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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길의 발견
2002년 새길교회 여름수련회(8.14~15, 덕평 상록수련원)
2002년 새길교회 여름수련회 주제인 "새길의 발견"은 두 가지 의미를 담았습니다. 하나는 새길 공동체 사람들 서로의 개성과 인격을 발견하는 노력이었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가 만들어가야 할 새 길을 함께 고민하며 모색하는 것이었죠.
기록, 정리: 정경일
▒ Prologue - "공동체를 형성하는 드라마"
"날도 갰는데 촌극말고 발야구 합시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한 운동장 사정과 오전의 토론이 세 시간 동안 진행된 탓에 취소되었던 발야구가 '이상 열기'마저 띠며 갑자기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왜냐구요? 15일 오후에 예정된 촌극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죠. "주제 및 소품은 알아서 마음대로!"라는 과제만으로는 뭘 어떻게 만들어내야 할지 당장은 막연하니까 '차라리 발야구'였던 거죠.
발야구로 대체하자는 의견과 압력이 산발적으로 돌출하더니, 급기야 "발야구! 발야구!"를 연호하는 집단 시위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촌극을 반드시 성사시키고야 말겠다는 진행 팀의 단호한! 의지를 확인한 교우들은 할수없이 발야구에 대한 기대를 접고 조별 촌극 준비에 들어갔죠. 둥그렇게 모여 앉은 모습... 하하, 순한 양무리 같던데요.
조별로 둘러앉아 주제를 정해 대본을 쓰고, 역할을 맡고, 분장하며 소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감동적이었습니다. 각자의 창의력과 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생각을 모으고 몸을 부딪히며 '작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어요.(그런 모습... 생각해보니 교회에서 크고 작은 행사 할 때마다 자주 본 것 같아요.)
수련회 마친 지 어느새 한 달이 되어 갑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여름 이틀 동안의 만남과 열정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한 편의 드라마였습니다. 새길교회 교우들이 함께 만든 드라마의 장면들... 다시 보면 또 새로울 것 같군요.
▒ 장면 1 - "평등한 해석과 공동체의 실천"
여는예배 말씀증거를 맡은 한완상 형제는 의자를 원형으로 배치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설교자의 일방적 메시지 전달과 청중의 수용이라는 틀을 깨고, 서로를 바라보고 대화하며 말씀을 나누자는 의도였죠. 우리는 "새길의 발견: 과연 우리가 선한 사마리아인일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예수의 '3막 극: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함께 해석하기로 했어요. 그것은 개인의 고립된 증거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성서의 뜻을 발견하고 생활에 적용하는 흥미롭고 진지한 실험이었죠.
성서를 해석하는 데에는 '죽임'의 해석과 '살림'의 해석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리는 해석을 택하고, 그 해석에서 실천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완상 형제는 먼저 본문의 맥락을 역사적, 사회학적으로 개괄한 후 자매, 형제들에게 짧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는 헬라어를 알았을까요?", "... 글쎄요... 아람어를 사용하셨는데요...", "아마, 헬라어를 아셨지만, 일상적으로는 아람어를 사용했을 것입니다." 처음엔 이런 식으로 짧은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았지만, 참여한 교우들은 점차 비유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 질문자가 물은 '이웃'과 예수가 말한 '이웃'의 의미는 다른 것 같네요.
▶ 예수에게 질문한 사람은 "내 이웃이 누구냐?"라고 물었지만, 예수는 "누가 이웃처럼 행동했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 이웃이 되는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이웃일 수 있을까요?
▶ 동정과 사랑에는 차이가 있어요. 동정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를 계산하지만 사랑은 끝까지 희생하고 비웁니다.
▶ 개인적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기는 쉽지 않아요. 하지만 둘, 셋, 공동체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 어떻게 사마리아인은 자기를 비울 수 있었을까요? 그가 사마리아인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 언제 한 사람, 한 사람을 치유하며 다닐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것은 강도를 없애고, 강도 만날 일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한 사람'을 돌보는 것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새길교회 봉사부에서는 개별적 이웃을 돌보고, 문화원에서 정의를 위한 시민, 사회단체를 지원하고 실천하는 것은 두 과제를 다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 원수 같은 사람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또, 예수님은 일일이 구제하기보단 말씀으로 변화시키지 않았나요? 예수님의 근본 가르침처럼 움직이는 교회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잘못된 교회문화 개혁에 힘써야 할 것 같습니다.
▶ 요즘 세상에서 죽도록 맞아 죽어 가는 이웃은 누구일까요? 방글라데시의 '빈곤은행'이야기를 들으며 저도 가난한 자를 위한 은행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사마리아인이 남긴 '다시 온다'는 말에 감동했습니다. 완전히 치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만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지 않나 반성하게 하는군요.
▶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함으로 사랑의 경계를 넓힌 것이 인상적입니다. 새길교회도 사랑의 범위를 넓혀 가는 공동체인 것 같구요.
▶ 이 비유에서 하느님은 어디 계실까요? 결국 예수의 비유는 "사마리아인이 하느님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급진적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케노시스', 곧 자기 비움의 신관 전복입니다.
▶ 사마리아인이 '돌아오겠다'고 한 건, 돌아올 땐 '돈이 있다'는 말입니다. 수단, 재원 마련에도 더 힘써야 한다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겠죠.
