鍾浩), 엄인섭(嚴仁燮), 최재형, 홍범도, 김익용(金翼鎔), 강택희(姜宅熙), 등이 주축이 되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서 조직한 국권피탈 이후 초기의 최대 한민족 항일독립운동단체이다
1621년 빌러브로어트 스넬 반 로옌(스넬리우스)에 의해 스넬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굴절의 법칙 발견.
펠리페 3세 : 스페인의 국왕 겸 포르투갈의 국왕사망.펠리페 4세 즉위
길릴레오를 종교재판한 233대 로마 교황 교황 바오로 5세 사망,
교황 선출 방식을 변경하여 남용을 폐지한 교황 그레고리오 15세, 234대 로마 교황 취임.
명(明) 희종 천계제(熹宗 天啓帝) 즉위원년
60년전 일본에서 제 4차 카와나카지마 전투가 벌어졌다
스페인의 왕 필립 2세가 마드리드를 스페인의 수도로 정했다
에리크 14세가 스웨덴의 왕이 되었다.
50년전 신성 동맹과 오스만 제국 사이에서 레판토 해전이 발발하여 오스만 해군이 패배한다.
필리핀에 마닐라가 건설된다.
40년전 일본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가 이가 국을 공격하였다.
30년전 스페인 산페르민 축제 시작.
잉글랜드 해군주도
1591년에는 건저 문제로 정철이 파면되면서 동인이 집권하게 되었으나, 정철의 처벌을 둘러싸고 온건파는 남인(南人)으로, 강경파는 북인(北人)으로 다시 나뉘었다.
20년전 오테나가 미국 중부를 탐험하였다.
튀코 브라헤 : 덴마크의 천문학자사망
10년전 북미 인구감소로 기온강하설.
10년후 김장생사망.박세채 탄생
타지마할 건축시작
20년후 송산 전투에서 명나라 군이 청군에게 대패하였다.
네덜란드가 포르투갈로부터 말루쿠 향료 제도를 빼앗고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었다
30년후엔 수구파 김자점이 화를 당함
독일의 해변에 대홍수가 몰아닥쳐 수천명이 익사하였다.
영국의 올리버 크롬웰이 항해법을 공포하였다
40년후 정성공이 네덜란드 세력을 몰아내고 타이완 남부를 점령하였다.
숙종탄생
50년후 이탈리아 출신의 프랑스 천문학자 조반니 도메니코 카시니가 토성의 위성인 이아페투스를 발견하였다.
60년후 청나라에서 삼번의 난이 평정되었다
성호 이익출생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규모 7.5+급으로 추정되는 지진이 발생했다.
1261년 쿠빌라이 아리크부케에 밀림
동로마제국의 미카엘 8세(팔라에올로구스) 콘스탄티노플을 회복하고 라틴제국을 멸함. 팔라에올로구스왕조의 시작(~1453)
60년전.잉글랜드의 존 왕이 플랑드르로의 밀 수출을 금하고 프랑스로 수출되는 물품에 15분의 1세를 매겼다.
보니파스가 4차 십자군의 지도자로 선정되었다.
자다란의 자무카가 구르 칸으로 즉위하였다.
쿠이텐 전투에서 칭기즈 칸이 자다란 부족의 자무카를 격파하였다.
칭기즈 칸이 타우치우트 족을 정복하고 제베를 부하로 삼았다.
50년전 몽골 제국의 금나라 침공이 시작되었다. (~ 1234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 완공되었다.
- 옹구트 부족이 금나라를 배신하고 몽골 제국과 동맹하였다.
쿠출룩이 구르 칸을 기습하여 체포하고 서요는 신나이만으로 개편되었다. 곧이어 그는 카슈가르를 함락시켜 동 카라한 왕조를 멸망시켰다.
프랑스의 랭스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40년전 주치가 이끄는 몽골군이 호라즘의 우르겐치를 함락시키고 거주민들을 모두 죽였다.
