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나방'과 '수레바퀴 아래서'의 작가 '헤르만 헤세'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1877~1962)
1877년 독일 남부 칼브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시절 시인이 되고자 수도원 학교에서 도망친 뒤 시계공장과 서점에서 견습사원으로 일했으며, 열 다섯살에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십대 초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페터 카멘친트>, <수레바퀴 아래서>, <인도에서>, <크눌프>, 등을 발표 했다. 스위스 몬타뇰라로 이사한 1919년을 전후로 헤세는 개인적인 삶에서 커다란 위기를 겪고, 이로 인해 그의 작품세계도 전환점을 맞이한다. <데미안>과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이 바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헤세는 이 작품들과 더불어 소위 '내면으로 가는 길'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헤세가 그림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무렵이며, 이후 그림은 음악과 더불어 헤세의 평생지기가 되었다. 그는 이어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동방순례>, <유리알 유희>등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하는 작품들을 발표했고, 1946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1962년 8월, 제 2의 교향인 몬타뇰라에서 영면했다.
책 <수레바퀴 아래서>
*줄거리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마을에서 가장 똑똑하고 뛰어난 학생으로 아버지와 마을의 온 선생님들의 기대를 받으며 마울브론 신학교에 2등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입학 후에 겪는 기숙사 생활과 강압적인 학교 분위기로 인해 학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처음에는 성적도 좋고 교우관계도 좋았지만, 같은 방을 쓰는 몽상가이자 시인인 '헤르만 하일너'라는 학생과 친해지게 되면서 점점 학교를 겉돌게 된다. 하일너는 자유로운 천성을 가지고 있었고 위선적인 학교와 교장에게 맞서다 학교를 퇴학당한다. 그동안 하일너와 친구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던 한스는 하일너가 떠나자 신경쇠약에 걸리고, 결국 교장의 권유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고향에 돌아 왔을 때, 한스는 이전과는 달라진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사랑하는 여인의 배신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물에 빠져 죽는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관점에서 본 '수레바퀴 아래서'
나는 꿈이 정신의학자이고, 롤모델은 프로이트이다. 그래서 평소 프로이트에 대해 관심이 많고 그의 학문인 정신분석학에 관한 책들
도 즐겨보는 편이다. 작품을 읽으면서도 프로이트의 이론이 계속 생각나 둘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정신분석은 정신의학자인 프로이트가 창시한 학문으로 작게 보면 정신의학 중 정신치료의 한 방법이지만, 넓게 보면 인간과 인문학에 대한 사상적 학문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이론을 정립하면서 인간의 무의식을 발견하였는데, 이는 여태까지 인간의 정신의 주체는 이성이고 자아라는 사람들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은 이론이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은 이드(id,욕망), 자아(ego), 초자아(superego, 도덕,사회적 의식≒양심)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에서 프로이트는 이드가 의식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심층적으로 연구했다. 이떄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통해 연구를 했는데, 그는 그리스 신화, 문학작품도 정신분석 관점에서 분석을 했다. 정신분석이 의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철학적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이드와 자아,초자아의 갈등을 중심으로 내 주관적 감상을 해보려 한다.
책을 읽다가 부록에 있는 헤세의 연보를 보게 되었다. 그중 1891-1892년에서 마울브론 수도원학교에 입학하고 7개월 뒤 도망쳤다고 나오는 데, 그 이유가 [시인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고자 했기 떄문에]라고 해서 굉장히 웃겼지만 인상깊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것이 '헤르만 하일너'가 학교를 나온 이유라는 것을 알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한스와 하일너의 두 모습과 그 갈등이 어린시절 헤세가 겪은 내적 갈등이라고 생각한다.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를 열심히하고 목사가 되어 출세하는 것'을 강요하는 주변 어른들의 기대와 사회적 인식(초자아, superego), 시인이 되어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고,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이드,id) 사이에서 갈등하다 한스(헤세의 자아,ego)는 견디지 못하고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버린 것이다.(작품 속 -(교장):그럼, 그래야지. 아무튼 지치지 않도록 해야 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실제로도 헤세는 마울브론 수도원 학교를 도망쳐 나온 뒤 자살 기도를 하여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자아의 파멸을 경험한다. 헤세는 어린 시절 '헤르만'하일너처럼 몽상가, 시인이 되고자 했지만, 강압적인 교육, 학교에 의해 시를 쓰기 힘들었다. 그는 자신의 그러한 욕망과 사회와의 갈등을 '수레바퀴 아래서'에 표현한 것이다.
'공작나방도 마찬가지이다. 하인리히가 나방을 가지고 싶다는 욕망과 그건 옳지 않다는 양심, 도덕은 각각 하인리히의, 아니 어린 시절 헤세의 이드와 초자아 사이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에 '그리고 그 속에 든 나비들을 끄집어 내어 손끝으로 비벼서 못쓰게 가루를 만들었다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린 시절의 헤세는 초자아의 세계, 도덕과 규범의 세계를 알게 된 것이고, 나비를 없애버림으로써 헤세 내면의 이드를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소설 '공작나방'과 '수레바퀴 아래서'
학기 초, 수업시간에 배웠던 '공작나방'과 책 '수레바퀴 아래서', 모두 헤세의 자서전적 작품들이다. 공작나방의 '하인리히',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모두 헤세 자신의 분신이다. 공작나방에서 하인리히가 나비수집과 관련해 겪은 일들은 헤세가 어린시절 푹 빠져 있던 나비 채집에대한 기억을 회상하면서 쓴 작품이고, 수레바퀴 아래서도 헤세가 학생시절 실제로 다녔던 라틴어 학교와 마울브론 수도원학교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공작나방과 수레바퀴 아래서 모두 헤세 자신의 어린시절 경험에 대한 회상, 자기자신의 내면과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욕망과 사회와의 갈등을 보여준다. 선생님께서 공작나방 수업을 하실 때 말하셨듯, 청소년기에 이러한 내면성찰에 관한 책을 읽으면 더욱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하게끔 도와준다. 더군다나 학업에 열중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나나 친구들 같은 중학생들에게 '수레바퀴 아래서'는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공감되는 부분도 많이 있고, 학기 초 읽었던 '공작나방'을 다시 읽어 본 후에 연관지어서 읽으면 더욱더 작품을 잘 이해할 수 있고 재밌을 것이다. '수레바퀴아래서'를 꼭 읽어 보길 바란다.
첫댓글 그래, 유진아, 더운 날씨지만 방학이라서 참 좋다. 헤르만 헷세의 작품 참 좋지, 유리알 유희, 지와 사랑 등, 한 때 헷세 작품에 푹 빠진 적도 있었지. 독서와 수업활동을 함께 해서, 샘은 아이들과 문학을 나눌 수 있어서 국어과목이 좋아. 유진아 남은 방학 잘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