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faith)도 회개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구속행위를 ‘인식’하고 ‘동의’하고 ‘순종’하는 세 가지 요소를 포함한다. 특히 신앙의 마지막 요소로 순종이 언급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순종이 뒤따르지 않는 신앙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신약성경의 믿음은 “‘노티티아’(지식) 또는 ‘아센수스’(동의)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구원하는 믿음은 헌신을 포함한다”는 진술은 신앙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예컨대, 안락의자가 나를 편안하게 해줄 것을 믿는다는 말은 지친 내 몸을 안락의자에 맡길 수 있을 때 성립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므로 신앙은 행동하는 믿음이어야 한다(약 2:17-18). “믿는다”(believe)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주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뜻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마 25장).
또한 신앙은 구원의 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수단이기도 하다. 인간은 신앙의 공로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며 신앙에 의해서 구원 받는 것도 아니다. 신앙을 ‘통하여’ 구원을 받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by) 신앙을 통하여(through) 이루어진다는 것이다(엡 2:8). 이는 구원의 주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원의 기초는 인간의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속죄 행위에 있다. 그래서 이 신앙은 결코 어떤 합리적 증거에 근거하지 않는다. 합리적 증거는 지식일 뿐이지만 신앙은 때로 초자연적이고 초합리적 사건을 포함한다. 거룩함을 경험하는 것처럼, 신앙은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하여 회심한다는 것은 회개하는 요소와 믿는 요소가 지, 정, 의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구원의 주로 인정하지 않고 살았던 삶을 회개하고, 구원의 기쁜 소식(복음)을 신뢰하여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회심이다.
[회중주제적 조직신학], 44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