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장 지경을 넘어서*
스데반이 순교를 당한 후 가혹한 핍박이 행해지는 동안 예루살렘을 떠난 사도들과 제자들은 근방에 있는 도시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오직 히브리인들과 헬라의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어 있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행 11:21).
예루살렘에 있는 신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를 수리아의 수도 안디옥에 있는 교회를 돕기 위하여 파견하였다. 바나바는 그 곳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사업이 확장되자 바나바는 바울에게 도움을 청하여 함께 일했다. 이 두 사도는 일년 동안 안디옥에서 함께 일하며 사람들을 가르치고 그리스도교회의 신자를 증가시켰다.
안디옥에는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 곳의 좋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아름다운 경치와 풍요, 문화가 이 곳을 중심으로 극치를 이루고 있어서 이 도시는 안락과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유원지였다. 이 곳은 또한 번창하는 상업 지대로 각 나라 사람들이 모여드는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그래서 이 곳은 사치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침내 안디옥 거민들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그 곳에 임하였다.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얻은 곳도 바로 안디옥이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이유는 제자들이 말할 때에나 전도할 때에나 그리스도를 주제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그들이 예수와 개인적으로 사귈 때 일어난 사건들에 대하여 항상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의 가르침과 병자를 고치신 이적과 사귀를 내쫓으신 것과 그리고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신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떨리는 입술과 눈물어린 눈으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당하신 고민과 배반당하시고 심문과 형벌과 그의 원수들에게 고문과 능욕을 견디신 구주의 인내와 겸손 그리고 당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신적(神的)인 동정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타락한 인류의 대언자로서 하늘에서 행하시는 중보 사업 등이 제자들이 즐겨하는 대화의 주제였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사도 바울은 인구가 많은 안디옥이야말로 일하기 좋은 곳임을 깨달았다. 바울의 깊은 학문과 지혜, 그리고 열성이 연합되어 이 문화의 도시에 사는 시민들과 또 그 곳을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사도들은 얼마동안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여 활동하였다. 그 곳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며 각 방언을 말하는 유대인들이 절기 동안 성전에서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여드는 곳이었다. 그 때마다 사도들은 저희 생명이 위험에 빠지는 줄 알면서도 누를 수 없는 열성과 담대함으로 그리스도를 전했다. 많은 신자들이 생겼고 이 새 신자들은 각 곳에 있는 저희 집으로 돌아가 여러 나라와 여러 계급에 속한 백성들에게 진리의 씨를 뿌렸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 동포에게만 그리스도를 전파할 사명을 받았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성전에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임무를 지시해 주셨는데 그의 넓은 선교 지역을 확실히 보여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그의 중대하고 큰 사업을 능히 감당하도록 준비시키기 위하여 당신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게 하셨고 또한 계시 가운데서 하늘의 영광과 아름다움의 일부를 보여 주셨다.
바울과 바나바의 안수
하나님께서는 안디옥 교회의 경건한 선지자와 교사들과 교통하셨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행 13:2). 이 두 사도는 금식과 기도와 안수를 통해 가장 엄숙한 방법으로 하나님께 성별되었다. 그리고 이방 사람 중에서 일할 지역으로 파송되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수를 받기 전에도 그리스도의 교역자로서 일을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노력에 많은 축복을 주셨지만 아직 정식으로 기도와 안수를 통해서 복음 사업에 대한 위임을 받지는 못했다. 이제 그들은 교회로부터 권위를 가지고 진리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침례를 베풀고 교회를 조직할 수 있는 온전한 권위를 교회로부터 받게 되었다. 이 때는 교회를 위하여 매우 중요한 시대(時代)였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힌 담은 헐어졌으나 유대인의 눈을 가리운 허다한 휘장은 아직도 완전히 걷혀지지 않았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해 무엇이 폐지되었는지도 잘 분별하지 못했고, 또한 이방인도 예수의 죽으심으로 복음의 모든 특권에 참여하게 된 것도 깨닫지 못했다. 이제부터 복음 사업은 이방인 가운데서 활발하게 진전될 것이며 많은 이방인을 교회로 인도하여 교회는 흥왕하여 질 것이다. 사도들은 이처럼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는 가운데 의심과 편견, 그리고 질투를 받게 될 것이다. 사도들이 유대인만 구원의 대상이라는 사상을 버리자 이의 필연적 결과로써 사도들의 교훈과 견해는 이단이라는 굴레를 벗을 수 없게 될 것이며 또한 열성으로 믿는 많은 유대인들은 사도들의 복음 전도자로서의 신임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이 당할 모든 곤난을 미리 아시고 당신의 지혜로운 섭리로써 아무도 당신의 사업에 대하여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조직된 교회로부터 의심할 수 없는 권위를 부여받게 하셨다. 훗날에는 안수가 크게 남용되었다. 손을 얹는 일 그 자체가 무슨 효능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또한 안수를 받으면 무슨 능력을 받아서 목사가 해야 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 적합치 못한 의미를 안수받는 일에 결부시켰다. 우리는 두 사도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서 손을 얹은 것과 그들의 사업에 대한 그것의 관계에 대한 단순한 기록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친히 그들의 사명을 받았으며 안수 예식으로 그들에게 무슨 새로운 은혜나 혹은 실제적 자격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안수하는 예식은 단지 하나님의 사업에 교회의 인을 치는 것이요, 지정된 직무를 인정하는 예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