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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중, 머큐쇼" - 세익스피어
아니, 뭘 그토록 비겁하게 쩔쩔매며 빌어? 일격이면 끝장이 날 게 아닌가. 티벌트 이 쥐잡이놈아, 좀 기어 나와 보겠나? (칼을 뺀다.) 고양이 족속의 임금놈아. 네 구생 중 하나만을 내 맘대로 하자 이거다. 앞으로도 네 태도 여하에 따라선 나머지 여덟마저 때려잡겠다는 거다. 칼자루를 쥐고 칼집에서 칼을 좀 빼 보잖겠나? 어서 빼 봐. 빨리 안 빼면 내 칼이 네놈 귀로 날아간다. 자, 어디 네놈의 칼 솜씨 좀 볼까. (둘이서 싸운다.) 아이구 찔렸다. 네놈들네 두 집 다 망해 버려라! 난 가망이 없다. 그놈은 달아나 버렸나? 상처 하나도 안 입고? (로미오에게) 내일 나를 찾아보게. 무덤에서나 만날 수 있을 거야. 정말이지 이젠 세상 하직하는군. 빌어먹을 두 집안 같으니! 제기랄! 개가, 쥐가, 생쥐가, 글쎄 고양이가 다 사람을 할퀴어 죽이다니! 산수책이나 들여다보면서 칼싸움하는 허풍장이 악당, 왈패녀석이! 제기, 자넨 어쩌자고 뛰어들었어? 난 자네 팔 밑으로 다쳤어, 팔 때문이라구. (죽는다)
.. "로미오와 줄리엣 중, 티볼트" - 세익스피어
저 목소리는 분명히 몬태규 집안 놈의 소리다. 이봐! 내 장검을 가져와. 저 악당이 괴상한 탈바가지를 쓰고 이곳에 오다니, 오늘밤 우리의 연회를 조롱하고 망치려고 온 건가? 우리 문중에 혈통과 명예를 위해서 저런 자식은 때려 죽여도 죄가 되지는 않을 거다. 숙부님 저잔 몬태규, 우리의 원수입니다. 악당이예요. 오늘밤의 연회장을 수라장을 만들기 위해서 행패 부리러 온 것이 분명해요!! 저 악당이 손님이라고 와 있는 이상 전 참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숙부님 이건 수칩니다!! 기쁨이 가득찬 즐거운 잔치에 저놈들 멋대로 노는걸 참자니 울화통이 터지고 사지가 떨리는구나. 이번만은 곱게 물러가자, 그러나 이번 침입이 당장은 달콤할지 모르나 내 꼭 쓴 맛을 보게 해 줄테다.
"로미오와 줄리엣 중, 머큐쇼" - 세익스피어
아냐, 주문을 외어서 불러내겠어. 들뜬 자, 미치광이, 정열의 번뇌, 로미오야, 한숨짓는 꼴이라도 하고 나오너라. 한 가닥 노래라도 해보라구. 그래야만 내가 안심이 되잖겠어. '아아!' 라고 만이라도 소리질러 봐. 한 마디 '사랑' 이라든지 '비둘기' 라고 만이라도 해봐. 수다장이 비너스한테 한 마디 고운 말이라도 해봐. 비너스의 눈먼 맏아들인 저 젊은 에이브럼 큐핏에게 별명 하나라도 지어 줘 보라니까. 코페추아왕은 그 큐핏 화살에 정통으로 맞아서 저 거지 계집을 사랑하게 됐다네. 이 사람아, 안 들리나, 왜 꼼짝달싹 않나. 이 원숭이란 놈이 죽었나. 정말로 주문을 외어야겠군. 자, 나무아미타불, 로잘라인의 빛나는 두 눈에 두고, 저 높다란 이마와 빨간 입술에 두고, 저 예쁜 발목과 쪽 곧은 다리와 발발 떠는 정강이와 그 여자의 어떤 깊숙한 데에 두고 자네를 부르니, 자아 진실한 모습으로 이리 나오게.
"로미오와 줄리엣 중, 캐플릿" - 세익스피어
어서 오십시오, 여러분! 발가락이 안 부르튼 아가씨들은 여러분과 춤을 추게 되지요. 자아 아가씨들, 이 중에서 누가 춤을 추지 않겠수. 얌전빼는 아가씨는 발이 부르터 있겠지. 안 그러우? 잘 왔소, 여러분! 나도 한창때는 가면을 쓰고, 미녀 귀에다 달콤한 얘기를 속삭였다오. 다 옛날이지, 옛날. 잘들 왔소, 여러분! 자, 악사들, 연주를 시작하오. 자리를 넓혀라, 넓혀. 처녀들은 춤을 추세요. (음악이 연주되고, 춤이 시작된다.) 여봐라, 불을 더 밝혀라. 탁자들도 치우고 난롯불은 꺼. --- 방이 너무 덥다. 허어, 뜻밖에 흥겹게 됐군. --- 한데 캐풀렛 일가 어른, 앉으시오, 앉으시라니까. 어른과 나는 춤출 때가 지났습니다그려. 어른하고 같이 가면을 쓰고 마지막으로 춤을 춘 지 몇 해나 되었는지요?
