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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4장> 34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35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디모데전서 2장> 11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12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
<개 취급 받는 가나안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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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장>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 26 ...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
가나안 여자 이야기에는 두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첫번째는 예수가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지지 않는다는 것을 통해 가나안 여자가 개와 같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여자를 개 취급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분명한 실제 상황이기 때문에 예수가 가나안 여자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으며 나아가 여자들과 창기들을 어떻게 생각 했을지 충분히 짐작 됩니다. 따라서 여자들에게 교회에서 입을 닥치라는 설교가 사도들만의 생각이 아니며 예수의 성품과 그 한계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가 한국의 여자를 어떻게 생각 할까요? 짐작 할 수 있을까요?
두번째로 대다수 설교의 핵심은 마지막에 있는데 역시나 위의 28절을 보면 가나안 여자의 의미를 예수는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너의 믿음이 크다는 것 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믿음이 크다는 것인지 아시겠습니까? 저 여자가 믿음이 큰 이유는 여자 스스로 자신을 개와 같이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말하기를 '너는 개와 다를바 없으니 꺼져'라고 말하자 여자가 말하기를 '저는 개 같은 짐승에 불과하오니 제발 부스러기라도 주세요.'라며 예수의 말에 동조하며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그의 발에 입을 맞추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예수교도들은 예수의 종(제자)이 아니라면 예수 앞에서 엎드려 개같은 취급을 받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예수의 종은 사도와 세리로 유대인들로 부터 돈을 걷어 들이던 사람들이기에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로 부터 돈을 걷는 사람들이어야만 예수 곁에 있을 수 있는 것 입니다. 이는 목사들은 예수와 서 있을 수 있지만 목사 앞에 있는 신도들은 예수와 목사 앞에 엎드려 있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감히 예수교도들이 목사와 같이 예수 곁에 서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생각임을 알려 드리고 신약을 다시 읽어 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많은 현대의 예수교도들은 '그럴수 있지. 예수는 사탄의 신인데 엎드려 예수의 발에 입을 못 맞춰?'라며 사탄의 성령을 지닌 예수를 두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하죠? 예수와 함께 있었던 모든 여자들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려 있는 모습 뿐입니다. 심지어 갈릴리에서 따라온 여자들 모두가 예수의 발아래 업드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가나안 여자의 모습은 권력자의 앞에서 딸을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어머니의 눈물어린 모습을 못 보는 것입니다. 예수가 저 가나안 여자를 도와주기는 하였지만 저 여자가 자존심을 내세웠다면 예수는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예수교도들은 이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 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는 그런 인간이였습니다. 자신에게 머리를 조아리지 않으면 결단코 도와 주지 않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깊이 생각하면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던 가나안 여인들의 삶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로마병사들과 세리들과 권세가들로 부터 개와 같은 취급을 받았고 그들 앞에서 항상 엎드려 있었습니다. 로마병사들과 세리들이 여자들의 속옷을 빼앗고자 하면 겉옷을 빼앗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사랑을 이야기 할 자격이 없으며 사람이 아닙니다. 도대체 예수교도들을 어떻게 불려야 제대로 표현하는 것 일까요?
이제 자유하는 여자에 대한 아래의 성경 구절을 보겠습니다. 물론 로마서 7장이 유대인의 율법을 희롱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율법에 대한 비유라고 예수교도들은 변명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하는 여자에 대한 설명은 많이 있으니 이 변명은 통하지 않음을 먼저 알려 드립니다. 먼저 비유를 설명하자면 남편은 율법이고 여자는 사람으로 율법이 사라지면 비로서 법이 사라지니 구속이 없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율법의 무용론을 펼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로마와 헤롯의 법은 무조건 따랐습니다. 이는 다른 장에서 설명 합니다.
그리고 이 비유는 대부분 당시에 이루어 졌던 일 이거나 예수와 사도들이 원하는 바이거나 적어도 이 비유를 듣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으로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래의 비유는 자유하는 여자에 대한 설명입니다. 자유하는 여자의 이야기는 여자가 남편을 떠나 자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남편이 죽지 않고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칭하게 되지만 남편이 죽고 나서는 다른 남자에게 가도 상관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분명히 밝히지만 재혼은 예수도 간음이라 했습니다. 물론 예수와 사도들에게 재혼이 간음이지만 죄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와 사도들은 죄가 아니지만 재혼하지 말라하였습니다. 이는 자유하는 여자들을 만들기 위한 설교였던 것 입니다.