살림의 해석... 다양한 질문과 주장, 고민이 모아지면서 이천년 전의 비유는 '지금 여기'로 옮겨왔습니다. 예수의 살아있는 숨결을 느낄 수 있었죠. 토론이 끝난 후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무심히 지나치는 익숙한 이야기에서 삶에 도전하는 낯선 이야기로 바뀌어 있었어요. 공동체의 진지한 실험을 이끈 한완상 형제는 "교회와 우리 각자의 삶에서 선한 사마리아인다운 활동의 단계(가까이 가기, 함께 가기, 돌보기)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라는 화두로 긴 토론(말씀증거)을 마무리지었습니다.
▒ 장면 2 - "유치하지만 흥겨운"
김문음 자매가 진행한 "공동체를 이루는 시간"은 매우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채워졌습니다. '스피드 퀴즈', '몸짓 표현', '포크댄스'... 눈치채셨겠지만 전혀 새로울 것도 없고 하도 많이 해봐서 이젠 유치하기까지 한 놀이들이죠. 준비위원들...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대범했던 걸까?
당연히 믿는 구석이 있었죠. 준비위원들은 유치하고 뻔한 놀이를 한바탕 흥겨운 잔치로 변화시키는 것은 새롭고 참신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참여자들의 열기와 웃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확신했죠. "새길 사람들... 쑥스러워하며 뒷짐지고 있진 않을 거에요." 역시 기대했던대로 새길교회 사람들은 연신 함박웃음을 터트리며 '유치한' 프로그램을 '흥겹게' 즐겼습니다.
음... 인상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네요. 몸짓으로만 제시어를 표현하는 '몸짓표현' 중이었는데, 갑자기 민계진 자매가 세 손가락을 펴 보이다가 손 바닥을 뒤집는 제스춰를 반복했어요. 하지만 같은 조원들은 어리둥절해할 뿐이었죠. 나중에 그것이 '삼손'이었다는 것을 알고 조원들은 바닥을 치며 안타까워했고, 우린 모두 한바탕 웃었습니다. 온 몸으로 표현하고 공동체가 머리를 맞대고 알아내는 모습에 즐거워하면서,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언어는 얼마나 다양한가 생각해보기도 했죠.
김형 자매가 인도한 포크댄스. 우리는 악기 반주도 없이 "푸른 하늘 은~하수~" 를 노래하며 춤췄어요. 물론 춤만 춘 건 아니었죠. 진행자가 요구하는 대로 남자끼리, 여자끼리, 까만 옷 입은 사람끼리... 이렇게 저렇게 모이랴 춤추랴 정신 없었어요. 집단 원무를 추면서는 한 번의 춤동작 끝에 만나는 사람과 기도 제목이나 개인사를 나누며 짧은 대화를 나눴어요. 모두 네, 다섯 명의 파트너를 만났죠. 춤동작 익히느라 가뜩이나 헷갈리는데 만난 분과 나눈 대화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자신없었지만, 웬걸요. 다음날 파트너들을 만나면 지난 밤 시끌벅적한 가운데 수줍게 나눴던 이야기가 그대로 재생되던걸요.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 장면 3 - "만남의 기쁨, 신비..."
"이번 수련회에서는 새교우와 기존 교우들이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도록 하자구요." 반복, 또 반복했던 다짐이었지만 교우들의 자연스러운 대화는 '공식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거였죠. 수련회 중간중간에 차분하고 정겹게 이어진 대화의 잔치는 모두 교우들이 직접 만들고 진행한 '숨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틈틈이 차와 음료를 나누며 정중하고 따스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 수련회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14일. 자정을 넘겨 행사를 마친 후 우린 강당 바닥에 둘러앉아 포도주와 음료를 곁들여 편안한 사귐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길교회 자매님들... 참, 그런 걸 언제 다 준비하셨을까. 강당에서 해물파전, 도토리묵을 '척척'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천지창조 이야기도 떠오르고(하하... 과장이 좀...), 예수 주위에 늘 함께 하던 여성들의 이야기도 떠오릅니다.
즐거운 밤은 깊어갔습니다. 아쉽지만 아침명상을 위해선 뒷풀이 자리를 마쳐야 했죠. 물론 일부 교우들의 '저항'(?)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준비위원들의 '의자놓기 시위(?)'에 뒤풀이 자리는 부드럽게 끝났죠. 그래도 삼삼오오 둘러 앉아 대화를 계속하는 교우들도 많았습니다. 밤 깊도록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들을 만나니 참 행복했습니다.
서로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는 이야기는 글로도 남겨졌습니다. 강당 벽에 사진과 함께 붙여놓은 종이에는 사진의 주인공들에게 주는 다양한 사연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어요. (그렇게까지 활발하게 참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 밤늦게까지 따뜻한 사랑과 격려의 한 마디를 적는 모습에선 '사명감'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서로에게 전한 유쾌하고 따스한 말들... 조금 읽어드릴까요?
