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영] 미스 코리아 살인사건 2.

게시글 본문내용
죽음의 왕관 2.
구수하고 진솔한 화법으로 10년째 사회를 진행하고 있는 김진건 아나운서가 결선 후보들과 인터뷰를 나누고 있었다.
"여러분, 4번 미스 서울 윤보혜입니다. 지금 기분이 어떻습니까?"
"행복하면서 떨리고 기쁘면서 두렵습니다."
윤보혜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로 대답하고 있었다.
"미스코리아 진으로 당선된다면 누가 제일 먼저 떠오를까요?"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서....... 아무래도 저를 이 자리에 나오게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강희 선생님이 제일 먼저 떠오를 거예요."
윤보혜의 음성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첫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네, 여중생이었을 땐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사회를 맡으신 김진건 아나운서님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뵙게 되었는데 그만 첫눈에 반해버리고 말았어요."
장내에서는 쑥스러워하는 김진건 아나운서의 모습에 웃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었다.
"아, 이런 세월이 우리를 갈라놓았군요. 어떤 남자하고 결혼했으면 좋겠습니까?"
"성실하고 저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남자라면 됩니다."
"이 다음엔 희망이 무엇입니까?"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김진건 아나운서는 관객에게 윤보혜를 향해 박수를 유도해준 다음 옆에 서 있는 후보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다섯 명의 후보와 일문일답을 더 나눈 뒤 27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27번 미스 경기 진 나비향입니다. 이름이 참 예쁜데 본명입니까?"
"네, 아버지가 지어주셨어요."
"장차 희망이 프로듀서라고 하셨는데 무슨 프로듀서를 원하십니까?"
"라디오 프로듀서요."
"어떻게 미스코리아에 나오게 됐습니까?"
"부모님의 격려와 제가 다니는 의상실 선생님께서 추천해 주셨습니다. 강희 선생님이라고."
나비향은 루즈를 칠한 입술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미소를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덥죠?"
"몸은 여름처럼 덥고 마음은 겨울처럼 떨리네요."
"미스코리아 진으로 당선되면 상금으로 제일 먼저 뭘 하겠습니까?"
"좋은 일에 쓸 생각입니다."
"좋은 일이라면?"
"가난한 사람을 돕고 싶습니다."
"대단히 아름다운 생각이십니다. 여러분, 나비향 양에게 격려의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김진건 아나운서는 나비향을 손바닥으로 가리키며 관객에게 박수를 청했다. 마지막 후보와 인터뷰를 끝마친 사회자는 중앙무대로 걸어와 입선자 명단이 들어있는 노란 봉투를 받아들였다.
"여러분, 열 다섯 명의 미녀들에게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여덟 명 안에 들어가면 미스코리아 타이틀을 갖게 됩니다. 자, 그럼...... 4번 미스 서울 윤보혜! ......27번 미스 경기 진 나비향! ......자, 이렇게 여덟 명이 최종 관문을 통과해서 미스코리아 타이틀을 갖게 되었습니다."
타이틀을 갖지 못한 7명의 탈락자들이 퇴장하자 조명 불빛이 약해지면서 무대 위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어둠 속의 계단 위에는 의자가 놓여지면서 시상식 준비가 진행되었다. 무대는 어느새 수많은 전구알로 이루어진 왕관 형태가 배경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년도 미스코리아 진인 성주라 양이 중앙문을 통해서 등장하고 있었다. 진선미를 남겨놓고 고별행진을 하는 미스코리아 진의 왕관은 1년 동안의 영화를 말해주는 듯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비록 미의 사절로 나가서 조국의 아름다움을 화려하게 빛내지는 못했지만 진으로서 그녀의 인생은 왕관빛 그 자체였다.
뭇 남성과 시샘 많은 여성들로부터 찬사와 부러움을 받으며 진으로 당선된지 3개월 만에 골든 타임의 주말쇼 MC로 발탁되어 자신이 꿈꾸어왔던 쇼MC의 자리에 올라섰고, 지금까지 그 명성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성주라 양이었다. 거기에다 CF 모델로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고, 한달 전에는 은막에도 데뷔하는 등 핑크빛 인생을 살아가는 전년도 미스코리아 진이었다.
