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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갑자
1943년 카사블랑카 회담에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나치 독일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성명 발표
11월 6일 - 제2차 세계 대전: 소련군, 키예프 탈환.
11월 27일 - 카이로 선언 발표
60년전 에드아르 들라마르 드브뜨빌은 친구인 기술자 레옹 말라땡과 1883년 조그만 가스엔진을 만들어 장치한 3바퀴 자동차를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었다
1583년 율곡 이이 십만양병설 주장
• 니탕개의 난, 신립 여진 물리침
60년전 구스타브 1세 바사가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명나라에서 닝보의 난이 일어났다.
50년전 일본의 이와미긴잔(石見銀山,이와미 은광)에서 연은분리법에 성공, 일본의 은 산출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가 페루를 정복하고 황제를 살해하며 잉카 제국이 멸망한다.
40년전 유럽의 화기류가 일본에 전래되었다.
-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을 다루고 있는 책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판하였다
30년전 메리 1세가 영국의 여왕으로 즉위
20년전 트리엔트공의회(1545년~1563년)
10년후 제4차 평양성 전투가 일어났다.
성주 전투가 일어났다.
벽제관 전투가 일어났다.
웅포 전투(...)가 일어났다.
행주 대첩이 일어났다.- 제2차 진주성 전투가 일어났다
20년후 일본의 무장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에 에도 막부를 수립하였다.
퀘벡과 루이지애나에 걸쳐 누벨 프랑스가 성립되었다.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동군연함이 형성되었다.
30년후 이덕형 사망
김제남이 처형됨. 같은 날에 규모 M6.3, 최대진도 VIII의 1613년 수원 지진 발생.
40년후 1623년 - 인조반정, 인조 즉위
50년후 일본의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기독교를 금지하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했다가 투옥되었다.
60년후 루이 14세가 프랑스의 국왕으로 즉위하였다.뉴턴탄생
경상도 울산에서 규모 6.5 ~ 9.0으로 추정되는 울산 대지진이 일어났다
1223년 몽고 . 1223년 한 해에 다마스커스와 카이로를 떨어뜨리면서 아이유부 왕조를 멸하고 중앙아시아 평정
고려사 1223년에 처음 등장한 왜구, 충정왕 2년에는 침략 지역도 확산되었다.
칼카 강에서 제베의 몽골 제국군이 키예프 루스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프랑스의 왕 루이 8세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다.
서하 신종(서하)의 양위로 그 아들인 이덕왕이 헌종이 즉위하였다
60년전 아말릭 1세가 예루살렘 왕국의 왕이 되었다.
무와히드 왕조 군대가 시칠리아 왕국의 노르만인들을 북아프리카에서 몰아내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의 3차 이탈리아원정이 시작되었다. (~1164년)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이 착공되었다.
50년전 피사의 사탑이 착공되었다.
고려의 무신 김보당이 김보당의 난을 일으켰다.
금세종이 여진인의 한족 성씨 사용을 금하였다.
크누트 에릭센이 스웨덴을 재통일 하였다
40년전 - 독일의 콘스탄츠에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와 롬바르디아 도시동맹 간에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의 공격으로 헤이케 정권의 안토쿠 덴노가 타이라 씨 일족과 함께 삼종신기를 가지고 교토를 떠나 관서 지방으로 피신하였다
30년전 고려에서 무신정권의 전횡과 부패로 인한 농민 봉기인 김사미 · 효심의 난이 일어났다.
교황 첼레스티노 3세가 북방 십자군을 결성시켜 발트 해 연안의 이교도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구르 왕조의 장군 쿠투브 알 딘 아이바크가 델리를 함락하였다.
금나라가 몽골, 타타르를 경계하여 계호를 세우기 시작하였다.
살라흐 앗 딘 사후 시리아와 이집트가 분열되었다
20년전 4차 십자군
카라 칼지드 전투에서 자다란(자무카) - 케레이트(토그릴 옹칸) 연합군이 칭기즈 칸 군대를 패배시켰다.
칭기즈칸이 발주나 호수의 맹약을 치렀다.
칭기즈칸이 흩어진 세략을 재규합하여 자다란, 케레이트 부족에 대반격을 하여 큰 타격을 입혔다.