.. "로미오와 줄리엣 중, 로미오" - 세익스피어
아, 내 사랑, 내 아내여! 당신의 꿀같이 단 호흡을 다 빨아 마신 죽음의 신도 당신의 아름다움만은 아직도 정복하지 못했소. 두 입술과 볼에는 아름다움의 깃발이 아직도 발갛게 나부끼고 있으니, 죽음의 창백한 깃발이 거기에 못 미치고 있구료. 티벌트여, 자네도 피묻은 수의에 감겨 누워 있는가? 아, 자네의 청춘을 두 동강이 낸 바로 이 손목으로, 자네의 원수인 이 몸을 찢어 죽이겠네. 내가 자네에게 이보다 더한 호의는 베풀 수 없잖겠는가? 용서하게 티벌트! 아, 사랑하는 즐리에트, 당신은 왜 아직도 이렇게 예쁘오? 혹시나 저 망령 같은 죽음의 귀신조차 당신한테 반하여 그 말라깽이 괴물 주제에 당신을 이 암흑 속에 가두어 두고 정부로 삼자는 것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니 나는 언제까지나 당신하고 있고, 이곳 컴컴한 밤의 궁전을 다시는 떠나지 않겠소. 난 당신의 시종들인 구더기들과 이곳에 있을 테요. 난 이곳을 영원한 안식처로 자리잡고, 세상에 지친 이 몸에서 기구한 운명의 멍에를 떨쳐 버리겠소. 눈아, 마지막으로 봐라! 팔아, 마지막 포옹이다! 오, 그리고 생명의 문인 입술아, 정당한 키스로 도장을 찍어서, 만물을 독점하는 죽음과 영구한 계약을 맺어라! 자, 쓰디쓴 지도자, 냄새 흉한 안내자여, 지각없는 뱃사공아, 바다에 지친 너의 배를 당장 암석에 부딪혀 다오! 이건 애인을 위한 건배다! (독약을 마신다.) 아, 정직한 약방 영감! 약효는 빠르구먼. 이렇게 키스하고 나는 죽는다. (죽는다.)
.. "로미오와 줄리엣 중, 신부" - 세익스피어
가만 있자. 그럼 돌아가서 기쁜 얼굴로 패리스와 결혼하겠다고 말해라. 내일은 수요일, 내일 밤은 혼자 자야지, 유모와 같이 자지 말아야 한다. 이 약병을 들고 가서 잠자리에 들거든 약물을 따라 마셔라. 마시자마자 싸늘한 졸림이 혈관 전체에 퍼져서 평소에 뛰던 맥박은 멈추고, 체온과 호흡을 봐도 산 사람 같지는 않을 것이고, 뽀얀 입술과 볼도 시들어서 허연 잿빛이 되고, 죽음이 생명의 빛을 닫아 버리듯이 두 눈의 창문도 닫혀지며, 팔다리도 생기를 잃어 굳고, 차디찬 시체같이 될 것이다. 너는 그렇게 위축된 가사 상태를 24시간 겪은 다음, 상쾌한 잠에서 깨어나듯 눈을 뜨게 될 거다. 헌데 아침에 신랑이 신부를 깨우러 와 보면 넌 죽어 있거든. 그러면 이 나라 습관대로 가장 좋은 옷을 입혀 관에 꾸껑을 덮지 않고 캐풀렛 조상들이 묻혀 있는 저 선산으로 떠메고 가겠지. 한편, 나는 네가 깨어날 시간에 대비하여 로미오에게는 편지로 우리 계획을 알려서 이곳으로 오게 해서 나와 둘이서 네가 깨어남을 지켰다가, 그 길로 당장 너를 로미오와 함께 맨튜어로 떠나보내겠다. 그렇게 하면 너는 이번의 치욕을 모면할 수 있을 거다. 허지만 변덕이나 여자의 불안 때문에 막판에 이르러서 용기를 잃어선 안 된다.