<자유하는 여자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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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7장>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
먼저 로마서 7장 2절에서 여자가 혼인을 하면 남편에게 매이게 된다고 합니다. 이는 유대인의 율법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예수교도들의 행동강령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여자들의 권리를 위에서 보았습니다. 다만 여자들이 자유하고자 하면 남편이 죽어야 한다는 것 입니다. 로마서 7장에서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이 혼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혼인은 다시 율법속에 갇히는 것이며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기 때문에 자유가 아닌 구속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사도 바울은 처녀들 조차도 혼인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 했습니다. 따라서 혼인없이 다른 남자에게 가도 된다는 것은 분명한 성에 대한 해방을 의미합니다.
예수교가 일제시대 때 한국에 들어와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습니다. 그 때 자유여자 혹은 자유부인이라는 말이 알려지기 시작 했습니다. 한국이 성에 대해서 타락(?)하게 된 이유가 바로 예수교도들 때문이며 그들은 여자들에게 성에 대한 자유를 외치며 그들로 부터 많은 호응을 받았지만 여자가 성에 대해 자유로워 질 때에 가장 득을 보는 사람은 오히려 예수교도들의 남자였고 그들은 여자를 책임질 필요가 없었졌던 것 입니다.
예수교도들은 말 합니다. '우리는 너희 유대인과 혼인 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너희는 성에 대해서 자유롭다'며 그들을 가지고 놀았던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갈릴리는 이방인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었으니 그곳은 이방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피지배자들의 여자들에게 함부로 안고 입맞춤을 하였으니 그 핑계가 예수교의 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문화는 급속히 퍼져 로마인들 끼리도 서로 안고 입맞춤을 하게 되었고 현대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살인하는 결투가 정당화 된 것도 예수교도들 때문이며 살인한 자를 위해 혹은 살인한 자를 비난 할 수 없어 죽어간 가족들에게 눈물을 보일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현대 유럽의 문화가 사악한 예수 때문이였습니다.
이제 혼인하지 않은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가도 그것이 죄가 되지 않는 명확한 예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 성경 구절을 보면 창기와 하나 되는 것이 예수와 하나의 육체가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의 정확한 뜻이 무엇입니까? 성인 사람이라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물론 어떤 예수교도들은 예수의 말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말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이는 역으로 사도바울의 더려움을 예수교도들이 주장하는 것이 되며 예수교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성경을 부정하게 되는 것 입니다. 예수와 사도들은 창기와 가까이 해도 문제가 없었으니 이들이 간음이라고 주장한 것은 혼인과 재혼이였고 혼일과 재혼을 해도 죽을 일은 아니였습니다. 따라서 예수와 사도들에게 간음이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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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6장>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
고린도전서 6장 15절의 이야기를 쉽게 설명하면 이것 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너희의 몸이 그리스도의 몸이다. 너희 몸을 창기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절대 그런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 입니다. 위의 성경 구절과 제가 쓴 글은 같은 글 입니다. 사도바울이 왜 저렇게 말을 했을까요? 고린도의 예수교도들은 창기와 잠을 자면 창기와 같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던 것 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무슨 소리냐? 너희를 창기의 몸으로 만들겠는냐? 아니다 너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들려는 것이다'고 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에 멈추지 않고 이해 못하는 사람이 있을것 같아서 16절에서 다시 한번 주장 합니다. '창기와 하나 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라.'고 말을 합니다. 전 정말 쉽게 풀어 써 드렸지만 제가 풀어서 쓴 것과 위의 성경 구절은 같은 것 입니다. 사도바울에게 창기와 하나 되는 것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것이였습니다. 그것이 사탄이 되는 필수 코스였던 것 입니다.
