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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은 추남에게 다가가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사람들이 차츰 바깥으
로 빠져나가자 이때다 하는 생각으로 추남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추남과 화린은 모용우에 의해 가장 먼저 바깥으로 붙려 나가게 되었
으니 또 다시 접근할 기회를 놓쳐 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고는 하지만 모용세가는 명목상으로는 아직도 오련
회를 이끌어 나가는 무시하지 못할 세력이었고 그런 모용세가의 차기
가주와 함께 관문을 통과한 추남과 화린이었기에 가장 먼저 바깥으
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강운은 추남과 화린이 바깥으로 나갈 때 자신도 따라 나가려고 했지
만 초조함에 몸부림 치는 사람들의 벽에 가로막혀 앞으로 나갈 수
없었고 그렇게 그들이 자신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자 허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윽! 신경질 나게 왜 이렇게 앞을 가로막는 거야!! 성격 같아서는 그냥
확 다 날려버리는 건데! ‘
다소 신경질적인 표정이 되어버린 강운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추남과 화린이 나간 문을 아쉽다는 듯이 바라봤고 앞으로 자신이 어
떻게 행동해야 될지에 대해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호야! 우리 이제 어떡하지? 아무래도 밖에 있는 사람들 너 때문에
몰려온 것 같은데 말이야. ]
추남과 화린이 떠나버린 자리에 가서 털썩 주저앉은 강운은 자신의
무릎위로 폴짝 뛰어 들어오는 백호를 안아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흠.. 글쎄! 운아 너무 고민할 거 없어. 여차하면 그냥 모두 작살내
고 그 암흑계 놈도 잡아서 족치면 되잖아... ]
백호의 너무나 무책임한 한 마디에 강운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졌지만
이내 한숨을 쉬며 표정을 밝게 했다.
[아무튼 백호 너 한테 무슨 일을 맡기면 꼭 이렇다니까! ]
지은 죄가 있어서인지 백호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강운의 눈치를 살
피다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럼.. 도망가면 되잖아? 아까도 인간들한테 안 들키고 잘 왔었잖아.
그때처럼 살짝 빠져나가면 되지 않을까? ]
조금 전 보다 더욱 심하게 일그러지는 강운을 발견한 백호는 재빨리
시선을 외면하며 먼곳을 응시했다.
[도망안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도망 다니냐? ]
[그러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헤헤! ]
[웃지마! ]
강운의 심통이 난듯한 한마디에 백호는 재빨리 웃음을 거두고 멀뚱거
리며 시선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얼굴색이 흑빛이 된 수다형제와 삿갓
을 길게 눌러쓴 채 차가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검객 그리고 강운과 백
호만이 대기실에 남게 되자 장내는 싸늘한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강운은 초조함이 극에 도달해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는 수다형제를
별다른 감흥이 없는 눈초리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냉막한 분위기
의 검객을 바라봤을 때 양 미간을 살짝 찌푸려 뜨렸다.
‘음? 저 사람 몸에서 살기가 흘러나오네?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가만히 있어도 저런 살기가 흘러나오는 거지? ‘
다른 사람들이라면 지금 같은 상황에 이런 엉뚱한 호기심을 품을 심적
여유가 없겠지만 강운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별 다른 큰 걱
정이 없었기에 주변을 돌아볼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궁금증을 못 참는 강운 성격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근래에는 예전보다 훨씬 인내심이 늘어났다고는 하지
만 냉막한 사내에게서 흘러나오는 예기에 대한 호기심은 그런 인내심
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백호를 가만히 옆에 내려놓고 강운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다형제는
깜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 밖에서 또 호명이 된 건가요? 제 귀에는 분명 아직 아무런 소리
도 들리지 않았었는데? “
“아니야. 아직 밖에서 아무도 호명을 하지 않았다네. 아우가 너무 긴
장을 한 모양이군. 걱정하지 말게나! 우리가 첩자가 아니라는 것은
같이 있던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이름을 기재할 때 약간의
오차가 생겼을 수도 있는 일이니 조금만 참고 기다려 보세나. “
“하, 하지만 괜한 누명으로.. “
수다 형님의 말을 듣고도 아우는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강호에서는
엉뚱한 일에 휘말려 숱한 목숨이 희생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
기 때문이고 그 자신이 그런 술수를 부린 적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론 정파인이라며 정의를 외쳐대고 있었지만 그의 속 마음은
정도의 길을 걷기에는 너무나 타락해 있었던 것이다.
