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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난 베드로
사도행전 12:1-25
헤롯 왕이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도 잡아 가둡니다. 그러나 교회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베드로를 구해 주십니다.
야고보의 순교와 베드로의 투옥
[행12:1-25, 쉬운성경]
1 이 무렵, 헤롯 아그립바 왕은 교회에 속한 몇 사람을 박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2 그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3 헤롯은 유대인들이 이 일로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마저 잡으려 했습니다. 그 때는 무교절 기간이었습니다.
4 헤롯은 베드로를 붙잡아 감옥에 넣고, 군인 네 명씩 네 패에게 맡아 지키게 했습니다. 유월절이 지나면 베드로를 끌어 내어 사람들 앞에서 재판할 작정이었습니다.
5 그래서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고,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6 헤롯이 베드로를 끌어 내려던 전날 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두 군인 사이에서 사슬에 묶인 채 잠들어 있었고, 문 앞에는 경비병이 문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천사의 도움
7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고, 환한 빛이 감옥을 비추었습니다. 천사가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서 깨우며 "어서 일어나라"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의 손목에 매여 있던 사슬이 풀렸습니다.
8 천사가 베드로에게 "허리끈을 매고, 신을 신어라"라고 말하여, 베드로는 천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천사는 다시,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말했습니다.
9 베드로는 천사를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도 천사가 하는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환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0 천사와 베드로가 첫 번째 경비병과 두 번째 경비병을 지나 성으로 통하는 철문에 이르자, 철문이 저절로 열렸습니다. 그들이 문을 나와 거리를 한 구역 걸을 때에, 갑자기 천사는 베드로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11 그제서야 비로소 베드로는 정신이 들어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이제야 나는 이 모든 것이 실제라는 것을 알겠다.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에서, 그리고 유대인들의 모든 계략에서 구하셨다."
12 이런 사실을 깨닫고서, 베드로는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13 베드로가 바깥문을 두드리자, 로데라는 여종이 문을 열어 주러 나왔습니다.
14 여종은 베드로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너무나 기뻐서, 문을 열어 주는 것도 잊은 채 안으로 달려가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문 밖에 와 있다고 알렸습니다.
15 그러자 사람들은 여종에게 "네가 미쳤구나"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종이 계속해서 참말이라고 우기자, 사람들은 "그렇다면 베드로의 천사인가 보다"라고 말했습니다.
16 이런 중에도 베드로는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문을 연 사람들은 베드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한 뒤에, 주님께서 자기를 감옥 밖으로 인도해 내신 일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도 알리시오"라고 말하고, 다른 곳으로 떠났습니다.
18 다음 날 아침, 군인들 사이에서는 베드로가 없어진 일로 한바탕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19 헤롯 아그립바는 철저하게 수색하여 베드로를 찾으라고 명했으나,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경비병들을 심문한 뒤에 대신 그들을 처형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후에 헤롯은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가서 얼마 동안을 지냈습니다.
20 한편 두로와 시돈 사람들은 헤롯에게 몹시 노여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리를 지어 헤롯에게 갔습니다. 그들은 왕의 내실 시종인 블라스도를 회유하여 그의 도움을 받아 헤롯에게 화해를 요청했습니다. 이는 이들 지방 사람들이 헤롯의 영토에서 식량을 공급받았기 때문입니다.
21 약속한 날, 헤롯은 왕의 복장을 하고 왕좌에 앉아 그들에게 연설을 하였습니다.
22 그러자 군중들은 "이것은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신의 소리다"라고 외쳤습니다.
23 그러나 헤롯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의 천사가 즉시 헤롯을 내리쳐서 헤롯은 벌레에 먹혀 죽고 말았습니다.
24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더 널리 퍼져서 믿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25 바나바와 사울은 자기들의 사명을 다 마치고, 마가라고도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왔습니다.
[Ac 12:1-25, NIV]
1 It was about this time that King Herod arrested some who belonged to the church, intending to persecute them.
2 He had James, the brother of John, put to death with the sword.
3 When he saw that this met with approval among the Jews, he proceeded to seize Peter also. This happened during the Festival of Unleavened Bread.
4 After arresting him, he put him in prison, handing him over to be guarded by four squads of four soldiers each. Herod intended to bring him out for public trial after the Passover.