현대의 예수교도들이 아무리 많은 핑계를 대어도 2000년전의 유대민족이나 현대의 한국인이라면 결단코 이해 할 수 도 없고 상상 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버젓이 성경에 올려 놓았으니 창기와 하나 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전혀 없었으며 심지어 창기와 하나 되는 것이 예수와 하나 되는 것과 같다는 내용을 적었습니다. 이는 당시의 예수교도들의 사고방식과 예수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타락한 로마의 시대상을 우리는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교도들은 해명하려고 노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럴수록 예수교도들의 추악함과 잔인함만이 만천하에 알리는 것 입니다. 그리고 예수교도들은 창기와 창기장사 하는 사람들을 욕해서도 안되며 오히려 창기와 하나 될 것을 남편과 아빠 그리고 아들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예수교도님들 억울 하십니까? 이것은 시작에 불과 합니다.
위 내용은 사도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예수교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이며 편지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볼것을 두려워하여 저렇게 젊잖게 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린도의 예수교도들은 창기와 하나 되는 것을 납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직접적으로 명령했던 것이고 사도바울의 힘은 로마황실의 힘과 같기 때문에 그들은 죽지 않기 위해 따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도바울과 로마황실의 관계는 제1장에서 설명했습니다.
이제 정리해 보면 혼인하지 않거나 과부였던 여자는 혼인없이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으로 율법을 따르지 않으며 천국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자유하는 여자가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들에게는 창기와 하나 되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와 사도들은 창기와 하나 된 적이 없었을까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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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1장> 31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
이제 예수가 말하는 세리들과 창기들이 천국에서 무엇을 하는지 명확해 졌습니다. 이를 위해 세리들과 사도들은 더욱 더 예수를 따랐던 것이며 결국 창기들은 세리들에게 주는 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세리들이 죄가 없는 것과 같이 창기들도 죄가 없었던 것이며 창기들이 불쌍해서 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가지고 놀기 위해 죄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예수가 창기와 하나되었다는 증거가 아니며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라며 이 이야기는 제10장까지 이어져 있으니 제10장도 꼭 읽으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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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5장>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
위 예수의 설교는 아버지의 재물을 가지고 창기와 함께 놀며 써 버린 아들에 대해서 기쁘게 받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가 아버지의 재물을 써버린 설교를 좋아 할리가 없습니다. 다만 그 재물을 가지고 창기와 놀았기 때문에 예수가 좋아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재물을 탐하는 예수와 천국의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위의 교훈은 창기와 놀아도 언제든지 받아 줄 수 있다는 의미이며 창기와 노는 간음이 벌 받을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 창기와 놀 때 아버지의 돈으로 놀아도 그것은 죄가 아니니 용서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창기장사를 광고하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창기와 놀지 말라고 교육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고 할 수 밖에 없는 것 입니다. 이는 누가복음 11장 13절의 내용과 다를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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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왜 창기와 노는 것이 죄가 아닐까요? 창기와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은 유대인의 율법이고 이를 따르는 것은 구속이기 때문에 자유를 위해서는 율법이 죽어야 했습니다. 예수는 그러한 율법 중에서 창기와 노는 것이 죄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래요. 창기를 좋아 할 수 있고 구속에서 벗어나는 생각은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가 말한 창기는 여자들이 팔려 창기가 되었음을 잊으시면 안됩니다.
