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정치 민주화는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으로 의회민주주의의 시동을 걸었으나 진정한 의회민주주의는 1832년 1차 선거법 개정(The Great Reform Act)과 1867년 2차 개정, 1884년 3차 개정에 걸쳐 차례로 이룩했다. 영국은 수차례에 걸친 정치개혁으로 국민들이 소득,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자신의 의사를 의회를 통해 대변할 수 있도록 해 국민의 단결과 경제의 운영효율을 높였다. 일례로 식량 무기화에 대비하기 위해서 농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높은 관세를 부과하던 1846년의 ‘곡물법’ 폐지는 이러한 정치개혁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806년 나폴레옹은 대륙봉쇄령을 내려 유럽국가들이 영국과 교역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1812년 이에 불복한 러시아 징벌에 실패하면서 이미 식량 무기화는 허구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하지만 영국의 ‘곡물법’은 여전히 높은 관세로 의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지주(地主)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영국, 인구 7명에 국회의원 2명, 170만명에 4명 뽑은 적도
1832년 선거법 개정 이전에는 16세기에 형성된 행정단위를 기준으로 한 선거구에서 의원들을 선출하였다. 하지만 18세기 중엽에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선거구의 실제 인구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모직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열악한 농업환경 속에서 밀을 재배하는 것보다 양을 기르는 것이 경제적으로 수익성이 높아지자 지주들은 경작지를 목초지로 전환하고 양을 키우기 시작하였다. 토지를 잃은 농민들은 도시로 몰려갔고, 값싼 노동력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면서 리버풀, 버밍엄,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제조업이 융성하였다.
이처럼 산업혁명은 도시화를 촉진하였고, 공장제 노동체제의 도입으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로 공장을 운영하여 부를 축적한 상공인들과 노동자들이 참정권의 확대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움직임과 구조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선거제도는 이미 의회를 장악한 지주들에게만 유리했다. 즉 농촌지역의 빈 선거구에서는 지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원이 선출된 반면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도시들은 여전히 선거구가 없거나 인구증가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따라서 농촌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원들은 인구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였고 도시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원들의 수는 현저하게 적었다. 예를 들어 유권자 7명인 올드새럼(Old Sarum・현 솔즈베리시)은 2명의 의원이 선출되는 반면에 인구 170만명이 넘는 런던은 단 4명의 의원만이 선출되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의 도시민보다는 소수의 지주이익과 농업을 우선시하는 정책들을 고집하여 국가경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1830년 프랑스에서는 출판자유의 정지, 하원의 해산, 선거자격의 제한 등을 골자로 한 7월칙령이 혁명의 기폭제가 되어 민중이 정부와 충돌하였다. 이 사건이 1830년 프랑스의 7월혁명의 계기가 되어 유럽 각지에 자유주의가 침투하였고, 영국에서도 참정권에 대한 욕구가 강력하게 표출되었다.
휘그당 그레이, 인구 줄어든 56개 지역구 폐지
제1차 선거법 개혁을 성사시킨 그레이 수상. |
이처럼 영국은 나폴레옹전쟁 이후 국민들의 참정권에 대한 폭발적인 욕구를 반영하여 선거구를 재획정함으로써 혁명 없이 정치개혁을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인구가 줄어든 56개 선거구를 폐지하고, 한곳에서 2~3명의 의원을 선출하던 31개의 선거구는 의석 수를 1개씩으로 줄였다. 대신에 인구가 늘어난 지역에 67개의 선거구를 만들었다. 그 결과 인구에 비해 과다하게 대변하던 농촌의원 수는 줄어들고, 도시상공인을 대변하는 의원 수가 대폭 늘어나 1846년 식량 무기화를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비싼 관세를 부과시키던 ‘곡물법’이 폐지되었다.
이후 영국의 농산물 가격은 농업환경이 더 유리한 프랑스나 독일보다 저렴하게 되었다. 당시 임금은 생계비에 비례하여 책정되었으므로 곡물가격의 하락으로 임금이 안정됨에 따라 제조업의 경쟁력이 높아졌고, 영국은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 될 수 있었다. 제조업이 융성하면서 공산품을 전 세계로 수출하였고, 값싼 원자재를 수입함으로써 확대 재생산이 이루어져 대영제국의 성장 공식을 공고히 하였다.
하지만 1832년 1차 선거법 개정에서는 소득과 재산의 제한규정 때문에 노동자들의 참정권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후 1867년 2차 선거법 개정으로 대부분의 임금노동자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었고, 1872년에는 비밀투표가 보장됨으로써 뇌물과 정치적 압력에 의한 투표가 현저히 줄어들게 되었다.