▶ "말보다 행동이 앞서시는 분들...", "행복나라", "새길의 바늘과 실" ... - 강기철·이혜숙
▶ "웬 애교?", "제게 늘 참신한 '길잡이 늑대'(?)십니다.", "그대여 정말 좋소." ... - 정대현
▶ "올해는 좋은소식...", "장가좀 보내주세유" ... - 신동갑
▶ "안 보이는 곳에서 짱!(도맡아 짱!)", "몸으로 봉사하시는 자매님, 존경해요." ... - 김종순
▶ "새 사업(?) 구상이 구체화될 수 있기를", "예수님 얼굴이 당신같았을 거야!" ... - 이찬교
▶ "어찌 그리 쉽고 재미나게 (말씀)하시나요? 한눈 팔 새가 없네요." ... - 한완상
▶ "영원한 언니!!!", "언니 최고!!!", "앗싸 앗싸, 아∼앗싸! ..." ... - 김 형
▶ "만년소녀같은 미소 부럽군요.", "최고의 도우미!", "조각같이 예쁜 얼굴!" ... - 노정실
▶ "아! 영원한 젊음. 그대 때문에 새길은 더욱 새로워지고...", "말없이 포용하는" ... - 강조웅
▶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자!" "성가대만 사랑하지 마세요! 삐짐!" ... - 유인경
▶ "산 다람쥐더구만...", "조용하면서도 경쾌한 스타일" ... - 박현진
▶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주체성을 지닌 여성", "지리산 같은 여인" ... - 정광옥
▶ "하나님! 명자씨 다리 고쳐주세요. 빨리요!" ... - 배명자
▶ "신앙의 실천자여!", "어려운 결단으로 새길을 찾아 주심을 감사..." ... - 윤명자
▶ "소년, 소녀가 데이트 하는 것 같아요. 귀여워요.", "새길의 차세대" ... - 성원용·권숙인
▶ "글솜씨, 말솜씨... 역시 감탄!", "앳된 그모습 속에 놀라운 잠재력..." ... - 김문음
▶ "당신은 정말 장가 잘 간줄 아세요!", "나뭇꾼의 환한 모습이 좋군요..." ... - 서인명
▶ "명·사·모 있음다!", "아, 푸근하면서도 날카로운 카리스마..." ... - 명정옥
▶ "대권은 영원하여라! 장기집권 요망!", "교회의 꽃, 신앙의 모범" ... - 조혜자
▶ "말이 필요 없네요. 당신같은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살맛 납니다." ... - 정경일
▶ "조웅씨만 너무 사랑하면 안되기!!!", "영원한 problem solver!" ... - 서문자
▶ "대장님!", "오딩크 파이팅!", "순수하고 온 몸으로 봉사하는 모습" ... - 오성기
▶ "아직도 소녀티가 납니다.", "음악선교 더 멋있게 부탁합니다." ... - 정정자
▶ "가장 따뜻한 미소를 가지신...", "형제님이 있어서 교회에 가고 싶습니다." ... - 최현섭
▶ "처음 왔을 때 강당에서 청소하던 모습 지금도 생생합니다.", "삼촌 짱!" ... - 최규삼
▶ "굳은 신앙, 주님에 대한 사랑 가득한 님", "당신의 신학은 새길에 딱이네요!" ... - 조철호
▶ "새길의 활력소가 탄생하셨습니다.", "활기 넘치고 적극적인..." ... - 조봉기·민정애
▶ "앞으로 뭔가 큰 일 할 것 같네요...", "든든합니다..." ... - 박우식
▶ "두 분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봉사해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요." ... - 박중수·정복심
▶ "새길에... 또 하나의 밝은 빛이 더해진 것 같습니다." ... - 이희숙·홍승래
▶ "오! 보배 중 보배!",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 - 김용덕·주선경
▶ "그 순수함,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네.", "미국이 넓지만 혜원이 마음만 할까." ... - 이혜원
▶ "이 미인 누구?", "얼굴만 보아도 은혜롭습니다. 따님도 그렇구요." ... - 문현재·이혜경, 정은
▶ "맑고 순수한 모습에서 새길의 정신을 느낍니다. 빨리 친해지기를..." ... - 나완수·서지영
▶ "이거 뭐하는 사진이에요?", "아카데미 시상식?", "공동체의 화목을 애쓰시는..." - 박옥진·임동건
▶ "선녀씨, 쌀랑해요!!!", "나뭇군이 누군가? 부럽다.", "조용하게 봉사하는..." ... - 남선녀
▶ "나, 자기도 사랑해. 삐지지 마.", "진솔하게 신앙 가꾸어가는 모습 아릅답네요." ... - 신동남
▶ "많이 컸다.", "왜 그렇게 심각한가? 자네." - 이기문
▶ "두분 명성(?)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죠.", "시간이 지날수록 깊이가 느껴지는..." - 김이수·정선자
▶ "사진좀 바꾸세요!", "새길교회 시인 났다고 소문났던데요.", "짜가라는데. 신모씨가.", "이제 기 좀 펴고 살 게 해주세요!" ... - 이명섭
▶ "예쁜 아기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얼굴만 봐도 마음이 순수해집니다." ... - 유훈정·황재홍
▶ "안치국 형제 어디 있어요? 한 번 봅시다.", "멋드러진 노래 한 번 더..." ... - 안치국·차미화
▶ "며느리 구함", "나이 많아도 돼요?", "모자가 함께, 친구같은 모습이 좋네요." - 민계진, 박찬원
▶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씨, 자매님 보면 살맛 나지요..." ... - 정혜정
▶ "듬직한 새길맨!", "말없는 봉사, 그것이 참 믿음입니다." ... - 강명구
▶ "이 부부만큼 평안, 행복한 부부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요." "존경! 존경! 존경! 존경! 존경!..." ... - 길희성·박남미
▶ "포근한 언니 같은 미소...", "종가집 맏며느리?", "넉넉함 itself!" ... - 함경희
▶ "너무 웃지 마세요. 학생들이 매혹당하니까요." , "또 안 오면 혼난다!" - 우정원
▶ "어디 가 있나? 이 시간에.", "안 보여 서운해요.", "허허허 웃으시는 모습이..." ... - 명노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인격과 인격이 마주하는 것은 신비입니다. 만남의 신비를 경험하는 자리에선 감사가 넘쳤습니다. 여리고로 가던 그 사람. 그만 강도 '만나' 죽게 되었는데, 우리는 서로를 살리며 기쁨 주는 만남을 경험하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요.