몽골군이 토그릴 옹칸을 추격, 살해하여 케레이트 부족을 멸망시켰다. 자무카는 나이만으로 피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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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강화산성의 외성이 건설되었다.
몽골 제국의 공격으로 만주의 동진국이 멸망하였다
몽골 제국군이 금나라의 수도인 남경 개봉부를 함락시켰다.
20년후 쾨세다흐 전투에서 몽골 제국이 룸 술탄국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킵차크 한국과 차가타이 칸국이 건국되었다.
세르비아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국왕 블라디슬라브를 폐위시키고 그의 동생 스테판 네마네치를 우로쉬 1세를 옹립하였다.
30년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콘라트 4세의 공격을 격퇴한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의 아들 에드먼드를 시칠리아의 욍으로 임명하였다
몽골 제국이 대리국을 공격하였다.
개경 환도를 요구하며 몽골의 5차 고려 침공이 일어났다
40년후 일 칸국의 훌라구 칸이 카프카스를 침공하였으나 킵차크 칸국군에게 격퇴되었다.
제노바 공화국이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토인 크레타 섬을 침공, 칸디아를 함락하였다.
50년후 대공위 시대의 종결과 합스부르크 왕조의 시작.
원나라 군대가 일 칸국이 보내준 회회포의 도움으로 남송의 양양성을 함락하였다
김통정이 사망하면서 삼별초의 난이 막을 내렸다
60년후 잉글랜드의 웨일즈 정복이 완료되었다
라인펠덴 조약으로 알브레히트 1세가 동생 루돌프 2세를 내치고 오스트리아 - 스트리아 공국의 단독 통치자가 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
발레타 전투에서 몰타의 반란을 진압하가 위해 파견된 앙주 가문의 프랑스 함대가 아라곤 왕국의 해군에게 격파되었다.
- 원나라 군대가 미얀마 파간 왕국을 공격하여 응가사웅기안 요새를 포위하였다
프랑스 국왕 필리프 3세가 농촌의 유대인들을 추방하엮다.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가 웨일즈 인의 반란을 대비하여 콘위 성을 짖기 시작하였다.
863년 863년에는 알렉산드리아 개종에 성공하고, 성 안토니우스 기사단이 생성됩니다.신라 절창건이 많음
60년전 - 이레네 : 비잔티움 제국의 여제 사망
50년전 크룸의 불가르족이 아드리아노플을 함락시키고 약 1만명의 주민들을 학살하였다
40년전 준나 천황이 53대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30년전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테오필로스가 아바스 왕조의 칼리파 알 마문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20년전 프랑크 왕국의 왕 루트비히 1세 사후 루트비히의 3명의 아들들 간에 베르됭 조약이 맺어져 프랑크 왕국이 서 프랑크 왕국, 동 프랑크 왕국, 중 프랑크 왕국으로 분할되었다.(이 국가들은 각각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시초가 된다.) 이 조약에서 샤를 2세에게 서 프랑크 왕국, 루트비히 2세에게 동 프랑크 왕국, 로타르 1세에게 중 프랑크 왕국이 주어졌다.
20년후 아바스 왕조 치하의 이라크에서 발생한 노예 잔지가 일으킨 잔즈 반란이 진압되었다
30년후 - 시메온 1세가 불가리아의 군주가 되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 이베리아 중북부 바야돌리드 일대 점령
40년후
후우마이야 왕조, 메노르카 섬 점령
50년후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오비에도에서 레온으로 천도하였고, 이후로 레온 왕국이라 불리게 되었다.
갈리시아 왕국의 오르도뇨 2세가 이끈 원정대가 타호 강 중류의 에보라를 일시적으로 점령하는 기염을 토했다.
60년후 이존옥의 후당의 공격으로 후량의 수도 카이펑이 함락되며 후량이 멸망하였다.
카스티야 왕국이 부르고스 넘어 이베리아 고원 중북부 점령, 세고비아 일대까지 진출하였다. (마드리드 근방)
503년 고려 문자명왕이 백제의 대륙 기지인 요서와 진평 두 군을 함락시켰다.