1884년 3차 개정은 농민들에게도 선거권을 주었고, 1918년에는 21세 이상의 모든 남자와 30세 이상의 유산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부여했다. 1928년 들어 모든 여성이 선거권을 획득함으로써 비로소 완벽한 보통선거제가 이루어졌다.
1차 선거법 개정 이전인 1831년에는 참정권이 전체 인구의 5%에게만 허용되었지만, 1884년 28.5%, 1928년 97%로 그 범위가 늘어났다. 이처럼 국가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참정권 확대를 통해 국가의 응집력을 높임으로써 모든 정책은 국가경쟁력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시행될 수 있었다.
반곡물법연맹이 주도한 곡물법 반대 집회. 선거법 개혁은 곡물법의 폐지와 영국의 국가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
한국의 선거구 인구편차는 3對1… 100년 전 영국보다 後進的
영국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선거구 개혁은 아직도 100년 이상 뒤지고 있다. 1995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는 인구편차기준 4:1(상하 60%)의 기존 선거구 획정방식이 위헌이며, 장기적으로 2:1로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헌법재판소 판례집, 95헌마224-최다인구선거구와 최소인구선거구의 투표가치의 비율이 전국적으로 4:1이 넘거나, 도시의 각 선거구 사이 또는 농어촌의 각 선거구 사이에 3:1 이상이 된다면 국회의원선거에 있어서 평등선거의 원칙에 저촉되는 위헌적인 선거구구역획정이라고 아니할 수 없으며, 앞으로는 위 비율이 모두 2:1 미만이 되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2001년 결정에서는 인구편차기준이 3:1로 조정되었으나 선거구 획정은 여전히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2012년의 공직선거법 개정에서도 여전히 미흡하다. 경기 파주시와 강원 원주시를 갑과 을로 나누고 세종특별자치시에 독립선거구를 신설해 총 3개 지역구가 늘어나고, 영・호남에서 각각 1석씩 총 2석이 줄어드는 데 그쳤다. 결국 19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의석 수가 299석에서 300석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2012년 19대 총선 기준으로 볼 때, 가장 인구가 많은 선거구는 30만9000명이고, 가장 적은 선거구는 9만9000명이다. 우리나라 인구 5085만명을 246개의 지역구로 나눈다면 평균 20만6000명의 선거구로 재조정되어야 한다. 결국 지금의 선거구는 온전한 정치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특정지역의 유권자 1명의 투표가치가 다른 지역의 3명과 같게 함으로써 국민의 참정권을 제한, 왜곡하고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는 셈이다.
만일 1억원 이상의 납세자에게는 3표, 비납세자에게는 1표의 투표권을 준다면 폭동을 일으키려 할 것이다. 하지만 선거구의 인구편차 3:1 비율 역시 불공평함에도 불구하고 2001년 이후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개정되지 않고 있다. 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미국 1:1, 프랑스 1.5:1, 독일 1.3:1 등 인구편차의 한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10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조사를 통해 주별로 하원의원 수를 조정하고 있다. 1960년 가장 인구가 많았던 뉴욕주는 하원의원 43명으로 캘리포니아주의 30명과 플로리다의 8명을 합친 것보다도 많았다. 하지만 에어컨이 보급된 후 살기 좋아진 선벨트(Sun Belt)로 인구가 이동함에 따라 2012년 캘리포니아주의 하원의원은 53명, 플로리다주 27명, 뉴욕주 27명으로 역전되었고, 정치권력도 비례하여 이동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5년마다 실시하는 인구조사를 통해 선거구 조정이 필요하다. 이로써 1인 1표의 투표가치 원칙이 지켜지는 정치 민주화를 달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구편차 2:1을 달성하고, 단계적으로 선거구를 개편해 나간다면 중장기적으로 1:1의 기준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 국회의원 정치력 때문에 식량가격은 국제시세 3배
2011년 우리나라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품 항목의 소비지출은 66조원으로 전체 소비지출의 12.3%를 차지하고 있다. 해마다 식료품비의 상승으로 엥겔지수가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만약 농산물시장을 개방해 국제시세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면, 증세나 보조금 없이도 민생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쇠고기는 국제시세와 비교해 4.7배 비싸고, 돼지고기는 2.1배, 쌀은 5.5배 비싸다.
따라서 세계적 대세에 따라 농산물시장을 개방한다면 식료품비를 연간 약 20조원 줄임으로써 복지를 증대할 수 있다.