- 메르브가 툴루이의 몽골군에게 함락당하였다. 무슬림 역사가는 백만이 학살되었다고 기록하였다
십자군이 아이유브 왕조의 술탄 알 카밀에게 항복하였다. 8년간의 휴전 협정이 맺어졌고 십자군은 이집트에서 철수하여 5차 십자군이 종결되었다
30년전 남송이 몽골 제국군에게 금나라 침공을 위한 길을 빌려주었다. (한중 일대)
살리타가 이끄는 몽골 제국군이 고려를 공격하였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시칠리아 왕국의 법을 집대성한 멜피 헌법과 의사와 약사의 직업분화를 명시한 살레르노 칙령을 반포하였다.
20년전 헝가리의 모히 전투에서 몽골 제국군이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 성전기사단의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한자동맹결성
폴란드 발슈타트에서의 레그니차 전투에서 바투가 지휘하는 몽골 제국군이 폴란드와 보헤미아의 연합군을 전멸시켰다.
10년전 기온 하강
10년후 원 건국.
여몽 연합군이 삼별초의 진도를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배중손과 승화후 온을 죽임.
20년후 태풍으로 히라도에 정박 중이던 여몽연합군의 상당수가 사망하며 제 2차 일본 원정이 실패하였다.
- 2차 홈스 전투에서 일 칸국 - 소 아르메니아 - 조지아 왕국 - 성당기사단의 연합군이 칼라운이 지휘한 맘루크 왕조 군대에 패하였다.
오스만 1세가 룸 셀주크의 쇠위트의 베이가 되었다.
30년후 십자군 국가의 소멸과 스위스의 성립
봄 - 제노바의 반디노와 우글리노 형제가 인도 제국를 향한 항해를 시작하였다. (대항해시대의 시초) 그들은 다시 기록되지 못하였다.
치악성 전투에서 원충갑이 이끈 고려 군민이 카다안의 침입을 격퇴하였다.
맘루크 왕조 군대가 아크레 함락 이후 십자군의 중심지가 된 시리아의 토르토사를 함락하였다.
맘루크 왕조 군에게 샤토 펠라린이 함락되며 레반트의 십자군 거점이 소멸되었다.
40년후 일 칸국 군대가 시리아로 진입, 알레포 일대를 약탈하였으나 곧 회군하였고 아르메니아 - 키프로스 군대도 곧 철군하였다.
AD 1301년, 카이두는 성종이 파견한 하이샨에게 패하고 사망했다
이로서 오고타이칸국은 쇠락.
프랑스 피렌체점령, 단테추방
50년후 원인종이 4대 황제로 즉위하였다.
- 할미로스 전투에서 카탈로니아 용병단이 아테네 공작인 브리엔느 드 월터를 전사시키고 아테네 공국을 정복하였다
60년후 이탈리아의 작가인 단테 알리기에리가 신곡을 완성하였다.
흉작으로 유럽 전역에 기근이 발생하였다.
피렌체 대학교가 설립되었다
70년후 원말기.당가촌이 만들어져 지금까지 보존
901년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를 건국하였다.
루트비히 3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60년전 - 퐁트누아 전투에서 샤를 2세와 루트비히 2세가 이끄는 군이 로타르 1세가 이끄는 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장보고 사망
50년전 굴산사가 창건되었다.
팜플로나 공국, 나바라 왕국으로 독립.
40년전 경문왕이 신라 제 48대 왕이 되었다
30년전 애설레드 1세가 이끄는 웨식스군이 데인족바이킹들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비잔틴 제국군이 사라센 세력의 무슬림 토후국이 지배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바리를 회복하였다.
20년전 루이 3세가 군을 이끌고 바이킹군을 격퇴하였다
황소가 이극용에게 패하다
10년후 프랑스의 왕 샤를 3세이 바이킹의 우두머리인 롤로와 생클레르쉬레프트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에서 샤를 3세는 바이킹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바이킹들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 정착하는 것을 허가하는 대신 바이킹의 약탈행위를 금지하였다. 이후 롤로는 노르망디 백작에 임명되어졌다.