신라의 지증왕이 명칭 '신라'를 공식 국호로 지정하고, 중국식 군주 호칭인 '왕(王)'호를 사용했다. 또한 순장제도를 폐지했고, 이사부로 하여금 우산국을 정벌하였다. 얼음을 저장하기위한 석빙고도 만들었다
60년전 로마가 부르군트인들과 평화 조약을 맺었다. 평화 조약 이후 부르군트인들은 손 강 유역으로 이동하여 제네바를 수도로 부르군트 왕국을 재건하였다.
50년전 테오도리크 2세가 서고트족의 왕이 되었다
40년전 오를레앙 근처에서 프랑크족 군대가 테오도리크 2세가 이끄는 서고트족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31년전 힐데리히 프린지아공주와 함께 귀국
30년전 글리케리우스가 서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17년전 힐데리히아들 클로비스 로마의 수아송공략
20년후 성왕(백제)이 백제 26대 국왕이 되었다
30년후 사르데냐에서도 반달족에 대한 반란이 일어났다.
- 벨리사리우스가 이끄는 비잔티움 제국군이 반달족을 공격하기 위하여 출정하였다.멸망시킴.
40년후 인도에서 찰루키아 왕조가 창건되었다
50년후 몬스 락타리우스(Mons Lactarius) 전투에서 비잔틴 제국의 장군 나르세스가 테이아(Teia)가 이끄는 동고트 왕국의 잔당을 전멸시키고 18년에 걸친 고트전쟁을 승리로 끝맺는다
60년후 아일랜드 출신 수도승인 성 콜룸바가 12명의 동료와 함께 자신의 고향인 아일랜드를 떠나 스코틀랜드의 이교도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이오나 섬에 도착하여 선교의 본부로 삼을 수도원을 세웠다.
143년 하드리아누스황제의 장성(長城)이 구축되고, 북변의 방위와 관세의 징발에 나섰으며, 142~143년에 더 북쪽에 안토니누스 피우스황제의 장성도 구축되었다
60년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가 게르만족을 상대로 승리했다.
몬스 그라우피우스 전투에서 아그리콜라가 이끄는 로마 제국군이 칼레도니아의 무장 세력을 상대로 승리했다.
30년전 로마 제국의 황제 트라야누스가 파르티아 원정을 떠났다.
백제가 신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수교하였다.
트라야누스 원주가 완공되었다.
20년전 123년 3월에 결국 일본과 화친해 이 때부터는 거의 80년 가까이 일본군이 신라에 쳐들어오는 기록이 없어진다
10년전130년 후한순제 양태후가 황후가 되자 양기는 대장군이 되어 전권을 휘두르며 양씨 일족으로 조정을 장악하였다
50년후 세베루스가 로마에 입성하자, 로마 원로원이 율리아누스에게 사형을 내리고, 세베루스를 황제로 임명하였다.
조조가 아버지인 조숭의 복수를 위해 서주를 공격하여 10개 이상의 성을 함락시켰다
60년후 손권이 강하의 황조를 공격하여 그 수군을 격파하였다. 그러나 손권의 무장인 능조, 서곤이 전사하고, 후방에서 산월 등이 반란을 일으키자 회군하였다.
- 말갈이 신라의 경계를 침범하다
bc218년
제2차 포에니 전쟁 시작.
몰타가 로마 공화국에 합병되다.
60년후 카파도키아의 왕 Ariarathes V가 셀레우코스 제국의 왕 데메트리오스 1세의 요구를 거절하여 셀레우코스 제국이 카파도키아를 공격, Ariarathes V를 폐위시키고 Orophernes Nicephorus를 왕위에 오르게 했다. Ariarathes V는 로마로 달아났다
bc578년로마 6대 - 에트루리아인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기원전 578년) 기원전 578년경 히브리인들이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붙들려 가기시작
상원갑자
1763년 파리 강화 조약, 영국 프랑스 식민지 전쟁이 끝남.그 결과 프랑스는 캐나다를 영국에게 할양하고 루이지애나를 스페인에 할양해야 했다
60년전 버킹엄궁전이 세워졌다.
50년전 위트레흐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펠리페 5세가 스페인 왕국의 국왕으로 승인받다. 이로써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이 종결되다.
