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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조선왕릉~3)
"단종의 얼과 혼이 숨쉬는 곳."
"영월 장릉 (莊陵:단종릉),청령포(淸泠浦) 나들이...,"
(장릉,관풍헌,자규루,청령포 등...,)
"강원 땅 가장 남쪽에 오이처럼 길쭉하게 누워 있는 영월은
강(동강,서강)과 산이 어우러진 뛰어난 풍광을 가지고 있으며
단종(端宗)의 무덤인 장릉(莊陵)을 비롯하여 관풍헌, 자규루,청령포 등
단종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 곳곳에 있으며 단종의 행적에 얽힌 땅 이름과
전설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특히 어린나이에 이곳 영월 땅에 유배되어
한많은 짧은 생을 마감한 단종애사의 길을 따라가 봅니다."
(장릉 : 단종릉 가는 안내판)
"구름도 울음보를 터뜨리는 소나기재(선바위 입구),
영월읍으로 들어 서려면 이 눈물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이 되었으나,작은 아버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결국 심산유곡 영월땅으로 유배되어 17세에 죽임을 당한 이름도 애련하게
느껴지는 단종(端宗)임금,그의 길을 따라가 봅니다."
(장릉으로 가는 길의 홍살문 : 紅殺門)
"멀리 잦아지는 능선이 장관인 소나기재를 넘으면 "단종애사(端宗哀史)"의
사연이 깃들어 있는 마을, 충절의 고을 입구임을 예고하는 듯
홍살문이 나그네를 인도합니다."
(장릉입구의 표지판)
"조선왕릉(장릉:단종릉)은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장릉 : 莊陵 입구)
(세계문화유산 표지석)
"세계유산 조선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능(陵)(40기)으로
우리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 곳에서 재례(齋禮)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입니다."
(장릉 가는 길)
(장릉가는 아름다운 숲길)
"능선을 힘들게 올라서면 빽빽한 소나무 숲사이로
장릉으로 가는 길이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능선길에 서 있는 안내판)
(장릉 전경)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나 원형이 잘 보존된 왕릉으로
다른 능과는 달리 산줄기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장 릉 : 莊 陵...,단 종 릉)
"장릉(莊陵)은 조선 제 6대 단종(端宗)의 능(陵)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 청룡포에 유배된 단종이
17세의 어린 나이에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하여 묻힌 곳입니다."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이가 없자 영월 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장릉에 모셨다고 합니다."
(장릉에서 바라본 소나무숲)
"왕관을 벗어 놓고 영월땅이 웬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아 슬픈 노래 부르며
한양천리 바라보고 원한으로 삼년세월
아~애달픈 어린임금 장릉에 잠들었네."
(장 판 옥 : 藏 版 屋)
"이 건물은 정조15년(1791)에 건립한 것으로 단종(端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忠臣位) 32인, 조사위(朝士位) 186인, 환자군노(宦者軍奴) 44인,
여인위(女人位) 6인을 합아여 268인의 위패(位牌)를 머셔 놓은 곳입니다."
(배 식 단 : 配 食 壇)
"이곳은 단종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충신위,조사위,환자군노위, 여인위 등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단종제향을 올린 후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엄흥도 정려각 : 嚴興道 旌閭閣)
"이 비각은 엄흥도(嚴興道)의 충절(忠節)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영조 2년(1726)에 세운 것입니다."
**충신 엄홍도가 영월호장(寧越戶長)으로 있을 때 단종(端宗)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유배되어 관풍헌(觀風軒)에서 1457년 10월 24일 조정에서 내려진 사약을 받고
승하하여 그 옥체가 강물에 버려지자 단종의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한다는
어명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함께 단종의 시신을 암매장하였다가
후일 장릉(莊陵)에 모셔졌다고 합니다.**"
(재 실 : 齋 室)
"이 곳에는 능(陵)을 지키는 참봉 1인과 수호군 9인이 기거하였으며
매년 단종제향을 지낼 때 이곳에서 제물을 준비하고 제기를 비롯한
각종 사용 기구를 보관 해오던 곳입니다."