.. "로미오와 줄리엣 중, 로미오" - 세익스피어
그건 고문이지 자비는 아니어요. 줄리에트가 사는 이곳이야말로 천당이지요. 뭇 고양이와 개와 새앙쥐들과 온갖 하찮은 것들도 이곳 천당에 살면서 줄리에트를 볼 수 있는데--- . 차라리 썩은 살에 날아드는 파리떼들이 이 로미오보다 훨씬 더 명예스럽게 사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것들은 줄리에트의 저 하얀 손위에 앉기도 하고 또 순진한 처녀의 순결한 수줍음으로 위아래 입술이 닿는 것조차 죄라고 여기는지 항상 빨개져 있는 그녀의 입술에서 영원한 축복을 훔치기도 하지요. 파리들조차 허락되는 행복인데 이 로미오는 멀리 도망쳐야 하는군요. 그래도 신부님은 추방을 사형이 아니라고 하십니까? 이 로미오는 행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추방당하는 신세라니. 파리들도 허락되는 행복인데 나는 추방이군요. 신부님은 배합한 독약도, 예리하게 날이 선 칼도, 그 밖에 어떠한 비겁한 방법으로도 당장에 죽일 무슨 방법이 없어서 저를 '추방'으로 죽이시나요? '추방'이라니! 오 신부님, 그런 말은 지옥에 떨어진 악당의 말씨, 그 말엔 아비규환의 울부짖음이 있습니다. 성직에 몸을 두시고, 참회를 들으시며, 죄를 용서하시는 신부님은, 더구나 세상이 아다시피 저의 친구이시면서 어쩌자고 '추방' 이라는 말로 이 몸을 토막토막 잘라 놓으시는 가요?
"로미오와 줄리엣 중, 밴볼리오" - 세익스피어
여기 쓰러져 있는 티벌트는 로미오 손에 죽었어요. 하지만 로미오는 싸움이란 쓸데없는 일이 아니냐고 점잖게 타이르고, 각하의 노염을 살 것이 아니냐고도 말했지요. 부드러운 얼굴에 무릎을 굽혀 가며 점잖은 말로 달랬지만, 막무가내로 흥분하여 덤벼드는 티벌트의 분노가 예리한 칼을 혈기왕성한 머큐쇼 가슴에 겨누자, 역시 흥분한 머큐쇼도 흉측한 칼을 빼들고, 마구 욕질하면서 한 손으론 싸늘한 죽음의 칼날을 쳐 제치며 다른 손으론 되받아 쳤는데, 티벌트도 능란한 솜씨로 되받아 쳤죠. 이때 로미오는 '그만, 이 사람들! 이 사람들아, 그러지말어!' 하고 큰 소릴 치기가 바쁘게 날쌔게 팔로 그자들의 필사적인 칼싸움을 말리려고 두 사람 사이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러자 이때 로미오의 팔 밑으로 티벌트의 흉측한 칼이 늠름한 머큐쇼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여 티벌트는 일단 달아났다가 금방 되돌아왔는데, 이번에는 로미오도 복수심에 불타 있어서, 두 사람은 번개같이 맞붙어 싸웠지요. 제가 칼을 들고 말릴 새도 없이 티벌트는 살해되어 쓰러지고, 로미오는 홱 돌아서서 달아나 버렸습니다. 이상이 진상입니다. 거짓이 있다면 이 벤볼리오를 죽여주십시오.
.. "로미오와 줄리엣 중, 신부" - 세익스피어
회색 눈의 아침이 찌푸린 밤의 얼굴 위에 미소를 던지고 동녘 하늘은 구름을 빛줄기로 물들인다. 얼룩진 어둠은 주정뱅이같이 비틀거리면서, 태양신의 수레바퀴로 난 태양의 길에서 흩어져 달아나는구나. 자아, 태양이 그 불타는 눈을 쳐들고, 낮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어 축축한 밤이슬을 말리기 전에, 독초랑 귀한 약즙이 들어 있는 꽃이랑 이 바구니에 가득 따 담아야지. 자연의 어머니인 대지는 또한 자연의 모태이기도 하거든. 또 그 모태에서 가지각색의 자식들이 태어나, 다정한 대지의 품에서 젖을 빨고 있더군. 훌륭한 여러 가지 약효를 지닌 것이 적지 않을뿐더러, 어느 하나 무슨 약효를 안 지닌 것이 없고, 또한 그 약효는 모두 가지각색. 아, 풀, 나무, 돌 할것없이 그 본질 속에는 한결같이 괴상한 약효가 들어 있어 세상엔 아무리 흉한 것일지라도 무엇인가 특수한 약효를 세상에 주지 않는 것이 없고, 또한 아무리 좋은 것도 그 용도를 그르치면, 본성에 위배되어 악용의 해를 면치 못하는 법. 덕도 남용되면 악으로 변하며, 악도 활용에 따라서는 이득이 될 수 있다. (로미오 등장하여 엿듣는다.) 가련한 이 꽃봉오리 속엔 독도 들어 있거니와 약효도 들어 있다. 냄새는 상쾌하지만, 입에 넣게 되면 온갖 감각은 심장과 함께 딱 멎는다. 어디 초목뿐인가, 인간 내부에도 덕과 악이라는 두 왕이 늘 진을 치고 있으니, 악이 성하면 인간이란 수목은 죽음이란 벌레한테 당장 먹히고 마는 법.