여기에서 '죄 없는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는 유명한 이야기를 설명 합니다. 예수는 마음으로도 간음하면 그 손과 눈을 떼어내라는 자신의 말을 어겼습니다. 왜 일까요? 이미 보았듯이 예수교도들에게 창기와 하나되는 간음이 죄가 아니였기 때문이고 오히려 권장해야 할 일이였습니다. 이는 창기가 불쌍해서 혹은 창기를 위해서 한 말이 아닙니다. 예수와 사도들 그리고 세리들을 위해서 한 말 입니다. 왜냐하면 예수와 사도들에게 여자는 이들에게 수종드는 도구에 불과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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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7 ...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 여자만 남았더라 |
따라서 예수가 마음으로도 음욕을 품은 것이 간음이라던 예수의 말은 반어법으로서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희롱하며 비웃는 것임이 분명해 집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도 우리는 두가지를 알 수 있으니 첫번째 바리새인들은 간음을 분명하게 반대했다는 것이고 따라서 그들이 음란하다고 했던 예수의 말은 거짓으로 그들이 혼인하고 재혼했기 때문에 음란하다고 이야기 한 것에 불과 했습니다. 다시말해서 너희도 혼인하고 재혼하면서 그 짓을 하지 않느냐라고 했던 것 입니다. 단순히 그것이 간음이기에 간음은 죄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위의 설교는 앞과 뒤가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소하려고 간음한 여자를 데리고 갔는데 '죄 없는자가 돌로 쳐라'라는 말 한마디에 그냥 물러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잡으려 할 때에 무리들을 무서워 하여 예수를 선지자로 알아서 못 잡았다는 핑계의 글과 같습니다. 이 설교는 단지 간음이 죄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며 바리새인들도 먼가 구린 구석이 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생각하게 만들어 바리새인들을 부끄럽게 하여 그들의 단결을 없애고자 한 것에 불과 합니다.
번역판 및 개정판에서 위의 간음한 여자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적은 것은 예수의 말이 아니라 잘못된 번역입니다. 영어 원문에는 그런 의미의 글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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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11 ...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한글판) <요한복음 8장> 11 ... "Go now and leave your life of sin." (영문판) |
위에서 보는것과 같이 한글판에는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교도들에게 간음죄가 죄라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예수는 죄를 용서 한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입니다. 영문판에서는 "Go now and leave your life of sin." 으로 적혀 있고 이는 절대로 "죄를 범치 말라"고 해석할 수가 없고 "너는 죄의 굴레에서 벗어났으니 (집으로,창기촌으로) 가라"고 해석해야 제대로 된 해석이며 다르게 표현하면 '율법의 간음죄에서 벗어 났으니 자유하는 여자가 되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예수가 간음죄를 다시는 짓지 말라고 한 것은 완전한 거짓이고 예수에게 간음죄는 죄가 아님이 더욱 분명해 집니다. 이제 예수교도들은 예수가 간음죄를 짓지 말라 했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또한 마음으로도 간음하지 말라라고 이야기 해서도 안됩니다. 다만 '마음으로도 음욕을 품으면 그것도 간음이다. 다만 죄는 아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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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27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
위의 27절 내용을 보면 '간음치 말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생각입니다. 따라서 간음치 말라는 27절의 내용은 예수의 말이 아니고 예수는 27절을 통해 너희가 간음치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새로운 것을 말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내용은 '간음이 죄이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간음이라는 것에 대한 설명이였습니다. 그 설명은 31절 이후에 나오게 됩니다.
29절과 30절을 보면 마음으로도 간음하면 그 눈과 손을 떼어 버려 지옥에 가지 말라고 적혀 있어서 간음이 죄인거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죄가 아닌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간음을 하고 나서 그 눈과 손을 떼어내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예수가 말하기 때문입니다. [5번]의 간음한 사람을 대하는 예수의 태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에게 간음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교도들은 어떻게 여자와 교재를 하는지 궁금해 지는데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간음하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아침마다 꿈속에서 간음하며 그 증거를 남깁니다. 그리고 결혼해서도 아내와 남편은 서로에게 음욕을 품습니다. 이것이 예수가 말한 간음입니다. 따라서 간음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존의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을 희롱하는 것으로 '너희는 매일 마음과 혼인과 재혼으로 간음하면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느냐라며 '간음하지 말라'라는 율법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이고 유대인과 율법을 비웃는 내용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는데 예수는 항상 위와 같이 너희들이 어떤 말을 들었으나 나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겠다며 말을 이어 간다는 것 입니다. 이는 기존의 유대인들의 율법을 비웃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제일 위에서 과부가 된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갈 수 있고 이 때에는 율법에 메이지 않는 자유하는 여자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예수는 어떻게 설명하는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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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
이번에도 예수는 '유대인들아 너희는 왜 이혼하느냐?'라며 유대인의 이혼에 대한 율법을 이야기하고 이는 유대인의 율법을 비난하며 희롱하는 것 입니다. '너희가 이혼하고 재혼하는 것은 그 짓이 하고 싶은 음욕이 아니냐? 그것도 간음이다'고 말이죠. 예수의 말에 따르면 예수교도들은 혼인하였으면 절대로 이혼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간음하게 되는 것이고 그 눈과 손을 떼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마태복음 22장 이야기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 입니다. 왜냐하면 사도들이 이와 관련된 설교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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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2장> 25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 장가들었다가 죽어 후사가 없으므로 그의 아내를 그 동생에게 끼쳐두고 26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27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28 그런즉 저희가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
마태복음 22장을 보면 당시 유대인들이 동생이나 형이 죽으면 그의 아내를 취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에게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경우가 있음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은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취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동생을 죽이고 그 아내를 헤롯이 취했다면 유대인에게 비난받지 않았을 것 입니다) 이 내용은 반어법으로 유대인이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약성경은 요한이 붙잡힌 진짜 이유를 적지 않고 거짓으로 가짜 이유를 붙인것이며 그 이유는 유대인을 비난하고자 한 것이고 진짜 이유는 제4장과 제8장에서 설명 했습니다.