만약 정부가 나서서 복지정책을 시행한다면 약 85만 가구(2011년 기준)에 달하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를 조사하고 복지예산을 재분배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으로 엄청난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식료품비 인하는 정부의 추가비용 없이 직접적으로 복지를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생계비 인하를 위해서는 농산물시장 개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구의 인구편차 비율을 줄여서 참정권을 공평하게 조정하는 정치개혁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선거구 재획정을 통해 산업구조를 개편할 때에만 비로소 새로운 고용도 창출되고 국가경쟁력도 제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선거구에서 선출된 의원이 막강한 정치력을 행사하여 식량 무기화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국익에 상충되는 정책을 내세우고 지나친 농업보호정책을 유지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인구는 296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8%이며, 농업 부문의 생산액은 290억 달러로 전체 GDP의 2.6%에 불과하다. 그런데 인구비율 대비 과도하게 많은 농촌지역 국회의원들의 직간접적인 정책 간섭으로 식량가격을 국제시세의 2~3배나 비싸게 함으로써 95%의 비농업인구를 희생시키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안이한 농업보호보다 네덜란드식 첨단 농업으로 변화를
네덜란드는 육지면적이 3만4000km2로 우리나라의 1/3, 미국, 캐나다, 중국 등과 비교하면 1/300에 불과하지만 세계 2위의 농업수출국이 되었다. 캐나다, 브라질 등은 주곡 생산에 치중하는 조방식 농업으로 토지생산성이 낮지만, 네덜란드는 화훼, 과일, 채소 등을 집중육성함으로써 농업을 고부가가치의 기술집약적, 자본집약적 산업으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장미의 주 생산지는 케냐와 콜롬비아인데, 케냐에서 재배한 장미는 암스테르담의 화훼시장을 거쳐 유럽과 전 세계로 수출되고, 콜롬비아에서 재배한 장미는 북미지역으로 수출된다. 장미의 생산과 판매가 제3국에서 이루어지지만 그 주체는 네덜란드이다. 네덜란드는 화훼뿐만 아니라 채소와 과일 품목에서도 세계 3대 생산국이다. 양파는 최대 생산국이고, 토마토는 세계 2위의 생산국이다. 또한 세계 상위 40개 식품기업 중 4개가 네덜란드 기업이고, 12개 기업의 생산시설과 R&D시설이 네덜란드에 위치해 있다.
또한 종자산업의 강국으로 전 세계로부터 엄청난 로열티를 받고 있다. 현재 파프리카 종자 1g의 가격은 약 15만원, 토마토 종자는 약 18만원으로, 금 1g의 5만7000원보다 3배가량 비싸다. 이처럼 금보다 비싼 채소 종자를 네덜란드가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농업시장은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230억 달러에 달하는 종자시장의 2/3를 10대 종자회사들이 과점하고 있는데, 특히 3대 종자회사(Monsanto, Dupont, Syngenta)가 절반을 점유하고 있다. 그런데 BT의 발달에 따라 GMO시장이 급증하여 2015년까지 47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약과 종자 및 VT산업이 Monsanto를 비롯한 6대 회사의 지적재산권 상호 공유제(Cross-Licensing·둘 이상의 기업이 서로의 지적재산권을 사용할 것을 허용하는 제도)와 이익공유(Profit-Sharing) 협정에 의해서 실질적으로는 완전 독점화되었다.
이와 비교해 오늘날 우리나라의 농업은 공멸의 길을 걷고 있다. 농산물 가격이 국제시세의 2~3배에 달하기 때문에, 95%의 비농민들은 생계비의 부담으로 더욱 궁핍해지고 있으며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안이하게 농업시장을 보호할 것이 아니라 그 예산을 가지고 미래지향적 농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전략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95%의 도시민도 살리고 5%의 농민도 떳떳하게 국가경쟁력을 높여서 국가발전의 역군이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해결 방법은 선거구 再획정
2005년 10월 충남 부여군청 앞에서 농민단체 회원들이 국회 쌀협상 비준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
비생산적인 농업을 지탱하고 있는 막대한 보조금은 현재의 주곡 생산에서 기술·자본집약적인 화훼, 육종산업으로 전환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농산물시장을 개방하고, 농업을 구조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만이 농민들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오늘날과 같이 보조금만으로 비생산적인 농업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안일한 생각이다.
만약 네덜란드와 같이 화훼와 채소를 수출하고 육종산업 중심의 농업강국이 된다면 개별농가의 수익개선뿐만 아니라,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파프리카 생산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지만, 이제는 농업 부문의 주 수출품목이 되었다. 이처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품목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것만이 농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길이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