.. "로미오와 줄리엣 중, 영주" - 세익스피어
치안을 교란시키는 불온한 것들. 이웃끼리 칼을 피로 물들이는 것들아..에이, 짐승만도 못한 것들. 간악한 분노의 불을 너희들 혈관에서 솟는 붉은 샘물로 끄다니. 고문이 두렵거든 그 잔인한 손에서 흉기를 땅에 던지고 영주의 말을 들어라. 너희 캐풀렛과 몬타규 두 늙은이는 실없는 말 한 마디로 세 번이나 싸워서 조용한 시중을 세 번이나 소란케 했다. 그래서 베로나의 노인들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단장을 내던지고 평화에 녹슨 낡은 창을 휘두르며 너희들의 싸움에 끼어들게 되었다. 다시 또 시중을 소란케 하는 날이면, 치안 교란 죄로 너희 둘 목숨은 없으리라. 이번만은 그대로 물러가라. 그리고, 캐풀렛 그대는 나와 같이 가고, 몬타규 그대는 오늘 오후 자유시간에 법정에 출두하여 이번 사건에 관해서 좀더 내 의견을 듣도록 하라. 한 번 더 일러두나니 죽음이 무섭거든 썩 물러가거라.
로미오와 줄리엣 중, 로미오" - 세익스피어
상처 맛을 모르는 자만이 남의 상처를 비웃는 법이지. (줄리에트가 이
층 창문에 나타난다.) 하지만 쉿! 저기 저 창문에서 비쳐 나오는 빛은?
저기가 동쪽이라면 줄리에트는 태양이다. 밝은 태양아, 떠올라서 샘장
이 달을 죽여 다오. 달님께 시중드는 처녀인 당신이 달 자신보다 엄청나
게 예쁘다 해서 달님은 이미 슬픔에 병이 들어 가지고 창백해 있소. 제
발 달의 시녀 노릇은 하지 마시오. 달은 샘장이니까. 달의 시녀 옷은 병
이 들어서 창백한 빛깔일 거요. 바보 말곤 누가 그걸 입겠소, 벗어버리
시오. 내 아가씨, 아, 내 애인. 아, 저쪽에서도 그렇게 알아주었으면,
입을 여는군. 그래도 말은 없구나. 그러면 어떤가? 저 눈이 말을 하잖는
가. 그럼 대답을 해볼까. 그건 너무 뻔뻔스럽지. 내게 말을 거는 것도
아닌데. 온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 두 개가 볼일이 있어, 저 두 눈에
청하여 자기들이 돌아올 때까지 대신 반짝여 달라고 청한 거야. 만약에
저 두 눈과 그 두 별이 자리를 바꾼다면 어떻게 될까? 저 밝은 뺨은 그
두 별을 햇빛 아래 등불처럼 무색케 할 테지. 하늘로 간 저 두 눈은 온
창공에서 한껏 빛날 테니, 새들도 밤이 아닌 줄 알고 노래할 거야. 저
것 봐, 뺨을 손위에 갖다 대는군! 아, 내가 저 손에 낀 장갑이라면 저
볼에 닿아 볼 수 있을 것 아닌가.
.. "로미오와 줄리엣 중, 케플릿부인" - 세익스피어
어떠냐? 그분을 사랑할 수 있겠니? 오늘밤 잔치에 그분을 뵙게 될 것이니, 책을 읽듯 젊은 백작의 얼굴을 잘 살펴서, 미의 붓끝이 그려 놓은 기쁨을 찾아보렴. 얼굴 생김생김이 하나하나 조화되어, 이모저모로 서로 돕고 있고, 그 예쁜 얼굴이 책이라면 안 나타난 점은 눈이라는 여백에서 찾아볼 수 있더구나. 제본이 안 된 애인이랄까, 이 소중한 사랑의 책에 표지만 붙이면 그분의 미는 완성될 거야. 바다도 물고기가 있으므로 좋은 거야.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면 큰 자랑인 거야. 많은 눈에 영광을 나누는 책이란 황금 표지 안에 황금 얘기를 담은 책이거든. 그러니 그분을 남편으로 모시면 넌 조금도 잃지 않고 그분 것은 모조리 네것이 되잖니.