- 오스트리아 대공국과 그와 동군연합을 이루고 있는 영토를 상속받을 남자 상속인이 없으면 딸이 상속하도록 하는 국사조칙이 제정되었다.
40년전 명사고가 편찬되었다
30년전 폴란드 왕위 계승전쟁이 시작되었다.
영국령 아메리카 (미국) 의 13개 식민지가 완성되었다.
10년후 보스턴 차 사건이 발발하다
제임스 쿡 선장이 남극해에서 항해를 하다
20년후 - 대영제국과 미국 사이에 파리 조약이 체결되었다. 드디어 미국이 독립국이 되었다.
- 조지 워싱턴의 고별연설을 끝으로 대륙군이 해체되다
30년후 전년부터 시작된 프랑스 혁명전쟁의 여파로 영국, 네덜란드, 신성로마제국 등을 중심으로 1차 대프랑스 동맹이 체결되다.
- 국민공회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시민 루이 카페(Louis Capet)가 단두대에서 사형당하다.
- 2차 폴란드 분할: 프로이센 왕국과 러시아 제국이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영토를 나누어 갖다
40년후 스위스에 헬베티카 공화국이 세워지다. 이로써 천년가까이 지속된 스위스 연방은 해체되다.
- 루이지애나 매각과 관련된 협상이 프랑스와 미국 사이에서 마무리되다.
프랑스 지배 하의 네덜란드가 영국으로부터 남아프리카 식민지를 회복하였다
50년후 뤼첸 전투 발발. - 이베리아 반도 전쟁: 비토리아 전투에서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스페인 연합군이 조제프 보나파르트를 상대로 승리. 이 승리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프랑스 세력이 일소되다.
- 라이프치히 전투 발발. 2일 후인 18일에 종결. 그리고 이 전투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패하면서 나폴레옹의 몰락이 가속화되다
60년후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다
미국의 대통령 제임스 먼로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의 영향력 행사를 거부하는 외교노선을 제창하다. 먼로 독트린의 시작.
- 독일의 천문학자 하인리히 올베르스에 의하여 올베르스의 역설이 제기되다.
1403년
주자소가 설치되다.
조선 시대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가 주조되다.
60년전 지진 해일이 이탈리아의 아말피를 덮쳐 해양도시 공화국을 재기불능으로 만들었다.
세르비아의 스테판 두샨이 에피로스 지방을 정복하였다. 다만 동로마령 도시 세르 공격은 실패하였다
50년전
아라곤-베네치아 연합군이 사르데냐의 포르토 콘테 전투에서 제노바 공화국 함대를 격파하였다.
이탈리아의 소설가 조반니 보카치오가 집필한 데카메론이 완성되었다.
40년전 파양호 대전에서 주원장이 진우량의 50만 대군을 격파하고 진우량을 전사시키며 중국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가을 - 스웨덴 귀족들이 메클렌부르크 공작 알베르트를 왕으로 추대하였고 한자동맹의 도움으로 스웨덴에 상륙, 국왕 마그누스 4세를 패배시켰다.
메가라 해전에서 동로마 제국 해군이 오스만 제국 해군을 격파하였다.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가 블라디미르 대공 드미트리 콘스탄티노비치를 폐위시키고 공국을 병합하였다.
30년전 포르투갈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와 카스티야 왕국의 엔히크 2세가 산테렘 조약을 맺어 휴전하였다.
-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국가 간의 동맹인 잉글랜드와 포르투갈 간의 동맹이 체결되었다.
크메르 제국의 새 수도인 프놈펜이 건설되었다
20년전 포르투갈 국왕 페르난도 1세가 사망하자 카스티야로 시집 간 그의 딸 베아트리스가 계승했다. 하지만 페르난도의 이복 동생 후안이 반발하여 포르투갈 내전이 발발하였다. 백년전쟁 중이어서 잉글랜드는 포르투갈의 후안, 프랑스는 카스티야를 지원하며 대리전을 치른다. (~1385년)
오스만 제국군이 세르비아를 공격, 세르를 점령하였다
10년후 오스만 제국 술탄 메흐메드 1세가 발칸 반도를 지배하게 되었다.
제 3대 국왕 태종이 호패법을 시행하였다.
