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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북스
2006.12.20
Carl Sagan
1. 코스모스의 바닷가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제일가는 자랑거리는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과 그 부속 박물관들이었다. 박물관이란 사실 이름을 그대로 옮기면 뮤즈라고 불리던 아홉 여신의 전공 분야에 각각 바쳐진 연구소였다. 세계 역사상 최초로 설립된 진정한 의미의 연구 현장이었다. 도서관 소속 학자들은 코스모스 전체를 연구했다. 코스모스라는 단어는 만물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내포한다. 그리고 우주가 얼마나 미묘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지고 돌아가는지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이 이 단어 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자들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모여 물리학, 문학, 약학, 천문학, 지리학, 철학, 수학, 생물학, 공학 등을 두루 참구할 수 있었따.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서 활동한 학자들 중에는 에라토스테네스 이외에도, 별자리의 지도를 작성하고 별의 밝기를 추정한 히파르코스가 있었고, 기하학을 명쾌하게 체계화하고 어려운 수학 문제로 끙끙거리던 임금에게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건넨 유명한 유클리드가 있었다. 기하학에 유클리드가 있었다면, 한편 언어학에서는 트라키아의 디오니시우스가 있어 말의 품사를 정의하고 언어학의 체계를 확립했다. 생리학자였던 헤로필로스는 지능이 심장이 아니라 두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확실히 증명했고,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은 톱니바퀴 열차와 증기 기관을 발명하고 로봇에 관한 최초의 책 오토마타를 저술했다. 페르가의 아폴로니우스는 타원, 포물선, 쌍곡선이 원추곡선 임을 밝힌 수학자였다. 현재 우리가 잘 알고 있다시피 행성, 혜성, 별들의 궤도는 원추곡선을 기술된다. 아르키메데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등장하기 이전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천재적인 공학자였다. 천문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프롤레마이오스는 오늘날의 사이비 과학이라 할 점성술을 수집하여 정리했다. 그가 주창한 지구 중심 우주관인 천동성이 1500년 동안 맹위를 떨쳤다.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의 서가에는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라는 천문학자가 쓴 책이 한 때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구도 하나의 행성으로서 여타의 행성처럼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했으며, 별들이 대단히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모두 옳았지만 이 사실을 재발견하기까지 인류는 거의 2000여 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현대의 과학은 고대 세계가 알고 있던 과학의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적 자료에는 메울 수 없는 공백이 이가 빠진 듯 여기저기 뚫려있다.
인류는 지구 바깥으로 나가서 우주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한 점 티끌 위에 살고 있고 그 티끌은 그저 그렇고 그런 별의 주변을 돌며 또 그 별은 보잘 것 없는 어느 은하의 외진 한 귀퉁이에 틀어 박혀 있음을 알게 됐다. 우리의 존재가 무한한 공간 속의 한 점이라면,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찰나의 순간 밖에 차지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 나이가 ㅡ적어도 가장 최근에 부활한 우주가 ㅡ약 150억~200억 년 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이것은 대폭발 또는 빅뱅이라고 불리는 시점에서부터 계산한 우주의 나이다. 우주가 처음 생겼을 때에도 은하도 별도 행성도 없었다. 생명도 문명도 없이, 그저 휘황한 불덩이가 우주 공간을 균일하게 채우고 있었을 뿐이다. 대폭발의 혼돈으로부터 이제 막 우리가 깨닫기 시작한 조화의 코스모스로 이어지기까지 우주가 밟아 온 진화의 과정은 물질과 에너지의 멋진 상호 변환이었다. 이 지극히 숭고한 전환의 과정을 엿볼 수 있음은 인류사에서 현대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우주 어딘가에서 우리보다 지능이 더 높은 생물을 찾을 때까지, 우리 인류야말로 유주가 내놓은 가장 눈부신 변화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이다. 우리는 코스모스에서 나왔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알고자, 더불어 코스모스를 변화시키고자 태어난 존재이다.
