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의 집터는 숯불로 지지고 파서 쏘를 만들었다.
완주군 상관면 월암리의 파쏘봉은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한 커다란 바위에 덮혀 있다. 여러 사람의 증언과 한글학회에서 나온 《한국지명총람》을 토대로 그 터를 확인한 나는 몇 년 전부터 여러 차례 그곳을 찾아갔었다. 정여립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라고 짐작되는 그 터 못 미처의 주말농장에는 사람들이 상추며 아욱이며 온갖 채소들을 가꾸느라 분주하고, 가끔은 낭만처럼 굉음을 울리며 기차가 지나간다. 나는 그곳에 앉아 역사 속을 거슬러 오르려고 무던히 애를 썼지만 어디 그런 느낌이 그렇게 쉽게 오는가?
......
어느새 파쏘봉이 눈앞에 다가와 있고 월암(月岩)이라고 쓰여진 오래된 다리가 나타났다. 그 다리 위로는 만경강 상류의 푸른 물줄기를 바라보며 전라선 열차가 지나간다. 길이 225미터의 ‘신리’라는 이름을 가진 기차 굴을 미처 못간 곳에 위치한 월암다리 아래에는 몇 십년 전만 해도 파쏘라는 못이 있었다. 정여립은 그 못이 있던 자리에서 태어났다고도 하고 그곳에 있던 서당을 다녔다고도 한다. 그러나 그 터는 정여립이 기축옥사(己丑獄死)때 죽은 뒤 수난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집터는 숯불로 지져버리고 흔적도 없이 파헤쳐졌으며 인공의 못이 만들어졌다 하여 파쏘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진동규 시인은 “댁 건너 대수리를 잡습니다.”라는 시에서 파쏘를 이렇게 노래했다.
“살던 집은 텃자리까지 파버렸습니다. 그 이웃까지 뒤집어 파서 앞내 끌어 휘돌아 가게 하였습니다. 깊고 깊은 소를 만들어버렸지만 그때 그 집 주인이 반역했다고, 그래서 전주천 물이 거꾸로 흐른다고, 북으로 흐른다고 소문내고 그런 속셈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댁건너 마을 사람들은 上竹陰 下竹陰하면서,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선비들의 죽음 그 떼죽음을, 서방바우 각시바우, 애기바우, 그 피울음을, 상댁건너 하댁건너 점잖던 자기 마을 이름 위에 불러보기도 해보지만, 어떻게 변명 말씀 한번 엄두를 못 내고 죽어 지내왔습니다.
그 집 뒷산 월암에 달이 뜨면 댁 건너 사람들은 월암 아래 소에 들어 대수리를 잡는답니다. 관솔불들을 밝히고, 주춧돌 기둥뿌리 항아리 깨진 것, 뭐 그 집주인 뱃속까지 빨아먹고 자란 대수리들을 잡는답니다. 일삼아 잡아내고 그런 답니다.”
그렇다. 그 땅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게 해서는 안 되는 땅이었다. 행여 고삐 풀린 망아지라도 염소라도, 아니 병아리라도 뜯어먹으면 역모를 한다는 것이다. 해마다 그곳에선 사람들이 빠져 죽었고, 기축옥사 때 죽음 당했다는 뜻인지 건너편 마을들 이름은 상죽음리 하죽음리라고 부르고 있다,. 한자로야 대나무 죽(竹)에 그늘 음(陰)이니 대 그늘이지만, 아무래도 그 말은 사람의 운명이 끝나는 죽음리라고 불렸던 듯하다.
기축옥사가 일어나기 전만 해도 달을 맞는 바위라서 월암이라고 불려졌을 자그마한 산 이름이 7~80년대에는 부르기도 섬찟했던 파쑈가 아닌 파쏘봉이 되었고, 파쏘봉 앞에 펼쳐진 들판은 파쏘들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파쏘도 이곳에 기찻길이 새로 놓이면서 메워졌고 그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400여 년 전에 살았던 정여립이라는 사내의 신화 같은 이야기만 전해지고 있을 따름이다.
“정여립은 군신강상설을 타파하려한 동양의 위인이다. “ 라고 평가한 단재 신채호는 이미 안정된 사회의 인물은 늘 전 사람의 필법을 배워서 이것을 부연하고, 확장할 뿐이니, 인물 되기는 쉬우나 그 공이나 죄는 크지 못하며, 혁명성을 가진 인물(정여립 같은)은 매양 실패로 마칠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그를 원망하고 미워하여 한 말이나 한 일의 종적까지 없애버림으로, 후세에 끼치는 영향이 거의 영도(零度)가 되고, 오직 3백 년이나 5백 년 뒤에 한두 사람 마음이 서로 통하는 이가 있어 그의 유음(遺音)을 감상할 뿐이요…….
인격적 자주성의 표현은 없고 노예적 습성만 발휘하여 전 민족의 항성을 파묻어버리고 변성만 조장하는 나쁜 기계가 되고 마나니, 이는 사회를 위하여 두려워하는 바요 인물 되기를 뜻하는 사람이 경계하고 삼가야 할 일이다.” 그의 말이 맞아서 그런지, 요즘에야 정여립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면서 정여립로, 정언신로가 만들어졌고, 그가 태어난 곳에는 정여립공원이 만들어졌다. 역사는 이렇게 느리게 느리게 한 발 한 발 전진한다는데, 지금은 어느 시대인가?
2024년 3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