참! 행사를 진행하는 이들은 전체에 매달리느라 구체적 개인에겐 소홀하기 쉽죠. 내부에 그늘이 없어야 건강한 공동체인 것 같아요. 어쩌다 개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할 때면 조용히 다가와 이런저런 사정을 일러 주며 배려를 부탁하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그럴 때면... '천사도 이분처럼 움직일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하...
▒ 장면 4 - "투명한 아침"
'새길'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각양각색입니다. 새 길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은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끼리를 만진 모든 사람들이 대화를 통해 의견을 모은다면 새길의 실체는 드러나지 않을까요. 우리 새길의 특성은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는 다윈주의 구조입니다. 새 길의 모습 역시 의견의 공유, 곧 대화 과정을 통해 나타날 것입니다. 또한 나와 다른 차이를 인정하는 신앙의 성숙을 이루는 순간이 새길의 '발견'입니다.
이른 시간. 젖은 안개가 숲에 내려 앉았지만, 정대현 형제의 나직하고 진지한 성찰의 메시지에 세상의 아침은 투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서의 이야기에서 바리새인은 "어느 때"를 묻습니다. 다윗 식 통치의 나라를 생각한 질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너희 안에" 라고 대답합니다. 어제 한완상 형제와 함께 이야기했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레위 지파 등으로 분류하는 혈통 중심의 선민 공동체가 아니라 유대인이든 사마리아인이든 누구나 접근 가능한 이웃연대, 인간연대의 열린 공동체를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가 "너희 안에 있다."고 말한 것은 하느님 나라가 인간연대의 이웃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새길의 모습은 두 가지 특징을 갖습니다. 첫째, 새길, 하느님의 나라는 "볼 수 없이" 임하는 비제도적이라는 것입니다. 사회, 교육, 종교, 법률, 경영은 길을 제도화합니다. 제도화된 길은 대량생산체제이므로 편리합니다. 하지만 만인에게 유익을 준다는 이 길은 작품이 아닌 상품이고, 과정이 아니라 결과에 집중하는 길이고,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이끌리는 길입니다. 우리가 새길을 고집하는 까닭은 상품성, 결과주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함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지 않습니다. 제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서 다른 곳에 "도둑처럼 임하는" 하느님 나라 비유를 상기해 보십시오. 제도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기대하는 것은 엉뚱한 곳에서 기다리는 어리석은 신부와 같습니다. 그것은 하느님나라를 고정화하는 것입니다.
월드컵 때 '붉은악마' 현상을 보며 제도 속에서 있던 사람들은 당황했을 것입니다. 교육, 제도, 언론에 갇혀 있을 때 붉은악마는 저만치 가 있었습니다. 다른 예를 들면, UNDP의 1974년《가족의 형태 선언》은 이성부부 뿐만 아니라 동성부부도 포함하고 있는데도, 대학의 윤리학 교수가 동성애를 "소름끼친다."고 하는 것도 앞서 가는 시대정신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고정관념에 머물러 있는 동안 하느님 나라는 저만치 가 있습니다.
새길, 하느님 나라의 둘째 특징은 "하느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는 가르침을 통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보조국사 지눌은 손가락을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느님 나라와 나는 분리되어 나타날 수 없으므로, 새길, 하느님나라는 우리 안에서 시작합니다.
새길교회는 제도적 직분을 없애고 신앙고백이라는 최소화한 내용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새 길은 대중의 길이 아니라 소수의 길입니다. 독립적이면서도 연대성을 생활화하는 길입니다. 개성적이면서도 차이를 존중하는 길입니다. 제도화될 때 더 이상 새 길이 아닙니다. 제도화될 때 손끝만 보게 되고 내용을 경시하게 됩니다.
고립된 개인, 맹목적 집단이 아니라 창조적 개인들의 수평적 연대로 새 길을 발견하자는 메시지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공명(共鳴)했습니다.
새길의 생명은 타인의 삶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한 삶의 모험에서 발생하는 기쁨입니다. 상품이 아닌 작품, 결과가 아닌 과정, 형식이 아닌 내용에 주목하는 길이 소수의 길이요, 새길입니다. 함께 모여 대화하며 새길의 정체를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 장면 5 - "발견"
15일 오전, "나의 신앙 나의 새길"을 시작하면서, 사회를 맡은 강조웅 형제는 "배우는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새 교우의 말씀을 듣고 대화함으로써 서로를 발견하는 자리를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낮아진 마음으로 대화하며 서로를 발견하는 시간... 삶의 무늬가 아름다운 사람을 발견하는 '진지한 삶의 모험'이 기쁨을 발생시켰습니다.
"발표를 어떻게 준비할까요?" "편하게요." "......"
말이 그렇지, 공동체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 것이 편할 리 있겠습니까. 하지만 미리 부탁드린 네 분의 발표자, 김종일, 신동갑, 박중수 형제와 남선녀 자매는 여유있고 당당하게 '새길'과 '새 길'을 이야기했습니다.
신동갑: 작년 6월부터 새길교회에 나왔습니다. 준비위원장이 청년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달라고 하셨지만, 청년부도 없는 상태에서 청년들을 대표한 발언이긴 어렵겠네요. 편하게 새길에 대해 느낀 것을 말하겠습니다.