2. 우주의 생명 푸가
나는 천지를 창조하신 신께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분은 먼지에서 너희 모두를 창조하셨다. ㅡ 코란 40장
모든 철학사조들 가운데 진화에 관한 생각이야말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화 논의가 스콜라 철학에 손발이 묶인 채, 1000년의 세월을 칠흙의 지하에서 완전히 죽어 지내야 했다. 그러던 중 다윈이 나타나 고대의 그리스 사상 체계에 새로운 생명의 피를 수혈했으니, 비로소 묶였떤 손발의 족쇄가 풀려서 오늘에 부활할 수 있었따. 환생한 먼 조상들의 생각이 그동안 인류의 사상계를 지배해 오던 그 어떤 법칙들보다 삼라만상의 우주적 질서를 더 잘 표현할 뿐 아니라 그 질서의 의미를 우리에게 더욱더 그럴듯하게 설명해준다. 70여 세대를 이어 온 우리 후손들의 고지식함과 줄기찬 맹신 그리고 미신을 오늘에 탓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ㅡ 토마스 헉슬리, 1887년
나는 지금까지 지구에서 발을 붙이고 살아왔던 모든 유기 생물들이 단 하나의 어떤 원시 생물에서 유래했다고 거의 확신한다. 생명의 숨결이 최초로 불어 넣어진 그 생물에서 다양한 형태의 모든 생물들이 비롯됐다고. ....... 이러한 생명관에는 모종의 숭고함이 서려있어 ...... 우리의 행성 지구가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태양 주위를 거듭 도는 동안에, 그리도 간단하기만 했던 원시 생물이 긴 진화의 과정을 밟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수많은 생물 종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그 원시 유기체가 우리 지구에서 이렇게 아름답고 저렇게 놀라운 생물들로 진화할 수 있었으며 그 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ㅡ 찰스 다윈, 종의 기원, 1859년
태양화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상당 부분이 별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므로 성분의 관점에서 볼 때, 우주는 하나의 물질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수많은 별들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원소드이 다름이 아닌 행성 지구에서의 생명 현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수소, 나트륨, 마그네슘, 철 등이라니! 물질 공동체의 신비함에 우리는 그저 놀라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밝게 빛나는 저 별들도 우리 태양과 같은 존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별 하나하나도 우리 태양과 마찬가지로 자기 나름의 권혹을 거느릴 것이며, 중심에 자리 자고 앉아서 자기 권속들에게 적정 에너지를 공급함으로써 저들을 생명이 서식할 터전으로 바꾸어 놓지 않았겠는가? ㅡ 윌리엄 허긴스, 1865년
지상의 생물들은 모두 유기 화합물, 즉 탄소 원자가 결적적 역할을 하는 복잡한 미세 구조의 유기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별들 사이의 광대한 암흑 속에는 기체, 티끌 그리고 유기 분자로 이루어진 성간 구름, 즉 성간운이 떠돌아다닌다. 성간운을 전파 망원경으로 관측하면 그 안에서 수십 가지의 유기 분자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간운에 유기 분자가 풍부하다는 사실은 생물의 기본 물질이 우주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라는 예측을 가능케 한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하나의 우주적 필연인 것이다.
지구의 자연환경이 인류에게 훌륭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모든 생물들이 지상에서 태어나서 바로 그곳에서 오랫동안 성장해 왔기 떄문이다. 초기 생물들 중에서 지구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한 종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따라서 지구의 생물학은 철저하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구 생물에게는 단 한가지의 생물학만으로 충분하다. 그렇다면 수천 광년 떨어진 저 먼 곳의 ㅅ애명은 우리에게 어떤 형식의 음악을 들려줄 준비를 해놓고 있을까 무척 궁금하다. 풀피리 하나로 연주되는 지구 생명의 이 외로운 음악 하나가 우리가 우주에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음악일까? 우주 생물이 들여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릿 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우주 음악에서 화음과 불협화음이 교차하는 다성부 대위법 양식의 둔주곡을 기대한다.
외계 가축과 채소는 우리에게 익숙한 지구의 그것들과는 근본부터 큰 차이를 드러낼 것이다. 주어진 환경 조건에 대한 최상의 해결책은 늘 하나밖에 없을 터이므로, 모종의 수렴성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가시광선 파장 대역의 빛을 이용해 사물을 보는 존재들은 두 방향에서 시야를 확보해야 거리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눈도 두 개일 것이다. 그러나 진화의 긴 역사에서 볼 수 있었던 무작위성의 위력을 감안한다면 외계 생물들은 그 됨됨이로 우리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생물학은 물리학보다 역사학에 더 가깝다. 현재를 이해하려면 과거를 잘 알아야 하고, 그것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알아야 한다. 역사학에 예견론이 없는 것처럼 생물학에도 확립된 예견론이 없다. 이유는 양쪽 모두 같다. 연구 대상들이 너무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물학과 역사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타자를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외계 생명에 관한 단 하나의 예만 연구할 수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 하나가 아무리 밈미한 수준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생물학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될 것이다.
