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투계
나의 취미는 조금 엉뚱한 것이 많다. 엉뚱하기 보다는 다양하다고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관심은 많으나 깊게는 천착하지 못한다. 쉽게 싫증내고 또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변함없이 나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취미는 아마도 여러 가지 운동을 하는 것이나 운동 관람일 것이다. 특별히 프로야구 ‘현대유니콘스’ 팀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폐인 정도는 안 되어도 각 지방으로 도시락 싸가지고 응원 다니는 정도는 된다.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릴 적의 취미이자 한동안 깊게 빠졌던 한 추억에 관한 것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경북 예천에 있는 외갓집에서 6년을 다녔다. 조그만 시계점을 하는 삼촌의 가게에서 점원들과 숙식하며 함께 생활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점원보다 먼저 반지(?)라고 그 당시 우리가 부른, 아마 일본식 말로 양철로 된 칸막이용 셔터인데 그것을 일일이 걷어낸 다음 한 200여개 되는 시계를 일일이 정성스럽게 잘 닦아서 진열장에 내놓는다. 그런 다음 그 당시로는 최신의 LP판을 꺼내어 바깥으로 소리가 나가게 해놓은 홍보용 대형스피커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 주로 영화 ‘콰이강의 다리’나 '의사 지바고'의 주제곡을 들은 것으로 생각난다.
그 다음이 문제이다. 삼촌은 조금 별나고 성격이 못된 사람이다. 어릴 적에 시골 사람으로 돈을 번다고 청량리에 무조건 상경하였을 때 골목의 건달들과 구두닦이들에게 많이 맞았다고 한다. 하도 맞아서 그 복수로 복싱을 배워 곧 그 구역을 평정한 중간주먹쯤 된다. 강팍한 편이어서 닭을 잡을 때도 그냥 잡지 않고 맨손으로 모가지를 ‘쑥’ 뽑아 죽이는 사람이다. 그런 삼촌이 보기에 나는 열심은 있으나 순종적이고 유약하였나 보다. 남자는 적어도 맞지는 말아야 한다는 삼촌의 지론에 따라 좁은 외가의 마당을 시계방향으로 돌며 왼손 스트레이트를 쭉쭉 뻗는 복싱 연습을 한 힘든 기억이 난다.
무서운 삼촌의 입회하에 팔이 얼얼할 정도가 되면 곧 이어 호출령이 따른다. 즉 삼촌을 따라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 갑자기 왠 개구리인가? 잠시만 기다려주기를 바란다. 일단 개구리를 잡기 위한 장비를 갖춘다. 장비는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개구리 채를 만들어야 한다. 개구리 채는 말이 채이지 실은 살인(?)적인 무기이다. 긴 막대 끝에 손바닥크기의 판때기를 붙인다. 문제는 그 판때기이다. 판때기에는 날카로운 못을 완전히 반대편으로 나오게끔 슝슝슝 박는다. 완성된 모양은 마치 수행하는 요기들의 바늘판 같다. 그것으로 개구리를 ‘탁’ 하고 찍어 잡는 것이다. 그 효용이 아주 뛰어나다.
다음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은 이른 아침이니까 흥건히 젖어오는 이슬을 막기 위한 장화와 장갑 등이다. 이렇게 완전무장을 한 다음 개구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강둑을 오른다. 이리 저리 막대로 풀 섶을 헤치면 이른 아침의 급습자에 놀라 황급히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는 개구리들이 보인다. 보이는 족족 긴 막대는 사정없이 개구리들을 덮치고 순식간에 수많은 개구리들은 날카로운 쇠 꼬챙이에 찔려 처참한 모습으로 비닐주머니 속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잡은 개구리들은 어떻게 될까? 여러분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개구리를 잡은 목적을 생각하여야 한다.
혹시 ‘투계’에 대하여 아시는지 궁금하다. 투계는 글자 그대로 싸움닭을 말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예천을 중심으로 한 경북 북부지방에는 싸움닭 내기가 유행이었다. 그래서 삼촌처럼 투계를 좋아한 사람은 애지중지 훈련시킨 싸움닭을 데리고 오토바이를 타고 이 지방, 저 지방을 다니면서 내기를 한다. 이러한 내기가 금액이 커지면 도박의 성격을 띠게 된다.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전문 싸움닭을 길러야 한다. 일반적으로 투계에 나서는 닭은 샴, 또는 샤무라고 불리는 닭이거나 ‘한두’라고 불리는 외국산 닭이다. 주로 태국산 닭이라고 기억된다. 샴이나 한두는 표준어가 아닌 것으로 안다.
하여튼 아무리 덩치가 크고 화려해도 우리 전통의 수탉은 안 된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처음 초반은 우리의 조선 닭은 기세 흉흉하고 힘차다. 한 5분 가량은 전문투계를 향해 힘차게 공격한다. 그러나 초반 반짝인가? 아니면 촌놈이 마라톤하는 건가? 한 5분후에는 힘이 빠져 그대로 나가떨어진다. 화려한 깃털은 사정없이 빠지고 다리는 후들거려 상대의 날카로운 발길질에 내동댕이쳐진다.