- 콘라트 1세가 동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20년후 함보가 고려 혹은 신라를 떠나 두만강 지역의 완안부로 들어간 921년 전후 시기는 신라가 멸망을 길을 걷고 후삼국이 할거하던 상황으로 짐작된다.?
30년후 라미로 2세가 레온 왕국의 왕이 되었다.
에릭 블러드액스가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후우마이야 왕조, 탕헤르와 세우타 일대 점령, 지브롤터 해협 통제권을 얻게 되었다.
40년후 콘스탄티노플에서 비잔티움 제국과 키예프 대공국간에 전쟁이 발발하였다
50년후
곽위가 카이펑에서 후주를 건국하였다.
오대십국시대의 북한이 건국되었다.
오대십국시대의 초나라가 남당의 공격으로 멸망하였다
60년후 송건국 이듬해
알 하캄이 후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로 즉위하였다
541년 토틸라가 동고트왕국의 제6대 국왕이 되다.
60년전 프랑크 왕국이 건국되고 클로비스 1세가 프랑크족의 왕이 되었다.
481년에 고구려가 말갈과 함께 호명(지금의 영덕군) 등 7개 성을 공격해 빼앗아버리고 미질부(지금의 포항시)로 진격한다. 지도를 보면 영덕, 포항과 신라의 수도 경주시는 말 그대로 바로 옆이다.
50년전 아나스타시우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문자명왕이 고구려 21대 왕이 되었다.
40년전 소보융이 남제 제 7대 황제가 되었다.
30년전 - 프랑크 왕국의 군주 클로비스 1세가 사망한 이후 프랑크 왕국의 영토가 살리카 법에 입각하여 그의 네 아들들에게 분할 상속되었다
10년전 북부 시리아에서 사산조 페르시아군이 벨리사리우스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호스로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10년후 소동을 황제 자리에서 몰아내고 양나라의 황제를 자칭하였다. 이에 국호도 한(漢)으로 고쳤으며 죽은 소강의 딸 율양공주 소씨를 황후로 삼았다.
돌궐 제국이 성립되었다.
20년후 프랑크 왕국을 통일하였던 클로타르 1세가 사망하자 그의 네 아들들에 의해 프랑크 왕국이 다시 분할되었다.
고담(북제)이 북제 4대 황제가 되었다.
신라가 561년에 안라국을 정벌하였다
30년후 베네벤토가 랑고바르드 공작령의 수도가 되었다
40년후 양견이 그에게 대항하는 반대 세력을 제거한 뒤 9세인 정제에게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면서 북주가 멸망하였다
50년후 호스로 2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마우리키우스에게 의지하여 사산조 페르시아의 왕위를 되찾기 위한 협력을 받아내었고, 이후 비잔티움 제국군과 함께 크테시폰으로 진격하여 바흐람 추빈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고 왕위를 되찾게 되었다. 이 때 간신히 달아난 바흐람 추빈은 투르크로 망명하여 카한 밑에서 우대를 받았으나, 호스로 2세가 보낸 자객에 의해서 암살당하였다.
60년후 아우구스티누스가 초대 캔터베리 대주교로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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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년
후한의 마지막 황제 유협(헌제) 탄생
중국 삼국 시대 촉한의 모신(謨臣) 제갈량(諸葛亮).
60년전 고구려의 태조대왕이 선비족 8천여명과 함께 후한의 요대현을 공격하였다. 요동태수 채풍이 이끄는 군대는 이들을 상대로 패하였다.
30년전 151년단석괴, 선비의 대인으로 추대
20년후 조조군이 창정의 원소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30년후 카라칼라가 게타를 살해하고 단독 황제가 되었다.
한수가 마초 등 서량의 군벌들과 함께 거병하여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조를 공격했다.
40년후 - 유비가 촉한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촉한의 제갈량이 위나라를 치는 4차 북벌에 나섰다.
북 메소포타미아에서 사산 제국과 로마 제국군이 대치하였다.