"로미오와 줄리엣 중, 유모" - 세익스피어
며칠이고 몇 날이고, 일년 모든 날 중 8월 초하룻날 밤이 오면 아가씬 열네 살이 되죠. 수잔과 아가씬--- 하느님 맙소사.--- 동갑이죠. 글쎄 수잔은 천당에 가 있지만 내게는 과분한 자식이었습죠. 그러구 저러구 간에, 8월 초하룻날 밤이면, 아가씬 열네 살이 되지요. 정말이지 제가 잘 기억하고 있어요. 지진이 있은 후 2년이 되지만, 따님은 바로 그날 젖이 떨어졌지요.-그 일은 잊혀지지도 않아요.-일년 중 하고많은 날들 중에서 바로 그날이었어요. 전 젖꼭지에다 약쑥 즙을 발라 놓고 비둘기집 담 밑에서 햇볕을 쬐고 있었지요. 영감님과 아씨는 맨튜어에 가 계시고--- 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읍죠! 그런데 글쎄, 아가씬 젖꼭지에서 약쑥 맛이 나니까, 귀엾게도 칭얼대고, 젖꼭지와 실랑일 하잖겠어요. 그때 비둘기집이 까딱까딱 흔들렸는데, 정말 이제 절 보고 나가라고 할 필요는 없었지요. 벌써 11년 전 일이지만 그때도 아가씬 혼자서 곧잘 서기도 하고, 비틀비틀 걸음마도 하고 다녔지요. 그 전날만 해도 이마에 상처를 냈는데 우리 집사람-하느님, 보호해 주십사, 그이는 재미있는 사람이었지요.--- 아이를 번쩍 일으켜 안고서 '아이구 앞으로 넘어졌나? 철이 들면 뒤로 넘어질 테지. 안 그러니, 줄리에트 아가?' 하고 말하니까, 글쎄 귀여운 것이 울다 말고 '응' 하겠지요. 이제 보니, 농담이 맞는가봐요! 참말로 내가 천년을 살더라도, 그 말만은 안 잊을 거야. 우리 집 양반이 '안 그래, 줄리에트 아가?' 하고 말하니까, 귀여운 것이 울다 말고 '응.' 하잖겠어요.
.. "로미오와 줄리엣 중, 유모" - 세익스피어
그건 그렇고, 우리 집 아가씬 정말 귀여운 분이시죠. 아이구, 그것이 참으로 귀여운 소리를 하잖았겠어요. 아, 지금도 패리스라는 귀족 양반이 아가씨한테 홀딱 반해 있지만, 가엾게도 아가씬 그 양반을 보느니 차라리 두꺼비를 보겠다잖아요. 나는 가끔 아가씨 노여움을 사 가면서 패리스 양반이 미남이 아니냐고 말해 봤지만요. 그러나 내가 그 말만 하면 아가씬 참말로 뱃바닥같이 안색이 핼쑥해지지 않아요, 글쎄. 그런데 저 로즈메리꽃과 로미오 도련님은 같은 글자로 시작하는 게 아닌가요?
어머, 농담을 다, 그건 개이름 자인데. 아르자는 저--- . 아냐. 좀더 다른 글자로 시작할 거야. 나도 알지. 그건 그렇고, 아가씨는 도련님의 이름자와 로즈메리꽃을 붙여서 참말로 훌륭한 싯귀를 짓겠지요. 도련님이 읽으시면 참 좋아하실 거예요.
