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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4: 14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 히 4: 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
2.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 4: 14 – 16 )
⑭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⑮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⑯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 14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찌어다. )
히브리서 저자는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심을 다시 한 번 언급하면서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자고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은 구약시대에 에녹과 엘리야를 통하여 예표 되었고, 신약시대에 복음서들과 사도행전에서 증거되었다.
* 행 1: 9-11 -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승천하신 그는 하나님 오른편에 계신다.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동등한 능력과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계심을 보인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승천하신 신적 구주이신 큰 대제사장을 모시고 있다.
예수님은 구약의 대제사장들과 비교할 때 큰 대제사장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저자는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라고 말한다. 믿는 도리는 우리의 신앙고백의 내용을 말한다. 그것의 핵심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속죄사역을 이루셨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그 도리를 굳게 붙잡아야 한다. 그것을 굳게 믿고 확신해야 한다.
1]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저자는 본 절에서 예수를 '큰 대제사장'(아르키에레아 메간)으로 지칭하고 있다.
'큰 대제사장'은 '대제사장'에 '큰'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으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들보다 그리스도가 더 우월함을 나타낸다(Lane).
2]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예수의 우월성은 '승천하신 자'라는 초월적인 표현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승천하신 자'(디엘렐뤼도타 투스 우라누스)에서 '디엘렐뤼도타'는 '... 통하여 지나가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디에르코마이'의 완료 능동태 분사로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뜻보다는 하늘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지고(至高)한곳으로 가셨음을 뜻한다(Morris).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은 이 땅의 성막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존재에서 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하시므로 그들과는 비교되지 않는 사역의 탁월성을 소유하고 있다(Hewitt).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는 예수께서 인간이시며 동시에 신성을 소유하셨음을 나타낸다.
이는 예수께서 인간으로서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유한성을 이해하실 뿐만 아니라 신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가 행하신 모든 행위와 약속이 신뢰할 수 있는 확고한 것임을 시사한다(Hewitt).
3]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앞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초월성, 더 나아가 그의 하나님의 아들 되신 신성은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근거가 된다.
여기서 '믿는 도리'(호몰로기아스)는 '고백'을 뜻하는 말이다.
이 고백의 내용은 당시 유대인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익히 알고 있는 공식화된 고백으로 본 절 상반절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가리킨다(Lane, Neufeld, Bornkamm).
'굳게 잡을지어다.'(크라토멘)은 '단단히 쥐다' 혹은 '들러붙다'의 뜻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끝까지 지키라는 권고이다.
히 4: 15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그는 배고픔과 목마름과 피곤을 경험하셨고 미움, 비난, 욕, 배신, 매 맞음, 또한 십자가 위에서 극심한 목마름과 고통까지 경험하셨다. 또 그는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는 죄가 없으셨다. 그는 참 사람이시며 또한 참 하나님이셨으므로, 그의 인성(人性)은 그의 신성(神性)의 도우심과 보호 속에서 무죄 상태를 유지하였을 것이다.
실상, 그는 죄가 없으셨기 때문에 죄인들을 위한 대속(代贖) 제물이 되실 수 있었다.
죄인은 자신의 죗값을 받아야 하므로 다른 사람의 죄를 위한 대속 제물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께서는 대속 제물이 되기에 합당하셨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대속 제물이 되시기에 합당하셨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
1]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체휼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연약함'은 죄의 유혹에 대한 인간의 연약성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닌 모든 한계성을 함축하고 있는 표현이다(Hewitt).
'동정하지(체휼하지)'(쉼파데사이)는 '함께 수난당하다'라는 의미의 '쉼파스코'에서 파생된 말로서 '동정하다'(to sympathize, NIV)라는 의미이다.
쉼파데사이'는 단순히 감정을 공유한다는 의미로서의 '동정'(同情)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의 행위를 내포한다(10: 34. 13: 23 Macc 4:25, Lane).
저자는 '아니하는... 아니요'(우 ... 메)라는 이중 부정을 사용하여 예수님 자신이 인간과 동일하게 연약함을 느낀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체휼하시는 예수'에 대한 강조는 예수께서 인간과 동일하게 공감하시는 분으로서 능히 인간을 도우실 수 있음을 나타낸다(Schenk).
예수께서 우리를 이해하시고 도우실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완전히 인간성에 참여하셨기 때문이다(2: 17,18).
2]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도 인간과 똑같이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다.(Lane, Cullmann)
예수께서 인간과 같이 되셔서 인간들이 겪는 모든 어려움을 경험하셨음을 나타낸다(Bruce, Morris).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서 인간들을 돕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죄가 없으시니라'에 대해서는 학자들에 따라 두 견해가 나타난다.
Ⓐ 본문의 내용 즉 예수께서 죄가 없으시다는 점을 부인한다(Buchanan, Williamson).
이들은 '예수께서 본장에서 대제사장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구약시대의 대제사장이 자신의 죄를 사함받기 위해 속죄제를 드리는 것처럼(5: 3), 예수도 대제사장으로서 죄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통해서 순종해야 함을 알고 모델이 되셨다'(5: 8)고 주장한다.
Ⓑ 본문의 표현 그대로 예수께서 인간으로서 죄의 유혹을 받아 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었으나 죄를 범하시지 않았다(Hewitt, Lane, Morris, Bruce).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앞에서 언급된 '모든 일에 한결같이'(카드 호모이오테타)는 '같은 방식으로'라는 뜻으로 동일성 보다는 유사성 내지는 구별성을 나타낸다(Lane).
