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동 시인의 시 읽기
거미줄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법문
❙이혜선 시집 『불로 끄다, 물에 타오르다』 (문예바다)
-「거미줄 법문」을 읽고_
‘거미줄 하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법문이었다’
거미줄 하나가 법문이다. 여기에 불경도, 경전도, 설법도 필요 없다. 시인은 “다보사 큰 법당에 가부좌하고 앉으니 / 머릿속에 매미소리 / 탱탱한 줄 하나 매어 놓는다”며 시를 시작한다. 염불 소리 대신 들려오는 매미 울음은 단순한 자연의 배경음이 아니다. 그것은 수행자의 귀에 들리는, 자연이 건네는 진리의 울림이다. 시인은 그 울림을 거미줄처럼 마음속에 팽팽하게 한 줄 매어 건다. 그것은 명상의 시작이자 깨달음의 통로다.
거미줄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철저한 질서를 따른다. 먹이를 붙잡는 끈끈한 줄과 거미 자신이 다니는 맨줄은 구분되어 있다. 마치 삶 속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를 분별하는 태도와도 같다. 시인은 자연을 관찰하며 인간 존재의 망을 떠올리고, 이렇게 표현한다.
“연이어 가로세로 / 얽히고설킨 거미줄 소리소리”
단순히 거미줄이 얽힌 모양이 아니라, 그 얽힘을 따라 연이어 직조된 인연의 질서를 말한다. ‘소리소리’는 삶의 떨림, 진동, 마음이 들리는 감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처럼 얽힌 관계들 속에서 매미는 허물을 벗고, 시인은 의식을 벗는다.
“순식간에 빈 머릿속 / 매미허물로 가득 찬다”는 구절은 특히 인상 깊다. 허물은 과거의 자아이며, 버려야 할 껍질이다. 그런데 시인은 ‘빈 머릿속’에 ‘허물로 가득 찼다’고 말한다. 이 역설은 바로, 비어 있기에 충만한 불교의 ‘공(空)’ 사상을 드러낸다. 수행은 그 허물을 찬찬히 바라보는 일이다.
시간은 흐른다.
“꿈틀대는 초침 속 결가부좌하고 / 꽉 끼는 옷을 벗는다”
‘초침’은 번민의 시간이다. 그 흐름 속에서 시인은 자세를 단단히 가다듬는다. 그리고 “몸부림 옷부림친다 / 팔만 사천 땅속 시침 분침이 흔들린다 조여든다”는 구절에서는, 수많은 경전 속에 파묻힌 듯한 정신의 조임이 그려진다. 그 흔들림은 괴로움이 아니라, 깨어남 직전의 진동이다.
이윽고 시인은 거미줄 안으로 들어간다.
“조여오는 거미줄 속에 앉아 / 벗어버린 옷, 텅 빈 안쪽을 찬찬히 들 여다본다”
이 장면은 이 시의 핵심이다. ‘벗어버린 옷’은 이름, 역할, 감정이다. ‘텅 빈 안쪽’은 자아를 벗겨낸 뒤 도달하는 무심(無心)의 공간이며, 불성(佛性)이 깃든 자리다. 찬찬히 들여다본다는 행위는 관조요, 수행자의 가장 깊은 시선이다.
그리고 마침내, 내려놓는다.
“이판사판 / 탱탱한 어둠 밧줄 한쪽 끝을 확 놓아버린다 / 환한 허공 이다”
‘이판사판’이라는 체념의 말이, 여기서는 초탈의 언어가 된다. 끝까지 조이던 줄 하나를 놓는 순간, 세계는 열리고 빛이 스며든다. ‘환한 허공’은 진리의 자리이자 자유의 공간이며, 다시 살아가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이 시는 교리로 설명되는 불법이 아니다. 자연의 사물, 한 줄기 거미줄에 의지해 자신의 삶을 관조한 시인의 고요한 수행이다. 거미줄 위에서 허물을 벗고 날아가는 매미처럼, 우리도 이 얽힘을 벗어나 환한 허공으로 향해야 한다.
거미줄 하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법문이었다.
다보사 큰 법당에 가부좌하고 앉으니
머릿속에 매미소리
탱탱한 줄 하나 매어 놓는다
연이어 가로세로
얽히고설킨 거미줄 소리소리
순식간에 빈 머릿속
매미허물로 가득 찬다
꿈틀대는 초침 속 결가부좌하고
꽉 끼는 옷을 벗는다
몸부림 옷부림친다
팔만 사천 땅속 시침 분침이 흔들린다 조여든다
조여오는 거미줄 속에 앉아
벗어버린 옷, 텅 빈 안쪽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이판사판
탱탱한 어둠 밧줄 한 쪽 끝을
확 놓아버리니 거미줄 밖이다.
- 「거미줄 법문」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