"로미오와 줄리엣 중, 유모" - 세익스피어
내 욕만 해봐, 가만 안 둘 테니까. 제까짓것 힘이 세더라도 스무 명쯤은 해치울 수 있다구. 내가 못 해내면 해낼 사람을 불러오지 뭐. 망할 자식! 내가 제 놀림감인 줄 아나봐. 나를 백정놈의 짝궁인 줄 아나봐. (피터를 보고서) 헌데 넌 어쩌자구 멀거니 서서 보구만 있는 거야. 놈들이 달려들어 맘대로 나를 희롱하는데! 참말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는구먼. 망할 자식! 그건 그렇고 도련님, 아까 말씀드렸듯이 우리 집 아가씨가 저보구 도련님을 찾아가 보라고 했읍죠. 아가씨 부탁은 저 혼자만 알고 있어요. 하지만 세상 말마따나 도련님이 우리 아가씰 바보의 천당으로 꾀어 가겠다면, 그건 이만저만한 행패가 아니지요. 젊은 아가씨를 속여서 농락한다면, 그건 참말로 부녀자에겐 행패지요. 또 사내로서 비겁한 짓이죠.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 - 세익스피어
안녕히! 언제나 다시 또 만날는지. 싸늘한 불안이 오싹오싹 혈관 속을 돌고, 마치 생명의 열도 얼어붙는 것만 같구나. 엄마를 다시 불러서 위로나 받아 볼까. 유모! --- 아니, 유모 따위가 지금 무슨 소용이 있담. 이 무서운 장면은 나 혼자 해내야 해. 자, 약병아! 하지만 이 약이 안 들으면 어떡하나, 그러면 내일 아침에 결국 결혼을 해야 하나? 아냐아냐! 그건 이 회검이 막아 주지. 회검아, 거기 있거라. (회검을 꺼내서 아래에 놓는다.) 하지만 이게 독약이라면 어떡하지? 신부님이 날 로미오와 결혼시켰으니 이번 결혼으로 그게 들통날까 두려워 날 아예 죽일 셈으로 간사하게 조제한 독약이나 아닐까? 걱정이 되는구나. 설마 그럴 리야. 오늘까지 성자로 존경받는 신부이신데. 하지만 내가 무덤 속에 누웠다가 로미오님이 날 구하러 오기 전에 눈을 뜨면 어떡하지? 아이 무서워! 무덤의 더러운 입구엔 맑은 공기도 안 통한다던데, 그 무덤 속에서 숨이 막혀서, 그이가 오기 전에 질식해 죽지나 않을까? 가령 내가 산다고 하더라도, 죽음과 어두움이 가져다주는 무서운 공상에다 장소마저 으스스한 곳이고--- . 아뭏든 수백년 동안의 조상들의 뼈가 가득 차 있는 납골당 속이고, 게다가 피투성이인 티벌트는 갓 묻혀 수의에 감겨 썩어 가고 있을 테고, 또한 밤중에는 종종 귀신들이 나온다는 말도 있는데. -아, 내가 눈을 너무 일찍 뜨면- 저 악취, 땅에서 뽑힐 때에 그 소리만 들어도 사람이 미친다는 광인초의 울부짖음 같은 비명 때문에- 글쎄 눈을 뜨면, 온통 그런 공포 속에 쌓인 나는 결국 미쳐 버리지나 않을까? 광란한 나머지 조상들의 뼈를 들고 놀기도 하고, 칼맞은 티벌트의 수의를 벗기고 하다가, 결국엔 광기에 몸부림치며 누구 먼 조상의 뼈를 몽둥이 삼아 절망한 내 머리팍을 내 손으로 깨부수지나 않을까? 어머나, 저봐! 로미오 칼끝에 찔린 티벌트의 망령이 로미오를 찾아 헤매고 있나보네. 안 돼요, 티벌트. 안 돼요! 로미오님, 저도 같이 갈께요! 당신께 축배! (줄리에트, 약물을 따라 마시고 커튼에 가려진 침대 위에 쓰러진다.)
"로미오와 줄리엣 중, 유모" - 세익스피어
아가씨! 줄리에트 아가씨! 원, 아가씨가 잠에 취했나봐. 글쎄 원, 아기염소 아가씨! 쳇, 요 잠꾸러기 좀 봐! 아이 아가씨, 예쁜이, 새색시, 날 좀 보라니까 글쎄! 원, 암 말도 없담? 이제 한푼 어치라도 더 자려는 게로군! 한 주일 몫이라도 자구료. 내일 밤엔 패리스 양반이 단단히 결심하고 아가씰 못 자게 하실 테니. 미안하구먼! 건 그렇구, 참 잘도 자네. 하지만 깨워야겠어. 아가씨, 이봐요 아가씨! 응, 백작님을 불러들여서 침대에서 껴안게 할까보다. 그러면 깜짝 놀라 일어날 거야! 아무렴. (침대의 커튼을 젖힌다.) 어머나, 새 옷을 입은 채 누웠나봐. 깨워야지. 아가씨, 이봐요, 아가씨! (흔들어 깨운다.) 아이구우! 이게 웬일이야! 사람살려요! 아가씨가 죽었어요! 아이구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다니! 여기 독한 술 좀 빨리! 영감님! 마나님!