5 So Peter was kept in prison, but the church was earnestly praying to God for him.
6 The night before Herod was to bring him to trial, Peter was sleeping between two soldiers, bound with two chains, and sentries stood guard at the entrance.
7 Suddenly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and a light shone in the cell. He struck Peter on the side and woke him up. "Quick, get up!" he said, and the chains fell off Peter's wrists.
8 Then the angel said to him, "Put on your clothes and sandals." And Peter did so. "Wrap your cloak around you and follow me," the angel told him.
9 Peter followed him out of the prison, but he had no idea that what the angel was doing was really happening; he thought he was seeing a vision.
10 They passed the first and second guards and came to the iron gate leading to the city. It opened for them by itself, and they went through it. When they had walked the length of one street, suddenly the angel left him.
11 Then Peter came to himself and said, "Now I know without a doubt that the Lord has sent his angel and rescued me from Herod's clutches and from everything the Jewish people were hoping would happen."
12 When this had dawned on him, he went to the house of Mary the mother of John, also called Mark, where many people had gathered and were praying.
13 Peter knocked at the outer entrance, and a servant named Rhoda came to answer the door.
14 When she recognized Peter's voice, she was so overjoyed she ran back without opening it and exclaimed, "Peter is at the door!"
15 "You're out of your mind," they told her. When she kept insisting that it was so, they said, "It must be his angel."
16 But Peter kept on knocking, and when they opened the door and saw him, they were astonished.
17 Peter motioned with his hand for them to be quiet and described how the Lord had brought him out of prison. "Tell James and the other brothers and sisters about this," he said, and then he left for another place.
18 In the morning, there was no small commotion among the soldiers as to what had become of Peter.
19 After Herod had a thorough search made for him and did not find him, he cross-examined the guards and ordered that they be executed.Then Herod went from Judea to Caesarea and stayed there.
20 He had been quarreling with the people of Tyre and Sidon; they now joined together and sought an audience with him. After securing the support of Blastus, a trusted personal servant of the king, they asked for peace, because they depended on the king's country for their food supply.
21 On the appointed day Herod, wearing his royal robes, sat on his throne and delivered a public address to the people.
22 They shouted, "This is the voice of a god, not of a man."
23 Immediately, because Herod did not give praise to God, an angel of the Lord struck him down, and he was eaten by worms and died.
24 But the word of God continued to spread and flourish.
25 When Barnabas and Saul had finished their mission, they returned from Jerusalem, taking with them John, also called Mark.
헤롯- 로마 제국을 대신해 팔레스타인을 통치한 이두매(Idumea)의 왕가이다(B.C.37-A.D. 70년).