수다 형제의 의심스러운 시선을 가득 받은 채 강운은 냉막한 사내에게
로 접근을 시도했고 마침내 그의 앞에 걸음을 멈추고 삿갓을 손끝으
로 톡톡 건드렸다.
“이봐요 차가운 아저씨! “
순간 냉막한 사내가 삿갓을 비스듬이 올리며 날카로운 눈초리로 강운
을 올려다 봤다.
얼덜껼에 그의 눈빛을 마주보게 된 수다형제는 재빨리 시선을 외면해
버려야 했다. 도저히 그들로서는 그런 차갑다는 정도를 지나친 증오가
느껴지는 그의 눈빛을 마주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강운은 증오를 가득 품고 있는 냉막한 사내의 눈빛을 마주대하며 의
문이 더욱 더 깊어져만 갔다.
냉막한 사내는 처음에는 자신의 눈빛을 그대로 받아내는 강운에게 의
외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곧 이어 자신의 마음을 샅샅이 훑고 지나가
는 듯한 강운의 눈빛을 대하고는 돌연 경계의 동작을 취했다.
‘저 아이는 대체 누구지? 내 마음을.. 읽는 것 같은.. 저 눈빛은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 ‘
검집에서 검을 살짝 밀어올린 상태로 냉막한 사내는 강운의 눈빛을
예의 주시했고 마침내 자신에게 손을 뻗치는 강운의 행동에 번개 같은
동작으로 발검을 하며 강운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스팟! 챙!
발검을 함과 동시에 엄청난 쾌검으로 강운의 허리를 양단해 가던 사
내의 검이 돌연 쇠끼리 충돌하는 효과음을 내며 멈춰서 버렸다.
냉막한 사내는 자신의 검을 막고 있는 생물을 놀라 부릅뜬 눈으로 경
악의 표정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하얀털의 강아지가 자신의 쾌검을 이빨로 물어 막아낸 것이다. 당금
무림에 있어 자신의 쾌검을 막아낼 자가 없다는 광오한 생각을 품고
있던 그였기에 고작 강아지에게 검을 가로막힌 심적 충격은 엄청났다.
이미 평정심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검을 물고 있는 백호에게서 검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내를 얼떨떨하게 바라보던 강운
은 백호를 향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백호야! 그만하고 놔 줘라. 근데 너 왜 그랬어? 내가 그냥 살짝 튕겨
내려고 했는데.. ]
사내의 검을 물고 늘어지고 있던 백호는 강운의 말을 듣고는 사내가
검을 뒤로 빼려고 힘을 줄 때 살짝 입을 벌렸고 자기 힘을 조절하지
못한 체 뒤로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재미있게 바라봤다.
[운아!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지금 운이 너의 보호자란 말이야! 감히
검을 뽑아들고 덤벼오는데 어떻게 가만히 보고 있겠어? ]
자신의 힘에 나가떨어진 냉막한 사내를 바라보고 있던 강운은 백호의
어이없는 대답에 고개를 휘휘 내저을 뿐이었다.
어찌보면 강운의 엉뚱한 성격은 그의 사부 보다는 백호를 통해 형성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만큼 백호 역시 강운과 마찬가지로 어디
로 튈지 모르는 괴팍한 성격의 호랑이였던 것이다.
넘어졌던 몸을 재빨리 일으킨 사내는 험악한 눈길로 강운과 백호를
노려보며 자세를 가다듬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느낄 수 없었던 적개
심이 느껴지자 강운은 또 다시 괜히 일에 끼어들어 상황을 엉뚱하게
만들어버린 백호에게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으이그! 백호 너 뒤로 빠져! 너 때문에 일이 또 꼬였잖아!! ]
평소 추남과 화린을 비롯한 강운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느꼈던 고
통을 지금 이 순간 강운은 약간의 공감을 할 수 있었다.
화가 난듯한 목소리에 기가 눌린 백호는 꼬리를 내리고 슬금슬금 뒤
로 물러나 버렸고 강운은 앞을 향해 몇 걸음 나아갔다.
“아저씨! 좀 전에 백호가 장난했던 거는 이해해주라. 근데 말이지! 왜
아무 짓도 안한 사람을 죽일려고 하는 거야? “
“네, 네놈은 누구냐!! “
겉으로 보여지는 겉모습과 냉막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성이 사내에게서 흘러나오자 장내는 또 다시 찬기류가 흘러
다니는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강운 또한 그의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목소리에 어리둥절함을 금
할 수 없었던지 멍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봤다.