예수께서는 인간이셨으나 인간과는 달리 흠이 없으시며(9: 14) 지상의 성막에서 제사 드리는 대제사장과 같이 자신의 죄를 위해 제사드릴 필요가 없는 분이었다(7: 27).
따라서 본 절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대로 그리스도께서 인간과 똑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인간들처럼 시험에 넘어진 것이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극복하심으로 죄를 범하지 않으셨으며 시험을 인간과 동일하게 받으심으로 인간들이 당하는 모든 시험의 어려움을 낱낱이 아심을 나타낸다.
히 4: 16 때를 따라 돕는 은혜 -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그러므로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이와 같이 크신 대제사장, 하나님의 아들, 승천하신 자, 우리의 연약을 동정하실 수 있는 자, 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자가 계시기 때문에 라는 뜻이다.
우리가 부족하거나 연약하지 않았다면 이런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신적 구주를 주셨던 것이다.
1]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때를 따라'(유카이론)은 '좋은' 혹은 '옳게'를 뜻하는 '유'와 '시기'를 뜻하는 '카이로스'가 합쳐진 합성어로서 '적절한 시기'를 나타낸다.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불완전하여 수시로 죄의 유혹에 넘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본 절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자비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 때를 아실뿐만 아니라 시기적절하게 베풀어주심을 나타낸다.
때를 따라 돕는(에이스 유카이론 보에데이안)는 때를 따라 적절한(timely) 도움을 위해서라는 뜻이다.
2]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담대히(메타 팔레시아스)는 '담대히, 확신을 가지고'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이 필요한 때마다 그의 긍휼과 은혜를 얻기 위해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그의 이름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고 또 그렇게 나아가야 한다.
'보좌'(드로노)는 '왕의 보좌'를 뜻하는 말로서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나 '그리스도의 보좌'(1: 3,8)를 나타낸다.
본 절에서는 '하나님의 보좌'로 사용되었다. 이 '은혜의 보좌'는 하나님이 현존해 계시는 장소로서 구약시대의 하나님이 거하시는 상징적 장소인 성막 안의 속죄소와 연관된다(9: 5, Bruce).
* 출 25: 21 -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대제사장들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 안에 있는 속죄소에 나아갈 수 있었다.
속죄의 행위가 받아들여졌을 때 지성소 안에 있는 그 속죄소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시은소(施恩所)가 되었다(9: 5).
* 레 16: 2-34 -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3 아론이 성소에 들어오려면 수송아지를 속죄제물로 삼고 숫양을 번제물로 삼고 4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 5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에게서 속죄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삼기 위하여 숫양 한 마리를 가져갈지니라. 6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7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8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9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11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자기를 위한 그 속죄제 수송아지를 잡고 12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13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14 그는 또 수송아지의 피를 가져다가 손가락으로 속죄소 동쪽에 뿌리고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속죄소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15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16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할 것이요 17 그가 지성소에 속죄하러 들어가서 자기와 그의 집안과 이스라엘 온 회중을 위하여 속죄하고 나오기까지는 누구든지 회막에 있지 못할 것이며 18 그는 여호와 앞 제단으로 나와서 그것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곧 그 수송아지의 피와 염소의 피를 가져다가 제단 귀퉁이 뿔들에 바르고 19 또 손가락으로 그 피를 그 위에 일곱 번 뿌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에서 제단을 성결하게 할 것이요 20 그 지성소와 회막과 제단을 위하여 속죄하기를 마친 후에 살아 있는 염소를 드리되 21 아론은 그의 두 손으로 살아 있는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아뢰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 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접근하기 어려운 땅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23 아론은 회막에 들어가서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입었던 세마포 옷을 벗어 거기 두고 24 거룩한 곳에서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자기 옷을 입고 나와서 자기의 번제와 백성의 번제를 드려 자기와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25 속죄제물의 기름을 제단에서 불사를 것이요 26 염소를 아사셀에게 보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그의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 것이며 27 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의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였은즉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다가 불사를 것이요 28 불사른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그의 몸을 씻은 후에 진영에 들어갈지니라. 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30 이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31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32 기름 부음을 받고 위임되어 자기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은 속죄하되 세마포 옷 곧 거룩한 옷을 입고 33 지성소를 속죄하며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또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34 이는 너희가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일 년에 한 번 속죄할 것이니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그러나 본 절에서 저자가 말하는 '은혜의 보좌'는 더 이상 모세가 전해준 율법적인 속죄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 우편에는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의 대제사장으로 좌정해 계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4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성도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기를 원하신다.
구원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를 거울삼아 불신앙과 불순종을 버리고 믿고 순종함으로 안식에 들어가자.
둘째,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도리를 굳게 잡자.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구주이시다.
그는 죽은 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40일 후에 승천하셔서 지금 하나님 오른편에 계신다.
그는 우리를 구원하셨고 또 시시때때로 도우시는 중보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경말씀을 통해 그를 더욱 알고 믿고 확신하고 따르자.
셋째,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자!
우리의 크신 대제사장이신 예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 오른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신다.
그는 우리의 부족과 연약을 잘 아시는 자이시므로 우리를 더욱 동정하시고 도우실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따라 적절한 도움을 얻기 위해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