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자녀의 심연과 통제의 환상 타파
제5강. 잃어버림 (Lost): 문제 행동 너머의 '영적 타락 상태'를 보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로마서 3:10-12)
이제 우리는 부모 자신의 영혼을 해부하던 수술칼을 아이의 내면으로 돌립니다. 아이가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동생을 때리며, 부모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할 때, 우리는 묻게 됩니다. "도대체 내 아이는 왜 저러는 것일까?" 세상은 그것을 발달 단계의 문제나 주의력 결핍으로 진단하지만, 폴 데이비드 트립은 성경의 엑스레이를 통해 아이의 영혼에 내려진 가장 끔찍하고도 치명적인 진단명을 선포합니다. 그것은 아이가 율법을 어겼다는 단순한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으로 완전히 길을 잃고 눈이 멀어버린 '잃어버린 바 된 상태(Lost)'라는 것입니다!
첫째, 아이는 단지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맹인'의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부모들이 양육에서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반항을 단지 '법규 위반'이나 '부모를 향한 악의적인 공격'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로마서의 선포를 보십시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무엇이 선인지 깨닫지 못하며, 멸망의 낭떠러지를 향해 질주하는 '영적 고아'이자 '길 잃은 양'입니다.
아이가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어리석은 죄를 짓는 것은, 그 아이가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맹인이 앞을 보지 못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처럼, 죄로 인해 영적인 눈이 멀어버린 상태(Condition)가 만들어낸 처참한 비극일 뿐입니다! 이 비참한 영적 타락의 '상태'를 직시하지 못하면, 부모는 아이의 겉모습만 교정하려는 율법의 채찍질을 결코 멈출 수 없습니다.
둘째, '반역자'로 볼 것인가, 아니면 '조난자(길 잃은 자)'로 볼 것인가?
당신은 죄를 짓는 자녀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만약 아이를 당신의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하는 '악의적인 반역자'로 여긴다면, 당신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복수심, 처벌의 정죄만이 끓어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사탄의 권세와 원죄의 사슬에 묶여 길을 잃은 불쌍한 '조난자'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독사에게 물려 죽어가는 아이를 보며 매를 들고 분노할 부모는 없습니다! 길 잃은 자에게 필요한 것은 몽둥이가 아니라,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줄 '안내자'요, 죽음의 늪에서 건져내 줄 '구조자(Rescuer)'입니다. 부모의 시선이 정죄하는 재판관에서, 피 흘리는 영혼을 끌어안는 구조대원으로 완전히 뒤바뀌어야 합니다!
셋째, 징계와 통제만으로는 결코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습니다.
길을 잃어버린 맹인에게 아무리 윽박지르고, 법의 규칙을 소리쳐 들려준들 그가 길을 찾을 수 있습니까? 징계만으로는 결코 잃어버린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습니다!
아이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그 비참한 죄악의 현장이 바로, 부모가 십자가의 복음을 들고 출동해야 할 구조의 현장입니다. 부모는 아이의 손을 꽉 잡고 이렇게 선포해야 합니다. "너는 지금 길을 잃었구나! 네 힘으로는 도저히 빛을 찾을 수 없는 맹인이란다. 아빠 엄마 역시 길 잃은 양이었지만,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내셨단다. 우리 함께 우리를 구원하실 참된 목자이신 예수님께 나아가자!"
기독교 부모여, 아이의 문제 행동 앞에서 분노의 확성기를 내려놓으십시오!
눈에 보이는 그 반항적인 태도 이면에, 영원한 형벌을 향해 맹인처럼 걸어가고 있는 아이의 그 비참하고 가련한 '잃어버린 상태'를 보십시오! 그 영적 맹인의 비참함을 십자가의 긍휼로 끌어안고, 하나님의 완전한 은혜의 빛이 아이의 영혼을 비출 때까지 길잡이의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