모태신앙을 가진 저는 기성교회 중에서도 주로 작은 교회들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기성교회의 사회참여, 이웃에 대한 봉사가 항상 부족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죠. 그러다 신문기사를 보고 새길교회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새길교회는 참 편합니다. 안나와도 왜 안 나오냐고 묻지 않으니까요.(웃음) 하지만 기존교회에서는 익숙하지 않았던 것들이 많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들 중에 지금은 나오지 않는 분들은 새길교회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새길의 색깔을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저 같은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100%만족시킬 수는 없겠죠. 그래도 다양한 바램을 충족할 수 있는 다양한 소모임을 활성화시키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그래야 새길의 뜻도 세대를 이어가며 지속될 수 있을 겁니다.
박중수: ... 새길교회의 좋은 점은 평신도가 주인인 민주적 교회라는 점, 구제활동에 큰 비중을 둔다는 점, 남녀평등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우선 교우간 대화가 부족하고, 새 교우를 위한 프로그램이 부족합니다. 누구나 처음엔 말붙이기 어렵죠. 새교우들은 더욱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난 6월 23일 새교우 모임 때 참석했던 분들 중에 벌써 보이지 않는 분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 또 전도도 부족합니다. 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가 많지 않고 교우들의 노령화도 눈에 띠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 그리고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 중 "당신"이라는3인칭 극존대어를 그냥 "하느님", "주님"으로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명상"이라는 말도 그냥 "기도"로 했으면 좋겠구요.
남선녀: 기성교회를 다니며 고민한 것은,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알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을 꼭 교회 가서 배워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기성교회는 저를 지치게 했어요. 목회자, 제직 간의 갈등도 원인이었지만 기성교회의 문화와 신앙, 제도가 제게 상처를 주었으니까요. 다니던 교회를 떠나 반년 정도 다른 교회들을 순례했지만, 기성교회의 틀 안에서는 제가 생각하는 신앙의 모습을 찾는 데는 한계가 있었어요.
어떤 권사님 생각이 납니다. 그분은 권사가 될 거라 믿고 열심히 일하며 임직식을 준비했어요. 선물을 준비하고, 돈을 모으고... 그러나 그런 모습이 하느님 나라에 어떤 의미가 있나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처럼 조금의 의심도 없이 제도의 허상에 묶어두는 것을 보며 아픔을 느꼈어요. 종교가 개인적 기복신앙에만 이끌리는 것이 괜찮을까요.
... 목회자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저 같은 평신도들이 분별력을 가지고 앞장서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기대로 새길에 왔어요. 물론 새길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것을 잘 알아요. 하지만 큰 틀이 바르게 유지된다면 작은 문제들은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새길에 와서 기쁩니다. 여러 말씀증거자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가고 있고, 문화원의 계간지 등을 통해 의미 있는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 가는 노력도 기쁩니다. 오늘 정대현 형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과정에 대해 관심을 더 갖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관점으로 대화하며 진리에 다가가는 과정 말이죠.
... 아쉬움이라면 새길신앙고백대로 행하며 살고 있나 하는 반성인데, 그것은 앞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김종일: 건대에서 8.15 통일행사를 마치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미국의 패권주의를 저지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실천의 현장에서 늘 만날 수 있는 김종일 형제... 그 바쁜 날 오전 시간을 쪼개어 덕평까지 찾아 준 형제의 새길 사랑은 얼마나 깊은 걸까요.)
... 수련회때 새길신앙고백문을 암송하라고 해서 부담이었는데,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하면서도 아쉽습니다. 지난 해 6개월 동안 감옥에 있을 때, 혼자 예배 드리면서 하루에 열 번 이상 신앙고백문을 읽고 기도했던 기억이 납니다. ... 막대기로 바닥에 새길신앙고백문을 쓰며 위로 받기도 했죠.
... 새길교회는 2000년 9월부터 나왔습니다. 매향리 일을 할 때 후원금을 보내셨기에 인사차 왔다가 정착하게 된 거죠.
... 새길교회의 장점은 열린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제가 그 동안 교회에 대해 느꼈던 부담감이 없습니다. 기존교회의 직급, '우리만의' 울타리, 교회내 계층 서열이 없이 평등하고, 자유로운 교회니까요.
저는 새길교회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예수따르미라는 말도 좋아합니다. 새길 설교집을 옥중에서 읽으며 늘 감동했죠. 실천적 신앙의 길을 걷는 예수 따르미의 삶이 제게 큰 힘과 용기를 줍니다.
... 새길교회가 한국 기독교를 변화시키길 기대하며 세 가지 과제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첫째, 교회 밖 사회까지 넓게 보기를 원합니다. 둘째, 참 신앙인 새길신앙고백에 의거하여 교회의 이름으로 중요한 사회, 정치적 사안에 대해 성명 등의 형태로 입장을 표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셋째, 젊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좋은 전통은 계승해야지요.
네 분의 지정 발표가 끝난 후 새교우들의 짧은 소감과 발언이 자유롭게 이어졌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를 들은 기존 교우들의 반응은... "정말 새교우 맞아요? 아닌 것 같애."
조봉기: 15년 된 교회에 무임승차하여 죄송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나 저나 여기까지 오면서 신앙적으로 거친 시련을 겪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 사회 구원의 힘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필요가 아니라 하느님의 필요에 의해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새길이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단 우리 새교우들이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 많이 개발해주기 바랍니다.
조철호: 저는 작년 5월부터 나왔습니다. 기존교회의 교권, 계급에 지쳤는데, 새길에서는 늘 자유롭고 즐겁습니다.