이 왕조는B.C. 1세기초에 안티파터(Antipater) 1세에 의해 창건되었는데, 그는 알렉산더 얀네스(Alexander Jannes)에 의해 이두매의 통치자(헬. '스트라테고스'-"장군") 로 임명되었다. 안티파터(또는 안티파스 [Antipas] -성경 명은 안디바)2세는 하스모니아 왕가의 히르카누스(Hyrcanus) 2세를 조정함으로써 조금씩 권력을 쌓아갔고, 로마 정치권의 호감을 획득하였다. 그리하여 B.C. 47년에 율리우스 케사르(Julius Caesar)는 그를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이 가문은 명목상으로는 유대인이다. 왜냐하면 요한 히르카누스가 B.C. 125년 이두매를 정복한 후 모든 이두매 인들을 강요하여 할례를 받고, 유대교를 신봉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1. 헤롯 대왕(Hreod the Great, B.C.73-74년) -안티파터 2세의 둘째 아들로 헤롯이 스물 다섯 살 때에(47년) 안티파터는 그를 갈릴리의 통치자로 임명하였다. 헤롯은 당시에 골치거리였던 도적떼를 즉시 체포하여 처형함으로써, 비록 산헤드린의 분노를 사기는 했지만 로마인들과 갈릴리의 유대인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 후에 그는 하스모니아 왕가의 안티고누스(Antigonus)의 갈릴리 침공을 물리쳤다. 안티파터가 암살된 후에 로마의 집정관 마르크 안토니(Mark Antony)는 헤롯과 그의 형 파사엘(Phasael)을 유대의 분봉왕들로 임명하였다. 40년에 예루살렘은 안티고누스를 왕으로 삼은 파르티아 군대에 의해 포위를 당했는데 이때 파사엘은 파르티아인에 의한 감금 중에 자살을 하였고, 헤롯은 로마로 달아났다가 그 곳에서 유대의 왕으로 임명되었다. 38년에 로마 군대는 파르티아인들을 몰아내었고, 1년 후에 헤롯은 안티고누스를 물리침으로써 왕위를 획득하였다. 헤롯의 통치는 근본적으로 평화스러웠다. 그는 특히 유대인 신하들 사이에서 지지를 공고히 하고, 로마의 지도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역량과 군대의 기량을 과시하였다. 헤롯은 그의 후원자 안토니의 사망 이후에 아구스도(Augustus Octavius)의 호감을 사는 데 성공하였다. 안토니와 아구스도 두 사람의 원조로 그는 유대 경계를 남·북으로 확장시켰으며, 나아가 그의 통치는 헬라 문화의 보급과 그 땅의 역사에서는 비견할 것이 없는 건축 계획으로 매우 찬란했다. 헤롯은 일련의 거대한 요새들을 건축하고, 사마리아·예루살렘·여리고와 같은 방대한 규모의 도시들을 재건하고 장식하였다. 그가 아구스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가이사랴로 개명한 스트라토(Strato) 성채는 로마의 팔레스타인 수도가 되었다. 그는 전형적인 헬라 양식으로 극장들과 경기장들을 건축하고, 운동 경기들과 그 대회들을 장려하였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유대인들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장 위대한 건축 사업은 B.C.20년에 시작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이었다. 이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헤롯의 가정생활은 불안과 동요로 가득찼으며, 이는 잔인하고 불안정한 그의 천성을 더욱 강화시켰다. 그는 열 아내와 결혼하였는데 하스모니아의 히르카누스 2세의 손녀인 마리암네(Mariamne)와 대제사장 시몬의 딸인 또 다른 마리암네를 포함한 많은 경우가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주로 헤롯의 누이 살로메와 하스모니아의 마리암네의 어머니 알리산드라(Alexandra)에 의해 야기된 왕궁의 음모가 만연되었으며, 히르카누느 2세의 사람들과 마리암네, 그녀의 형제인 대제사장 아리스토블루스(Aristobulus), 그리고 헤롯의 세 아들을 포함한 다수의 암살과 처형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러한 암살들과 얽혀 헤롯의 변덕스러운 편애는 그의 계승자에 대한 선택을 수없이 바뀌게 하였다. 아무튼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여섯번이나 바뀐 헤롯의 최종적인 뜻은 아켈라오를 유대와 사마리아의 왕으로, 빌림과 안디바를 나머지 영토의 분봉왕들로 임명하게 하였다. 헤롯은 그의 아들 안티파터를 처형하고,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누이 살로메와 그 남편 알렉사스(Alexas)에게 자신이 임종할 때에 표면적으로 국가적인 애도 기간을 확실히 하고자 하여 여리고에 있는 경기장에서 다수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살해하도록 명령한 직후에 (B.C. 4년)결국 동맥경화증으로 죽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때는 바로 이 헤롯의 통치 말기였다(마 2: 1).
마태는 헤롯이 예수님의 나심을 자신의 권력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3절).
따라서 그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13절) 베들레헴과 그 지경에 있는 두 살 아래의 모든 남자 아이를 살해할 것을 명령하였다(16절).
비록 이 사건은 달리 증명되지 않고 있지만 헤롯의 이 행위는 그의 잔인함의 전형적인 것이었다.
2. 분봉왕 헤롯(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B.C. 약21-A.D. 39년)-헤롯 대왕과 그의 사마리아인 아래 말타스(Malthace) 사이에 난 아들로 예수님의 생존 당시에 갈릴리와 베레아(Perea)지방의 분봉왕이었다. 그는 신약에서 헤롯왕으로 표현되어 있는대로(막 6 : 14,22;마 14: 1, 9) 그에게 이 왕명을 수여한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그의 수도로 디베랴(Tiberias)를 건설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복 형제인 헤롯 2세(신약에서는 “빌립”으로 불리움;마 14:3;막 6:17)의 아내이자 자신의 조카인 헤로디아의 매력에 빠져들어, 나바티아 왕 아레타스(Aretas) 4세의 딸인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그녀와 결혼하였다. 이것은 종교적으로 유대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였으며, 세례 요한은 공개적으로 안디바를 비난하여 결국 그에 의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마 14 : 3-5).