태종이 한반도를 8도로 분할하였다
세종은 1413년에 충녕대군에 봉해졌다
20년후 친정을 시작한 세종.1423년 황희는 예조판서를 거쳐 강원도관찰사로 나가 구휼을 잘 하고 민심을 얻었다
30년후 1433년에는 압록강을 넘어 파저강 전투에서 여진족을 무찔렀으며, 북방 이민족인 여진족에 대한 강경책과 영토 확장에 대한 일환으로 최윤덕 장군이 여진족을 토벌하여 평안도의 4군(四郡, 1433)개척
40년후 - 조선의 4번째 국왕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
50년후 2200년을 이어져 온 로마 제국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해
보통 서구 역사에서 중세가 끝나고 근세(근대)로 이어지는 시점을, 동로마가 멸망하고 백년전쟁이 종결된 바로 이 1453년으로 잡는다
60년후 동국지도가 완성되었다.
홍문관이 신설되었다.
1043년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3세가 푸아투 백작의 딸 아그너스와 결혼하였다.
게오르그 마니아케스의 반란군이 테살로니키에서 비잔틴 정부군에게 패하면서 그의 반란도 종결되었다.
송의 범중엄이 개혁을 시작하였다. (경력변법)
조양북탑은 요나라를 대표하는 불탑으로 손꼽힌다. 이 탑은 1043년 완성한 전탑
60년전 오토 3세가 독일의 왕이 되었다
튀니지 출신 수장이 이끄는 베르베르 부족이 마그레브에서의 반란이 실패한 후 알 안달루스로의 귀순을 요청하였으나, 그들을 견제한 알 만수르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만수르가 사망한 1002년 이후에야 지브롤터 해협을 건널 수 있었다
50년전 요나라의 장수 소손녕이 군대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으나 고려의 외교관 서희의 담판으로 강화한 뒤 철군하였다. 이 외교 담판으로 고려는 강동 6주를 획득하게 된다.
40년전 마크의 왕 스벤 1세가 잉글랜드를 공격하였다.
타타르 부족이 요나라에게 항복하였다. 거란의 몽골 거점인 카툰 성이 수축되었다.
카탈루냐 서부에서 벌어진 알베사 전투에서 알 무자파르(알 만수르의 장남)가 이끄는 후우마이야 왕조군대가 아라곤 왕국과 바르셀로나 백작 등 마르크 변경백들의 연합군을 격파하였다.
30년전 덴마크의 왕 스벤 1세가 자신이 잉글랜드의 왕임을 선언하였다. 웨식스 국왕 애설레드 2세는 노르망디 공국으로 피신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2세가 이탈리아 원정을 실시하기 위해 군대를 소집하였다.
20년전 가즈니 제국이 트란스옥시아나를 정복하였다.
아바드 왕조의 세비야 토후국이 독립하였다.
10년후 시비타테 전투에서 아풀리아 & 칼라브리아 백작인 하우테빌레 가문의 험프리가 이끄는 노르만 기병대가 교황 레오 9세와 로렌 공작이 지휘하는 이탈리아 - 독일 - 롬바르드 연합군을 격파하였고 교황이 노르만 인의 포로가 되었다.
- 뵤도인이 건설되었다
20년후 알프 아르슬란이 셀주크 제국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피사 함대의 지원을 받은 로제르 1세의 노르만 군대가 시칠리아 토후국의 수도 팔레르모를 점령하였다.
잉글랜드의 템즈 강이 14주간 얼어붙었다.
30년후 스비아토슬라브 2세가 키예프 루스의 대공으로 즉위하였다.
셀주크 제국이 앙카라를 점령하였다
40년후 하인리히 4세의 신성로마제국 군대가 그레고리오 7세를 로마의 산타젤로 성에서 포위하였다.
무라비트 왕조가 세우타를 함락, 이베리아 진출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50년후노섬벌랜드에서 영국이 스코틀랜드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투에서 스코틀랜드의 왕 맬컴 3세가 전사하였다. (알른윅 전투)
모술 회전에서 셀주크 제국 군대가 우카일 왕조 군을 대파하였다.
부르군디의 앙리가 포르투갈의 여백작과 결혼하여 포르투갈 백작이 되었다.