3. 지상과 천상의 하모니
"세상 모든 것들은 자기 나름의 신비한 본성을 갖고 있다. 밖으로 드러나는 각자의 고유한 행동 양식은 바로 그 본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라고 누가 내게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것이 세상에 관한 설명이 전혀 되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온갖 현상들에서 두세 가지의 일반 원리를 먼저 찾아내고, 모든 물체들의 성질과 그들의 상호 작용이 앞에서 찾아낸 원리들에서 어떻게 비롯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향한 위대한 이해의 첫발을 내디뎠다고 할 수 있다. ㅡ아이작 뉴턴, 광학
새가 왜 노래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면 새들은 노래하도록 만들어진 피조물이라, 노래함이 새들에게 곧 기쁨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왜 인간이 하늘의 비밀을 헤아려 보려고 골머리를 썩이는지 궁금해 할 필요가 없다. 자연의 현상은 다채롭기 이루 말할 수 없고, 하늘은 숨겨진 보물로 가득하다. 이는 오로지 인간의 정신이 새로운 양분을 취하는 데 모자람이 없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ㅡ요하네스 케플러, 우주 형상의 신비
만일 누군가가 절대 불변의 행성에 살고 있다면, 그가 할 일은 정말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아예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세계에서는 과학하려는 마음은 일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또 하나의 극단인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변화가 지극히 무작위적이거나 지나치게 복잡해서 생각해 봤자 별수 없는 처지라면, 그런 세상 역시 과학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 두 극단의 중간 어디쯤엔가 있다. 사물의 변화가 있되 그 변화는 어떤 패턴이나 규칙을 따른다. 흔히들 만물의 변화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고 한다. 허공에 집어 던진 막대기는 반드시 땅으로 다시 떨어지고, 서쪽 지평선 아래로 진 해는 반드시 이튿날 아침 동쪽 하늘에 다시 떠오른다.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해 보면 알아낼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이 가능하고, 과학이 밝혀낸 지식을 이용하여 우리는 우리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천문학을 배우려 했을까? 영양과 사슴과 들소는 철에 따라 이동하므로 한 지역에서 잡을 수 있는 사냥감은 계절에 따라 늘고 줄기를 반복한다. 과일과 견과류는 익는 때가 따로 있으니 계절을 알아야 제대로 익은 것을 제때에 따먹을 수 있다. 농업 기술의 발명 이후 작물을 때에 맞춰 심고 거둬들여야 할 필요가 생겼으며, 또 멀리 떨어져 사는 유목민들은 미리 정해 둔 때에 서로 만나 연중행사를 치러야 했다. 그러므로 하늘의 달력을 읽을 줄 아느냐에 따라 목숨이 좌우되기도 했다. 새 달이 되면 초승달이 다시 나타나고 개기 일식 뒤에 태양이 다시 나타나며 밤사이 모습을 감춰 걱정스럽던 태양이 아침이면 다시 나타나는 현상 등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항시 눈여겨 관찰한 자연의 충직한 순환이었다. 이러한 순환 현상을 통해서 우리 조상들은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삶을 짐작했으며, 저 높은 하늘을 영생불사의 암시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7. 밤하늘의 등뼈
과학사를 연구하는 벤저민 패링턴은 고대 과학의 쇠퇴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이오니아의 중상주의적 전통은 과학의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노예 경제의 발전도 동반했다. 노예 소유가 부와 권력으로 이르는 길이었다. 폴리크라테스의 요새도 노예들이 쌓아올렸으며 페리클레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활약했던 시기에 아테네 시에는 엄청난 규모의 노예 인구가 상주하고 있었다. 아테네인들의 민주주의에 관한 온갖 대범한 생각들은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해당됐지, 구성원 전부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노예의 정체성은 손을 사용하는 그들의 육체 노동에 있었다. 육체 노동은 바로 노예임을 뜻했다. 한편 과학 실험도 육체 노동이었다. 노예 소유자들은 당연히 육체 노동과 거리를 뒀다. 그러나 과학을 할 만큼의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사람들도 일부 사회에서 체면치레로 gentle men 이라 불러 주는 바로 노예들뿐이었다. 그러나 과연 누가 과학을 했겠는가? 거의 아무도 과학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오니아 인들의 능력은 꽤 훌륭한 기계를 만들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당장 끌어다 쓸 수 있는 노예의 노동력이 기술 개발의 경제적 동기를 갉아먹었다. 따라서 중상주의의 전통은 기원전 600년경 이오니아의 위대한 깨달음을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노예 제도를 통해 200여년 후에는 과학적 사고의 몰락을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인류사의 모순을 바로 여기에서 볼 수 있다.