(관 풍 헌 : 觀 風 軒)
(영월시내에 자리하고 있는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동헌터입니다.)
"세조 3년(1457)6월 28일,단종이 청령포에 유배되었다가 홍수 때문에
이곳으로 옮겨와 머물던 중에 세조의 명으로 금부도사 왕방연(王邦衍)이
가지고 온 사약을 받고 그해 10월 24일 사사(賜死)된 곳입니다."
(자 규 루 : 子 規 樓)
"동헌(관풍헌) 동쪽에 있는 누각인 자규루(子規樓)는
어린 단종이 피를 토하며 운다는 자규(소쩍새)의 한을 담은
시(詩)를 읊었다 해서 이름이 붙혀진 누각입니다."
(자 규 사)
"달 밝은 밤에 두견새 울제
시름 못 잊어 누대 머리에 기대 앉았더라
네 울음 소리 하도 슬퍼 내 듣기 괴롭구나
네 소리 없었던들 내 시름 잊으련만
세상에 근심 만은 분들에게 이르노니
부디 춘삼월에는 자규루에 오르지 마오,"
(자 규 시)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떤난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난
두견 소리 끊어진 새벽 멧부리에 지새는 달빛만 희고
피를 뿌린 듯한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린가? 애달픈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지?
어찌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는고,"
(영월읍..,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합수지점)
"영월읍 앞에는 동강과 서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이 있습니다.
여기서 만난 두강은 하나가 되어 단양,충주호를 거쳐
여주,팔당댐,서울을 지나 끝없이 흘러 서해로
흘러갑니다."
(청령포 가는 안내판)
"단종의 유배지였던 청령포(淸泠浦)는 영월읍내에서
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청령포 표지석)
(왕방연 시비 : 王邦衍 詩碑에서 바라본 청령포)
"세조의 명을 받아 단종에게 먹일 사약을 가지고 왔던 왕방연은
그날 밤,돌아가는 길에 청령포를 마주 보는 강 언덕에서
비통한 자신의 심정을 시로 읊었습니다."
"천만 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발길 예놋다."
(청령포를 휘돌아 영월읍으로 흘러가는 강물)
"서강쪽에서 흘러 내려온 강물이 넓은 자갈밭을 감돌아
영월읍내에서 동강과 만나게 됩니다. 강 이편에서 헤엄쳐
건널 수 있을 만큼 강폭이 좁지만 물살이 빨라 오지 배를 이용해야만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청 령 포 전 경 : 淸 泠 浦 전 경)~명승 제50호
"청령포를 휘감는 강물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원을 그리며
굽이쳐 흐르고,앞자락에 거느린 넓은 돌밭은 치마를 단정하게
두른 듯 합니다."
(66봉과 서강의 아름다운 모습)
"동남북 삼면이 남한강의 지류인 서강의 강줄기로 둘러 쌓여 있고,
서쪽은 66봉의 험준한 산줄기 절벽으로 막혀 있어
나룻배가 아니고서는 드나들 방법이 없습니다."
(솔밭입구의 자갈길)
"강을 건너 청령포에 배가 닿으면 땡볕아래 200m 정도의
자갈길이 드러나 있습니다.그 길을 조금 걸어가면 곧 영월 최대의
관광지 역활을 하고 있는 소나무숲에 이릅니다."
(청령포 어소:御所 들어가는 입구의 소나무 숲)
(청령포 설명판)
"이 곳은 조선왕조 제6대 임금 단종(端宗)이 1457년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처음으로 유배 되었던 곳입니다.삼면이 깊은 강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험준한 절벽으로 막혀 있어서,배로 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유배지로 적합한 곳입니다."
"단종은 1457년 6월 28일 부터 두 달 동안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그 해 여름에 홍수로 청령포가 범람하여 영월읍에 있는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겨서 유배생활을 하다 이곳에서 사사(賜死)되었습니다."
(단종임금이 머물던 소나무 숲속의 어 소 : 御 所)
"단종어소(端宗御所)는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였습니다."
