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그룹홈스쿨링한 선배들의 '풀꽃' 방문
먼저 그룹홈스쿨링하고 이번에 대학에 합격한 아이 둘이 모교(?), 모정(母庭)을 찾아왔습니다. 한 녀석은 추가합격인지라 마음을 내려놓은 지가 채 며칠 되지도 않습니다. 가슴이 뭉클합니다. 남자 아이는 4년 반, 여자 아이는 1년 정도 우리와 함께 했습니다.
남자 아이는 중1 여름방학 때 머나먼 경주에서 찾아와 4년 반을 우리와 함께 생활했습니다. 기초학력이 많이 부실했었지요. 진로를 미술 계통으로 정하고 미술선생님이신 엄마의 원격지도(!)를 받았습니다. 기초수학만 끝낸 상태에서 일찍 전략적으로(!) 수학을 포기했습니다. 진로가 미술 쪽이라 수학을 안해도 대학선택의 폭이 그리 좁아지지 않습니다. 처음엔 꽤 오랫동안 지지부진한 듯 했습니다. 하지만 언어 중심의 교육을 통해 '세상 이해 및 소통' 채널이 한번 생기니 스스로 일취월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고2 마칠 즈음까지 여기서 공부했습니다. 미술실기를 보강해야 해서 도시로 나가 1년 더 수능공부를 하면서 실기를 연마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수능에서 언어1, 영어1, 사탐2의 등급으로 홍익대에 합격했습니다. 크게 축하할 일입니다.
여자 아이는 중2 여름방학 때 들어와 1년 정도 여기서 공부하다가 예고 입시준비 때문에 도시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서울예고에 합격해서 우리를 놀래켰습니다. 이 아이는 들어올 때 이미 기초학력이 탄탄했었지요. 학력은 모의고사 타입으로는 상위권, 내신 타입으로는 중상위권이었습니다. 서울예고 합격 직후 가족이 함께 여기에 왔을 때 들은 얘기로는, 검정고시 성적이 평균 97점으로 서울예고에서 환산 내신 3등급을 받은지라 내신에서는 불리했기 때문에, 실기에서 합격 이유를 찾아야 하는데 창의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렴 학교 밖에서 공부했는데 어련하려고요. 독서도 탄탄하게 했는데요. 이번 대입 수시에서 서울대에 합격해 놓고도 수능에서 삐끗하는 바람에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홍익대에 만족해야 했다네요. 안타깝지만 다행입니다.
풀꽃 그룹홈스쿨링 동창이 이제 같은 대학교 동창이 되었습니다. 우연입니다만 다행스럽습니다. 서로 의지가지할 테니까요. 물론 동창이 없다한들 고립될 친구들도 아니지요. 또래와의 만남은 드물었을 지 모르지만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진지한 만남은 충분하니까요.
'홈스쿨링한 아이들은 사회성이 걱정된다'는 편견을 진실처럼 믿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래와의 경쟁과 상대를 수단화하는 폭력성이 일반화되어 있는 학교에서 이기기 위해 또는 '깔아주기' 위해, 반응이 재밌어서 또는 따 당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잘 적응하는 것이고 사회성 함양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요. 대개 자기 필요에 의해 접촉하고 떨어지고 합니다.
이 친구들은 독서의 중요성을 '몸으로 증거한' 아이들입니다. 학과 교재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독서로 이룬 성과이기 때문입니다. 세간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고1 3월모의 등급이 곧 수능등급'이라고 하지요. 기초학력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고 등급에 비례해서 수학능력 차이가 나기 때문에 거의 그렇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은 학령에 따른 공부에 묶여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학령이 아닌 학력에 따른 공부를 하면 그 말처럼 되지 않습니다. 너무도 쉽게 달라지는 일이 기적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독서를 하면 됩니다. 독서는 지식과 지식이 씨줄 날줄로 연결되어 있어 '의미'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학과교재에 있는 분절된 지식은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독서는 너무도 쉬운 기적을 만듭니다.