형제들과 결혼한 과부였던 여자가 죽어 천국에서 남편들을 만났을 때에 예수는 '천국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고 천사와 같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끝입니다. 형제들과 잠자리를 한다는 것인지 안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명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창기와 잠을 자는 것을 통해 알 수 있고 또한 천사들은 아무 여자와 잠자리를 했다는 기록들이 있고 심지어 신약성경에 따르면 신은 결혼식을 앞둔 마리아의 허락없이 마음으로 겁탈하여 예수(자기자신을) 임신하게 하였습니다.
<마리아를 마음으로 겁탈하는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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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장> 26 ... 천사 가브리엘이 ...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마리아)에게 들어가 ... 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보이십니까? 사실 마리아는 신을 만난적이 없고 만난 사람은 천사였습니다. 천사와 사랑을 나누고 신의 아들을 낳았다고 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지배를 받는 여자들은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속옷을 빼앗으면 겉옷도 벗어줘야 하는 가련한 여자들이였을 뿐 입니다.
따라서 천국과 같이 율법에서 해방되어 자유하게 된 과부와 형제들은 혼인없이 언제든 잠자리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이야기가 되며 예수가 말한 이혼과 재혼으로 인한 마음의 간음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혼인이 없기 때문에 이혼과 재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며 혼인하지 않은 사람들의 잠자리는 창기와 같이 죄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천사들은 여자들을 겁탈하여 잠자리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겁탈하는 것 조차도 죄가 아닌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는 간음의 문제가 혼인에 의한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질문에 천국에서는 혼인하지 않고 천사와 같다라는 두리뭉실한 대답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예수의 생각으로 인해 예수교의 신부와 수녀들이 혼인하지 않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교는 일부 사도들의 편지에 의해 금욕까지 하게 되는데요. 이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시간이 지나 예수 시대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신부와 수녀들의 몫이지 교황들과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창기와 잠을 자고 결혼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는 혼인하지 않는 것으로 간음죄를 해결하는 것으로 보았지 창기와 하나 되듯이 잠자리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간음이 죄라는 인식이 분명했다면 절대로 창기와 하나되는 이야기를 적지 않았을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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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5장> 1 ...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고 2 ...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11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
디모데전서는 사도바울의 편지입니다. 사도바울은 젊은 남자든 여자든 모두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고 했으니 그 이유가 혼인을 했기 때문에 또 다시 결혼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마치 재혼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것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12절에서 처음 믿음을 버렸기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였으니 젊은 과부가 재혼하면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이고 이는 사도바울이 직접 심판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사도바울에게는 혼인하고 재혼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디모데전서의 진실이 고린도전서에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 7장 전체가 혼인하지 말라는 설교 입니다. 이를 하나 하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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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 1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 8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혼인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 |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의 편지에서 말하는 핵심은 결혼하지 말고 과부나 혼인하지 않은 처녀들은 모두 사도바울과 함께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8절의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고 고린도전서 7장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위의 1절에 보면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를 통해서 고린도에 있는 예수교인들이 사도바울에게 혼인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 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위의 [10번]에서 보았듯이 허락없이 혼인하거나 재혼하면 사도바울로 부터 심판을 받게 되었기에 무서웠던 것 입니다. 이에 사도바울은 사랑의 힘을 알기에 고린도의 예수교도들이 자신이 공격 하거나 따르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혼인하고 싶으면 혼인하라고 이야기하며 혼인이 죄는 아니라고 말 합니다. 물론 사도바울의 힘이 강하기에 사도바울을 따를 수 밖에 없지만 사도바울은 쓸데없는 일에 싸움을 피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결국 사도바울은 혼인이 음행으로 인해서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정욕을 참지 못한 것으로 비난하고 나아가 혼인을 하게 되면 남편에게 신경쓰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멀어지게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혼인을 하지 말것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까?