미스코리아 진의 고별행진이 끝난 뒤 올해의 미스코리아 미가 발표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남은 후보는 윤보혜와 나비향이었다. 왕관을 쓴 미스코리아 미가 전년도 미스코리아 미와 사이좋게 꽃다발을 들고 여왕자리가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자 노련한 사회자는 두 미녀를 바라보면서 곧장 인터뷰에 들어갔다. 그는 윤보혜에게 먼저 질문을 꺼냈다.
"지금 기분은 어때요?"
"믿기지가 않아요. 본선무대에 오른 것만으로도 만족할려고 했는데......"
"앞에 누가 있는지 보입니까?"
"아무도 안 보여요. 저기 기자분들 모습밖에는요."
"제 얼굴은 똑바로 보입니까?"
"예나 지금이나 눈이 부셔서 잘 안 보여요."
윤보혜는 침착함을 되찾으려는 듯 사회자의 쑥스러워하는 얼굴을 보면서 잃어버린 미소를 되찾고 있었다. 장내에서는 또다시 폭소가 터져나왔다.
"윤보혜 양, 이번에 발표되는 것은 먼저 부르는 사람이 진이 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네......"
윤보혜는 흥분되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조명 불빛이 쏟아지는 허공을 잠시 응시하였다.
"윤보혜 양, 누가 미스코리아 진이 될 것 같습니까? 본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잘 모르겠어요......"
사회자는 윤보혜에게 대었던 마이크를 나비향에게 옮겼다
"떨리죠?"
"조금......"
"이런 것이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네? ......"
나비향은 약간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사회자를 바라보다가 이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나비향 양, 옆에 있는 윤보혜 양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윤보혜 양을 먼저 부른다면 기분이 어떻까요?"
"진심으로 축하해야죠."
사회자는 두 미녀 앞으로 나와서 핑크빛 봉투를 열었다.
"누구보다도 지금 이 두 분이 제일 궁금하겠죠.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 있어 사회자에게는 한 가지 특권이 있습니다. 이 봉투의 내용을 먼저 보고, 빨리 부를 수도 있고 늦게 부를 수도 있습니다. 자, 그럼 지금부터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누구 이름을 부르는지 두 분은 잘 들으세요."
장내는 갑자기 숨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발표를 예고하는 드럼소리가 장내를 더욱더 긴장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미스코리아 진! 4번 미스 서울 윤보혜!"
진으로 당선된 윤보혜는 믿기지 않는 듯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물 맺힌 눈동자를 어디에 둘지 몰라 헤매고 있었다.
"네, 여러분, 이렇게 해서 각 지역을 대표한 미녀들의 선발대회가 그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전년도 미스코리아 진인 성주라 양이 새롭게 탄생된 여왕에게 왕관을 머리 위에다 씌워주고 빰에다 살짝 키스를 해주고 물러나자 사회자가 신데렐라에게 다가갔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새처럼 날아갈 것 같아요."
"올해의 미스코리아 진인 윤보혜 양이 여러분 앞에서 축하행진을 벌이겠습니다."
경쾌한 연주곡이 울려퍼지는 것과 동시에 미스코리아 진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중앙무대에서 우로 다시 중앙에서 좌로 사뿐히 걸으면서 축하의 박수를 쳐주는 관객에게 손을 흔들며 윤보혜는 활짝 웃고 있었다. 미스코리아 진이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객석에서 의자에 그대로 앉은 채 지켜보던 박만하의 눈빛은 진 못지 않게 흥분돼 있었다. 진실을 확인해 보는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한번 본 사람 얼굴은 잘 잊어먹지 않는 자신의 눈을 확률 백퍼센트라는 듯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것은 미스코리아 대회가 아니고 쇼가 되어버렸다."
"이것으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겠습니다. 내년에 다시 뵙겠습니다."
사회자의 마이크 음성이 장내에 서서히 사라지면서 관객들도 하나둘씩 대회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새끼를 밴 암코양이의 울음소리가 용인 근방의 언덕 위에 위치한 이층 하얀 별장 뒤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하늘길을 따라가던 보름달이 지붕 위에서 나그네처럼 쉬고 있었다. 향원 동산내에 자리잡은 연성철 박사와 강희 여사의 주말 별장은 나무 울타리에 감싸인, 푸르른 잔디를 가진 하얀 집이었다. 집 뒤쪽에 있는 산의 경사를 이용한 설계가 돋보이는 모던 감각의 별장이었다. 넓은 안마당엔 파란 잔디가 탐스럽게 깔려 있었고, 돌을 쌓아 만든 낮은 담장과 담을 둘러 심은 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