8.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
지구는 우리를 지구 중심으로 잡아당기고 있다. 그래서 자유 낙하하는 물체는 1초에 초속 9.8미터씩 가속되면서 떨어진다. 우리를 지구 표면에 묶어 두는, 또는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이 힘을 우리는 중력이라고 부르고, 그 크기를 1g로 표시한다. 즉 사람은 지상에서 1g에 해당하는 힘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따라서 우주여행 중에서 1g의 가속을 받는다면 우리는 우주선에서 아주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구에서의 중력과 가속속 중인 우주선 안에서 느끼는 관성력이 같은 성격의 힘이라는 것은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일반 상대성이론의 주요 개념이기도 하다. 우주 공간에서 1년 정도 1g의 가속을 계속해서 받으면 광속에 가까운 속도에 도달한다. 어떤 우주선이 1g의 가속을 받으면서 비행을 적정 시간 동안 계속하여 목표의 중간 지점쯤에 도달했을 때 비행 속도가 거의 광속과 같아졌다고 하자. 거기서부터는 가속의 방향을 반대로 돌려야 할 것이다. 즉 -1g의 가속도를 받으며 지금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만큼 더 비행하면 목표 천체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이 우주선은 여정의 상당 부분에서 거의 광속과 비슷한 속도를 유지했으므로, 우주선을 타고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흘렀을 것이다. 행성을 동반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버너드의 별은 태양에서 약 6광년 떨어져 있다. 당신이 우주선을 타고 앞에서 이야기한 식으로 이 별을 향해 달린다면, 약 8년 후면 이 별에 도착할 수 있다. 여기서 8년은 우주선에 실린 시계로 잰 당신의 시간이지, 우주 여행의 장도에 오르는 당신에게 손을 흐흔들며 환송했던 사람들의 시간이 아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은하수 은하의 중심까지 가는 데에는 21년이 걸리고 안드로메다 은하에는 28년이면 도착한다. 그렇지만 지구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우주여행객의 21년이 무려 3만년에 해당하는 장구한 세월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우주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당신을 마중 나온 환영 인파 중에서 환송의 손을 흔들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소수점 여러 자리까지 광속에 가깝게 접근한다면, 이론상으로는 단 56년이면 우주를 한바퀴 돌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시 말하건대 여기서 56년은 우주선에서의 시간이다. 지구인의 시간으로는 수백억 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사실 우주여행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지구 자체가 없어졌을 것이다. 지구는 이미 까맣게 타 버린 숯덩이로 변해 있을 것이며, 태양은 아주 오래전에 빛의 방출을 멈췄을 것이다. 이와 같이 상대론적 우우주 여행은 고도로 앞선 문명에게는 우주 전역에 접근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이다.
우주 여해은 공간 뿐 아니라 시간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따지고 보면 우주 여행은 시간과 공간을 가르는 여행이다. 우리는 미래 속으로 빨리 여행함으로써 공간 속을 빨리 움직여 갈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어떠할까? 당신이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을 낳아준 부모의 결혼을 못하게 막았다면, 당신의 출생 자체가 부정되고 만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초래한 당신은 존재한다. 이것이야말로 모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1/2)가 무리수라는 것을 증명할 때처럼, 또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동시성 패러독스처럼 결론이 모순에 빠지게 된다면 그 전제는 버려야 마땅하다.
하지만 어떤 물리학자들은 역사를 달리하는 두 갈래의 우주들이 서로 나란히 실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 두 우주는 양쪽 모두 독립적으로 실재할 수 있는 우주이다. 하나는 당신이 아는 우주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이 태어나지 않은 우주이다. 어쩌면 시간은 그 자체로서 수많은 잠재적 차원을 갖지만 우리는 그중에서 단 하나의 차원과 연관된 세상에서만 살아갈 운명인지 모른다.
지금까지 보아 왔듯이 시간과 공간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별, 행성과 같은 세계 또한 우리 인간들처럼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국 죽어서 사라진다. 인간 수명이 수십 년 정도인 데 비하여, 태양의 수명은 인간의 수억 배나 된다. 별들의 일생에 비한다면 사람의 일생은 하루살이에 불과하다. 단 하루의 무상한 삶을 영위하는 하루살이들의 눈에는, 우리 인간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지겹게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는 한심한 존재로 보일 것이다. 한편 별들의 눈에 비친 인간의 삶은 어떤 것일까? 아주 이상할 정도로 차갑고 지극히 단단한 규산염과 철로 만들어진 작은 공 모양의 땅덩어리에서 10억분의 1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만 반짝하고 사라지는 매우 하찮은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우리와 다른 세계에서도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 지구인은 2500년 전 신비주의와 대결해야 했던 이오니아 학자들이 경험한 바와 비슷한 정도로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다. 우리가 우리의 세상을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그 영향이 앞으로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 전파되어 결국 우리 후손들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그때까지 우리 후손들이 저 수많은 별들 어디엔가 살고 있다면 말이다.