60년후 고구려는 공손연 토벌을 도와주고도 위나라한테 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보니 불만을 품기 시작한다. 그래서 242년에 위나라 요동의 서안평을 공격하였으나 실패
bc180년 중국 전한, 여씨의 난 발발, 고황후 여씨 일족 숙청, 대나라 왕 유항이 문제로 옹립됨.
60년전 샤푸르 1세가 아버지안 아르다시르 1세와 함께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스리 굽타가 굽타 왕조의 왕이 되었다
60년후 아라비아 반도 남부 예멘에 있던 마리브 댐이 붕괴하자 남부 아랍인 (카흐탄 족)이 북으로 이동, 북부 아랍인과 함께 가산 왕국, 라흠 왕국을 건국하였다.
bc540년 아민타스 1세는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임금으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의 속주를 다스렸다. 그와 함께 마케도니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스파르타의 입법자 리쿠르고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탁에 따라스파르타를 군국주의로 개혁함(BC 900년경)
트로이 전쟁은 BC 1260년
미노스 문화는 약 BC 1620년경에 테라 섬의 스트로기리 화산 폭발로 인하여 폐허가 되었다.
BC 2340년 : "아카드왕조“. 사르곤(Sargon)지배하에 모든 메소포타미아지역이 통일
엘람왕국은 BC 2700년경에 생성되어 BC539년까지 존재했다
BC 2700 년 - BC 2640 년 사이에 고대 중국에서 비단(silk)을 만들었다사기(史记)에 보면 황제(黄帝)는 서능씨(西陵氏)의 딸 누조(嫘祖)를 처(妻)로 맞아 혼인하였다
육우가 지은 『 다경 』에 의하면 BC 2700년 중국의 신농씨가 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서사시라는 길가메시는 BC 2700년경에 實在(실재)했던 얘기를 說話(설화)로 각색
중원갑자
1801년 3월 4일 - 존 애덤스의 뒤를 이어 토머스 제퍼슨이 미국 제3대 대통령이 되다.28년후 대통령이 될 엔드류 잭슨은 1801년 테네시주에서 대령 계급의 민병대 사령관으로 임명받았다. 윌리엄 헨리 해리슨과 재커리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그는 오직 철저한 인디언 대학살로 군 경력을 쌓게 된다.
조선은 정조가 죽고 순조즉위
순조의 명령에 의거하여 공노비가 철폐되다.
정순왕후의 교지로 천주교 박해가 시작. 신유박해 발생
프로이센 왕국의 수학자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가 정수론연구를 저술하였다.
- 황사영 백서 사건 발생
러시아 알렉산드르 1세가 즉위
60년전 마리아 테레지아가 부르크극장을 세웠다
50년전 택리지가 저술되다.
균역법시행
프랑스에서 디드로와 달랑베르의 주도 하에 백과전서 1권이 출판되다
40년전 영국에서 조지 3세의 대관식이 거행되다.
- 7년 전쟁: 4달에 걸친 포위전끝에 러시아군이 프로이센의 요충지 콜베르크 요새를 함락시키다
30년전 스페인 제국이 대영제국에 포클랜드 제도를 양도하였다.
- 구스타브 3세가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하다.
-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점령하다.
응우엔정권폭정에 항거
20년전 임마누엘 칸트가 순수 이성 비판을 출간하다.
미국 독립 전쟁: 버지니아 주의 주도 리치몬드가 영국군에 의해 방화되다. 영국군의 지휘관은 바로 베네딕트 아놀드(...) -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이 천왕성을 발견하다
스페인 개척자들이 로스엔젤레스를 건설.
- 조지 타운에 고립된 영국군이 요크타운에서 조지 워싱턴에게 항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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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 파라과이가 스페인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아보가드로가 아보가드로의 법칙을 발표하다.
홍경래의 난 발생.
20년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사망.
- 베네수엘라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 매입
조지 4세 즉위.
29년후마지막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프란츠 요제프 1세탄생
30년후 브라질 제국의 황제 페드로 1세가 폐위되고 5살 아들 페드로 2세 마그나니머스가 즉위하다.