후에 안디바는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에 대한 편애에 말려 결국 요한의 머리를 벨 것을 명령하였다(6-11절).
귀찮던 세례 요한의 계승자로 예수님을 본 안디바(마 14:1-2)는 그에 대한 어떤 음모를 계획했을 것이다(눅 13:31-33).
후에 본디오 빌라도는 재판을 위해 갈릴리 사람 예수를 안디바에게 보냈다. 그러나, 이 분봉왕은 최종 판결을 위해 그를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냈다(23: 7-12).
A.D. 36년에 아레타스(→아레다)는 그의 딸에 대한 과거의 모독에 보복을 하여 안디바의 군대를 국경의 한 소전투에서 물리쳤다. 황제 디베료(Tiberius)는 로마 군대를 급파하였으나 이 황제의 죽음으로 인해 출정은 중도에서 포기되었다. 후계자 칼리굴라(Caligula)는 헤로디아의 형제인 아그립바 1세를 헤롯대왕의 또 다른 아들인 빌립의 영토를 다스리는 왕으로 임명하였다(참조. 눅3: 1).
이때 질투심이 많은 헤로디아는 안디바로 하여금 로마에서 유사한 대우를 요청하도록 설득하였다. 그러나 아그립바는 그가 파르티아인들과 동맹 관계에 있음을 고발하였고, 이로 인해 안디바는 헤로디아와 더불어 가울에 있는 리욘즈(Lyons)로 추방되었다.
3. 헤롯 아그립바(Agrippa) 1세(B. C. 10-A.D. 44년)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이며 헤롯 대왕의 손자이다. 또한 헤로디아의 형제이며 헤롯 안디바의 조카이다. 아버지가 암살된 후에 로마로 보내진 그는 황실에서 양육을 받으면서 디베료의 아들 드루수스(Drusus)와 친구가 되었다.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방탕하게 살았고, 팔레스타인으로 달아난 후에는 그의 후원자 안디바의 미움을 샀다. A.D. 36년에 로마로 돌아온 그는 가이우스 칼리굴라와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지만 황제에 대한 경솔한 말 때문에 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황제 대베료가 죽은 지 6개월 후에 후계자 칼리굴라는 아그립바를 헤롯 빌립의 영토를 다스리는 왕으로 임명하였고, 아그립바는 안디바의 추방 모의에 가담함으로써 갈릴리 지방에 대한 통치권도 얻었다. 그가 칼리굴라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에 황제의 조각상을 세우는 것을 단념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로마에 가 있는 동안에 황제가 암살 당하였다. 아그립바는 클라우디우스(Claudius)의 계승이 가능하도록 원로원에 중재를 하였고, 그 때문에 새 황제는 유대와 사마리아를 그에게 허락하였다. 아그립바가 A.D. 41-44년에 왕으로 통치하던 영토는 이제 헤롯 대왕의 영토와 비등하게 되었다. 아그립바 1세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유대인의 율법을 존중하고, 초기의 기독 교회를 핍박함으로써 유대 백성들로부터 호의를 얻었다. 그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를 처형하고(행 12: 1-2;'헤롯 왕'),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다(3-5절).
그는 A.D. 44년에 백성들이 그를 신으로 열렬히 환호한 직후에 갑자기 죽고 말았다(참조. 20-23절).