<혼인은 그리스도와 멀어 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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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 34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느니라 |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혼인하는 여자에게 남편이 죽을것이라고 악담을 하며 은근히 혼인을 하지 말고 사도바울과 함께 살기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이미 사도바울과 함께 거하는 여자에는 처녀와 과부가 있었으니 혼인하는 처녀가 생겨 사도바울을 떠날 것을 두려워하여 젊은 과부는 받지 않겠다고 디모데전서에서 밝혔고 보았습니다. 이는 사도바울과 함께 있던 처녀가 혼인할 때 그 남자가 죽거나 내쫗김을 당해 과부가 되면 받지 않겠다는 것이며 당시에 과부가 될 확률이 매우 높았던 시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따라서 가능한 협박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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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 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된 자가 되어 의견을 고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을 인하여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
사도바울은 특별히 처녀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혼인하고 싶다는 고린도사람들에 대해서 혼인하지 말라며 곧 환난이 오니 과부가 되지 말고 그냥 지내라고 이야기하며 사도바울과 살기를 계속 강요하고 있었고 환란이 올 것이라는 것은 협박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사도들은 과부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환란이 오면 여자들은 죽지 않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사용할 가치가 있는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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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7장>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 39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 전체를 통해서 마지막까지 왠만하면 혼인하지 말고 사도바울과 살기를 원했고 35절에서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라며 거짓 핑계를 말합니다. 39절에 보면 혼인하면 남편에게 매여 자유하지 못하게 되고 남편이 죽는 상황을 이야기하며 남편이 죽어야 비로서 자유하게 된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는 남편이 환란으로 죽게 될 수 있음을 암시해 놓은 것으로 협박입니다.
왜 혼인하지 말라고 한 것인지 아십니까? 창기가 예수교도였던 손님과 눈이 맞아 혼인을 하려 했던 것 입니다. 그래서 예수교도였던 교인이 사도바울에게 혼인을 요청한 것으로 보입니다. 혹은 창기가 부탁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서기 30년부터 300년 사이의 예수교의 모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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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
위의 로마서 2장 사도바울의 이야기를 보면 명확해지는데요.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너희는 도적질 하지 말라면서 도적질 하고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간음을 하는냐?'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너희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을 비웃고 있다고 말하는 사도바울의 말이 예수와 사도바울의 말 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의 말이 예수와 사도들의 말이였고 예수와 사도의 말이 이방인의 말이였던 것입니다. 이는 아래의 예수의 설교와 일치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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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장> 1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2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 3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6 ...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
위의 성경구절과 같이 예수가 율법을 따르지 않는 이유가 유대인들이 율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율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말을 합니다. 이는 너희는 마음으로도 간음을 하면서 그리고 이혼하며 재혼하면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그래서 예수교도들은 간음한다는 이야기 입니다. 아마도 이방인이였던 로마는 분명히 창기장사가 발전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까지 고린도전서 7장을 통해 혼인과 재혼이 죄아닌 간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고린도전서 6장을 보면 사도바울은 간음과 기타 나쁜 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며 죄인것 처럼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11절을 보면 예수와 마찬가지로 사도바울에게는 이러한 죄들이 예수만 믿고 세례를 받으면 더이상 죄가 아닌 것으로 바뀌게 됩니다. 나아가 16절에서 창기와 합하는 것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변화게 됩니다. 매우 긴 글이지만 읽어 보시고 11절, 16절, 17절에서 간음이 주와 하나가 되는 것과 같이 죄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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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6장> 7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8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9 ... 음란하는 자나 ... 간음하는 자나 ...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기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6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