-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의 레오폴드 공이 레오폴드 1세로 벨기에의 국왕에 선출되다
찰스 다윈이 비글호와 함께 여정을 시작하다. - 마이클 패러데이가 전자유도의 법칙을 발견하다.
40년후 아편전쟁: 영국군이 홍콩을 점령한다. 이후 1997년 반환까지 156년 동안 홍콩은 영국의 영토가 된다.
50년후 홍수전이 태평천국의 난을 일으키다. 이 때부터 14년간 지속된 이 난은 무려 2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게 된다.푸코의 진자 실험이 레옹 푸코에 의해 진행되다.
지구의 자전이 증명되다.런던 세계 박람회가 개최되다. 이 런던 박람회는 역대 최초의 세계박람회. 이 박람회를 위해 수정궁이 지어졌다.
뉴욕 타임즈가 창간되다
프랑스 제2공화국의 대통령 루이 나폴레옹이 친위 쿠데타를 일으키다.
60년후 이탈리아가 이탈리아 왕국으로 통일되었다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였다.남북전쟁시작
함풍제시기 이홍장 등 양무운동 전개.
1441년 장영실과 이천이 서운관에 측우기를 설치하다.
질 에아네스 함대가 블랑코 곶 (흰 곶) 을 발견하였다
60년전 흑사병으로 인한 민중의 동요와 백년 전쟁으로 인한 과도한 세금 징수 등에 의하여 영국 농민들이 들고 일어난 사건인 와트 타일러의 난이 일어났다
- 리투아니아 내전의 시작 : 케스티우스가 조카 요가일라를 패배시키고 대공 직위를 차지하였다. 요가일라는 동부에서 세력을 유지하였다.
티무르가 사르바다르 왕조를 멸망시키고 호라산을 평정하였다.
50년전 마누엘 2세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과전법시행
-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요가일라가 튜튼 기사단을 공격하였으나 격퇴되었다.
- 카스티야 왕국의 세비야에서 유대인에 의한 범죄가 발생하자 이를 빌미로 부주교 에르난 마르티네즈의 선동과 함께 4천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학살되었다
40년전 티무르가 바그다드를 점령하였다.
- 마흐무드 2세가 델리술탄왕조의 군주로 복위하였다.
마자파히트 제국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베트남에서 호꾸이리가 양위한 후 태상황이 되고 아들 호한뜨엉이 대우의 황제가 되었다.
일본 무로마치 막부가 명에 조공하기 시작
30년전 프랑스 슈농소 성의 영주 장 마르케가 영국군에 동조한 죄로 고발당했고, 슈농소 성은 프랑스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20년전 명나라 제 3대 황제 영락제가 명나라의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였다.
-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1세가 죽고 그의 아들 무라트 2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10년후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가 완성되었다.
사창(社倉)이 실시되었다.
20년후 명나라 전역과 주변 조공국들의 지리를 서술한 대명일통지가 편찬되었다.
30년후 세조실록이 완성되었다
40년후 오스만 제국과 나폴리 왕국 사이에서 일어난 오트란토 전투가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끝났다
비잔틴 멸망시킨 메흐메트 2세 사망.
화재가 빈번해지자 1481년(성종 12) 수성금화사로 설립됐다
50년후 이언적탄생
60년후 이란 사파비왕조 개창
1081년 왕안석, 사마광, 조식,송 신종,고려문종이 이끄는 시대
1081년 서하를 침공하여 1082년 말까지 서하와의 전쟁으로 송군과 동맹군 60만을 상실.
신종 통치 말기 국가 재정의 80%를 군비 지출에 소모한 것으로 추정.
디라키움에서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로써 알바니아는 1100년까지 노르만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때가 지명 알바니아의 첫 언급임)
비잔티움 제국의 전임 황제 니케포루스 3세가 폐위되고 알렉시오스 1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새 황제가 되었다.
77년전 전연의 맹
60년전 마흐무드가 가즈니 제국의 수도를 라호르로 정하였다
발렌시아 토후국마저 후우마이야 왕조로부터 독립하며, 1차 타이파 분열이 확실해지고, 칼리파 국의 운명이 결정된다.