4. 헤롯 아그립바 2세(A.D. 27-약100년) 아그립바 1세의 아들로 로마 황실에서 양육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에 그는 불과 열 일곱 살이었으며, 그의 영토를 통치하기에는 아직도 어리다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 지역은 총독들의 관할하에 들어갔다. A.D. 50년에 그는 숙부 헤롯의 뒤를 이어 칼키스(Chalcis, 현재의 레바논 지방에 있음)의 왕이 되었다. 53년에 황제 클라우디우스는 이곳을 헤롯 빌립의 보다 더 큰 영토(Batanea Trachonitis, Gaulanitis)와 리사니아스(Lysanias)에 의해 통치되던 아비레네(Abilene)지역과 교환하였다. 54년 황제를 계승한 직후에 네로는 디베랴를 포함한 여러 도시들(Tarichea, Julias, Abila등)을 덧붙여 주었다. 따라서 아그립바 2세는 상당한 영토를 통치하게 되었다. 아그립바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거의 지지를 받지 못했는데, 부분적으로 이는 그가 누나 베니게(Bernice)와 근친상간을 범했기 때문이다. 그는 제사장직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였고, 아마도 이러한 종교적 권위 때문에 총독 베스도가 그에게 바울의 변호를 들어보도록 청하였던 것 같다(행 25: 13-26: 32;'아그립바').
아그립바는 예루살렘에 있던 하스모니아 왕가의 궁전을 확장하고, 또한 가이사랴에서 건축 사업을 추진하였다. 66년 제 1차 유대인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는 베스파시안(Vespasian)을 지지하였고, 70년에 예루살렘에 정복된 후에는 티투스(Titus)와 함께 로마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헤롯 왕가의 마지막 통치자로 약 100년 경에 죽었다. (→아켈라오),( →빌립)※참고 문헌S. H. Perowne, The Life and Times of Herod the Great (London: 1956); The Later Herods : The Political Background of the New Testament (London:1958) ;S.Sandmel,Herod:Profile of a Tyrant(Philadelphia: 1967)
야고보- 1. 예수님의 제자. 세베대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 그는 베드로나 요한과 함께 초기에 부름받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마 4 : 21) , 열두 제자 중에 중심 인물에속한다(마 17 : 1 ; 26 : 37 ; 눅 8 : 51).
그런데 이상할 정도로 성경에는 그에 대한 언급이 적다. 야고보의 아버지는 어부였다. 그래서 야고보도 동생인 요한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 어부가 되었다. 베드로와 안드레 역시 그의 동료였다(마 4 : 21 ; 눅 5 : 10).
그의 어머니는 주의 모친 마리아의 자매인 살로메임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야고보는 예수님의 사촌인 셈이다(마 27 : 56 ; 참조. 막 15 : 40 ; 16 : 1 ; 요 19 : 25).
야고보와 요한이 성경에 언급될 때마다 대부분 야고보의 이름이 먼저 언급되는데(단, 눅9 : 28 ; 행 1 : 13은 예외), 이는 야고보가 형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이유로 그를 일반적으로 '대 (大)야고보'라고 불렀다. 예수께서 야고보와 요한을 '보아너게 ' (“우뢰의 아들" ;막 3 : 17)라고 불렀는데, 이 별명은 아마도 그들의 불같이 급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 같다. 또한 그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방문을 거절한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태도와, 개인적인 영광을 추구하려는 태도에서도(막 10 : 35-45 ; 눅 9 : 51-56), 이와 같은 성격이 나타났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후, 야고보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들어왔으며(행 1 : 13), 얼마되지 않아 헤롯에 의하여 순교당하였다(12 : 2).
그는 열두 제자 가운데서 최초의 순교자였다. 전통적으로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는 '대야고보'라고 불렀으며,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소야고보'라고 부렀다.
2. 예수님의 제자. 알패오의 아들이며(마 10 : 3 ; 막 3 : 18 ; 눅 6 : 15 ; 행 1 : 13) 흔히 '소야고보'라고 불렀다. 소야고보는 열두 제자들의 명단이 소개될 때에만 언급되었는데 그는 항상 세 번째 그룹의 첫 번째 인물로 소개되었다. 어떤 학자들은 마 2 : 14의 레위와(레위 역시 알패오의 아들임) 동일인 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지만,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을 연관시켜 볼 때(참조. 마 9 : 9), 레위는 야고보라기 보다는 마태인것 같다. 또 다른 학자들은 소 야고보를 마리아의 아들 야고보(아래 4항)와 같은 인물로 추측한다.
3.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마 13 : 55 ; 막 6 : 3 ; 갈 1 : 19).