위 구절들을 읽으면 사도바울은 송사(재판) 받는 사람들이 너희 형제라고 이야기하며 그냥 속는셈 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토색(남의 물건을 강제로 빼앗고) 간음이나 음란한 것은 나쁘지만 예수를 통해 의롭게 변화 할 수 있다고 말을 하며 16절에서 심지어 창기와 합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속는셈 치라는 설교는 예수교도들이 자주하는 말이며 이 말은 2천년을 이어 지금까지 내려 오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보는 간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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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2장>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12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야고보서 4장> 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
위의 야고보서 2장에서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이는 예수가 아닙니다. 간음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유대인들의 율법이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범한 자가 된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율법을 범한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의 율법대로 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를 믿으면 죄가 없었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간음이 죄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가 보는 간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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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 1장>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
이것 역시 간음이 죄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조상에 대해서 희롱하는 내용으로 유대인들이 간음하지 말라고 하지만 유대인들은 처음부터 간음하며 당을 짓고 사람들 앞에서서 자랑하기 좋아한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로마와 초기, 중기 예수교도들에게 간음은 죄가 아니였습니다. 간음이 죄라면 남자와 여자가 서로 안으며 입맞춤하며 성에 자유로운 문화가 있을리 없습니다.
<요한게시록에서의 간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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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게시록 2장>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
여기에서도 음행과 간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죄인 것 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 음행과 간음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고 있는데 이는 회개라는 단어 입니다. 여기에서도 이들은 회개만 하면 간음은 죄가 아니였던 것입니다. 예수는 간음한 여자가 실토하지 않았음에도 죄가 없다고 돌려 보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살펴 본 바와 같이 신약성경 그 어디에도 간음이 죄라고 직접적으로 주장한 곳은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요한게시록이 작성되는 시기에는 회개만 하면 죄가 사라지는 면죄부의 형태로 발전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면죄부의 형태로 발전한다는 뜻은 회개를 위해 교회에 모여 헌금을 바치면 그 때에 간음죄와 살인죄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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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40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누가복음 6장> 29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
예수가 말하기를 마태복음에서는 '누군가가 속옷을 가지고자 한다면 알아서 겉옷도 가지게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마태복음 보다 명확하게 주장 합니다. 뺨을 때리면 뺨을 돌려 대고 겉옷을 벗기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속옷도 금하지 말고 벗김을 당하라고 적혀 있습니다.
윗 글은 재물을 그냥 줘라라는 것에 대한 비유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저속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는 윗 글을 보고 화가 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 글을 보고서도 예수를 찬양하는 놈은 사람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설교가 왜 강제로 음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사도행전을 보면 알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오는데요. 모든 과부들이 베드로에게 속옷과 겉옷을 내어 보여주고 베드로의 곁에서 흐느껴 울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과부들은 베드로 옆에서 알몸으로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9절이 어떤 비유를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곁에서 알몸으로 우는 과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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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9장> 36 욥바에 다비다(도르가)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37 그 때에 (다비다가)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우니라 ... 39 ...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 41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