스비아토폴크 2세가 키예프 루스의 대공으로 즉위하였다.
60년후 잉글랜드의 캔터베리 대주교 안셀무스가 헨리 1세와 다툰 후 추방되었다.
- 노르웨이의 마그누스 3세가 얼스터에서 켈트인들과의 싸움에서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들인 외스텐, 올라프 마그누손이 공동으로 즉위하였다
683년 당 허수아비 임금 중종 즉위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 야지드 1세가 이븐 주바이르의 토벌을 위하여 이븐 욱바를 헤자즈로 파견하였다.
메디나 인근의 하라라 전투에서 이븐 욱바가 이끈 우마이야 왕조군이 이븐 주바이르의 군대를 격파했다
60년전 메디나의 무함마드가 메카의 물자 봉쇄에 대항하여 그의 대상을 공격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메카 인들이 메디나를 습격, 가축을 약탈하였다
50년전 이슬람군이 사산조 페르시아와 아랍계 기독교인 연합군를 상대로 여러 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페르시아의 도시 히라를 공격하여 히라의 시민들을 항복시키고, 안바르를 공격하여 총독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40년전 신라의 승려 원효가 인각사를 창건하였다.
신라의 승려 자장이 봉정암을 창건하였다.
30년전 의자왕이 왜와 우호관계를 맺었다.
-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콘스탄스 2세가 교황 마르티노 1세를 체포하였다.
10년전 김유신사망
10년후 톨레도의 대주교 시세베르트가 서고트 왕국의 왕 에지카를 상대로 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20년후 미륵사가 창건되었다
30년후 트라키아의 옵시키온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필리피쿠스를 폐위시켰다.
고왕이 진국의 국호를 발해로 고쳤다.
40년후 네팔 릿차비 왕조의 통치자, 구나타마데바가 Koligram과 Dakshin 왕국을 합병하고 카트만두를 세웠다.
비잔틴 제국 라오디케아의 세란타피코가 성상 파괴론을 설교하여 아나톨리아에서 지지를 받았다
50년후 마도산 전투에서 발해가 당나라의 군대를 격퇴했다
60년후 콘스탄티누스 5세는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에 다시 즉위하였다.
힐데리히 3세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었다.
323년 다뉴브 강 북부에서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군을 이끌고 고트족 군대를 격퇴하였다.
사마소가 동진 제 2대 황제가 되었다
60년전 촉멸망
50년전 바흐람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40년전 로마 황제 카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사산조 페르시아를 공격하여 페르시아의 수도인 크테시폰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카루스는 이어진 전쟁 도중 사망하였다. 이후 카리누스, 누메리아누스가 그의 황제 자리를 이어받는다.
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였다..
30년전 -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 막시미아누스가 콘스탄티우스 클로루스와 갈레리우스를 부제로 임명하여, 로마 제국에서 4두정치 체제가 시작되었다.
모용외의 군대가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고노자가 이끄는 기병 군대에게 패배하였다.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인 바흐람 2세가 죽고 바흐람 3세가 제위를 이어받았으나, 나르세스 1세와 귀족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4개월 뒤 살해당하였다. 이후 나르세스 1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된다.
콘스탄티누스 클로루스가 골족이 점령한 일부 영토를 수복하고, 라인 강 근처에서 프랑크족을 격퇴하였다.
20년전 로마 제국의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가 동방정제의 치소였던 니코메디아 황궁의 화재를 빌미로 기독교를 박해하는 칙령을 발표하였다. 이 칙령으로 교회 건물이 파괴되고 서적이 불태워졌으며, 기독교도인 관료와 군인 등이 면직되었다. 교세가 강했던 동방에서 강한 저항이 일어났고, 그것을 진압하였다.
10년전 밀라노 칙령 : 로마 제국의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와 리키니우스가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고, 종교 박해 시기에 몰수한 교회의 재산 등을 다시 돌려주도록 하는 것에 대해 밀라노에서 합의했고, 이 해 6월 13일 니코메디아에서 공포했다.
고구려가 낙랑군을 수복하였다.
10년후 석홍이 후조 제2대 황제가 되었다.