..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 - 세익스피어
안녕히! 언제나 다시 또 만날는지. 싸늘한 불안이 오싹오싹 혈관 속을 돌고, 마치 생명의 열도 얼어붙는 것만 같구나. 엄마를 다시 불러서 위로나 받아 볼까. 유모! --- 아니, 유모 따위가 지금 무슨 소용이 있담. 이 무서운 장면은 나 혼자 해내야 해. 자, 약병아! 하지만 이 약이 안 들으면 어떡하나, 그러면 내일 아침에 결국 결혼을 해야 하나? 아냐아냐! 그건 이 회검이 막아 주지. 회검아, 거기 있거라. (회검을 꺼내서 아래에 놓는다.) 하지만 이게 독약이라면 어떡하지? 신부님이 날 로미오와 결혼시켰으니 이번 결혼으로 그게 들통날까 두려워 날 아예 죽일 셈으로 간사하게 조제한 독약이나 아닐까? 걱정이 되는구나. 설마 그럴 리야. 오늘까지 성자로 존경받는 신부이신데. 하지만 내가 무덤 속에 누웠다가 로미오님이 날 구하러 오기 전에 눈을 뜨면 어떡하지? 아이 무서워! 무덤의 더러운 입구엔 맑은 공기도 안 통한다던데, 그 무덤 속에서 숨이 막혀서, 그이가 오기 전에 질식해 죽지나 않을까? 가령 내가 산다고 하더라도, 죽음과 어두움이 가져다주는 무서운 공상에다 장소마저 으스스한 곳이고--- . 아뭏든 수백년 동안의 조상들의 뼈가 가득 차 있는 납골당 속이고, 게다가 피투성이인 티벌트는 갓 묻혀 수의에 감겨 썩어 가고 있을 테고, 또한 밤중에는 종종 귀신들이 나온다는 말도 있는데. -아, 내가 눈을 너무 일찍 뜨면- 저 악취, 땅에서 뽑힐 때에 그 소리만 들어도 사람이 미친다는 광인초의 울부짖음 같은 비명 때문에- 글쎄 눈을 뜨면, 온통 그런 공포 속에 쌓인 나는 결국 미쳐 버리지나 않을까? 광란한 나머지 조상들의 뼈를 들고 놀기도 하고, 칼맞은 티벌트의 수의를 벗기고 하다가, 결국엔 광기에 몸부림치며 누구 먼 조상의 뼈를 몽둥이 삼아 절망한 내 머리팍을 내 손으로 깨부수지나 않을까? 어머나, 저봐! 로미오 칼끝에 찔린 티벌트의 망령이 로미오를 찾아 헤매고 있나보네. 안 돼요, 티벌트. 안 돼요! 로미오님, 저도 같이 갈께요! 당신께 축배! (줄리에트, 약물을 따라 마시고 커튼에 가려진 침대 위에 쓰러진다.)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 - 세익스피어
신부님, 그 일을 막을 방법을 못 가르쳐 주시겠다면, 제발 이 얘기를 들었다고 말씀하지는 마세요. 신부님의 지혜를 가지고도 어쩔 수 없다면, 이 회검으로 당장에 해결을 짓겠어요. 하느님은 제 마음과 로미오의 마음을 맺어 주시고, 신부님은 저희들의 손을 맺어 주셨어요. 신부님에 의하여 그이께 바친 이 손이, 딴 짓에 보증 역할을 하거나 또는 제 순정이 딴 맘을 먹고 곁눈을 팔거나 하느니보다, 차라리 이 회검으로 손과 맘을 둘로 없애 버리겠어요. 그러니 신부님의 오랜 인생 경험으로 어서 무슨 방법을 말씀해 주세요. 말씀을 안하시겠다면 보세요. 신부님의 연륜을 가지고도 정당한 해결이 안 되는 제 어려움을 이 잔인한 회검으로 가부를 결정짓고 말겠어요. 어서 말씀해 주세요. 신부님의 말씀도 소용이 없다면 차라리 죽어 버리겠어요.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 - 세익스피어
내 남편을 욕할 수야 있어? 아! 불쌍한 이, 세 시간 전에 당신 아내가 된 내가 당신의 명예를 망쳐 놓았으니, 무슨 말로 그 명예를 회복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만 나쁜 사람, 무엇 때문에 오빠를 죽였어요? 하지만 안 그랬다면 나쁜 오빠가 내 남편을 죽였을 지도 모를 일이야. 미련한 눈물아, 어서 네 우물로 돌아가 버려! 슬픔에 흘려야 할 네 눈물이, 잘못 알고 기쁨에 쏟고 있구나. 티벌트가 죽이려던 내 남편은 살고, 내 남편을 죽이려던 티벌트는 죽었다. 이건 전부 기쁨인데, 어쩌자고 내가 운담? 하지만 티벌트의 죽음보다 더 나쁜 아까 그 한 마디가 나를 죽였지. 그 한 마딘 잊어버렸으면! 그러나, 아 죄진 맘을 흉악한 죄악이 질책하듯, 그 한 마디가 내 기억을 고문하는구먼--- . '티벌트는 죽고 로미오는 추방' 의 '추방', 그 한 마디는 티벌트를 만 명 죽였다는 것이나 다름없지. 