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면 전법마을 입구에 조성된 나무숲을 칭한다.
전법마을은 당초 강릉김씨 집성촌으로서 마을에 재난과 인명피해가 잦았다.
이에 마을 앞숲을 조성하면 재난이 없을것으로 염원하여 약 350여년전에 조성된 울창한 고목숲이다.
현재까지 마을보호수로 매년 정월보름에 고살르 드리던것을 지금은 3년에 한번 고사를 지내고 있다.
지금도 잘 보존하고 있으며 정자와 운동기구등을 설치하여 마을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이 나무숲과 관련된 인물로 조선조때의 인물인 김석(金錫)을 꼽을수 있다.
김석(金錫)은 1495(연산군 1)~1534(중종 29)때 사람으로 자(字)는 공하(公瑕)로 승지공(휘 수형壽亨)의 차자인 참판공(휘 언묵彦黙)의 자이다. 이문건의 처남이다.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租)의 문인(門人)으로서 학문이 높았으며, 1519년(중중14) 진사(進士)에 급제[權璉 榜下]하였다. 그 해 겨울에 기묘사화로 은사인 조정암이 화를 당하자 서울 남산 아래의 주자동(현 서울시 중구 회현동 극동빌딩 자리)에서 살다가 사화를 피해 외가인 의성김씨들이 많이 살고 있는 충북 괴산군 문광면 문법리(文法里)로 은둔하였다.
곧 이웃의 전법리(典法里)로 옮겨 살았으며,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곳은 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공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속명을 ‘금석골(김석이 살다가 서거한 직후부터 어느 시기까지는 ’김석골‘로 불려지다가 나중에 ’금석골‘로 불려진 것으로 여겨진다)’이라 부르고 있는데, 현 문법2리(전법리) 631번지 지덕규씨 소유의 집터가 공의 거주지이다.
당시 마을의 안녕과 복락(福樂)을 위하여 공이 조성한 문법숲(일명 금석숲)이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으며,숲 입구에는 공이 세웠다는 이문거리 표석(里門距離 表石)이 남아 있다. 1534년 4월 11일 수40세로 몰하였는데 1581년(선조14)에 자 문숙공(휘 제갑悌甲)의 추은(追恩)으로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경진보]. 전게서. 김항용 소장본 기록). 묘소는 괴산읍 능촌리 개향산 백현묘원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