9. 별들의 삶과 죽음
태양 신 라께서 두 눈을 뜨시고 이집트 땅에 빛을 쏟아 부으시니, 밤이 낮에서 갈라졌습니다. 라의 입에서 신들이 나왔고 그의 눈에서는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모든 것이 그에게서 태어났으며, 그 아이는 연꽃 안에서 빛을 발하여, 그 빛이 모든 것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ㅡ 이집트 프롤레아미오스 왕조 시대의 기도문
신은 물질 입지들을 다양하게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를 뿐 아니라 .... 밀도가 다르고 힘의 세기에도 차이가 있어서, 신은 자연의 법칙에 다양한 변화를 줄 수 있었다. 그 결과 우주 곳곳에는 구구각각의 특성을 갖는 세상들이 빚어졌다. 이렇게 우주를 이해하니 세상에는 그 어떤 모순도 발견할 수 없게 됐다. ㅡ 아이작 뉴톤, 광학
저기 높은 곳에 하늘이 있다. 그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우리는 여기 누워서 하늘을 우러르며 별들과 눈을 맞춘다. 저 별들은 누가 만들어 낸 것인가, 아니면 있는 자 바로 그대인가? ㅡ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
내게는 무섭도록 필요한 게 딱 한 가지 있어. 그게 무엇인지 내가 꼭 말을 해야 하나? 신앙, 그것은 신앙이야. 내게 신앙이 있다면, 밤중에 밖으로 나가서 별들을 그릴 수 있을 거야. ㅡ 빈센트 반 고흐
애플파이를 오븐에 너무 오래 부면 파이가 아니라 숯이 된다. 숯의 성분은 거의 전부 탄소이다. 숯이 된 파이를 90번 연속해서 반으로 나누면 탄소 원자를 만날 수 있다. 탄소의 핵에 양성자와 중성자가 각각 여섯개씩 들어 있고, 핵 바깥에는 전자 여섯 개의 구름이 자리잡고 있다. 탄소 원자의 핵에서 한 덩어리를 떼어 내면, 예를 들어 양성자와 중성자를 두 개씩 떼어 내면 그것은 더 이상 탄소 원자가 아니라 헬륨 원자가 된다. 이렇게 원자핵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현상이 핵폭탄과 원자력 발전소에서 실제로 발생한다. 이 경우 탄소 원자가 분열하는 것은 아니다. 애플파이를 91번 가른다면, 즉 탄소 원자를 한번 더 쪼갠다면 작은 탄소 원자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원자, 즉 탄소와는 전혀 성질이 다른 원자가 만들어진다. 원자를 자르면 원소의 돌연변이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반분하기를 더 계속해보자.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양성자를 더 작게 쪼갤 수는 없을까? 양성자들을 높은 에너지를 갖는 다른 소립자, 예를 들어 양성자 자로 때려서 나타나는 반응을 면밀하게 조사해보면 양성자 내부에 더 근본적인 입자가 숨어 있는 것 같다. 물리학자들은 양성자와 중성자 같은 소립자들을 구성하는 더 근본적인 알갱이를 쿼크라고 부른다. 쿼크야말로 궁극의 기본 입자인지, 아니면 쿼크도 더 근본적인 입자들로 구성돼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별의 기원과 진화와 그 뿌리에서부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첫째,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이 원자적 수준에서 볼 때 아주 왤전에 은하 어딘가에 있던 적색 거성들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원소들의 원자 번호에 따른 상대 함량 비율의 분포가 별에서 합성되는 원소들의 상대 함량 비율과 딱 들어맞기 때문에 그것들이 모두 적색 거성과 초신성이라는 특별한 용광로와 도가니에서 제조됐음을 그 누구도 의심할 수 없다. 우리의 태양은 제2세대, 또는 제3세대의 별일지 모른다. 태양에 들어있는 모든 물질, 아니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물질은 두세 차례에 걸친 항성 연금술의 결과물이다. 둘째, 지구에서 발견되는 무거운 원소들 가운데 어떤 동위 원소는 태양이 태어나기 직전에 근처에서 초신성의 폭발이 있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기 때문이다. 어찌 이것을 우연의 결과라고 치부할 수 있겠는가? 초신성에서 유래한 충격파가 성간 기체와 성간 티끌로 구성된 성간운을 통과하면서 그곳의 밀도를 증가시킴으로써 중력 수축이 유발됐을 것이다.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우리 태양계이다. 셋째, 우리는 생명의 탄생에서 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새로 생긴 태양에서 쏟아져 나온 자외선 복사가 지구 대기층으로 들어와서 그곳에 있던 원자와 분자에서 전자를 떼어내면서 대기 중에는 천둥과 번개가 난무하게 됐고 이것이 복잡한 유기 화합물등의 화학 반응 에너지원으로 작용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생명이 태어났던 것이다. 넷째,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생명 활동이 결국 태양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식물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빛 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변환시킨다. 따지고 보면 모든 동물은 식물에 기생하여 사는 존재이다. 농사ㅏ 무엇인가? 태양 광선을 조직적으로 추수하는 방법에 다름이 아니다. 마지못해 응하는 식물을 매개로 하여 태양 광선의 에너지를 긁어모으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 농업이다. 따라서 인류는 전적으로 태양의 힘에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끝으로 유전의 관점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돌연변이라고 불리는 유전 형질의 변화가 진화를 추동한다. 자연은 돌연변이를 통해서 생명의 새로운 존재 양식을 찾아내는데 고에너지의 우주선 입자들이 돌연변이를 촉발하기도 한다. 우주선은 초신성에서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태어나 거의 고속으로 움직이는 하전 입자들을 뜻한다. 지구상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진화도 이렇게 그 근원을 따져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광대한 우주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질양이 큰 별들의 극적인 최후에서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0. 영원의 벼랑 끝
하늘과 땅이 열리기 전
혼돈에서 태어난 그 무엇이 있었다.
침묵과 공허 안에서
그것은 그것만으로 충만하여 변하지 않았고
두루 돌기는 하지만 닳아 없어지는 법이 없었다.
그곳에서 모든 것이 말이암았으니 그것은 세상의 어머니.
그 이름 내 알 수 없으나
도道라 부르겠노라.
