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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을 하는 동안 작가님의 정서와 인성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상대에게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표현하시고, 진중하게 사색하며 자신을 단련하는 태도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욕망하는 삶에 연연하지 않고 품격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173쪽) 서도 (아버님께)
서도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자획(字劃)의 모양보다는 자구(字句)에 담긴 뜻이 좋아야 함은 물론 특히 그 ‘사람’이 훌륭해야 한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작품과 인간이 강하게 연대되고 있는 서도가, 단지 작품만으로 평가되는 인간 부재의 다른 분야보다 마음에 듭니다. 좋은 글씨를 남기기 위하여 결국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상식이 마음 흐뭇합니다.
194~5쪽) 떠남과 보냄 (계수님께)
빈약한 동거의 어느 어중간한 중도막에서, 바깥 사람이라면 별리(別離)의 정한(情恨)이 자리했을 빈터에, 나는 그에게 무엇이었던가? 우리는 서로 어떠한 ‘관계’를 뜨개질해왔던가? 하는 담담한 자성(自省)의 물음을 간추리게 됩니다. 슬픔에 커진 눈으로, 궁핍에 솟은 어깨로, 때로는 욕탕의 적나라함으로, 때로는 멀쩡하게 발톱 숨긴 저의(底意)로, 한 몸 인생이 무거워 짐 추스르며, 몸 부대끼며 살아온 이 팔레트 위의 우연 같은 혼거(混居)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과연 무엇이 되어서 헤어지는지…….
숱한 사연과 곡절로 점철된 내밀한 인생을 모른 채, 단 하나의 상처에만 렌지를 고정하여 줄곧 국부(局部)만을 확대하는 춘화적(春畵的) 발상이 어언(魚眼)처럼 우리를 왜곡하지만 수많은 봉별(逢別)을 담담히 겪어오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묵직한 체험을 함께 나누는 견실함을 신뢰하며, 우리 시대의 아픔을 일찍 깨닫게 해주는 지혜로운 곳에 사는 행복함을 감사하며, ‘세상의 슬픔에 자기의 슬픔 하나를 더 보태기’보다는 자기의 슬픔을 타인들의 수많은 비참함의 한 조각으로 생각하는 겸허함을 배우려 합니다.
다시 만나지 말자며 묵은 사람이 떠나고 나면 자기의 인생에서 파낸 한 덩이 체험을 등에 지고 새 사람이 문 열고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