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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에 관한 수많은 국내외 자료가 소장돼있는 그만의 비밀장소. 옥상엔 위성방송 수신용 파라보라 안테나가 여러 개 세워져 있다.(김종수 기자)
약속 장소인 대학로 커피전문점에 들어서는 김승현(29)씨를 나는 첫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그의 평소 머리 모습은 ‘하늘의 정기를 받기 위해’ 머리카락이 모두 하늘로 곤두선 ‘피구왕 통키’거나 <드래곤 볼>의 ‘손오공’ 모양이었는데, 마치 60년대 미국의 로큰롤 가수처럼 잘 빗어서 뒤로 넘긴 ‘올백’을 하고 나타난 것이 아닌가. 영화 <두사부일체>의 조폭 정준호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최대한 공손하게 바꿨던 머리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김승현씨는 그 이유를 “<한겨레>라는 매체가 갖는 성격 때문에”라고 설명했다. 주변의 사람들이 “<한겨레>에서 어떻게 너 같은 사람을 인터뷰한다고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모두 한마디씩 했다는 것이다.
중학생 비밀결사, 리틀 아티스트
김승현씨의 어린 시절은, 대형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던 그의 번역서 <오타쿠>에 그가 직접 쓴 ‘옮긴이의 말’에서 엿볼 수 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친구들이 하나둘 ‘마이클 잭슨’과 ‘듀란 듀란’을 따라서 떠나가기 시작했고, 그들과 떨어져 홀로 남겨진 나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는 이 나라의 현실과 부대끼며 힘겨운 날들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학교마다 단지 자신들의 취미가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급기야 그들을 모아 ‘비밀결사’를 조직하기에 이르렀다. 너무나도 척박한 이 나라의 현실을 우리의 힘을 모아 바꿔보자는, 지금 생각하면 다소 황당하기까지 한 어린 시절의 치기였지만…. ‘국내 최연소 애니메이션중학생연합서클-Little Artist.’ 그것은 애니메이션을 향한 나의 최초의 구체적 행보였다.” 그러한 경험은 그에게 “애니메이션은 그것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들어야 한다!”는 교훈을 심어주었고 아직까지도 그를 지켜주는 신앙이다.
김승현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세운상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만화책을 사모았고 그 만화책들을 아직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우리나라 만화책의 정가를 1천원으로 올린 계기가 된 ‘미니컬러대백과’의 제1권 <로봇대백과>를 그는 책장에서 아주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꺼내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굳이 ‘오프 더 레코드’를 약속하지 않았으니, 솔직히 다 얘기하자. 김승현은 우리나라 오토바이 폭주족 1세대였다. 중학교 시절 동네 슈퍼마켓의 형이 배달용 오토바이로 ‘외발 달리기’를 하는 것을 보고 “우와” 탄성을 지른 뒤, 아는 형들의 오토바이를 빌려 타는 법을 익혔다. 집에는 갖고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산 자신의 오토바이가 고등학교 때 이미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대학로를 돌아다녔는데, 어느날 갑자기 사회적 문제가 되더니 TV 등에서 집중타를 맞고 있더란다.
폭주족, 그리고 딴따라의 경험
고등학교 시절 경험했던 ‘종합예술’의 꿈이 대학에서는 그룹사운드로 피어나기도 했다. 자신이 직접 조직한 팀에서 드럼을 쳤다. ‘폭주족’과 ‘딴따라’를 거치는 동안 애니메이션에 관한 그의 관심이 엷어졌다고 자칫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절대로 아니다. 애니메이션에 미쳐 사는 것 외에도 그런 잡다한 경험들이 어린 날의 김승현에게 있었다는 뜻이다.
일찍이 대학 2학년 때 애니메이션 기획회사에 연출부 조감독으로 취업했다. “어릴 적부터 애니메이션에 미쳐 살았다”는 것이 특채로 취업할 수 있는 그의 자격이었다. <전사 라이안>이 그가 이름을 걸고 참여했던 최초의 애니메이션 기획이었지만, 말할 수 없는 사정으로 ‘스탭 롤’에 이름이 올라가지는 못했다.
청소년들이 애독하는 애니메이션 월간잡지 한국판 <뉴타입>의 기자라는 것이 현재 김승현씨가 가진 공식 직함이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나이, 고향, 부모님 인적사항 등을 묻는 상투적인 질문을 몇개 하자 김승현씨는 “이거 본래 내가 매일 다니면서 하는 일인데…”라고 계면쩍어했다.
인터뷰는 그가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 비밀스러운 장소에서 이루어졌는데, 그곳에 대한 설명을 마음껏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옥상에 위성수신용 파라보라 안테나가 여러 개 세워져 있고, 각종 전자장비를 작동시키는 리모컨이 테이블 위에 가득했으며, 애니메이션에 관한 수많은 국내외 자료가 소장된 곳이었다는 것만으로 그 장소에 대한 설명을 대신한다. 사진을 찍으면서도 매우 조심스러웠다.
그는 요즘 대학 사회교육원에서 애니메이션 개론 강의도 한다. 그가 <뉴타입>에 연재하고 있는 기획기사 “너희가 애니메이션을 아느냐?!”를 통해 김승현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어느 순간부터인가 우리 곁에서 우리를 위로해주고 우리와 함께 작게는 한반도와 지구의 평화를, 넓게는 전 우주의 질서를 지켜왔던 우리의 영웅들은 하나둘 우리의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있던 자리에는 머리가 노랗고 코가 큰 서구형의 ‘히어로’들이 대신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났던 영웅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그때 어린이였던 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성장기의 어린이들은 우리를 지켜주고 우주의 질서를 세우는 것은 당연히 노랑머리에 코가 큰 8등신의 근육질 히어로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체 누가 우리의 영웅들을 이렇게 만들어버렸단 말인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며 살았다”
이어지는 그의 쾌도난마 앞에는 창작자, 제작사, 정부, 방송사, 관객의 무사안일, 나태, 모방, 부조화, 줄다리기, 외면 등이 도저히 비켜갈 자리가 없다. 어린 시절의 영웅들을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오게 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원대한 꿈을 김승현씨는 갖고 있는데,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그 계획들을 들으면서 나는 “그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을 죽기 전에 보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했다. 명문대학의 ‘초엘리트 코스’를 통과한 부모형제 사이에서 성장한 자신의 과거를 김승현씨는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며 살았다”고 표현했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음지’에서 ‘폭주족’과 ‘딴따라’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성장한 사람이 자기가 사랑하는 일을 마음껏 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김승현은 자신을 “음지에서 자란다”고 생각하는 우리 사회 많은 청소년들의 희망이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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