김경보: 지금의 교회는 일종의 비즈니스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55년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갈수록 기독교에 정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요즘은 불교 서적을 더 많이 읽습니다. ... 새길교회에 대한 기대라면 '하나님' 이라는 말 대신 '하느님'이라는 말 썼으면 좋겠고, 일제에 의한 용어인 '성가대' 대신 '찬양대'로 돌렸으면 좋겠습니다.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도 우리말법에 안 맞고 예수에 대한 건방진 언어들이 있으니 고쳤으면 좋겠고, 새길신앙고백도 순 우리말로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박선옥: 저는 여선교회 금요성경공부를 하며 새길에 참가했습니다. 새길의 진보성을 보며 한편으로는 좋으면서도 갈등을 느낍니다. 기존교회에서의 문제와는 달리 여기서는 너무 건조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때로는 살아 움직이는 신앙을 보고 싶어요. 하지만 하느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가리킨 방향으로 어린아이처럼 섬기며 살아간다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거에요.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작은 부족함은 서로 보완하면 됩니다. .
이혜경: 새길은 너무 고상한 것 같아요. 새 교우들이 와도 말 걸고 하는 것을 어색해하는 것 같아요. 나중에 들으니 방문자가 많다보니 처음 온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려서, 실수할까봐 머뭇거린다고 하더군요. 그치만 실수하면 어때요? 저는 망가지는 모습 보여주려 이곳에 왔어요.(웃음) 실수하는 연습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서지영: 신학적 고민을 깊이 하는 남편이 여러 교회를 전전하다 새길교회를 오고 싶어했어요. 덕분에 저도 말씀증거를 통해 사회를 보는 시각, 신앙의 실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제겐 교회와 세상의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에서 부딪히고 힘들 때 서로에게 힘이 되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황재홍: 예배형태가 다를 줄 알았는데 똑같다는 것이 의외였습니다. 또 교우들은 먹고사는데 지장 없는, 부유한 사람들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오랜만에 오신 분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들으면 다 외국에서 돌아오신 분들이더군요. ... 개인적 걱정은, 지난 시절 교회에서는 사회참여, 실천을 놓고 싸웠지만, 새길에서는 싸울 대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헌금, 예배참석으로 내 할 일 다한 것이라고 안주할까 염려됩니다.
양승철: 지난 4월초부터 나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오랜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후 교회를 찾다가, [예수는 없다]를 읽고 새길교회를 찾아왔습니다. ... 현각 스님 같은 분의 글도 읽으면서 종교적 다원성에 대한 확신이 듭니다. ... 어린 시절 신앙의 정수를 다시 맛보고 싶습니다. 이제 현실에서 도태했거나 게을렀던 신앙을 다시 새로이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기도 하지만 새로워서 좋습니다.
김태강: 실생활에서 너무 자주 스치는 이웃, 가난한 이웃을 위한 도움의 요청, 이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라는 갈등이 있어요.
홍승래: 신앙은 삶입니다. 말씀도 중요하나 삶 속의 흔적을 가진 고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직장에 갈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 많이 걷습니다. 자연 세계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자연의 제 주체는 만족하며 살고 있는데 우리 인간은 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 새 길은 깨친 자들이 개발하고 터전을 이루며 하느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우리의 삶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진수가 아닐까요. "너희 마음 안에 있다"는 말씀을 늘 되새겨봅니다. 삶의 현상에 감사합니다.
이찬교: 아침에 등산을 많이 합니다. 산에서 느끼는 생명의 힘 앞에 성경 없이도 하느님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 거지들에게 밥을 차려주시던 어머니 생각도 들구요. ... "깊은 신앙, 넓은 신학"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좋은 신학 책을 소개해줬으면 좋겠어요.
민정애: 남편과 함께 교회에 왔습니다. 말씀을 통해 새로운 부분을 많이 알게 되었어요. 교회만이 아니라 사회에서도 공동체를 이뤄야 하지 않을까, 예수 따르미가 되려면 내 재산, 생명,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데 그렇게 살고 있는가 늘 반성합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힘을 합치면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한 쉼터, 공동체를 세울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제 기도제목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교우 기존교우의 구분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멋쩍게 인사를 주고 받는 의례가 아니라 새길이 존재하는 이유, 새길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에 대한 토론이었으니까요.
이혜원: 어제 누가 청년부 있냐고 묻기에 '부회장'인 저는 충격 받았어요.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못하고 있는 것이 부끄러웠으니까요. ... 하지만 새길교회의 미래를 우리도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송오엽: 모태신앙인 저는 하느님의 성전을 끔찍이 여겼어요. 기존교회 있을 때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 "내 신앙이 제일"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죠. ... 하지만 새길에 와서 젊은이들의 봉사에 감동했습니다. 저의 독선과 교만을 깨닫고 젊은이들을 신앙적 본보기, 제 신앙의 스승으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 주일에 교회에 나오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요. 새길교회가 선구자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기도합니다. 남은 여생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 처음 오신 분들은 부담감을 가지시겠지만, 내면 깊이 만나면 그렇지 않을 거에요.
조혜자: 제도 없이 이끌어 가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함께 참여하고 기도하며 풀어가야겠습니다.