위 설교는 속옷과 겉옷에 대한 완벽한 이야기 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있는 다락방에 갑니다. 그곳에 갔더니 많은 성도들이 속옷과 겉옷을 벗어 알몸으로 베드로 앞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명이 선택되어 정성껏 씻겼으며 죽은 듯 눕혔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일을 다 보고 나서 '일어나라' 한 것입니다. 선택된 과부의 이름이 바로 다비다 혹은 도르가라는 과부였으며 이를 베드로의 제자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부들이 울고 있었던 것은 그 시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베드로 곁에서 알몸으로 있었고 선택 될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는 창기에 대한 이야기를 종교화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6절 이후의 상황을 죽은자를 살리는 기적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보시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풀리게 됩니다. 첫번째 베드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두번째 왜 혼인이 간음인지 세번째 왜 처녀와 과부를 항상 곁에 두고 있는지 네번째 바울이 창기와 하나 될 것을 주장한 이유와 마지막으로 세리와 창기가 천국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처녀와 과부들을 가지고 창기 장사를 하는 곳에서 창기들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며 바울이 혼인하지 말라 한 것은 창기 생활을 그만 두거나 바울을 떠나는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무슨 돈을 가지고 저들과 함께하고 있습니까? 이는 제5장에서 보았듯이 유대인들로 부터 빼앗은 돈을 가지고 계집질을 하거나 창기촌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겉옷을 빼앗는 사람이 있으면 속옷도 금하지 말라고 하면서 뺨을 때리는 설교가 창기가 되기 싫어하는 과부가 된 여자를 때리면서 강제로 창기가 되라고 주장하는 내용임을 이제는 깨닳아야 합니다. 초기 예수교의 사도들은 세리를 앞세워 사채놀이를 하며 그 남편을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을 팔아 창기로 만들어 창기 장사를 하며 이를 종교화하여 발전하게 된 것임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사도행전 5장을 통해 삽비라가 잠깐이나마 과부가 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사도바울이 혼인하는 처녀에 대해서 환란으로 인해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될 것이라고 협박하는 내용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생각해 보면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된다는 협박은 사도들이 직접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과 같았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환란이라는 것은 사도들이 저지르는 만행이였던 것입니다.
아마도 삽비라는 베드로에게 속옷과 겉옷을 내어주고 베드로 곁에서 울고 있었다면 삽비라는 죽음에서 벗어나 위의 다비다와 같이 살아났을 것 입니다. 그러나 삽비라는 다비다와 다르게 죽음으로 아나니아에게 간 것으로 보아도 전체 흐름상 틀리지 않게 됩니다.
로마와 헤롯의 지배속에서 유대인들을 핍박하던 세리와 사도들로 인한 유대인들과 갈릴리인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우리는 충분히 짐작 할 수 있으며 사도들은 이를 신의 이름으로 행하였으며 유대인들을 더욱 광분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녀에게 사랑하자며 방문을 요청하는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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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2서 1장> 1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 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12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요한2서 1장> 1 The elder, To the chosen lady and her children, whom I love in the truth (영문판) |
우선 요한2서 1장에서 부녀라는 단어는 거짓이고 모녀가 정확 합니다. 영문판에서는 부녀가 아니라 모녀이기 때문이며 내용은 아주 간단한 내용으로 모녀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내용을 시작으로 두가지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방문을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첫째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던 사랑을 하자는 내용이며 둘째는 우리를 방해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이니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거나 인사를 하는 것은 적그리스도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쓸 내용이 많지만 적기에는 민망하거나 말 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방문을 요청하는 편지 입니다.
자녀가 있는 여자 혹은 과부에게 사랑을 하자며 편지를 보내는 배짱도 대단하지만 아마도 과부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성경에는 과부가 참으로 많이 등장합니다. 아마도 저 시대에는 세리와 사도들로 인한 전쟁, 민란, 반란등으로 시끄러웠던 시대로 남편을 잃은 사람들이 많았을 것으로 생각 되어지기 때문에 저런 협박의 편지가 가능했을 것으로 추측 되며 이는 분명 오해를 받기에 충분한 편지입니다.
이 편지를 성경에 포함 시킨 시대의 모습과 로마 교회의 가치관 역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어 보이는데 요한2서의 내용이 복음을 전하는데에 있어서 가치가 전혀 없고 오히려 악용될 소지가 높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도행전 9장을 통해 본 베드로의 행동을 보았을 때에 충분히 상황이 보이는 편지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기독교인들도 저 편지가 얼마나 부끄러웠으면 여자(lady)와 그녀의 자녀라는 말을 부녀(아버지와 딸)로 바꾸었을까요? 한국기독교인들도 번역을 하면서 많이 부끄러웠을것이며 스스로 성경을 고치는 거짓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에 따르면 예수와 사도들은 세리와 창기 그리고 간음에 대해서 정말 많은 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여자들과 가까이 했음을 알게 됩니다. 예수와 사도들은 유대인과 조상들을 비난하면서 정작 중요한 설교에서는 비웃는것 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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