50년전 후우마이야 왕조가 멸망하였다. 코르도바 토후국이 세워지고, 지브롤터 해협 일대는 세비아의 월경지가 돤다.
- 앙리 1세가 프랑스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이원호가 탕구트 족의 수장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대기근이 발생하였다.
40년전 남부 이탈리아의 올리벤토 전투에서 노르만족과 랑고바르드족의 연합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 오판토 강에서 노르만족과 랑고바르드족의 연합군이 비잔티움 제국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몬테 마기오레 전투)
호수천 전투에서 서하 군대가 송나라를 대파하였다
30년전 노르망디 공 기욤 (윌리엄 1세)이 앙주 공 지오프리와 싸워 이겼다.
- 프랑스의 카페 왕조의 앙리 1세가 키예프의 안네와 랭스 성당에서 결혼하였다.
이스파한이 셀주크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10년전 비잔티움 제국과 로베르 기스카르가 이끄는 노르만족 간에 벌어진 바리의 공성전에서 노르만족이 바리를 함락시킴으로써 노르만족의 최종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로마는 원래의 발상지였던 이탈리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비잔틴제국 셀주크투르에 대패
십자군전쟁의 원인
10년후 잉글랜드의 윌리엄 2세가 노르망디를 공격하였다.
웨일즈에 카디프 성이 지어졌다.
노르만 왕조의 로버트와 루푸스가 화해하였다.
20년후 십자군이 아나톨리아를 넘어 예루살렘 왕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헤라클레아 전투에서 킬리지 아르슬란 1세가 이끄는 셀주크 제국군에게 크게 패배하였다.
- 천조제가 거란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 잉글랜드의 왕 헨리 1세의 형인 노르망디 공국의 공작 로베르가 포츠머스에 상륙하여 자신이 잉글랜드의 정당한 왕위 계승자임을 주장하였다
30년후 알폰소 7세가 갈리시아의 왕으로 즉위하였다.
보두앵 7세가 플랑드르의 백작이 되었다.
시리아에서 예루살렘 왕국의 왕 보두앵 1세가 지휘하는 십자군이 부리 왕조와 모술의 아타베그의 군대가 주축이 된 셀주크 제국군과 싸웠다. (샤이자르 전투)
하인리히 5세가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40년후 금나라가 요서 지방을 점령하고 요나라의 중경 대정부를 함락시켰다. 천조제가 몽골로 피신하자 한인 신하 이처온과 황족 야율대석은 남경 석진부에서 천조제의 숙부 아율순을 옹립, 북요 정권을 수립한다.
노구교 전투에서 요나라 (북요) 군대가 송의 환관 동관이 이끄는 20만 송나라 군대를 격파하였다.
50년후 셀주크 제국에서 마흐무드 2세 사후에 그의 동생 토그릴, 아들 다우드, 조카 마수드 간의 내전이 발발하였다. 우선 다우드가 셀주크 술탄이 되었다.
진회가 남송의 재상이 되었다.
야율대석이 에밀에 도착하였으나 동 카라한 왕조의 공격으로 서쪽으로 더 나아가지는 못하였다.
60년후 사마르칸트 북부의 카트완 전투에서 야율대석이 이끄는 서요의 군대가 산자르가 지휘한 셀주크 제국 - 서 카라한 왕조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진회에 의하여 남송의 무장 악비가 처형되었다
721년 신라 성덕왕 발해의 팽창에 맞서 신라는 20년(721년) 가을 7월에 하슬라(何瑟羅) 지역의 정부(丁夫) 2천 명을 뽑아 북쪽 국경에 장성(長城)을 쌓았다.
