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다가 그치고 그차다가 또 온다. 현제는 약해졌다.
시간 대량 소비 사회
시간 대량소비사회
등록 2023-08-23 19:20수정 2023-08-24 02:36
게티이미지뱅크
[크리틱]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보이지 않는 도시> 저자가끔 강연하면서 청중에게 공간과 시간이 뭐냐 물어보면 코웃음과 함께 그것도 모르냐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이 두 단어를 합해 ‘그럼 시공간을 아느냐’ 질문을 바꾸면 갑자기 조용해진다. 가시적인 공간과 비가시적인 시간을 더하면 개념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선-면-공간으로 대변되는 1-2-3차원은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거기에 어디론가 흐르는 시간이라는 차원이 첨가되는, 우리가 실제로 존재하는 4차원 세계는 피상적이다. 마치 선위에 사는 생물 눈에는 점만 보이는 것처럼, 우리는 실제 자신이 존재하는 세상의 차원보다 하나 낮은 차원까지만 인지하고 산다. 시간을 체감하긴 쉽지 않다.이렇게 보이지 않는 시간을 기록하는 특이한 매체가 있다. 바로 사진이다. 사진을 찍는 것은 소수만이 누리던 특권적 행위였다. 카메라 자체도 비싸고 조작하기 어려웠거니와, 고가의 필름을 사서, 또 비싼 현상·인화를 거쳐야 하는 절차적 장벽 때문에 특별한 날에나 카메라를 꺼내곤 했다. 엄마가 차린 생일상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경복궁 소풍날 반 아이들과 함께, 강릉 여행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가족과 함께 한 순간들은 그렇게 소중히 종이에 기록되었고 앨범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앨범은 지나온 시절을 축적해 보여주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은 시간 속을 여행할 수 있었다. 시간은 ‘기억’이라는 형태로 우리 곁에 있었고, 그렇게 우리는 시간이 흐르는 4차원 세계에 산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곤 했다.90년대 초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자 사람들은 메모리카드의 데이터를 컴퓨터에 옮겨 모니터로 사진을 보는 데 익숙해진다. 필름 걱정 없으니 애들 생일날 수십장 사진 찍는 게 가능해진다. 90년대 말 등장해 국민소셜네트워크 반열에 올랐던 ‘아이러브스쿨’, 그에 열광한 이유는 자신의 일상을 남과 쉽게 나눌 수 있는데다 편리해서 너무 많이 찍고 그래서 역으로 정리하기 어려워진 디지털 사진의 모순점을 해결해 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사이버 앨범 속에 그들의 시간을 축적했다. 그러나 모든 유행은 흥망이 있는 법, 결국 서비스는 중지되고 대중의 관심은 금세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앨범 속에 저장됐던 10년간의 기억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더 편하고 매력적인 방식이 등장했기 때문이다.디카 시절에는 그나마 사진 파일을 컴퓨터에 옮겨 정리하고 한번씩 시디(CD)에 저장이라도 하던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손쉽게 찍고 올리면 되는 ‘인스타’나 ‘페이스북’이 등장하자 그 편리성에 금세 빠져든다. 그리고 기록보다는 공유할 목적으로 사진을 찍고 올리는 데 익숙해진다. 전화기에는 최근 몇년 동안 찍은 수천장 사진으로 가득 차 있고, 인기 소셜네트워크에는 매일 업로드되는 타인들의 멋진 사진이 넘쳐난다. 이처럼 사진을 대량소비한 적은 인류역사상 없었다. 19세기 중반 사진술이 발명되어 지금까지 인간이 찍어온 사진의 총량보다 최근 10년간 생산된 사진의 수가 더 많을 정도다. 작고한 ‘소비의 사회’ 작가 쟝 보드리야르는 시간마저 대량소비하는 사회라 했을 것이다.놀라운 것은 이렇게 현재라는 시간을 과할 정도로 소비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분실했을 때, 컴퓨터를 바꿀 때, 온라인 서비스의 유행이 바뀔 때 그들의 축적된 기억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에는 무감각해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현대인은 순간의 풍요에 취한 채, 기억이라는 시간은 사라진 파편화된 4차원 세계를 살아간다.