대도大道라 또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좋으리라.
도는 거대하므로 나를 벗어난다 할 수 있고
나를 벗어난다니, 그것은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자리한다.
또한 멀리 있으니, 그것은 결국 내게 돌아오리라.
ㅡ 노자 도덕경, 기원전 600년경
맑은 하늘 높은 곳에 뚜렷하게 눈에 띄는 은하수라는 거대한 길이 있다. 은하수는 자신의 광채로 밝게 빛나며 이 길에는 신들께서 주석하신다. 이곳은 위대한 우레의 왕궁이며 막강한 천상의 실세들이 거주하는 곳. 나는 감히 이곳이야말로 위대한 하늘의 바른 길이라 부르리라.
ㅡ 오비디우스, 변신이야기, 1세기
창조주가 세상을 빚었다고 주장하는 아둔한 사람들이 있다, 세상이 창조됐다 함은 그릇된 가르침이며 버려 마땅한 가르침이다.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면, 신은 창조 이전에 어디 있었단 말인가? 어떻게 신이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세상을 만들어 낼 수 있겠는가? 만일 신이 유有를 만들고 난 다음, 세상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유란 것이 또 무엇에서 만들어졌는지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끝없이 이어지는 논리의 순환 고리에 사로잡히고 말 뿐이다. 세상은 창조되지 아니했으며 시간 자체가 그러하듯이 세상은 시작도 끝도 없음을 명심할지어다. 이는 또한 진리에 기초한 것이니. ㅡ 마하푸리나(위대한 신화), 인도 자이나교, 9세기
지금부터 100억 또는 200억 년 전에 빅뱅이라고 불리는 대폭발의 순간이 있었고 우주는 그 대폭발에서 비롯됐다. 왜 그런 폭발이 있었는지는 신비 중의 신비다. 그러나 폭발이 있었음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존 우주에 있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대폭발의 순간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밀로도 모여 있었을 것이다. 그 상태는 부피를 전혀 갖지 않는 수학적 의미의 점이었다. 바로 그 점이 '우주의 알'이었다. 지구상 여러 문화권들의 창조 신화에서 우리는 우주의 알이라는 개념을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대폭발의 순간에 이 우주의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현존 우주의 어느 한 구석에 모여 있었다는 것이 아니다. 우주 전체,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들어 있는 공간마저도 하나의 점에 우그러져 있었다는 말이다. 그것은 사건이 발행할 여지가 전혀 없는 꽉 차 있는 그러한 점이었다. 대폭발의 순간 이후 오늘까지 우주는 한시도 쉬지 않고 팽창을 계속해왔다. 우주를 부풀어 오르는 풍선에 비유하고 풍선 바깥에서 그 풍선을 바라본 것으로 팽창 우주를 설명하고는 하는데, 이러한 설명은 오해를 낳기 쉽다. 왜냐하면 우주의 바깥이라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촤표 격자가 그려져 있는 공간 구조물을 상정하고 그 구조물이 모든 방향으로 균일하게 팽창한다고 상상하자. 공간이 팽창함에 따라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도 공간과 함께 팽창하면서 급히 식어 갔을 것이다. 그제나 이제나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우주 화구fire ball'는 자신의 온도에 걸맞은 전자기 복사를 방출한다. 뜨겁던 화구가 식어감에 따라 복사의 파장 대역이 감마선에서 엑스선으로 자외선을 거쳐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무지개 색깔의 가시광선 대역으로 옮아온 다음, 종국에는 적외선과 전파 대역으로까지 이동한다. 즉 화구는 높은 온도에서 짧은 파장의 빛을 내지만 온도가 낮아질수록, 방출되는 복사의 파장이 점점 길어진다. 이제는 극도로 뜨겁던 우주의 원시 화구도 식을 대로 식어서 매우 긴 파장의 빛을 낸다. 우주는 이 빛을 우주 배경 복사라고 부른다.