박민병: 새교우 환영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이 교회 오기 전에는 주일마다 고민이 많았고, 죽을 때까지 올바른 교회를 발견하지 못할까 걱정했습니다. 새길교회는 자유스럽고, 모든 성도가 사제라는 의식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이 교회를 마다하고 다른 교회는 갈 수 없을 겁니다. ... 우리 교회 자매님들의 봉사와 희생이 감사합니다. ... 서로를 비방하지 않는 문화도 좋습니다. 새길은 현미경으로 봐도 흠집이 없습니다. ... 저는 하느님, 예수님을 사랑하고, 근래엔 욕심도 버렸어요. 여러분을 보며 삶의 가치를 다시 느낍니다. ... 사도신경 문제는, 그게 내 진실된 신앙고백인가 하는 고민이 듭니다. 공론화시켜 빼는 문제도 논의했으면 좋겠습니다.
한완상: 신학은 넓어지는데 신앙은 깊어지고 있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울부짖는 신앙, 사회정의, 종교다원주의가 조화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 가장 아픈 점은 노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제 재생산을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쇠해야 하고 젊은 예수따르미들은 흥해야 합니다.
아직 못다한 이야기가 더 많았지만 어느새 '발견'의 성과를 종합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길희성 형제가 전체 토론을 종합하며 새길의 의미와 목적을 이야기했습니다.
길희성: 여기 오신 분들, 새로 오신 분들은 구도적 자세로 오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는 것이 새길교회에 나오는 기쁨입니다. 종교 타락의 근본 원인은 구도정신을 잃고 질문을 잃는 것이다. 종교가 가장 순수할 때는 대답을 줄 때가 아니라 질문할 때입니다. 그것이 정직한 신앙입니다. 이런 면에서 새 교우, 구 교우가 없이 다 구도자입니다.
우리에게는 교회 갱신 개혁의 사명이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지금은 개혁 정도가 아니라 기독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새로운 탄생이 필요합니다. 단지 도덕적 타락의 회복 문제가 아니라 신앙, 신학을 바꾸어야 한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용기 있게 대할 수 있고,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은 진리보다는 사랑이, 교회보다는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리의 차이로 싸울 수는 있지만 사랑의 실천으로 다투지는 않습니다. 마음놓고 묻고 질문하며, 기독교의 새로운 탄생을 모색해야 합니다.
우리에겐 제도적 취약성이 있지만 큰 방향은 제대로 잡혀 있습니다. 한국교회사에서의 새로운 실험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실천입니다. 이 비판은 언제라도 달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 새길교회의 한 가지 유혹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너무 편해지려는 것입니다. 기존교회의 열심을 바른 방향으로 배워야 합니다.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가 그것입니다. ... 우리 교회의 봉사도 그리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재정의 60%를 사회 환원한다지만 실은 목회자가 없어 그럴 수 있는 것일 뿐입니다. 목회자가 있고 없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유라는 이름으로 나태, 방관이 조장되는 것이 유혹입니다. 좋은 방향으로 열심을 냅시다.
무려 3시간 동안의 긴 토론이었지만 그 열기와 집중력이 대단했습니다. 물론 말로 표현하지 않은 분들이 더 많았지만 진지한 눈빛에서 자신의 신앙과 새길을 탐구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세상에 이런 일이 - 새길교회의 희한한 '새교우' 범주
"안녕하세요? 새 교우 ○○○입니다. '작년 6월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 장면 6 - "삼십 년, 삼십 년 만에 처음 말하는 거에요! "
수련회를 마친 후 국어사전을 뒤적여【신랄(辛辣)하다: 어떤 일의 분석이나 지적이 매우 모질고 날카롭다.】를 찾아봤습니다. 왜냐구요? 문제의 촌극 경연. "발야구 했으면 큰일 날 뻔 했어요." 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즐겁고 재미있었던 그 시간에 '신랄하다'는 느낌 또한 여러 번 받았거든요.
한국 기독교 현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극적 풍자를 통해 가장 생생하게 표현되었던 것 같습니다. [앗싸앗싸조]의 '평신도 2'(신동남 자매)는 "조용히! 구역예배중!" 팻말을 걸어놓고 이웃의 비참에 눈감은 자폐적이고 왜곡된 권위에 저항하며 외쳤죠. "제발, 나 말하는 것 막지 말아요. 삼십 년, 삼십 년 만에 처음 말하는 거에요!" 우린... 전율했습니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그녀의 말을 막을 수 있겠어요.
[영란조]의 강도(신동갑 형제)는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거친 글씨의 어깨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독선과 오만이 강도의 기질이라는 비판이었죠. 한편 [오마리아조]의 돈밝히고 교만한 목사(문현재 형제)에 대한 풍자도 신랄했습니다. 그 무지막지한 교회 현실의 모습들이 단지 드라마일 뿐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성냥팔이 소녀(강기철 형제)는 바닥에 쓰러진 채 "오∼필승 하느님∼"을 반복하여 외쳤습니다. 처음엔 극의 흐름을 끊는 과장된 소음처럼 들리던 외침을 계속 듣다보니,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은 정말 승리하고 계신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교회 밖 비참에 눈 감고 귀 닫은 채 섬기는 하느님은 누구의 하느님일까? 그런데도 "필승 하느님~"을 외치는 역설적 상황은 또 무엇일까? ...
우리는 웃었습니다.
하지만 아팠습니다.
웃음도 이렇게 아플 수 있는 거구나... 하면서요.