"어소에는 당시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소 담장 안에 단종유지비각이
위치해 있습니다."
"비각 앞에는 길게 누운 자세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나뭇가지가 땅에 닿을까 기둥으로 나무를 받쳐 두었습니다."
(단 종 어 소 본 채 : 端 宗 禦 所 本 砦)
(어 제 시 : 御 製 詩)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 채
산 속에서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해매는데
푸른 솔은 옛동산에 우거졌구나
고개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 하다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단묘유지비 : 端廟遺址碑)
"작은 비각 안에 묘셔진 단묘유지비는 단종이 머무르던 옛 집터를
기념하기 위해 영조39년(1763) 어명으로 원주 감영에서 세운 것입니다.
비(碑) 앞면에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 : 단종이 계실때의 옛터)*라고
씌여 있습니다."
(단종임금과 함께한 청령포 소나무 숲)
"청령포 경관의 주인공은 단연 소나무 숲 입니다.
주변 수백 그루의 소나무들은 키가 보통 20m에 정도이며,
이렇듯 소나무들은 비교적 곧게 자랐으나 가는 소나무들은 비틀림이 심합니다."
(관 음 송 : 觀 音 松)
"소나무숲 사이로 거대한 관음송(觀音松)이 보입니다.
*관음송(觀音松)*이란 단종의 애달픈 생활을 지켜보아서 *관(觀)*이고,
그의 오열을 들었으니*음(音)*이라 붙혀서 관음송이라 했다고 합니다."
"이 소나무는 높이 30m,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가 5m이며,
지상 1.5m 높이에서 두가지로 갈라졌습니다.가랄진 나무사이에서
단종임금이 앉아 놀았다고 합니다."
(망향탑, 노산대로 오르는 테크)
"망향탑과 노산대 그리고 66봉으로 오르기 위해 이 계단을
이용해야 합니다.완벽하고 예술미까지 갖춘 계단으로 계단을 다 오르면
아름다운 조망을 즐길수 있습니다."
(망 향 탑 : 望 鄕 塔)
"청룡포 서쪽 절벽인 육육봉(六六峰)과 노산대 사이에 있는
돌탑으로 어린 단종이 청령포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이곳에 올라
한양 땅을 그리며 쌓았다는 탑으로 그 당시에 애절했던 단종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노산대 가는 길)
"급한 절벽에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만든 울타리를
따라 단종이 앉아 있던 노산대로 갑니다."
(노 산 대 : 魯 山 臺)
"청령포 서쪽 66봉에 높이 80m 되는 낭떠러지가 있는데,
이를 *노산대(魯山臺)*라고 합니다.단종이 해질 무렵 이 봉우리에 올라
한양의 궁궐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고 하며,노산군으로 강등된 당시
단종의 이름을 본따 *노산대*라고 했다고 합니다."
(노산대에서 바라본 풍경)
"노산대에서 바라보는 서강과
층암절벽의 경치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능선을 이어주는 테크)
(금 표 비 : 禁 標 碑)
"금표비(禁標碑)에는 동서 300척,남북 490척,내에는 백성들이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노산군으로 강봉당한
단종의 유배지에 일반 백성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서
세운 것으로 전해집니다."
(청령포와 함께하는 나룻배)
"두견새 구슬프게 지저귀는 청령포야
치솟은 기암절벽 구비치는 물결은
말해다오 그 옛날의 단종대왕 귀양살이
아~오백년 그 역사에 비각만 남아있네."
(아무나 갖일수 없는 자기의 몫..,)
"사람마다 자기 그릇이 있고 자기 몫이 있습니다.
그 그릇에 그 몫을 채우는 것으로 자족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만족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몫과 내 그릇을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고 남의 몫을...,사람들은 어리석게
남의 그릇을 넘겨다 보려 합니다."
"단종의 얼과 혼이 숨쉬는 곳.,영월 장릉(莊陵) 나들이.........................................,끝"
첫댓글 회장님 건강하세요 ~~^^회장님이올리신내용 잘보고 나갑니다~~아무도안보는 빈카페지만 마음이프실회장님 아무튼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