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홈스쿨링 체험 ; 김장 전과정 체험 1
김장용 배추를 뽑아낸 뒤의 배추밭.
지난 삼복더위 끝 무렵, 작열하는 태양과 지독한 가뭄이 대지를 괴롭히고 있을 때 그룹홈스쿨링하는 아이들에게 포트에서 키운 여린 배추 모종을 밭에 심도록 했다. 300포기. 그 중 100여 포기가 성장 초기 단계에서 (잘못 심어져) 죽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성장을 멈췄다.
김장을 하려고보니 성장을 한 200포기 중에서 속을 꽉 채운 완성체는 30포기가 채 되지 않는다. 영원히 한심한 농사초보!-_-^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크기로 100포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큰 놈부터 차례대로 골라내면서 양을 채우다보니 나중에는 세 번이나 탈락한 놈도 간택을 해야했다. 수요공급의 법칙이 화폐가 끼어들지 않는, 외진 밭에서도 작동하다니! 청년들 취직 시장에서도 그랬으면 좋겠다. 밭엔 간택되지 않은 100여 포기가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다. 훌륭한 농부 밭의 배추는 크기가 균일하기 때문에 한쪽부터 차근차근 뽑는다.
배추가 잘 절여지도록 쪼개는 과정
남자 아이들과 함께 배추를 뽑아 수돗가로 옮긴 후 절이기 좋게 배추 배를 갈랐다. 깨알만한 씨 하나하나가 세 잎 정도 나왔을 때 밭에 옮겨심은 것이 이 정도(시장에 나온 배추에 비할 바 못되긴 하지만) 크기로 자란 것을, 두 포기씩 안아 옮기다보면 경이로운 생각이 들 법도 하다. 들지 않았을까?+_+!
밤에 배추를 절이는 과정
배를 갈라 쪼갠 배추를 절이기 시작한다. 143포기를 크기 따라 2~4개로 분해했으니 300개체가 넘는다. 절이기 작업 절반을 넘어서니 간간이 한숨 소리도, 신음 비슷한 소리도 입에서 나온다. 기나기이~인 단순반복 작업은 참을성과 (포기하고픈 마음에 대한) 도전정신을 필요로 한다.
그 다음 과정은 두 차례에 걸친 씻기 과정이다. 켜켜이 씻어야 해서 한 포기 씻는 공력은 한 포기 절이는 공력에 비해 너댓 배는 들어간다. 게다가 두 차례 반복이다. 두 남자 아이와 함께 셋이서 배추를 절이고 씻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꽤 많은 순간적 좌절과 도전을 반복함을 곁에서 느낄 수 있었다. 표현은 없었다.
나는 그저 아이들에게 "생각은 내가 하지만 생각이 나를 끌고가는 법이다. 신체가 힘들어하는 감각에 대한 생각에 끌려갈수록, 포기하고픈 유혹은 커지고 그럴수록 더 고통스러울 뿐이다"는 니체빙의 문장을 던졌을 뿐이다. 신음 소리는 낼 망정 끝까지 해낸 아이들 스스로 크게 느낀 것이 있으리라.
절이고 씻은 절임배추를 잘 쌓아 물기가 빠지도록 한 후 안으로 들이는 과정
절이고 씻어 물기를 뺀 절임배추를 집안으로 들인다. 이제 김장속을 넣는 마지막 과정을 거쳐야 한다. 도시 가정 표준 김장량 20포기에 비하면 절차는 같아도 작업 강도는 단순히 다섯 배가 아니다. 일전에 눈 많이오고 겨울이 긴 곰배령 입구마을, 설피밭 주민에게 겨울에 뭐가 제일 힘드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친구 잠시 생각하더니 겨울이 이젠 끝났겠지 하는데 눈이 내리는 4월에 순간 절망하게 되더라고 했다. 일의 강도는 일의 양과 비례하지 않는다.
밭에서 대파를 뽑아 다듬는 과정
남자 아이들이 배추에 매달려 있는 동안, 여자 아이들은 갓, 쪽파, 대파 등을 다듬고 씻는,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지난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6월 감자를 캔 자리에 심었던 대파를 그 자리에서 뽑아 뿌리를 자르고 다듬는다. 김장용으로는 2kg 정도면 되지만 가을걷이 겸이다. 나머지는 냉동고로 들어가 내년 봄까지 양념재료로 사용된다.
1부 끝. (그룹홈스쿨러들의 김장 전과정 체험이 길어 2부로 나누어 싣습니다. 개봉내일!^^)
첫댓글 생각이 나를 끌고간다는 말이 확 와닿네요. 그럴때가 많은데 조심해야겠어요.!
경이로운 생각, 엄청 들었죠~ 한참 보지 '않았다가'보니 정말 깜짝 놀랐답니다 ㅋㅋ 관심 좀 가지겠습니다. / 고통을 겪으면서 한단계 또 성장했다고 느낍니다.
너무 힘들다는 것을 많이 표현해서 다른사람에게도 피해가 갔을 것 같네요.
다음에는 힘들어도 좀 참고 그순간을 즐겨야겠습니다.
취직시장에서도 작동하면 헬조선이라는 말이 조금은 덜 나올 것 같아요ㅋㅋ
사진과 글로보니 남자들의 고생이 느껴지네요.. 저희가 너무 쉬운 일을 한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