초기의 우주는 강력한 복사와 고온 고밀도의 물질로 가득 차 있었다. 소립자로 충만하던 고온 고밀도의 원시 화구가 점차적으로 냉각되자 거기에서 수소와 헬륨 원자들이 먼저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우주가 주로 수소와 헬륨으로 구성된 시기가 한때 있었을 것이다. 당시에 관찰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우주가 완전히 균일하다면 어디를 둘러보나 다 똑같아서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과 마찬가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밀도가 주위보다 약간 높은 지역이 군데군데 생기면서 가느다란 실과 덩굴손 모양의 가스 주머니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자라 가스 구름으로 태어났다. 이 가스 구름이 거대한 회전 원반체로 변신하여 반짝이는 점들을 수천억 개씩 품으면서 자신의 밝기를 더해 갔다. 우주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거대한 구조물을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것들을 은하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우리 자신도 이러한 구조물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중력 수축이 진행됨에 따라 원시 은하들의 회전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그것은 각운동량이 보존되기 때문이다. 회전하는 물체는 회전축에 수직한 방향으로 원심력을 느낀다. 그러므로 회전하는 기체 구름은 중력이 원심력에 상쇄되는 적도 근방보다 회전축 근방에서 빨리 수축한다. 따라서 회전하는 가스 구름은 중력 수축이 진행됨에 따라 점차 납작한 모습의 회원 원반체로 변하다가 결국 나선 은하가 된다. 그러니까 거대한 바람개비 구조의 물질 분포가 텅 빈 공간에 자리잡게 되는 셈이다. 가스 구름들 중에서 애초부터 아주 느리게 회전했든가 질량이 충분히 크지 않은 것들은 중력 수축하여 타원 은하가 되었다. 우주 공간을 눈여겨 보면 하나의 거푸집에서 찍어 낸 것처럼 모양이 아주 비슷한 은하들이 우주 도처에 널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은하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는 중력의 법칙과 각운동량 보존의 법칙이 우주 어디에서든지 그대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아직 덜 성숙한 은하 내부에서도 중력 수축이 국부적으로 진행된다. 질량은 은하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밀도가 충분히 높은 성간운들은 중력수축을 한다. 수축으로 성간운의 부피가 감소하면서 중심부의 온도가 상승하고 내부의 온도가 약 1000만도에 이르면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드디어 별이 탄생하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이다. 초기 질량이 무척 큰 변들에서는 핵융합 반응을 통한 진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질량이 큰 별은 표면에서 막대한 양의 빛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이것을 공급하려면 중심부의 수소를 빨리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질량이 큰 별은 작은 별보다 핵연료를 훨씬 더 빠르게 소진하고 자신의 일생을 초신성 폭발로 마감한다. 핵융합 반응으로 일생 동안 합성한 헬륨, 탄소, 산소, 그 외의 무거운 원소를 초신성 폭발의 순간에 성간 공간으로 흩어 버린다. 이 무거운 원소들이 다름 세대의 별은 만드는 원료 물질로 다시 쓰임으로써 하나의 사이클이 완성되는 것이다. 중량급 항성이 이렇게 초신성으로 폭발할 때마다 충격파가 발생하는데, 이 충격파가 주위에 있던 가스층을 통과하면서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그 가스 물질을 가속시킨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충격파는 결국 은하 간 물질을 압축하고 은하들까지 가속시킨다. 충격파의 압축 작용 덕분에 중력은 자신의 위력을 발휘할 호기를 맞게 된다. 은하 또는 은하단 규모의 가스 덩어리뿐 아니라 이것보다 질량이 훨씬 작은 가스 구름에서도 충격파로 인해 중력 수축이 촉발된다. 그러므로 다양한 크기의 구조물들이 여기저기에서 만들어지는데 이때 초신성 폭발이 결정적 기여를 한다. 이것이 바로 우주 진화의 대서사시이다. 대폭발에서 은하단, 은하, 항성, 행성으로 이어지고, 결국 행성에서 생명이 출현하게 되고 생명은 곧 지능을 가진 생물로 진화하게 된다. 물질에서 출현한 생물이 의식을 지니게 되면서 자신의 기원을 대폭발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식할 수 있다니, 이것이 우주의 대서사시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는가!
우주 팽창과 대폭발 이론이 전반적으로 옳다고 한다면, 우리는 좀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대폭발의 순간은 어떤 상태였는가? 대폭발 이전의 상황은? 그 당시 우주의 크기는? 어떻게 물질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던 우주에서 갑자기 물질이 생겨났는가? 이러한 물음은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사람들은 보통 특이점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한 설명을 신의 몫으로 떠넘긴다. 이것은 여러 문화권에 공통된 현상이다. 하지만 신이 무에서 우주를 창조했다는 답은 임시변통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근원을 묻는 이 질문에 정면으로 대결하려면 당연히 "그렇다면 그 창조주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해결해야 한다. 만일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는 식의 결론밖에 내리지 못한다면, 차라리 우주의 기원문제에는 답이 없다하고 한 단계 단축하는 것이 어떨까? 또 한편으로, 신은 항시 존재했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역시 한 단계 줄여, 우주가 항시 존재했다고 하면 어떻겠는가?
13. 누가 우리 지구를 대변해 줄까?