신약과 초대 교회 문서들에서는 이 야고보가 예수님의 동생이라고 소개하였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에서는 이와 같은 견해를 부인하는데, 그 이유는 마리아가 영원한 동정녀였다는 교리를 수호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견해를 내세운다. 그 하나는 야고보가 예수님 조카였다는 견해이며, 또 하나는 요셉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전에 이미 전처의 소생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이 야고보라는 견해이다.다른 사도들이 전도 여행을 다니던 동안, 예루살렘 교회는 야고보의 지도를 받고 있었던 것 같다(행 15 : 13-21).
이때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이미 순교를 당한 후였다(행 12 : 2).
실제로 야고보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예수님의 동생으로 성도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었음이 틀림없다.야고보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매우 설득력있고 타당한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이방인의 할례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만들었다(행 15 : 13).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지 얼마 되지않아 예루살렘을 방문한적이 있었는데, 그때 야고보와 맨처음 상면하였다(갈 1 : 19 ; 참조. 2 : 9, 12).
그후 바울이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에도 야고보를 만났었다(행 21 : 18).
바울에게 정결예식을 행하라고 권면했던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야고보였다(행 21 : 17-26).
안디옥에 있던 베드로를 돕기 위하여 야고보는 사절단을 보낸 적이 있었다(갈 2 : 12).
감옥에서 풀려나온 베드로는 자기의 석방 소식을 먼저 야고보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였다(행 12 : 17).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처음부터 예수께서 메시야라는 진리를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참조. 요 7 : 5).
그러나 십자가 사건이 있은 후에는 사도들과 함께 행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행 1 : 14).
따라서 고전 15 : 7에 언급된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임이 분명하다.또한 이 야고보는 야고보서의 저자인 것 같다. 그는 구약에 대하여 매우 정통했던 인물이었음이 들림없다(행 21 : 17-26 ; 갈 2 : 12).
전승에 의하면,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첫 번째 감독이었다고 한다. 유대적 기독교 사회에서는 베드로나 바울보다 야고보를 더 높이 평가하였다. 야고보는 순교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4. 마리아의 아들 야고보(마 27 : 56 ; 막 15 : 40 ; 16 : 1 ; 눅24 : 10).
이곳에 언급된 마리아는 예수님의 모친이거나(참조. 위의 3항), 모친의 자매인 것으로(참조. 위의 1항) 추측된다.5. 유다의 아버지. 유다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제자였다(눅 6 : 16 ; 행 1 : 13).
이 야고보의 개인 신상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요한- 1. 세례 요한-요한의 아버지는 제사장 사가랴였으며, 어머니는 마리아의 '친족' 엘리사벳이었다(눅 1:36).
그래서 전통적으로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촌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친족'이란 말의 정확한 한계와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세례 요한은 아마도 신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수수께끼 같은 인물일 것이다.누가복음에 나타난 세례 요한의 출생기사는 이삭의 출생과 매우 유사한 점이 많다(눅 1:5-25; 참조. 창 18:9-15).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사가랴와 엘리사벳 역시 늙어서도 자식을 두지 못하였다. 요한과 이삭 모두 그들의 출생을 천사가 예고해 주었으며, 부모 중 한 사람이 그 예고를 믿지 못하였다. 제사장 사가랴가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을 때, 천사가 찾아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요한이라 불리울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예고해 주었다. 천사는 또한 태어날 아이가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않을 것이며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할 것이라는 사실도 예고해 주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선지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의 오심을 전파하고 준비할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사가랴가 천사의 말을 의심하자, 천사는 사가랴에게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가 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엘리사벳은 예언대로 임신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이 아이의 이름을 놓고 논쟁을 벌일 때 사가라는 필기 도구로 아기 이름을 '요한'으로 지어야 한다고 써주었다. 이 일이 있은 즉시 사가랴는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요한은 예수님보다 약6개월 먼저 태어났다(눅 1:36).
세례 요한은 장성한 후부터 줄곧 광야에서 지냈다(80절).
세례 요한은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린지 15년째 되던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이미 유다 총독을 맡고 있었을 때 그의 사역을 시작하였다(A.D. 약28-29년경; 눅 3:1-2).
