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입니까?
Living the Life of the Lifegiver 에서 발췌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그분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사람의 생명을 멸하려 함이 아니요 구원하려 함이라” 고 말씀하셨으며,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종종 그분의 은혜의 사명과 심판에 대한 경고를 연결시켜서 말씀하셨는데, 누가복음 13:6~9에 나오는 무화과 나무의 비유에서도, 당신의 사명을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과 연결시켜서 설명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에 대해서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그 놀라운 사건에 대해서 너무나 무지하였으며, 무관심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업과 관련된 날씨와 하늘의 상태는 잘 식별하였지만, 주님의 임하심을 명백히 가르쳐 주는 때의 징조에 대해서는 전혀 분별하지 못하였다. 그 당시의 유대 사람들처럼,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자신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심판받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성경에 기록된 심판에 관한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시켜서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 무화과 나무의 비유는 심판에 관한 비유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과 우리의 구원을 취급하시는 그분의 방법에 대한 교훈이 포도원과 무화과 나무의 비유에 잘 표현되어 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 :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 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13:6~9
이 비유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고자 하는 바를 오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구약성경에 기록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이사야 5:7. 예수께서는 그 당시의 유대 백성들을 주의 포도원 안에 있는 무화과 나무로 비유하셨는데, 여기서 포도원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와 축복의 울타리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이미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당신의 목적과 기대를 표명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신의 진리를 맡김으로써, 진리를 통하여 그들의 성품과 생애가 변화되어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진리가 온 세상에 전파되고 증거되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기대와 소원을 저버렸다.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혔도다.” 이사야 5:1,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열매를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포도원 안에서 살면서 풍성한 열매를 맺는 대신에 오히려 “땅만 버리”게 만들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여 온 세상에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세상에 저주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종교는 마른 사막과 같았으며, 형식적인 경건의 모양만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전파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없었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장해물이 되었다. 그들의 종교는 영혼들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는 대신에 멸망으로 인도하였다.
비유의 말씀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지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주인과 포도원지기에게 가장 기쁜 일은 포도원 나무에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가 아무런 열매를 맺지 않자, 주인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포도원지기에게 명령했다. 주인의 명령을 들은 포도원지기의 대답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그 역시 “찍어버리라”는 주인의 의견에 동의하였지만, 마지막으로 한번의 기회를 더 달라고 탄원했다. 과수원 안에 있는 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하여 보살피겠다는 과수원지기의 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실과 사랑을 엿보게 된다. 과수원지기는 그처럼 희망이 없어 보이는 나무일지라도 가꾸기를 거절하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나무에 더욱 많은 손질을 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포도원 주인과 포도원 지기는 그 무화과 나무에 대해서 동일한 관심을 가졌다. 이와 같이 하늘 아버지와 아들은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하여 동일한 사랑을 나타내셨다.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청중들에게 다시 한번 더 기회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들이 주인과 과수원지기의 수고에 부응하는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비유에서 과수원지기가 한해를 더 일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채 이야기를 마치셨는데, 그 이유는 그 비유의 결론은 당시에 비유를 들고 있던 그 세대에 달렸기 때문이었다. 즉, 그들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라”는 최종 경고는 받았다. 다시 번복될 수 없는 마지막 경고를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그들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그분의 제자들을 끝까지 핍박함으로써, 자신들에게 베풀어진 마지막 은혜의 시간을 스스로 종결시켰다.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는 그들의 운명을 결정케하는 최종 기회인 동시에,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시며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라”는 경고는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적용된다. 혹시, 그대들은 주의 포도원에서 땅만 못쓰게 만들고 있는 열매없는 나무가 아닌가? 그대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최후의 선고가 내려질 시간이 곧 이르러 올 것이다. 그대들은 지금까지 얼마 동안이나 하나님의 은혜의 포도원 안에서 살아왔는가? 지금, 주님께서는 당신의 수고와 노고에 부응하는 사랑과 충성의 열매가 그대 속에서 맺히기를 고대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포도원에 심어져서, 포도원지기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아 온 그대의 특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아는가? 은혜의 복음이 몇번이나 그대의 마음을 감동시켰는가! 혹시 그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가졌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일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와 살아있는 관계가 결핍되어 있지는 않는가?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가 그대의 영혼을 흠뻑 적셔주고 있는가?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나누어 받고 있다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증거인 “성령의 열매”가 그대의 성품과 생애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가? 그대에게 “찍어버리라”는 최종 선언이 내려지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 하에서 그대가 마땅히 맺어야 할 열매를 맺으라.
열매 맺지 않는 나무에게도 비와 햇빛과 과수원지기의 보살핌이 공평하게 나누어 진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도 과수원의 땅으로부터 충분한 양분을 공급받고 있다. 그러나 그 나무는 열매를 맺는 대신에 아무런 쓸모없는 잎들만 무성하게 생산해 내었다. 열매 맺지 않는 나무의 가지는 무성한 잎들로 땅을 어둡게 하기 때문에, 주변에 있는 나무들과 식물들이 성장하고 열매 맺는 일에 부담과 장애를 가져다 준다. 혹시, 그대는 하나님의 포도원에 장애와 부담을 주는 존재가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크신 자비로서 아직 그대를 찍어버리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그대를 냉정한 눈으로 보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대를 무관심하게 대하시거나, 그대가 그대로 멸망당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으신다. 긍휼이 많으신 구세주께서는 그대를 위하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다고 과수원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대언하여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추가로 베풀어진 기간 동안에 얼마나 희생적인 사랑과 수고로 마지막 노력을 기울이셨는가? 그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말씀으로 그들을 변호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복음은 먼저 예루살렘에서 전파되었다. 거기서 오순절 성령이 퍼부어졌고, 거기서 놀라운 성령의 권능이 펼쳐졌으며, 거기서 스데반이 “천사와 같은” 얼굴로 주님을 증거한 후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사도행전 6:15). 하늘이 줄 수 있는 모든 기회가 그들에게 베풀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고 말씀하신다(이사야 5:4). 그러므로 포도원지기인 주님께서는 오늘도 다음과 같은 수고를 그대를 위하여 더하시고 계신다.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상해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사야 27:3.
그러나 다음과 같은 포도원지기의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성령의 역사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완고하여져서 마침내는 성령의 감화에 대한 감수성이 사라지게 되는데, 바로 그러한 순간에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라는 최후 선고를 받게 된다. 오늘도 주께서는 그대를 부르신다. 최후의 순간까지 성실을 다하시는 포도원지기의 보살핌과 수고에 대한 보답으로써, 풍성한 열매를 그대의 품성과 생애에 맺어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열매 맺는 나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겉모양은 그럴듯한데 속은 텅 비어 있는 쭉정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 나의 영혼 속에서 알곡이 충실히 영글어 가고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하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꼴지워져 가고 있는지를 깊이 헤아려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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