안타까운 점도 없지 않습니다. 한 친구의 공감능력이 아쉬운 점입니다. 바쁘고 불안해 하는 편이고요. 걱정하며 대비만 하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까봐 걱정입니다. 이번에 그룹홈스쿨링하는 아이들이 독서문답 교재로 해서 큰 깨달음을 얻었던 <하버마스가 들려주는 의사소통 이야기>를 읽으라고 했습니다. 초록손이는 따뜻하게 인간을 그리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비열한 인간을 그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꼭 읽으라고 권합니다. 각각 세 권으로 나눠져있는 1800여 쪽의 초~장편 두 책으로는 모자란 모양입니다. 공자님도 자기 두 아들은 남에게 맡겨 공부시키면서 늘 '시(詩)는 읽느냐'고 물었다면서 예술하는 아이들이라면 응당 하루 시 한 편은 읽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이 친구들이 이 글을 보길 바랍니다. 틀림없이 보겠지요^^
두 친구와 함께 오기로 해놓고 따로 늦게 온, 이번에 고등학교에 들어간 친구를 빼먹을 뻔 했네요. 1년 남짓 함께 생활했지요. 외고 서류제출 마감일에 제출서류가 꼬여 못들어가고 일반고에 진학했다고 얘기합니다. 직관력이 뛰어나서인지,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꾸준히 독서를 하게 해서인지 독서 수준이 3년 정도 학령을 뛰어넘습니다. 내신형은 쥐약(!)이지만 모의고사형은 식은 죽입니다. 임기응변이 이 친구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이 친구도 상대를 수단으로 하지않고 진정성을 갖고 대함으로써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학에 들어간 친구들이 잠시 서로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1학년 때부터 해야 할 것을 산더미처럼 늘어놓습니다. 이 친구들은 '대학에 들어갔으니 이제부터 놀아야지'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참고 공부해, 대학 가서 맘껏 놀아~' 하는 말을 듣지 않았거든요. 최소한 2년에 한 번씩은 꼭 놀러오라고 했습니다. 보수교육(!) 해줄 게 많거든요^^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습니다. 초록손이가 늘 독일말로 하는 'Es ist Zeit(에스 이스트 짜이트)!' 의역해서 '자~ 때가 되었다!'라는 뜻인 모양입니다. 때가 아니면 될 일도 안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 멀리 구미에서, 김포에서, 일산에서, 상급학교 진학 전 막간을 이용해서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이쁜지요. 스스로 각자의 길을 잘 헤쳐나가리라 믿습니다.
▶ 한 친구가 이곳에서 쓴 마지막 일기를 아래에 붙입니다. 2013년 10월 23일에 썼네요.
이제 그룹 홈스쿨링, 풀꽃처럼을 떠날 때가 이틀 앞이다. 어느덧에 여기서 지낸지 4년 반이 되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그러면서 예전생각을 해보니 그 4년 동안에 거의 2년 동안은 '띨빵한' 상태로 많이 헤맸던 것같다. 공동체 생활을 처음으로 하면서 내가 정말 무지하고 답답하다는 것도 알게되고 조금씩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것을 배우려고 애썼던 것도 기억난다. 그리고 겨우 안정을 찾으면서 이젠 공부를 좀 주도적으로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된 것도 2년도 안된 것 같다.
만약 그 긴 시간동안 바깥에서 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4년전의 상태와 별 차이없이 '동물처럼' 살았을 거다.(그러고보면 정말 그 동물같이 살았던 시간을 계속 기다리면서 지켜보신 아주머니, 아저씨, 그리고 엄마가 참 대단하시다..) 근데.. 지금이 동물상태가 아예 아니라고 규정할 순 없다..
나가면 지금처럼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조금씩 바뀔 수 있었던 것은 통제된 환경에서 생활했던 탓이 크다. 그래서 밖에 나가 스스로 조절하면서 살 수 있을지 아니면 또 집어등에 눈이 먼 오징어처럼 살게 될 건지 조금은 갈피가 안잡힌다. 여기서 그렇게 생활했는데 또 밖에서 이상해지면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엄청 부끄러워질 것같다.
그리고 이젠 밖에서 학원도 찾고 어느 방향을 가야할지 '선택'을 해야하는 상황도 금방 왔다. 귀차니즘에, 진로에 대한 생각을 접고 살았는데 그게 좀 많이 후회된다. 늘 머물러있는 시간이라 느꼈는데 어느새 뭔가를 안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온다. 으아.. 쓰다가 보니 전부 후회랑 걱정밖에 없는 것같다. 4년동안의 생활을 정리하려니 왜 이런 것만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가서도 항상 여기 생각하면서 정신차리고 공부해야겠다. 그리고 긴 시간동안 내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있도록 도와주시고 기다리면서 따끔한 말을 해주셨던 아주머니, 아저씨, 부모님께 감사하다.
첫댓글 항상 독서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지만, 난 늦었어..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걱정하며 대비만 하다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까봐 걱정입니다."이 문구가 저에게 확 와닿네요
느리더라도 천천히 독서를 음미하면서 나아가야겠어요.ㅎ
"대게 자기 필요에 의해 접촉하고 떨어지곤 합니다"ㅋㅋ 독서를 통해 감성을 깨운다면 진정성 있는 생각,말,만남을 할 수 있을 꺼라 생각합니다.독서 피하지 않고 열심이 할께요
글을 읽으면서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특히 늦었다는 생각을 가지지 말고 지금이라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서로 시작될 것 같네요^^ ㅋㅋ
저도 글을 읽으면서 독서가 엄청 중요한지 느껴집니다. 최근 2달동안 독서를 하면서 느낀 거지만 모든 공부에는 독서가 우선 순위인 것 같아요.. 느리더라도 한책을 제데로 읽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