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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17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여기서는 '당파'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5절: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 이것 역시 헬라어로 하이레시스입니다. 처음에는 나쁜 의미의 빗나간 파가 아니라, 그냥 어떤 파벌이나 자기가 택한 학파를 뜻하는 중립적인 단어였습니다. 나중에 뜻이 조금 이단으로 확대되는 것이죠.
사도행전 24장 5절: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바울을 고소할 때 나사렛 당파, 즉 '나사렛 이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도행전 24장 14절: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나의 분파나 이단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바로 믿는 것이라고 변호하는 장면입니다.
사도행전 26장 5절: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여기서도 내가 선택한 종교 분파라는 뜻으로 '파'로 번역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8장 22절: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고린도전서 11장 19절: "너희 중에 파당(편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갈라디아서 5장 20절: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육체의 일 중 하나로 이단이 언급됩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신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디도서 3장 10절: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여기서는 형용사인 '하이레티코스'가 사용되었습니다.
이상의 용례를 볼 때, '하이레시스'라는 단어는 기존의 정통이나 전통과는 다른 학설이나 이론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고, 이미 존재하는 당파나 분파를 일컬을 때도 사용되었습니다. 바리새파처럼 힘 있는 파도 하이레시스였고, 바울이 믿는 새로운 나사렛파도 하이레시스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비방했지만 본질은 하나의 분파(파벌)를 뜻하는 중립적인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기독교 안에서 정통 신앙에서 벗어났거나 성경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교리, 또는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고착되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의 기독교 역사에는 끊임없이 생긴 이단들 때문에 수많은 종교회의(공의회)와 연구가 있었고, 바른 교리의 결정, 이단들에 대한 단죄와 파문이 쭉 이어져 왔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교리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와 정제의 연속이었습니다. 초기 교회(초대교회라는 말보다는 초기 교회가 더 적절합니다)와 중세 교회를 거치며 여러 차례의 이단 시비를 통해 기독교의 주요 교리들을 확립했고 이단을 판단하는 기준들을 만들었습니다.
아래는 신약 시대와 초기 교회에 나타난 주요 이단들과 그것들에 대처한 7차례의 세계 공의회(에큐메니컬 카운슬)의 역사입니다. 아주 짧게 살펴보겠습니다.
당시에는 다음과 같은 이단들이 많았습니다.
영지주의(Gnosticism): '그노시스'라는 특별한 영적 지식이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무리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진짜 육신으로 태어나신 게 아니라 가짜로 나타났다는 가현설을 주장했습니다.
양태론(Modalism): 하나님이 한 분이신데 어떤 때는 성령으로, 어떤 때는 아들 성자로, 어떤 때는 아버지 성부로 모양만 바꾸어 나타난다는 설입니다.
입양설(Adoptionism): 예수님이 마리아의 몸에 수태되었을 때 인간이었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아들로 입양하여 신성을 주었다는 주장입니다.
아폴리나리스주의(Apollinarianism): 라오디게아의 감독 아폴리나리스의 주장으로, 예수님은 진정한 인간도 아니고 진정한 신도 아닌 어설픈 존재로 취급한 이론입니다.
도나투스주의(Donatism): 금욕주의를 몹시 강조하며 엄격한 성결을 강변하여, 조금이라도 신앙이 해이해지거나 배교한 자들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아일랜드의 수도사였던 펠라기우스의 주장으로, 원죄는 아담의 후손에게 전수되지 않았으므로 유아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고,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 자신의 노력으로 쟁취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마니교(Manichaeism): 영지주의에다가 페르시아의 미트라 종교(태양 숭배), 불교까지 융합한 혼합 종교 이단이었습니다.
이러한 이단들에 대처하기 위해 일곱 번의 세계 공의회가 열렸습니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소집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직자 아리우스가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첫 피조물이며 신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아리우스파 이단을 단죄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며(동질), 출생하셨으나 피조물이 아니다"라고 정통 교리를 확정했습니다.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381년): 테오도시우스 1세가 소집했습니다. 아리우스파 감독 마케도니우스가 제3위이신 성령의 신성을 부인하고 성령은 천사와 같은 피조된 능력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공의회는 이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성령은 성부·성자와 동일한 본질을 가진 하나님이심을 못 박아 결정했습니다.
에베소 공의회 (431년):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가 소집했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가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인간으로 태어났고, 그 후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거하셨듯 예수 안에 거하셨을 뿐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성육신하신 하나님이라 인정하지 않고 마리아를 '하나님을 낳은 자(테오토코스)'가 아닌 '그리스도를 낳은 자(크리스토토코스)'로만 불렀습니다.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를 단죄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심을 확정했습니다.