717년 당에서 귀국한 김수충(金守忠)이 공자 이하 10철과 72제자의 도상을 가져오자 왕은 이를 국학에 안치토록 조치하였다. 또한 718년에는 누각전(漏刻典)을 설치하였고, 721년에는 내성 기구 속에 소내학생(所內學生)을 두어 장차 문한계통에서 종사할 요원 양성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제도정비에서 주목되는 것은 유교적 예의에 입각하여 각종 예제를 정비한 것이다. 유교사상과 의례를 강화함으로써 가까스로 확보한 평화를 지켜나가고자 하였다.
테우데리히 4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 툴루즈에서 아키텐의 공작 오도가 이끄는 가톨릭 세력 (아키텐 - 프랑크 연합군) 이 툴루즈를 공격하던 우마이야 왕조군의 이슬람 세력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툴루즈 전투)
60년전 복신, 도침, 흑치상지 등이 왕자 부여풍을 추대하기로 하고 주류성을 거점으로 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당의 2차 침입으로 인해 평양성 전투(661년)가 발발했다.
예루살렘의 성전산에서 무아위야가 칼리파로 즉위하며 우마이야 왕조가 수립되었다
태종 무열왕이 죽고 문무왕이 신라 제30대 왕이 되었다.
- 당의 2차 침입으로 인해 평양성 전투(661년)가 발발했다.
50년전 신라의 승려인 의상이 낙산사, 동악사를 창건하였다.
신라가 나당전쟁중에 당나라로 부터 사비성을 탈환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하다
40년전 김흠돌의 난 : 잡찬 김흠돌이 파진찬 흥원, 대아찬 진공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죽임을 당하였다.신문왕이 신라의 왕이 되었다.
30년전 바위 사원이 완공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 아브드 알 말리크가 이끄는 우마이야 왕조군이 메소포타미아의 반란을 진압하고 아라비아 반도를 재정복하였다.
클로비스 4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10년후 세르다냐 (피레네 동부) 의 베르베르 인들이 아키텐의 오도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프랑크 왕국, 남 프랑스 해안 일시 수복 (vs 우마이야)
20년후 베르베르인 반란군이 우마이야 왕조군을 격퇴하였다.
콘스탄티누스 5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30년후 불국사 3층 석탑과 다보탑이 제작되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 해에 석굴암이 건설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탈라스 전투 : 아바스 왕조군이 탈라스에서 당나라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쟁 이후 제지술이 이슬람 문명으로 전파되고 실크로드 교역로를 포함한 중앙아시아가 이슬람 세력권에 넘어가게 된다.
라벤나가 랑고바르드족에게 함락되어서 동로마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가 폐지되었다
로마 교황 자카리아의 지원으로 카롤루스 마르텔의 아들 피핀 3세가 메로빙거 왕조의 마지막 왕 힐데리히 3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면서 카롤링거 왕조가 시작되었다.
40년후 아바스 왕조군이 카이르완을 재정복하였다
사사명의 아들 사조의가 사사명을 살해하고 칭제하였다
50년후 이탈리아 카를로만 1세 : 페펭 3세의 아들사망
60년후 카롤루스 대제가 자신의 두 아들 피피노와 루트비히에게 각각 롬바르드와 아키텐의 왕위를 수여하였다
361년 왕맹이 전진부견을 보좌1년
사마비가 동진 제 6대 황제가 되었다
- 율리아누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60년전 사마륜이 서진의 황제인 사마충의 자리를 찬탈하여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사마경을 포함한 많은 황족들이 사마륜에 맞서 거병하였는데 이 와중에 사마륜의 조카 사마옹이 그를 배신하여 사마륜과 그의 가족은 목숨을 잃는다.
50년전 고구려가 요동 서안평을 정복하였다.
유총이 군대를 이끌고 서진의 도읍 낙양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뒤 서진의 황제 사마치를 사로잡았다. 황태자인 사마전을 포함한 3만명이 살해되었고, 낙양은 약탈과 방화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40년전 사마보가 동진의 황제인 사마예를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를 진왕이라 칭하였다.