요한은 확실히 독특한 인물이었다. 그는 낙타 털옷에 가죽 허리띠를 차고 다녔기 때문에 외모에서도 엘리야 선지자와 비슷하였다(막 1:6; 참조. 왕하 1:8).
그는 먼저 유다 남부의 요단강 하류에서 사역을 시작하였다. 요한의 청중들은 그의 메시지를 믿었던 자들뿐만 아니라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도 있었다.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독사의 자식들'이라고신랄하게 비난하였는데(마 3:7), 이러한 비난을 그 당시 일반 백성들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한의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로는 메시야의 오심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설교하였다(요 1:6-8, 19-22).
그리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면 회개의 세례를 받으라고 강조하였다(눅 3:3-14).
그러나 요한은 자기 후에 오실 그 분은 물이 아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명백하게 밝혀주었다(막 1:7-8).
요단강에서 예수께 세례를 준 사람도 세례 요한이었다(마 3:13-17).
그리스도의 예비자였던 요한은 그 생애와 사역에 있어서 예수님과 유사한 점이 많다(참조. 수태고지, 출생, 죽음 등).
요한이 그 당시의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고 또한 교회가 그에게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가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했기 때문이었다(요 1:19-36).
요한의 제자들 가운데 많은 자들이 후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먼저 안드레와 요한이 그러했고(35-42절), 이어서 아볼로가 그러했으며(행 18:24-26), 에베소의 열두 제자들도 그러했다(l9:1, 7).
세례 요한은 불륜의 결혼을 한 헤롯 왕을 강직하게 비난하였다. 결국 헤롯은 요한이 정치적인 반란을 선동할까봐 감옥에 가두었다(막 6:14-19).
요세푸스의 저술에 의하면 헤롯은 사해 근처 마카비-헤롯 요새에서 요한을 처형시켰다고 한다(Ant. xviii. 5.2).
어떤 학자들은 세례 요한이 쿰란 공동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비록 이와 같은 관계에 대하여 정확한 근거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세례 요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쿰란 종파와 유사성이 있다. 곧 바리새적인 유대교에 대한 반대(마 3:7), 은둔 생활과 단순한 생활방식(3:1-5), 세례와 순결에 대한 강조(3:11; 요 3:25-27), 성령과 심판에 대한 메시지(마 3:11-12), 그리고 그의 메시야관(觀)(요 1:32) 등이 쿰란 종파와의 유사점들이다. ※ 참고 문헌 C.H. Kraeling, John the Baptist(New York:1951); W. Wink, John and Baptist in the Gospel Tradition NTSMS7(1968)
2. 사도 요한-세베대의 아들이며 사도 야고보의 동생이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도이자 예수님의 사촌이었을 것이다(요한의 어머니 살로메는 마리아와 자매 지간이었던 것 같다; 참조. 마 27:56, 막 15:40; 요 19:25).
요한과 그의 형 야고보는 아버지와 함께 어부로 일했었다. 그의 집은 꾀나 부유한 편이었던 것 같다(참조. 막 1:20).
시몬 베드로도 요한과 같은 동업자였다(눅 5:10).
본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사도 요한과 안드레는 예수님의 최초의 제자가 되었다(요 1:35-40; 참조. 마 4:21-22).
형인 야고보 그리고 시몬 베드로와 함께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나(막 5:37), 변화산에서 변화하실 때나(마 17:1),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막 14:33) 예수께서는 이 세 제자들만을 특별히 동행하도록 허락하셨다. 요한은 매우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와 그의 형이 '보아 너게' (우뢰의 아들)란 별명으로 불리웠기 때문이다(막 3:17).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으나 예수님을 따르려 하지 않자 요한은 그 사람을 꾸짖어 주었다(눅 9:49).
또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을 때에도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로 그들을 태워버리자고 예수님께 제안한 자들도 바로 요한과 야고보였다(54절).
더구나 이 두 사람은, 순교까지라도 기꺼이 받을터이니 다가올 천국에서 가장 높은 자들이 되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당돌하게 요청하였다(막 10:35 이하).
위에 언급된 사건들이 요한복음에는 거의 나타나 있지 않지만, 설혹 나타나 있는 경우에도 요한은 자신의 이름을 직접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 중 마지막 3일 동안에 행했던 요한의 행적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요한은 성만찬 석상에서 예수님 품에 기대어 있었으며, 배반자가 누구인지를 물어본 장본인이었다(요 13:23, 25; '그의 사랑하시는 자').