칼케돈 공의회 (451년): 마르키아누스 황제가 소집했습니다. 유티케스라는 인물이 예수의 인성을 부인하고 신성을 지나치게 옹호한 나머지, 인성이 신성에게 완전히 흡수되어 버렸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에게는 신성이라는 하나의 본성만 있었다는 '단성론(일성론)'입니다. 공의회는 유티케스를 단죄하고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인간이시며, 성육신을 통해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서 혼돈 없이 연합되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제2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553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가 소집했습니다. 몹스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 키루스의 테오도레트, 에데사의 이바스의 글을 두고 세 장(Three Chapters)의 신학적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회의 결과 테오도루스와 그가 쓴 글,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의 일부 문제적 저술들을 단죄하며 기존 칼케돈 공의회의 이단 정죄를 다시 한번 반복하여 확고히 했습니다.
제3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680~681년): 콘스탄티누스 4세 황제가 소집했습니다. 앞선 단성론자들이 교회의 분열을 일으키자, 이를 화해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에게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이 있음은 인정하되, 의지는 신적 의지 하나뿐이었다"고 주장하는 '단일의지론(일의론)'이 등장했습니다. 헬라 황제 헤라클리우스 등은 정통파에게 정치적 압력을 가하며 이를 수용하라고 회유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총대주교 소프로니우스와 고백자 막시무스 등은 정통 교리를 방어했습니다. 특히 막시무스는 혀와 손이 잘리는 고난을 당하면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공의회는 단일의지론을 단죄하고, "예수 안에는 두 본성과 함께 두 의지(신적 의지와 인간적 의지)가 있었으며, 인간적 의지는 신적 의지에 거스르지 않고 복종하여 조화를 이루었다"고 결정했습니다. 이 일의론을 지지했던 당대 교황 호노리우스는 사후에 파문을 당했습니다.
제2차 니케아 공의회 (787년): 사망한 레오 4세 황제의 부인인 이레네 황후가 소집했습니다. 문제는 성상 파괴 운동이었습니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성인이나 마리아의 성상을 만들어 신앙을 표현했는데, 황제 레오 3세는 이슬람교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방편으로 성상을 파괴하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대다수 교회와 백성들이 반대했음에도 그의 아들과 손자 치하까지 60년 동안 성상 파괴 운동이 지속되었습니다. 공의회는 성상 파괴 운동을 단죄하고 정통 성상 공경의 정당성을 선언했습니다. 역사가 지나고 나서 보면 이 종교회의 자체에도 참 문제가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현대 교회의 이단 판단 기준을 보십시오. 현대 교회는 교단마다 서로 다른 이단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게는 구교(가톨릭)와 신교(개신교)가 전혀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고, 개신교 안에서도 각 교단이나 교파의 기준이 다릅니다. 그런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기준으로 제시되는 항목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부인
삼위일체 교리 부인
예수님의 성육신과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이심을 부인
오직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신득구) 부인
성경 66권의 영감 부인
십자가 대속 희생의 완전함 부인
성령의 존재와 사역 부인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부인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다고 그렇게 강조하셨는데 이를 완전히 부인하면 그리스도교가 아닙니다.)
나아가 현대 이단들의 특징을 나름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성경을 문맥과 상관없이 자의적으로 아전인수 격 해석하여 교리를 만듭니다.
특정한 교리(예: 방언, 시한부 종말론의 날짜 등)를 지나치게 강조하여 복음의 균형을 깨뜨립니다.
자기들 집단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며 타 교회 성도들을 정죄합니다.
교주 한 사람이 하나님의 계시를 독점한 것처럼 가르치고, 교주가 죽으면 그 부인이 물려받아 자신이 메시아나 재림 그리스도라고 주장하는 복잡하고 황당한 행태를 보입니다.
교주나 지도자를 하나님 또는 재림 예수로 신격화하여 받듭니다.
자신들의 신앙에 동조하지 않는 가족과 헤어지거나 가정을 결딴내고 가출할 것을 요구하며, 각자의 가정을 떠나 그들만의 폐쇄적인 공동생활을 유도합니다.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했던 1992년 다미선교회 사례처럼 말입니다. 성경은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 바 아니라고 했습니다.)
교주와 신도 사이에 성적인 문란을 조장합니다.
구원의 절대적인 증거로서 오직 눈에 보이는 표적이나 방언만을 과도하게 강조합니다.
그러면 이단이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요? 한 신학자는 다음과 같이 아주 명쾌하게 말했습니다.
"이단(Heresy)이란 벗어난 진리이며, 균형을 잃은 진리이다."