핵무기를 통한 전쟁 억지라는 아이디어는 전적으로 우리의 비인간적 조상의 행동 양식에 근거한 것이다. 현대 정치가 중 한 사람인 헨리 키신저는 이렇게 쓴 적이 있다. "핵 억지력의 실현 여부는 무엇보다 심리학적 판단 기준에 달려 있다. 핵 사용 억지의 목적에서 볼 때 협박성 공갈을 신중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심각한 위협을 허풍으로 오판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때로는 막가파 식의 비이성적 행태를 상대국에게 구사한다던가, 아니면 상대방을 핵전쟁의 가공할 결과에 대한 두려움으로 완전 세뇌하여 핵무기로 인한 전멸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게 유도하는 것이 핵 억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실질적 방책이라는 것이다. 광기 어린 협박의 실제 목적은 가상의 적대국을 지구 전역에 걸친 대결의 장으로 내몰지 않고 오히려 분쟁의 여러 쟁점에서 상대로부터 양보를 끌어내는 데에 있다. 이러한 막가파식 공갈 협박을 완벽하게 구사하여 상대방을 속이려면 절묘하게 과장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과장에는 필연적으로 따라다니는 중대한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한 사람이 비이성적 행태로 일단 협박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이러한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서 협박의 허세를 허세로 묶어 두지 못하고 언젠가 결국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협박을 실행으로 옮기는 우를 범하게 된다. 자신이 부리는 허세를 상대방으로 하여금 허풍이 아니라 실제라고 믿게 하려다가,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어 버리는 경우가 생기고 만다. 협박은 실행으로 옮겨질 위험을 반드시 동반한다.
현대 과학의 씨앗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뿌려졌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그 씨앗이 깊게 뿌리를 내려 큰 나무로 일찍 성장할 수 없었을까? 왜 서구 문화는 그 후 1000년이나 지속된 암흑시대라는 혼수상태에 빠져들게 됐을까? 암흑시대는 콜럼버스, 코페르니쿠스 그리고 그들의 동시대인들에 의해서 최후를 맞는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이미 이룩했던 것들이 이 무렵에 와서 재발견되고는 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융성하던 전 시기를 통하여 과학자들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주장이나 가정에 도전했다는 기록이 단 한 건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별의 영구 불변성은 의심했지만, 노예 제도의 정당성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과학적 발견과 과학 지식은 일부 기득권층의 소유물로 남아 있었다. 그 위대한 도서관 안에서 벌어지던 새로운 발견들이 일반 대중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새로운 발견은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아무도 발견의 내용과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연구 결과가 대중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했다. 기계와 증기 공학의 발견들은 오로지 무기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데 이용되거나, 아니면 왕의 흥미를 자극하고 미신을 부추기는 데에 쓰였을 뿐이다. 과학자들은 기계가 언젠가는 사람을 노예의 상태에서 해방시킬 수 있따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대에 이루어진 위대한 업적들의 거의 대부분이 실제로 응용되지 못하고 잊혀졌다. 이렇게 됨으로써 과학은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지 못했다.
Cosmos : A Space Time Odyssey (2014, National Geographic)
01) 프롤로그, 은하수에 서서
02) 생명의 강물
03) 지식이 두려움을 정복할 때
04) 밤하늘의 유령
05) 빛의 뒤에서
06) 깊이 더 깊이
07) 깨끗한 방
08) 태양의 자매들
09) 잃어버린 세계
10) 세상을 바꾸는 힘
11) 불멸을 꿈꾸다
12) 지구의 메세지
13) 창백한 푸른 점
빛의 속도가 절대적이지 않다면 자동차 A의 빛은 ‘빛의 속도(c=초속 30만㎞)+시속 100㎞’로 당신에게 올 것이다. 자동차 B의 빛의 속도는 그냥 c다. A의 빛이 B의 빛보다 먼저 교차로에 다다른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렇게 되면 두 자동차의 충돌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중력을 배제한 특수상대성이론은 두가지 절대 원칙을 전제한다.
1. 자연의 법칙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2. 빛의 속도는 누구에게나 똑같다.
첫번째 법칙은 갈릴레오 때부터 있어 왔던 원칙이기 때문에 별로 놀랍지 않다. 문제는 두번째, 빛의 속도의 절대성이다. ‘일부 먼 은하계는 빛의 속도와 가까운 속도로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우주는 팽창중) 하지만 이들 먼 은하에서 오는 빛의 속도는 지구에서 형광등을 켰을 때의 빛의 속도와 다르지 않다.’
시속 약 100㎞로 달리는 두 자동차가 교차로에서 충돌한다고 상상해보자.(그림) 당신은 교차로의 한 거리에서 그 충돌을 목격한다. 빛의 속도가 절대적이지 않다면, 당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는 자동차 A의 빛은 ‘빛의 속도(c=초속 30만㎞)+시속 100㎞’로 올 것이다. 당신의 시선에 교차해 오고 있는(수평으로 지나가는) 자동차 B의 빛은 정상속도인 c로 오고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A의 빛이 B의 빛보다 먼저 교차로에 다다르는 것을 볼 것이다.
자동차의 시속 100㎞는 빛의 속도의 100만분의 1에 불과하므로 차이를 알아채기는 어렵다. 하지만 멀리서 충돌을 관찰한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당신이 100만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초강력 망원경으로 충돌을 본다고 상상해보자. A의 빛은 B의 빛보다 100만분의 1 더 빠른 속도로 오기 때문에 100만 광년의 거리를 오면 A의 빛은 B의 빛보다 1년 앞서 당신에게 도착한다. 자동차 A가 B보다 1년 먼저 교차로에 도착한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 자동차가 충돌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역설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빛의 속도에 자동차의 속도를 더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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