[2030 플라자] “아무도 잼버리 근무를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
입력 2023.08.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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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것 같더라.”
제25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파행으로 끝나갈 즈음, 공무원으로 일하는 한 친구는 이렇게 평했다. 잼버리 이전 국제 행사에서 우리 행정이 별 문제 없이 작동해왔던 것이 신기한 일이라면서 말이다. 실제 대한민국 행정은 정치권력과 무관하게 십수년 동안 계속 망가져 오기만 한 듯하다. 철근이 빠진 상태로 지어진 아파트처럼, 국가 행정의 뼈대 역할을 하는 업무 기준은 사라진 지 오래다. 주먹구구 식으로, 정치권력의 관심에 맞게만 운영된다. 필자가 공무원을 그만둔 후 4년이 지났고 정권 역시 새로이 바뀌었지만, 전문성 없이 한 순간만을 모면하려고 하는 파행적 업무 관행은 여전하다고 한다.
잼버리도 그러했다. 여러 언론들에서 예산 낭비를 지적하지만, 예산 낭비 이전에 조직 및 인사 파행이 먼저 있었다. 여성가족부 인가 조직이었던 잼버리 조직위원회는 전라북도 부안에 위치했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근무하던 여성가족부 공무원 중 임시 조직인 잼버리 조직위원회에 파견을 나가고 싶어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라북도청 공무원들조차도 부안에 위치한 조직위에 파견 나가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업무에 대한 보상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고, 그 결과 여가부 공무원이건 전라북도청 공무원이건 잼버리 조직위원회에서 근무하는 것은 격오지 근무를 의미하는 ‘냉탕’ 근무로 여겼다고 한다.
파견 근무자 선정조차 어려움을 겪었고 능력 있는 공무원들은 잼버리 조직위에 파견 나가는 것을 피했다. 조직위에 파견 나간 공무원들은 담당한 잼버리 업무보다 ‘하루라도 빨리 복귀하기 위해 본부 인사과에 연락하는 일’을 우선시했다고 한다. 잼버리 조직위에서 2~3년 이상 책임감을 가지고 근무한 공무원은 찾아보기 힘들다. 1년 단위로, 아니 1년도 채우지 않고 담당 공무원들이 바뀌어 나갔고 그 속에서 잼버리 준비는 뒷전으로 밀렸다. 조직위윈회와 전라북도청의 업무 분장도 명확하게 나뉘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한 해를 모면하는 식의 행정이 지속되었다. 2017년 유치한 잼버리 메인 센터 건립 입찰 공고를 2022년에서야 내고, 입찰 공고를 내면서도 잼버리 행사가 끝난 이후 센터를 완공하는 것으로 계획했던 것에는 이러한 행정적 파행이 있었다.
1년 이하의 순환 보직은 자연스럽게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과 그에 따른 예산 낭비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새로 업무를 담당하게 된 공무원은 잼버리 현장을 파악하는 데 당연히 상당 시간을 소요하게 된다. 그것을 대체하려 수억원 단위의 돈을 들여, 세금을 낭비해 가며 잼버리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 방안을 수립하는 외부 용역을 진행했다. 정상적인 행정 시스템하에서는 현장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담당 공무원의 역할이다. 다른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해야 할 일이 그것이다. 해외 출장은 어떠한가. 애당초 출장을 나가는 공무원은 다음 연도에 잼버리와 관련된 업무를 하지도 않을 사람이었다. 그들에게 잼버리를 명목으로 출장을 나가게 한 것은 세금을 들여 공무원에게 여행을 시켜준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나라의 지방 공무원 사회에는 사무관 승진 때나 은퇴 전에 외유성 해외 출장이 여전히 관행화되어 있다. 잼버리 관련 일을 하지도 않을 사람들에 대한 외유성 출장에 우리 세금이 낭비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다른 어떠한 업무에 우리 세금은 그렇게 낭비되고 있다.
사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핼러윈 참사 등으로 우리 행정의 민낯이 여러 번 드러났다. 그러나 그들 사건들이 행정 관행의 개선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그저 정치 쟁점이 되었을 뿐이다. 이제라도 행정이 바뀌어야 한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한국 행정이 더 망가지기 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