이처럼 닭들이 서로 싸울 때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일단 상대방 보다 목이 길어야 한다. 왜냐 하면 처음에는 서로 푸드득 푸드득 날면서 양발로 상대를 걷어차며 싸움을 하나 잠시 후에는 서로가 지쳐서 목을 서로 기댄 채 상대방의 머리를 쪼기 시작하는 싸움 형태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목이 길면, 아니 상대방보다 키가 크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전문 투계꾼들은 닭의 모가지를 길게 늘이는 훈련을 한다. 훈련은 다름 아니라 아까 잡은 개구리를 먹이로 줄 때 겨우 먹을 정도로 높게 주는 것이다. 부리에 닿을락말락할 정도로 손바닥에 개구리를 올려 놓으면 싸움닭들은 그것을 먹고자 힘껏 목을 늘이거나 발돋움한다. 이렇게 매일매일 개구리를 먹거리로 주면 닭의 모가지는 조금씩 길어져서 싸움을 할 때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드디어 결전의 날은 왔다.
싸우기 바로 직전에는 절대로 먹이를 주어서는 안 된다. 과식을 하면 몸이 무거울뿐 아니라 잘못해서 상대방 닭의 발에 채일 경우 모이주머니가 찢어지기 때문이다. 언젠가 본 광경에는 주인이 잘 싸우라고 준 쌀을 가득 먹은 닭이 한 참 싸우다보니 자기의 찢어진 위로 쌀이 솔솔 새어 나오는 데도 죽으라고 싸우는 것이다. 아마 주인이 아마추어 투계인이었나 보다. 이러한 아마추어에 비해 전문가가 먹이는 것이 따로 있다. 조금 무식하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바로 고추장이다. 시뻘건 매운 고추장을 억지로 한두 숟가락 퍼 먹이면 싸움닭은 맵고 뜨거워서 더욱더 호전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이니 과학적 근거는 없다.
하여튼 전투는 시작된다. 처음 몇 초 동안은 서로 탐색전을 벌이다 다음부터는 사정없이 격렬하게 맞붙는다. 보통 실력이 비슷하면 서로 기진맥진할 때 까지 싸우나 실력 차이가 있으면 3-4분 안에 승부는 결정 난다. 사람과 달리 승자는 도망가는 패자에게 관대하다. 몇 번 쫓는 시늉을 하다가 승리의 날개 짓과 환호의 목청으로 자신의 승리를 사방에 알린다.
승부에 따라 주인들의 애환도 교차된다. 승자는 자기 닭을 얼싸안고 기뻐 어쩔 줄 모른다. 주위에 쌓이는 돈은 어떻게 보면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새로운 닭을 훈련시켜, 혹은 사와서 오랜 라이벌의 닭을 이겼을 때는 엄청나게 기분이 좋다. 그 당시 사람도 먹기 힘든 귀한 소고기를 사서는 먹기 좋으라고 얇게 다져서 참기름을 발라 먹인다. 그러나 진 경우는 어떠한가? 대개는 상처투성이의 닭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거나 없애버린다. 혹 재기의 가능성이 있으면 그 나마 다행이다. 언젠가 오래된 싸움닭을 잡아먹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평생을 전투로 단련한 몸인가? 얼마나 질긴지 결국 못 먹고 버렸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거의 가죽을 씹는 기분이었다. 아마 요즈음 나오는 압력솥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삼촌은 열심히 따라 다니며 궂은일을 마다 않은 내가 기특했나 보다. 어느 날 눈여겨 본 ‘한두’중에 좋은 중간크기의 닭을 한 마리 나에게 주었다. 그날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날 이후 나는 너무 좋아서 매일 맛있는 것, 주로 쌀을 주고 쓰다듬고 하며 애지중지하였다. 싸움을 잘하라고 ‘엄발’이라고 부르는 새끼 발톱도 날카롭게 줄로 밀어서 깎아주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본격적으로 투계세계로 나가기 전에 그 전초전으로 우리가 흔히 장닭이라고 부르는 조선 닭과 한번 겨루게 되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번 붙자마자 채 3합도 안되어 나의 닭이 길게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싸움닭으로는 가장 치욕으로 생각하는 조선 닭에 패해서 말이다. 집에 돌아온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그 자리에서 닭을 패대기 쳐 버렸다. 나중에 삼촌말로는 패배의 원인은 바로 나에게 있다고 하였다. 즉 닭을 너무 귀하게 키워서 끊임없이 쓰다듬고 챙겨주면 닭이 가져야 할 호전성과 야성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즉 ‘사람 손을 너무 많이 타면’ 절대로 싸움닭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날의 교훈은 나에게 두고두고 명심이 되었다. 나의 본성에 내재되어 있는 잔인함과 호승심에 스스로 경각심을 갖게 되었고 사랑하는 것과 강하게 단련하고 훈련하는 것은 별개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하여튼 나의 투계에 대한 열정과 몰입은 대학 진학과 더불어 자연히 사라져갔다.
몇 년 전 이었다. 어느 날 양재 지하철역 지하도를 나와 얼마 안 되었는데 왠 시골 할아버지가 조그만 새장에 닭을 팔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 서울 근교의 시골에서 용돈이나 벌자고 팔러 나왔나 보다. 그런데 그 닭이 눈에 많이 익숙하였다. 바로 긴 목과 호전적인 눈매를 자랑하는 싸움닭 ‘한두’였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투계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짐작대로 할아버지는 그냥 우연히 키운 투계를 팔러온 촌노였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나는 사라져가는 전통을 상징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싶었다. 그렇다. 앞으로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은 하나둘씩 추억으로 혹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소리 없이 사라져갈 것이다. 어릴 적에 키운, 그리고 죽여 버린 투계에 대한 기억은 나의 생에 한 토양을 이룬 투박하나 여진 있는 추억으로 길게 남을 것이다(2004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