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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춘주수필 원문보기 글쓴이: 한우리
행 운 목 김 동 순
--------------------------------------------------------------------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빨리 와 봐요.” 나는 한창 설맞이 음식인 부침개를 하고 있는 중이였다. “지금 갈 수가 없어요. 왜 그래요?” “행운목에 꽃이 피었네.” 꽃대가 나오는 것도 못 보았는데 꽃이 피다니. 얼른 하던 일 멈추고 달려갔다. 꽃잎이 6개인 아주 작은 꽃들이 40, 50개가 포도송이 같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긴 꽃대에 12개의 탐스러운 꽃송이들이 마치 신부 가 화사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수줍은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것 같이 달 려 있다. 21년째 감감 무소식이더니 드디어 꽃을 피워낸 것이다. 긴 기다 림 이였다. 이 기쁨과 행복한 마음을 무슨 말로도 표현할지 길이 없었다. 3월쯤에 피는 긴기아 난이 올해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2 월 초에 두 개의 분에서 일곱 개의 꽃대를 올렸었다. 연보라색의 꽃이 만발을 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진한 향기가 온 집안을 황홀경으 로 빠지게 했다. 그 꽃의 화려함에 정신을 빼앗겨 버린 사이 행운목에서 는 힘차게 꽃대가 올라 온 것이다. 긴기아 난이 행운목 꽃을 마중하기 위해 먼저 꽃을 피운 것 같았다. 21년 전이다. 낙원동 개인 주택에서 살다가 후평동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그 시절에는 이사 선물로 관음죽. 행운목. 난. 초. 성냥. 등을 사 오곤 했었다. 절친한 친구가 행운이 가득하라고 자그마한 행운목 화분을 선물했다. 직사광선을 피하고 유리창을 통해 간접적으로 빛을 받는 거실 에 놓아두었다. 필리핀. 싱가포르. 같은 동남아시아에서 수입된 관엽 실 물이다. 물만 꾸준히 잘 주어도 쑥쑥 잘 컸다. 잎은 작은 것도 있지만 우리 집 행운목처럼 크고 넓은 것도 있다. 습도 조절도 잘 되고 싱그러 운 잎에서는 공기 정화도 되었다. 남편이 정년퇴임을 했을 때 늦둥이 아들은 중학생 이었다. 교육비 걱 정에 살기 편한 아파트를 정리하고 2달이 모자란 십년 만에 교동의 원룸 건물로 이사를 했다. 이곳에 와서도 얼마나 잘 크는지 행운목은 거실 천 장에 닿아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었다. 잎만 무성하고 꽃은 필 생각도 안 했다. 지인들의 집엔 간혹 행운목 꽃이 피었다고 전해와 귀한 꽃구경 을 하러 가면 부럽기도 했었다. 얼음 땡 놀이를 하는 우리 집 행운목이 많이 미웠다. 행운목은 한자리에서 10년을 움직이지 말고 있어야 꽃이 핀다고 한다. 그렇다면 2달을 못 참고 이사를 해서 꽃을 못 보는 것일까. 어떤 분은 피우기 힘든 꽃일수록 고생을 시켜야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고도 하셨 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 토록 오랜 세월 침묵을 지키는 것일까 의심 이 가기도 했다. 우리 집에 오시는 분들은 큰 행운목을 보며 열대지방의 야자수 같이 멋지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집안에 두고 보기엔 아까우니 관공서나 큰 사무실에 기증을 하라고 하였다. 그 곳이 우리 행운목 자리 같다면서 여러 사람이 보고 즐거우면 행복하고 값진 선물이 될 것이라며 매번 권하곤 했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두 번의 강산이 변하면서 우리 가족과 희 로애락을 묵묵히 같이 한 행운목! 그동안 긴 세월 정이 들어 선뜻 희사 할 수가 없었다. 행운목의 꽃말은 행운과 행복이다. 60년을 넘게 살아 오 면서 진정한 행복이 무엇 일까 생각해 본다. 가난하고 힘든 삶이었지만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좌절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인내와 지 혜로 이겨낸 작은 보금자리엔 행복이 가득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명예를 얻은 것도 아니지만 가족의 건강이 우선 지켜졌다.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병 없이 건강하게 살았다. 두 아들도 아무 탈 없이 커 주었다. 이제 손자까지 안겨 주고 자기들이 있을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보다 더 큰 행운이 있었다면 내가 환갑에 수필을 배우면서 서툴고 미숙하지만 내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수필 공부는 내 삶 전체를 변화 시키는 마중물이 되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반성문이 글감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오랜 기다림의 끝은 화사한 꽃으로 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커다란 결실도 약속해 준다. 쳐다 보기도 아까운 행운목 꽃을 나는 요즘 내 자식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바 라보고 또 바라본다.
추 천 사
글의 초점이 잘 마무리된 글
사람은 옷이 날개라고 한다. 그럼 글의 날개는 무엇인가? 말할 것도 없이 문장이다. 아무리 좋은 착상도 그 문장이 지리멸렬하면 좋은 글이 되지 못한다. 기발한 발상도 문장이 받침이 되지 못하면 모래 위 의 누각이다. 그래서 글 쓰는 사람에게 문장훈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좋은 문장을 구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작가의 생각도 고스라니 전할 수 있다. 여기 빼어난 문장력으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한 글 한편이 나간다. 김동순의 [행운목]이다. 문장이 간결하고 의사전달이 군더더기 없이 잘 전달되었다. 참으로 마무리가 잘 된 글이다. 어느 날 문득 눈에 들어온 ‘행운목’의 꽃을 두고 떠오르는 이런저런 인생 사를 오밀조밀하게 들려준다. 무엇보다도 이 글의 장점은 이야기의 초점이 한 군데로 모아져 있다는 점 이다. 짧은 글 속에 이런 이야기 저런 소리를 다 집어넣고자 하면 그 글은 반드시 너절해진다. 글에도 절제가 필요하다. 압축과 여백의 미를 잘 살린 글은 독자의 눈을 사로잡게 마련이다. 이 글은 그런 글의 속성을 잘 살린 글로 읽혀졌다. ‘행운목’에 피어난 꽃 한 송이로 이만큼 화자의 인생살이를 간결하게 그려 내는 재능은 쉽지가 않다. 타고난 안목에 인생을 보는 남다른 눈을 높이 사 고자 한다. 그만큼 화자의 인생살이도 앞으로 더욱 꽃을 피우기를 바라며 환갑에 수 필을 배운 작가의 글이 날이 갈수록 더욱 빛을 발하기를 기원해 본다.
(등단추천심사위원 강석호, 박종숙, 이자야) |
첫댓글 열려라-----------보리보리 보리 ! 다시한번 축하드리고 평을 곰곰히 읽어 내것으로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