티벌트의 죽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슬픔인데 쓰라린 슬픔은 동무를 좋아하는지. 다른 슬픔과 꼭 짝을 지어야 하겠다면, 티벌트가 죽었다고 유모가 말했을 때에,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니, 두 분이 다라도 돌아가셨다고 왜 말 안했어? 그랬다면 흔해 빠진 통곡만으로 그칠 게 아니야?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 - 세익스피어
불붙은 다리를 가진 준마들아, 피버스가 머물 방의 숙소를 향해 빨리 달려가거라. 피튼 같은 마부라면 너희들을 서쪽으로 마구 몰아서 당장에 컴컴한 밤을 가져다 줄 것을. 사랑의 무대인 밤아, 빈틈없이 방장을 둘러쳐 다오. 그래야 방랑자의 눈도 가려져 로미오님은 남의 입에도 안 오르고 남의 눈에도 안 띄고서 이 팔 안으로 뛰어들 수 있을 게 아니냐. 애인끼리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등불 삼아 사랑의 행사를 볼 수 있다 잖은가. 아니, 사랑이 맹목적인 것이라면 밤이 안성마춤이지. 점잖은 밤아, 마님같이 온통 검은 옷을 잔뜩 차려입는 밤아, 숫처녀 총각이 씨름하여 이기고 지는 법을 어서 와서 부디 좀 가르쳐 다오. 그리고 이 볼에서 팔딱이는 순정의 피도 너의 새까만 외투로 씌워 다오. 그러면 수줍은 사랑도 대담해져서 참된 사랑의 행위를 정말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게 아니냐. 어서 와라, 밤아! 로미오님, 밤을 낮같이 비추시는 당신도 어서 와요! 밤의 날개에 올라타신 당신은 까마귀 등위에 내린 눈보다 더 눈부실테지요! 어서 와라, 정다운 밤아. 빛깔은 검지만 정겨운 사랑의 밤아, 어서 와서 우리 로미오님을 갖다 다오. 그리고 그이가 죽으면 네게 줄 테니 받아서 작은 별로 만들어 다오. 그러면 온 하늘이 참으로 아름답게 빛날게 아니냐. 그래서 온 세계도 밤에 홀려 저 찬란한 태양을 숭배하지 않을 거야. 아, 난 사랑의 집을 사 놓고도 살아 보지 못하고, 팔린 몸이면서 아직껏 귀염도 못 받고 있단 말인가. 오늘은 왜 이렇게 지루할까. 명철 전날 밤에 새 옷을 받아 놓고도 입지 못하는 어린애같이 안타깝구나.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 - 세익스피어
제 낯이 이렇게 한밤의 가면으로 가려져 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
으면 이 볼은 수줍은 처녀의 맘으로 빨개져 있을 거예요. 오늘밤 당신
이 제 말을 엿들었으니까요, 전 체면도 차리고 싶고, 입밖에 낸 말을 취소도 하고 싶어요. 하지만 체면이여, 안녕! 당신은 저를 사랑 하시나요? 그렇다고 대답하실 테지요. 그 말은 믿겠어요. 하지만 아무리 맹세를 하더라도 깨뜨리실는지도 몰라요. 애인들의 거짓말은 조브 신령님도 웃고 마신다잖아요. 아, 그리운 로미오님, 사랑하신다면 솔직히 그렇다고 말씀하세요. 너무 쉽게 저를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전 심통도 부리고, 찌푸린 상으로 당신을 거절할래요. 그래도 다시 사랑을 애걸해 오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저도 안 그럴래요, 절대로. 그리운 몬타규님, 진정 저는 무척 사랑하고 있어요. 어쩌면 당신은 저를 경박한 여자라고 생각하실 거예요. 그렇더라도 저는 서먹서먹한 채 농간을 부리는 여자들보다는 훨씬 더 진실한 여자임을 보여드리겠어요. 정말이에요. 참다운 사랑의 고백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이 엿듣지만 않으셨다면 정말로 전 좀더 서먹서먹하게 대했을 거예요. 그러나 용서하시고 행여나 들뜬 사랑에서 이처럼 말을 허락한 것이라고 꾸짖지는 마세요. 밤의 암흑 때문에 도리어 탄로된 사랑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