“방금.. 그 목소리가 아저씨 목소리? “
평소에 어울리지 않은 미성으로 인해 많은 놀림을 받아왔던 사내였
기에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평정심을 잃어버린 그는 거침없
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래! 이게 바로 내 목소리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너는 도대체 정체
가 뭐야? 어떻게 저 따위 강아지가 있을 수 있냔 말이다! 십 수 년을
연마해온 나의 쾌검을.. 크윽! 저 따위 강아지가 막아내다니.. 나의
십수년 공부가 다 헛된 것이란 말인가! “
검을 바닥에 깊숙히 박은 체 통탄을 하는 사내를 향해 다가간 강운은
가만히 그의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물론, 그런 강운의 행동에 사내는
어깨를 흠칫 떨며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너무 낙심할 것 없어! 백호 쟤는 보통 강아지들 하고는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아마 입으로 뭔가를 받아내기 위해 노력한 시간
은 아저씨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엄청날 걸! 맞지 백호야? 히히! “
의미심장한 강운의 웃음에서 백호는 가슴이 철렁하는 느낌을 받아야
만 했다.
‘커억! 설마 영감탱이가 운이에게 모두 말했던 건가? 요, 용서 할수
없엇! 이놈의 영감탱이 다시 만나기만 해봐라! 으드득!! ‘
이를 갈고 있는 백호와는 상관없이 강운은 무슨 즐거운 상상을 하는
지 연신 웃음을 지우지 못했고 사내는 적이라 생각되는 강운이
무방비 상태로 있는데 공격할 생각이 들지 않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검을 뽑아서 살짝 휘두르기만 해도 이 정도 꼬마놈쯤은! 하, 하
지만.. 내가 왜 이 아이를 공격해야 되는 거지?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조금 전의 그 공격도 만약 저 강아지가 아니었다면.. 아! 나는 언제부
터 이렇게 사람의 감정을 잃어버렸을까.. 아니지 크큭! 빌어먹을 마교
놈들이 있었지! 내 가족과 나의 모든 것을 앗아간 불구대천의 원수!
용서할 수 없어.. 그놈들을 모두 죽여 없애지 않는한 그때까지 난 사
람이 되어서는 안돼! 지옥의 악귀가 되어서라도 놈들을 하나씩 모두
박살내고 말 테다. 이런 나약한 마음을 먹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
다. 분명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마교의 첩자가 있다고 했으니 이 아
이도 죽어야 할 이유가 넘치고도 남아! ‘
원수의 생각이 들자 갑자기 살기가 무럭무럭 솟아나는 사내였다.
“죽일꺼야.. 죽이고 말꺼야! 죽어! “
혼잣말을 되 뇌이던 사내는 마침내 광기가 번득이는 눈빛으로 순간
적으로 검을 뽑아내 자신의 등을 토닥거리고 있는 강운의 허리를
차갑게 그어버렸다.
엄청난 쾌검을 자랑하는 사내의 검이 강운의 허리를 양단할 듯한
위험천만한 순간에도 강운은 전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그가 살심을 먹은 순간부터 짐작을 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허리를 베어내기 위해 휘둘러지는 사내의 검을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날려 버린 강운은 얼이 빠져 있는 듯한 사내의 시선을
받고는 불쾌하다는 듯이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이봐! 당신 뭔데 자꾸 함부로 칼을 휘두르는 거야? “
지금까지와의 장난스런 말투가 아닌 짜증이 담겨 있는 강운의 목소리
에 얼이 빠져 있던 사내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자신의 손에서 튕겨져 나가 반대편 벽에 박혀 있는 검을 한참동안 바
라 보던 사내는 그만 무릎을 꿇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로서는 오직 복수의 그날을 위해 피땀을 흘려가며 괴팍한 사부 밑
에서 20년이 넘게 무공을 연마해온 모든 것이 지금 강운의 가벼운 손
동작으로 인해 물거품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세상을 살아갈 의미를 잃어버린 듯한 사내의 눈빛에 강운은 찡그렸던
표정을 풀고 사내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
렸다.
“이름이 뭐야? “
“…… “
강운의 맑은 두 눈빛과 사내의 공허한 두 눈빛이 서로 얽혀 들어가자
사내는 무언가가 자신의 머릿속을 온통 헤집고 다니는 듯한 끔찍한
느낌에 그만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삶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온 듯한 강운의
눈빛에 사내는 가슴에서 울컥하고 솟아나오는 분노심을 느껴야만 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