▒ 장면 7 - "파격"
촌극 30분 전의 대화. "길희성 형제와 한완상 형제도 촌극에 참여할까요?" "글쎄요? 참여해도 얌전한 역 정도 아니겠어요?" 잠시 후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길희성 형제는 썬글래스 낀 '킹카 날라리' 청년으로 등장했고, 한완상 형제는 얼굴에 화장까지 한 채 '빈약가슴 시녀'로 열연했습니다. 말 그대로 '파-격' 이었죠. ... 그뿐인가요. 정대현 형제의 '납작가슴 시녀' 연기, 최현섭 형제의 느끼한 '춘향(떠돌이신앙)' 연기와 민정애 자매의 능청스런 몽룡(물신교회)연기, 남선녀 자매의 얄미운 캐릭터... 그 외 많은 자매·형제들의 파격적 변신에 우리는 너무 웃다 그만 볼이 얼얼했습니다. (집단적 파격의 조짐은 그날 오전 토론 시간, 이혜경 자매의 '망가짐 선언' - 장면 5 -에서부터 나타났습니다. 그녀는 망가짐을 약속한 몇 시간 후 매우 현란하게 '망가졌습니다'. 하하... )
(다음 주일 아침)
최현섭: 왜 웃어요?
아무개: ...흡... 자꾸... 생각나서요... 하하...
저마다 견고한 울타리를 친 채 형식적 예의로 조심조심 비켜가는 얕은 만남에서 새 길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일그러진 권위를 해체하고, 내면화된 불평등을 제거하며, 인간과 인간의 소통을 막는 벽을 허무는 새 길... 그 길은 예수와 그의 동료들이 보여줬듯이 파격과 전복의 길일테니까요. 부부지간에도 체면 차리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수련회에서 일시적으로나마 체면 파괴, 파격을 두려워 하지 않는 상호신뢰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 Epilogue - 얼음을 녹이며
14일 자정을 넘긴 시간. "공동체를 이루는 시간" 마지막 프로그램인 '얼음 녹이기' 퍼포먼스를 시작했습니다. 주먹만한 크기의 얼음 속에는 노란 꽃이 한 송이 들어 있었습니다. 서로의 체온을 더해 얼음을 녹이고 꽃을 꺼내는 과정은 차갑게 얼어붙은 세상 속에 갇힌 하느님 나라를 회복시키자는 의미를 담은 거였죠. 손바닥보다 작은... 얼음이었습니다.
'작은' 얼음이 한 바퀴 돌기 전에 다 녹을 것을 걱정한 진행자들은 조금 빨리 돌려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시작한 사람에게 다시 얼음이 돌아왔을 때에도 얼음 속의 꽃은 여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었죠. 이젠 언제 녹을지 몰라 오히려 당황스러웠습니다. 결국 반 바퀴 정도를 더 돈 후에야 겨우 꽃은 얼음 속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세상에 새 길을 내는 것은 얼마나 힘겨울까요.
우리는 과연 선한 사마리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체온을 잃어가면서
독선과 오만의 거대한 빙산을 녹여
자유케 하는 진리의 새 길을 뚫을 수 있을까요?
혼자서는 어렵겠죠.
질문하는 구도자들, 작품이기를 애쓰는 이들,
자기를 비우는 예수 따르미들...
이들의 대화에서 길이 나고 다리가 놓이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런 자율적 개인을 발견하고,
이들의 자유로운 연대를 꿈꾸며 실험한 이틀... 은
새로운 카이로스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발견은 계속됩니다.
모든 발견은
그 다음 발견을 위한 초대장이다
- 테오도르 젤딘
▶ NG 장면 - 준비위원회 불화설(?)의 진상 ^^
"아니, 지금 위원장님이 머뭇거리면 어떡해요?"
"강하게 말씀하시라니까요!"
"보세요. 동요한다구요. 이 문젠 쎄게 나가야 한다구요."
"... 잠깐만.. 있어봐요. "
'발야구 파동'이 생겼을 때, 이상화 준비위원장과 준비위원들 간에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준비위원회의 균열 조짐을 확인한 교우들은 시위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죠. 결국 촌극 강행 처리로 결말지었지만... 준비위원들은 '다시 한 번' 준비위원장에게 눈빛 공격을 보냈습니다.
몇 달 동안의 준비 기간, 그리고 이틀 동안의 행사 일정 속에 준비위원장 이상화 형제는 김문음, 박현진, 정경일, 최민호 위원으로부터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눈빛 공격을 수 차례 당해야 했습니다. 다른 준비위원들이 원칙을 강조하며 '쎄게' 나가자고 할 때마다 그는 뜸을 들였습니다. 그가 "타협주의자임에 틀림없다."(?)는 내부의 의심과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랬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늘 교우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참석한 교우들이 힘들어할까, 불편해할까, 어려워할까, 재미없어할까 하는 고민을 몇 달 동안 지속했습니다. 그의 원칙과 기준은 "교우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였던 겁니다.
사실 준비위원들은 이상화 형제의 너그럽고 사려가 깊은 마음이 사랑스러워서 투덜거렸을 뿐, 준비위원회 불화설은 사실이 아닙니다.(믿어주세요! ^^)
비가 내린데다, 몇몇 순서의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면서 프로그램의 상당 부분을 재조정해야 할 경우가 많았지만, 준비위원들의 토론과 결정 과정은 매우 신속하고 확실했습니다. 몇 달 동안 꾸준히 의견을 조정해온 경험이 상황변화에 대한 신속한 대처 능력을 만들었던 거죠. 그때마다 '착착' 소리가 나는 것 들으셨나요? ^^
그러나... 준비위원회 평가회 날 준비위원들은 이상화 형제의 마지막 한 마디에 화들짝 놀라며 '경악'했습니다.
"하하... 다음엔 더 잘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