괄호 시대
김임선
괄호를 연다
단단하게 굳은 뼈를 얼리고 녹여 부드럽게 혀를 박는다
벌린 아가리에 화살을 장전한다
꾸역꾸역 구역을 밀어 넣는다
깡패처럼 패거리를 만들면 없던 힘이 생겨나요
뾰족하게 입술을 밀면 핑계는 자신을 끌어안고 아가미를 열듯 품은 뜻을 연다
화살의 괄호는 주검일 수도 빵의 괄호가 허기이듯
그러하니
입을 열듯 함부로 열지 마세요
아버지의 괄호는 아들이 아니다 꽃의 괄호가 향기가 아니듯
차마 듣고 싶지 않았던 품은 말
신은 내 인생의 지휘봉을 가로채면서 말했다
지휘를 하기엔 네 팔이 너무 짧구나
다음날 겨드랑이를 빠져나간 내 지휘봉은 팔이 긴 친구의 목에 넙죽 걸렸다
그때 이후로 괄호 밖과 괄호 안의 세계를 호시탐탐 의심하는 버릇이 생겼다
너는 속이 썩었구나
괄호는 자주 야성적이다
안과 밖의 무게가 달라서 활은 휘어지고
큰 곰 자리 작은 곰 자리는 노리는 눈이 많아서 겨누기가 어렵다
세상을 닫는 심정으로 손 눈썹을 드리운다
납작하게 닫히는 신의 뜻
지휘봉 대신 트라이앵글을 주면서
채송화 맨드라미처럼 맨 앞자리에 챙챙챙챙 총알받이로 앉아
취한 듯 젓가락이나 두드리란다
막걸리나 마시면서 홍도야 울지 마라
괄호를 굳게
입술을 꽉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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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임선 1993년 『문예중앙』 소설 등단. 202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장편소설 『바람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