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0-16 11:13
같은 동네에서 강산이 두 세번 바뀔 정도로 오래 살았지만
집과 가까운 한강을 끼고 걷기를 하기는 얼마되지 않았다
시골에서 서울로 기차타고 오갈때 만나던
육중한 철로 만든 교각이 먼저 연상되는 한강철교
아래로 흐르던 깊고 푸른 물결
그 후로도 강남에서 강북으로 이동할때나 다리위에서 내려다본 한강이 전부 였는데
삼사년 전 우연히 집과 가까운 곳에
오솔길처럼 작은 길 차는 다닐 수 없는 보행자 전용 도로가 닦여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길 왼편을 따라 한강의 위용이 당당히 함께 하는 멋진 길이었다
강가를 따라 걷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도록 예쁘게 만들어져있다
내가 처음 보행자 전용 도로에서 가장 가까이 옆에 끼고 보게 된 한강은
차를 타고 다니며 멀리서 바라보던 것과는 또 다른 감흥
가슴이 활짝 트이는 느낌이었다
압구정동에서 한강으로 통하는 터널을 걸어 지나니
코끼리 같이 거대한 강이 누워 흐르고 있다
한강다리는 조명으로 화려하게 다시 태어나 있고
어두운 밤 무수한 불빛들은 다른 세상의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음악만 흐른다면 노천에 자리한 넓디 넓은 크럽에 나들이 온 것 같다고나 할까?
<어머~! 우리나라 같지 않은것 같아..>
이국적이고 세련된 밤의 한강을 본 소감을 그렇게 밖에 표현 못하는 내가 아쉽다
함께 했던 친구와 똑 같은 마음으로 한강을 가깝게 두고 산다는것에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강을 끼고 걷는 작은 길은
내 건강을 위해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언제나 런닝머신처럼 자리를 내어주고
답답하거나 울적한 날에는 모든 것을 생략한 채 깜깜한 가운데 불빛만이 반짝이는 강 물결에 눈길을 주며 걷는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평온해지고있다
몇해전 여름에는 그녀와 둘이 매일 잠실 선착장까지 걷기로 약속을 했다
몸매가 균형 잡히는거라는 미심적은 믿음을 가지며 저녁밥을 먹은 후에 만나서
그녀가 아주 내놓고 하는 남편 사랑하는 이야기나 자랑을 들어주고
그러다 지겨워지면 그런 이야기는 돈내고 하라고 하며
두여자는 발걸음도 쉴새없이 입도 쉴새없이 한강걷기를 했었다
걷다가 더워지면 걸치고 나온 겉옷이 거추장스러워 엉덩짝에 묶는다
나는 운동 뭐 하냐고 누가 물으면 <한강걷기요..> 라고 대답한다
오로지 걸을수만 있는 도로를 한참 지나다 보면 잠실 선착장이 보이고 넓은 잔디가 펼쳐져 있다
여름밤이면 그 잔디 공원에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 산책 나온 사람들로 채워져 북적인다
돗자리위에 동그랗게 삼삼오오 모여 먹고 마시기도 하고
혼자 엎드려 컴퓨터로 영화를 보는 젊은이도 있고
가족끼리 다리를 베고 누워 강바람을 맞기도 한다
모두들 친하고 오손도손 정다워 보인다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가 쵸코렡을 나눠 먹으며 달콤하게 팔을 끼고 다정히 데이트 중인데
조깅하며 뒤 따르던 두 중년의 남자가 심술궂게 앞서 걷는 연인들에게
<좋오은 때다... ..근데 살아봐라~!.흐흐~!....>
인생의 선배랍시고 자기들끼리 뒤에서 속닥인다
강 옆 간이매점 근처에 하필 지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나이 지긋한 원피스 차림의 여자가 커플인 남자와
벌러덩 누워 다리를 상대에 올려 놓고 있는 모습이 아슬아슬하고 민망해 고개를 돌렸다
너무나 좋아 다른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오로지 상대만 보이는 증세인 사랑에 빠진 남녀인가?
주인손에 이끌려 운동 나온 강아지들도 여러 종류다
목에 끈을 묶고 나오지 않은 녀석 지조도 없이 꼬리 흔들며 아무나 따라가
제 주인이 아무리 오라 불러도 말을 안 듣고 애를 태우고 그런 말티스 녀석이 애교스럽다
<그 애 좀 잘 키워 주세요~!...> 주인의 익살이다
차 없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자전거에 강아지가 달려들어 생기는 교통사고가 간혹 있다
하지만 개주인의 비명소리만 크지 강아지는 별로 다친데 없다
이제 서늘해지면 강바람이 추워져 연인들도 귀여운 강아지들도 보이지 않아 지루하겠지만
그 때는 더 호젓하게 너른 한강을 고요히 걷는 것도 명상하는 것 같다
그러면 아이들 것 귀에 꼽고 나가 나도 음악이나 실컷 들으며 걸어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솔솔부는 강바람을 실눈을 뜨며 맞기도 하고
찬란한 야경은 오히려 바탕이 된 칠흑같은 어두운 검은색의 중후함으로 인해
더욱 화려하게 돋보인다는 것을 알게된다
하염없이 깊은 강의 흔들리는 물결을 바라보다 네온으로 찬란히 치창한 유람선이 떠 가는것을 보면 마냥 설렌다
세금 낸 보람으로 잘 다듬어진 고즈녁히 밤 한강에 취해 보는것이
내 행복한 일과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