진리는 평평하게 저울을 이루어야 하는데, 어느 하나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균형을 잃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의 진리만 강조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가령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다고 해서 안식일만 매달려 강조하고 다른 소중한 가르침들을 다 소홀히 하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됩니다. 아무리 올바른 진리라 할지라도 그것만을 강조하거나 그것이 성경 전체의 가르침인 양 절대화하면 균형을 잃은 이단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진리는 반드시 다른 진리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균형을 잃어버린 진리, 그것이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이설(異說)'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설은 '이미 나와 있는 설과 다른 설이며, 통설이나 정설과 반대되는 이론'을 뜻합니다. 이단이라고 정죄할 만큼 전통이나 정통 교리에서 완전히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교회 안에 분열과 혼란을 일으킬 만큼 새로이 강조되는 색다른 이론을 이설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완전히 이단이나 엉터리라고 단정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색다른 가르침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이 성육신하셨을 때 취하신 인성은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인성(Pre-lapsarian)인가, 타락한 후의 인성(Post-lapsarian)인가?" 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만인에게 공감을 얻을 확정적인 이론을 내세우기에는 성경의 가르침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떤 면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이 연약함을 체휼하셨으니 타락한 후의 인성과 같겠다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면을 보면 우리는 부모의 혈통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은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탄생하셨고 죄가 없으시니 우리와는 본질 자체가 다른 신적 본질을 지니고 계신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양쪽의 주장이 팽팽할 때, 어느 한쪽의 의견을 완전히 격파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가지고 "너랑 나는 견해가 다르니 같은 교회에 못 있겠다" 하며 싸우면 안 됩니다.
이것은 '이설'이지 '이단'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서로 경청하고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다 해결되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소한 자기 견해가 목숨처럼 중요해 보일지 몰라도 크게 보면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그것 때문에 교회의 연합을 깨뜨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설은 파문하거나 출교 처분을 내릴 수 없는 서로 다른 신학적 견해일 뿐입니다. 이설이 바로 이단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때의 이설은 많은 연구와 논의를 거쳐 정설이 될 수도 있고, 끝까지 이설로만 남을 수도 있으며, 때로는 교회의 동의를 얻지 못해 오류나 이단으로 판가름 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 있을 때 우리는 참아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정통 교리들이 한때는 먼저 깨달은 사람들의 이설이었음을 기억하고, 함부로 판단하거나 서둘러 이단으로 낙인을 찍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참아주고 서로가 이해가 다른 것을 용납하는 일이 참 중요합니다.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더라도 불화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아주 중요한 단어인 이교, 이단, 이설에 대해 함께 공부했습니다. 아주 개운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연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용납할 수 없는 멸망케 할 이단이 아니라면, 우리의 이해 부족으로 오는 신학적 차이들에 대해서는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우리가 서로 열심히 연구하자"라고 생각해야지, "당신은 다 엉터리야, 가짜야"라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참아주어야 합니다. 이교는 다른 종교이고, 이단과 이설은 기독교 내부에서 이해의 차이와 파벌로 인해 오는 것이니만큼 서로 인내하며 연구하는 학구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다른 단어로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더운 날씨에 모두 건강에 유의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핵심 요약 정리]
이교·이단·이설의 사전적 의미: '이교'는 자신이 믿는 종교(기독교) 이외의 종교를 뜻하고, '이단'은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교파나 가르침을 뜻하며, '이설'은 통설이나 정설과는 다른 색다른 이론이나 견해를 의미합니다. 성경 원문에는 오직 '이단'과 관련된 어휘만 등장합니다.
이단의 어원적 배경: 이단을 뜻하는 헬라어 '하이레시스(Hairesis)'는 원래 '선택한다, 취한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어 초기에는 자신이 택한 '학파, 당파, 분파(바리새파, 사두개파 등)'를 뜻하는 중립적인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체계화되면서 '정통 교리에서 벗어난 거짓 가르침'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고착되었습니다.
초기 공의회의 역사: 초대 및 중세 교회는 영지주의, 양태론, 단성론, 단일의지론 등 기독론과 성령론을 뒤흔드는 이단들에 대처하기 위해 7차례의 세계 공의회(니케아, 에베소, 칼케돈 등)를 열어 성육신과 삼위일체 같은 기독교의 핵심 정통 교리를 확립해 나갔습니다.
현대 이단의 특징: 성경을 문맥과 무관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특정 교리를 과도하게 강조하여 복음의 균형을 깨뜨립니다. 또한 교주를 신격화하며, 자신들의 집단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고, 가정을 가출이나 폐쇄적 공동생활 등으로 파괴하는 사회적 병리 현상을 동반합니다. 신학적으로 "이단이란 균형을 잃어버린 진리"를 뜻합니다.
이설에 대한 올바른 자세: 예수님의 성육신 하신 인성 논쟁처럼 성경의 명시적 증거가 부족하여 학자마다 견해가 갈리는 색다른 학설을 '이설'이라 부릅니다. 이설은 교회를 파괴하는 이단과 명백히 다르므로, 함부로 정죄하거나 낙인찍지 말고 교회의 연합을 위해 서로 참아주고 용납하며 깊이 연구해 나가는 성숙한 자세가 요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