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오랑세오녀의 설화는 삼국유사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했을 이야기이고, 설사 읽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읽으면서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떠올릴 정도로 해와 달 설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소재이기도 하다. 왕비가 손수 생초 비단을 짰다는 대목에서는 직녀가 연상되기도 한다. 삼국유사에 실린 한 편의 동화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그뿐일 것이다. 그러나 짧은 글이지만 분석하고 해체하며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도 삼국유사를 읽는 또 다른 묘미이다. 아래의 주석은 필자가 참여하는 삼국유사 읽는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하였다. 삼국유사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여기에 붙여 본다.
1) 아달라왕: 신라 1~7대 왕의 이름은 박혁거세, 남해, 노례, 석탈해, 파사, 지마, 일성이다. 이 가운데에는 혁거세(세상을 밝게 다스리는 이), 탈해(궤를 열고 나온 사람)처럼 순우리말을 한자어로 옮긴 것도 있고, 일성(뛰어난 성인)처럼 유교식 시호를 취한 것도 있다. 8대 왕 아달라는 산스크리트어의 음역처럼 보인다. 5대 왕 파사(婆娑)도 그러한데, 뜻은 분명치 않다. 다만 이때 이미 불교가 들어왔으리라는 한 단서는 된다. 2) 연오랑세오녀: 부부의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모두 까마귀 오(烏) 자를 쓴 것으로 보아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까마귀가 길조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구려 벽화에 세 발 달린 까마귀가 나오는 것을 봐도 분명하다. 벽화에는 태양 속에 삼족오가 들어있는데, 이때 ‘오’는 태양을 의미한지도 모른다. 이는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가면서 해와 달의 정기가 사라졌다는 설화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3) 바윗돌: 일연 스님은 ‘물고기’라는 설[一云一魚]도 있다고 보충 설명을 넣었다. 설화라고 하지만 바위가 사람을 태우고 갔다는 것보다는 물고기를 타고 갔다는 게 자연스럽다고 여긴 것 같다. 예부터 영일만 앞에는 고래가 많이 산다는데 그렇다면 그 물고기는 고래였을까. 4) 일본: 7세기 들어서야 일본이라는 국호가 등장한다. 이때(서기 157년) 열도는 왜 또는 왜국으로 불렸다. 5) 벗어 놓은 신발: 연오가 바닷말을 따러 들어갈 때 벗어 놓은 신발이겠지만, 옛이야기에서는 부재, 또는 실종의 기표다. 세오는 신발을 보고 남편을 찾으러 동분서주하며 바위에 올랐을 것이다. 6)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일식과 월식 현상을 말한다. 그렇지만, 자연현상에 관계없이 고대인들이 빛의 신인 해와 달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보여 주는 기호이기도 하다. 7) 어찌 돌아가리오: 연오는 신라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일본행이 하늘의 뜻임을 들었다. 그러나 실제 이유는 귀국하면 일본 왕 자리에서 물러날 뿐 아니라 다시 어부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오의 말은 천명이 아니라 계급의 이해를 반영한 것이다. 8) 생초 비단: 생사로 짠 비단으로 이 시기에 이미 양잠 기술이 발전하였음을 말해 준다. 중국 양자강 유역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에 비단이 생산되었다고 하니 그리 빠른 것도 아니다. 9) 영일현 또는 ‘도기야’: 영일현은 지금의 포항시 동해면 지역이다. 영일은 해를 맞이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양주동은 ‘도기야’를 순우리말 ‘(해)돋이’의 한자식 표기로 보았다. 현 지명 포항시 동해면 도구리와 포항시 남구 일월동에 그 뜻이 살아 있다.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는 일연 스님이 박인량의 『수이전』에 있는 내용을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 설화는 해와 달 숭배 사상, 우리 민족의 일본 이주설 등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와 같은 담론적인 해석도 좋지만, 읽는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서정주 시인이 이를 읽고 “신라 사람들은 무엇이든 그들이 하는 일에 하늘의 빛을 섞어 하기를 좋아했다”(시 ‘신라풍류1’)고 읊었듯이 말이다. 흔히 삼국유사를 일러 상상력의 보고 라고 한다. 그 보물창고에서 지혜와 생각과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하나의 방법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대로 읽는 것이다. 위 주석도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연오랑세오녀 뿐 아니라 삼국유사에 대한 수많은 해석 가운데 정설로 확정된 것은 거의 없다. 최소한 이 책을 읽을 때는 전문가의 견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없다. 개별 독자의 해석과 주석, 역발상이 한데 어우러질 때,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삼국의 역사, 지리, 민속, 언어 등 전체상이 그려지지 않을까. 삼국유사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독자들의 지혜, 즉 집단 지성이 필요하다. 삼국유사 만큼 함께 읽기에 좋은 텍스트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