모용준탄생
30년전 고국원왕이 고구려 제16대 국왕이 되었다
10년전 로마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의 군대가 마그넨티우스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후조의 황제 석지가 황제 칭호를 폐지, 조왕(趙王)을 자칭하며 전연에 염위군을 상대로 한 구원군을 청하였으며, 2월에 염위의 포위군을 격파하였으나 염위의 왕 염민에게 매수된 부하 유현에게 살해당하였다. 석지가 살해당하면서 후조도 멸망하였다
5년후 김씨내물왕 즉위.
10년후 백제군이 고구려의 군대를 패하(浿河)에서 군사를 매복시켜 물리쳤다. 그리고 그 해 겨울, 3만 명의 백제군이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였고 이 때 고구려 왕 고국원왕이 전투 도중 전사하였다. 이후 소수림왕이 고구려 제 17대 국왕이 되었다.
탁발규 탄생
20년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30년후 광개토대왕이 고구려 19대 왕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인정하였다
40년후 후연 4대 황제 모용성이 용성 내에서 단기가 일으킨 반란으로 습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이후 모용희가 후연 제 5대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콘스탄티누스 3세 : 서로마 제국의 장군사망.
410년 고구려의 동북방에 위치한 부여(동부여)가 고구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왕이 직접 토벌했다. 고구려군이 동부여의 수도에 이르자 동부여가 항복했다. 이때에 동부여를 떠받드는 5압로(5부)가 고구려에 투항했고 64개의 성과 1400개의 마을을 공파했다. 바로 전에 고구려가 상대한 후연은 서방인데 동부여는 그 정반대인 동북방이다. 광개토대왕은 동서남북 사방을 가로질러가며 정복 전쟁을 벌인 것이다.
412년엔 실성마립간 내물왕 2남 복호를 고구려에 인질로 보내 외교관계를 개선하려 했다.
60년후 콘스탄티우스 3세가 호노리우스와 함께 서로마 제국의 공동 황제가 되었다
1년 고구려(高句麗) - 유리명왕(瑠璃明王)의 태자 도절(都切)이 죽다
백제(百濟) - 말갈이 쳐들어왔지만 추장이 생포되다.
60년전 전한이 흉노를 굴복시키고 서역을 손에 넣은 뒤, 서역도호부를 설치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집정관에 당선되기 위해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끌어들여 삼두정치를 결성한다
.흉노의 일축왕이 전한에 투항함
50년전 기원전50년율리우스 카이사르, 북이탈리아로 돌아오다
40년전 bc40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브린디시 협정으로 세력권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다
30년전 옥타비아누스가 이집트의 수도인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면서 이집트는 사실상 로마 공화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한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절망적인 상황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년전 로마 제국과 파르티아 간에 평화 조약이 맺어졌다.
신라가 마한에 사신 호공을 보냈다
10년후 아르타바누스 3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
20년후 동부여의 대소왕이 대무신왕이 이끄는 고구려군과의 전투에서 전사
30년후 31년 - 세야누스가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에 의해 국가반역죄로 처형당하였다
40년후 로마 황제 칼리굴라가 암살당했다. 이후 클라우디우스가 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50년후 신약 성서에 많은 글을 남겼으며 성 베드로와 더불어 가장 유명한 초기 기독교 전도자였던 사도 바울은 서기 51년 처음으로 코린토스를 방문했다. 그는 6년 후 도시를 다시 찾았고, 두 편의 서간을 썼다. 바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로,신약 성서에 포함되어 있다
60년후
61년 로마 제국이 브리튼 섬을 점령하였다. 로마 총독 데키아누스는 프라스타고스의 부인인 부디카를 매질하고 두 딸을 로마 병사들로 하여금 강간을 하도록 하였다. 이에 부디카는 이케니족을 포함한 브리타니아의 많은 부족들을 통합하여 로마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 이들은 로마 제국 9군단을 격파하는데 성공했었고 브리튼 섬에서 가장 큰 도시인 론디니움(런던)을 수복하기도 했다
bc360년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오스 2세가 이집트에서 그리스로 돌아오는 길에서 죽었다. 그의 사후 그의 아들 아르키다모스 3세가 스파르타의 왕이 되었다
예루살렘이 재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