그는 대제사장 가야바와도 아는 사이였다. 그래서 베드로와 함께 가야바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18:15).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요한은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곁에 서서 예수님의 운명을 지켜보았다. 이때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마리아를 모셔 달라고 부탁하셨다(19:26-27).
요한은 또한 베드로보다 앞서 달려가 예수님의 빈 무덤을 맨 먼저 본 자였다(20:1-10).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죽지 않으리라는 그 당시의 헛소문에 대하며 올바르게 지적해주었다(21:20-24).
복음서 이외의 신약에는 사도 요한에 대한 자료가 별로 나타나 있지 않다. 그가 사도행전에서는 단지 세 번 언급되었는데, 그때마다 베드로와 함께 등장하였다. 곧 성전 문 앞에서 앉은뱅이를 고칠 때(행 3:1-10),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답변할 때(4:1-22; 참조. 5:17-42), 예루살렘 총회에서 사마리아로 대표단을 파송할 때(8:14-25) 요한이 언급되었다. 바울도 그의 서신서들 가운데 유일하게 갈라디아서에서 요한에 대하여, 예루살렘 교회에서 '기둥같이 여기는'자들 중 한 사람이라고 언급하였다(갈 2:9).
사도 요한에 관한 초대 교회의 전승은 이와 약간 차이가 있다. 어떤 전승은 요한이 대제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음을 근거로 하여(참조. 요 18:15), 그가 제사장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 다른 전승은 그가 최초로 사제복을 입었다고 주장한다(유세비우스, HE., v.24.3).
그러나 요한이 에베소로 건너가 소아시아 지방에 세워진 교회들의 감독이 되었으며 나이가 들어 자연사 했다는 자료는 가장 믿을만한 전승이다. 후대의 전승에는 믿음을 지키다 죽음을 당한 순교자의 명단에 사도 요한이 언급되어 있기도 하다. 초대 교회의 전승은 또한 요한이 신약 가운데 다섯 권을 기록했다고 전하고 있다. 곧 요한복음, 요한 1•2•3서, 요한계시록이 그 책들이다.
3. 요한 마가. (→마가)
4. 시몬 베드로의 아버지(요 1:42; 21:15-17).
마태복음에는 '요나'로 나타나 있다(마 16:7, '바요나'-“요나의 아들”).
5. 대제사장 안나스의 친척(아들이라는 견해도 있음)이며, 아마도 그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되었던 것 같다(행 4:6).
그는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질문을 했던 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이해하기
헤롯 아그립바 왕은 로마의 위임을 받은 유대 지역의 통치자입니다. 이방인 출신이었던 그는 교회를 미워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교회를 핍박합니다. 헤롯의 핍박으로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가 갇힌 상황에서 교회는 마음을 모아 기도합니다(1-6절).
헤롯 아그립바에게 잡힌 베드로가 곧 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구해 주십니다. 베드로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던 성도들은 베드로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기뻐합니다. 한편 헤롯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의 아부에 신이라고 된 것처럼 우쭐해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습니다. 이렇게 국가가 나서서 교회를 박해해도 복음은 더욱 널리 퍼져 나갑니다(7-25절).
적용하기
Q1.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베드로를 경비병이 지키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하셨습니다. 드라마틱한 상황속에서 반전의 드라마를 쓰시는 분이십니다. 철문이 저절로 열리고 꽁꽁 잠겼던 그곳을 걸어나올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돕는 은혜를 느꼈을 것입니다. 복음은 매이지 않고 자유를 얻습니다. 또한 헤롯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고 결국 벌레에 먹혀 죽고 맙니다. 이 땅의 악인은 영원할 것 같지만 그 결말은 참혹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묵과 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벌 주시는 분이십니다.
Q2.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복음은 매이지 않습니다. 감옥에서 건져주신 은혜를 체험한 베드로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를 돕고 있으신 하나님을 느끼며 살아가 봅시다.
기도하기
교회가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리 앞에 닥친 여러가지 현실 앞에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며 나가게 해 주세요.
성경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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