백제 하늘에 별이 떨어져 왕궁, 민가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20년후 이세가 성한 제 5대 황제가 되었다
30년후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우스 2세의 부대가 마그넨티우스의 부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후 마그넨티우스는 자살하였다.
장요령이 전량 6대 국왕이 되었다.
40년후 로마 제국의 율리아누스 황제가 사산조 페르시아와 전쟁을 하기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동방으로 원정을 떠났다.
- 율리아누스 황제가 동방 원정에서 퇴각하는 도중 페르시아군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50년후 고구려가 율령을 반포하였다
60년후 비수대전에서 사안이 이끄는 동진군이 부견이 이끄는 전진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샤푸르 3세가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가 되었다.
bc38년옥타비아누스가 리비아 드루실라와 결혼하였다.
프라아테스 4세가 파르티아의 왕이 되었다.시리아 지방에서 로마군이 파르티아의 왕자인 파코루스 1세가 이끄는 파르티아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파코루스 1세는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60년전로마원로원에서 인신공양을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메텔루스 누미디쿠스가 호민관 퀸투스 칼리디우스의 도움으로 로마에 귀국하였다.
50년전 동맹시 전쟁이 로마의 승리로 끝나면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전체의 동맹시 및 부족들에게 로마와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게 되었고, 완전한 반도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또한 이 전쟁에서 상당한 활약을 한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로마의 집정관에 선출되었다.
40년전 퀸투스 세르토리우스가 메텔루스 피우스를 격퇴하였다.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다.
30년전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아르메니아의 티그라네스 2세의 군대를 상대로 승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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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후 낙랑군이 신라를 공격하였다가 밤에 문이 닫혀있지 않고 노적이 들에 가득한 것을 본 뒤 신라는 도(道)가 있는 나라라고 감탄하고 되돌아갔다고 한다.
니코폴리스가 건설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영묘가 건설되었다.
20년후 온조가 하남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십제를 건국하였고, 온조의 형 비류는 온조와 생각이 달라 미추홀에 도읍을 정하였다. 그러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불편한 점이 많았기에 미추홀의 백성들은 위례성으로 건너왔고 온조왕은 이들을 받아들인 뒤 국호를 백제로 개칭하였다.
40년후 고구려가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기고, 그곳에 위나암성을 축조하였다
50년후 부여가 고구려를 공격하였으나 고구려의 왕자 무휼이 학번령에서 군사를 이끌고 부여군을 대패시켰다.
60년후 경시제 유현, 유인, 유수는 신나라에 대항하여 한나라의 재건을 선포하고 거병하였다. 이에 신나라 황제 왕망은 한나라 재건군을 공격하기 위해 사공 왕읍, 사도 왕심 등을 총사령관과 부사령관으로 삼아 토벌군을 보내었다. 그러나 몇 달 간의 전투 끝에 곤양대전에서 신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나라의 황제 왕망은 상인 출신 두오에게 살해당하였다.
유수의 형 유연의 권세가 높아지는 것을 두려워하던 경시제가 유연을 살해하였다
23년 신라 지금의 경주에 성이 만들어짐
bc398년 국력의 재건을 도모한 카르타고는 기원전 5세기 후반에서 기원전 4세기 중엽에 걸쳐 시라쿠사의 참주(僭主) 디오니시오스와 싸움을 벌였다.몰타에서 패함
60년후 카이로네이아 전투 : 카이로네이아에서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 필리포스 2세와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가 아테네와 테베의 연합군을 상대로 승리하였다. 이 전쟁 이후 마케도니아 왕국과 아테네 간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스파르타의 왕 아르키다모스 3세가 루카니아인들에 맞서 타렌툼 진영을 돕던 도중 칼라브리아의 만두리아에서 그의 군대 대부분과 함께 살해당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아기스 3세가 새 왕이 되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바고아스에 의해 독살되었다. 이후 독살된 왕의 아들 아르세스가 바고아스에 의해 페르시아의 왕으로 옹립되었다.
진나라의 왕 효공이 죽고, 그의 아들 영사가 뒤를 이었다. 즉위 이후 영사는 태자 시절부터 눈엣가시로 생각하고 있었던 진의 법가 정치가 상앙을 거열형에 처해 죽였다.
bc758년 로마는 BC758년에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에 의해 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