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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차 문산 산행 후기
천성산은 자고이래로 우리 문산과 한번쯤 푸닥거리를 해야 하는 산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해 봄 산행 때도 어쩌다보니 집행진들만의 산행이 되었던 전적이 있는데다가 올 여름에는 갑자기 태풍이 예고되는 바람에 목적지를 급 수정, 금정산을 오르기도 했다. 그런 천성산을 올해가 가기 전에 다시 도모하는 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날부터 무지 쌀쌀해졌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울 거라는 예보를 선전포고처럼 받아들고 나서는 아침은 걸음이 무거웠다.
개찰구를 빠져나오니 든든한 문석경 시인께서 반겨 맞으신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 것이라서 그간 문산에서 함께했던 시간이 짧지만은 않았노라며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문산의 얼굴은 돋보기를 댄 듯 확연히 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문산의 면면에 식구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는가 보다.
김광수 선생님이 당도하시고 멀리 김해에서 감윤옥 시인까지 합류. 기온이 많이 떨어진데다가 연말이라 이래저래 분주한 시점이라 불참을 통보해온 분이 더러 계셔 참석 인원이 많지는 않을 듯하다. 박달수 고문님과 이말라 시인을 기다리는 동안 감 시인과 나는 실현 가능성이 제로인 역적모의를 하게 된다. 오늘 같은 날, 영화 한편을 보고 근사한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는 게 딱이라며 힘도 없는 사람들끼리 문산의 하루에 반기를 든다. 감 시인 왈, 찜질방도 가잔다. 몸살기가 있던 나는 불감청에 고소원이 아닐 수 없다. 이왕 꾸는 꿈 야무지게 꾸자 싶어 그녀의 기발한 생각에 환호를 보낸다.
그런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의 속성을 어찌 모르랴. 김명옥 시인까지 모두 7인의 문산이 드디어 출발이다. 물어물어 주남 다리에 정차하는 버스를 탄다. 아리따운 외모와 화사한 미소를 자랑하는 감 시인이 일일 안내양을 자처하는 버스를 타고 시끌벅적한 도시를 벗어난다.
주남 다리에서 내려 영산대를 도보로 오른다. 버스 기사님께서 환승으로 영산대까지 가라고 일러 주셨지만 추운 날 나선 만큼 본전을 빼야겠다는 야무진 작정이다. 놀멍 쉬멍 영산대에 다다른다. 대학 뒤편의 언덕배기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커피 한잔에 사탕으로 기력을 충전한다. 문석경 시인께서 건네주신 왕고들빼기주 한 잔에 뱃심이 두둑해진다. 추위도 정상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한 두 시간 후면 저 산의 어딘가에 닿아져 있으려니 만사를 그저 시간에 맡기고 뚜벅이가 되어 볼 일이 아닌가.
춥긴 춥다. 제법 오르막이 이어지는데도 땀이 날 생각을 않는 걸 보면 꽤 매서운 날임에 틀림없다. 하여 더 상쾌하다. 노포역에서 자꾸만 엉덩이를 빼고 주저앉아 버리고 싶던 마음은 간 곳이 없다. 부지런히 뒤따르는 감 시인을 번갈아 에스코트하며 조근조근 밟아 오르는 산도 이제 더는 문산과 유감이 없는 듯 안온한 품을 내어준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내원사 쪽으로 방향을 잡은 후 드디어 민생고 해결이다. 늘 그렇듯 밥 때가 되면 이말라 시인의 가방부터 기웃거리게 된다. 그 이유는 문산인이라면 다 아실 터. 오늘도 여전히 이말라 시인의 주먹밥과 김장김치, 그리고 걸쭉한 숭늉이 대히트다. 십시일반의 힘이 이런 것인가 보다. 어느 새 뚝딱 성찬이 차려지고 다들 젓가락질에 분주하다. 박달수 고문님이 준비해 오신 막걸리 두병이 순식간에 비워지고 후덜덜 하던 속이 좀 덥혀진다. 웃고 떠들며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날은 여전히 추워 손이 곱아든다. 박달수 고문님 왈, “우리가 미쳤지. 이 추운 날 뭐한다고….” 맞는 말씀이다. 금세 다시 내려 갈 길을 무엇 때문에 기를 쓰고 오르는지 모를 일이다. 하긴 살다보면 딱 맞아 떨어지는 답이 없는 일이 한둘인가. 알려고 하면 다치는 경우도 허다하니 모르면 모르는 채로 넘어가기도 할 일이다. 여전히 즐거운 하산길.
시몬, 나무 잎새 떨어진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위에 흩어져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 구르몽의 「낙엽」 -
구르몽의 시 한편이 천성산으로 펼쳐져 있다.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는 낙엽에 푹푹 발을 묻으며 영혼처럼 우는 낙엽의 소리를 듣는다.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니…. 고적하고 쓸쓸한 오후의 산길은 얼음 밑을 흐르는 물소리와 더불어 내가 내게 빠져 들기에 좋았어라.
마지막 코스로 내원계곡 노전암에 들른다. 무공해표 푸짐한 점심 공양으로 유명한 노전암. 참하게 생긴 견공 두 마리가 반겨 맞는다. 순한 눈매를 보아 하니 그들도 부처의 말씀에 제법 귀를 틔운 게 분명하다. 법당에 들어 삼배를 올린다. 이 하루 문산의 무탈함에 감사를 드리고 다시 맞는 문산의 한 해도 여전히 굽어 보살피시라 청탁을 넣는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확인사살까지 한다. 부처께서 변함없이 인자한 미소로 내려다보시는 걸 보면 아마도 들어 주실 것 같다. 지폐 두어 장 불전함에 찔러 넣고 문산의 한 해를 샀으니 오늘도 수지맞는 장사를 한 셈이다. 어느 누가 앞장을 서시든 문산의 내년도 오늘처럼 당당하리라.
내원사 매표소 근처의 작은 식당에서 하루를 갈무리 한다. 김광수 선생님께서 한 해의 마지막 산행을 위해 쾌히 지갑을 여시겠단다. 메기 매운탕에, 파전에, 막걸리 몇 잔. 하산의 의식으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르니 돌아가야 할 길도 멀지 않다. 빨간 띠를 두른 완행버스에 몸을 싣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내내 낙엽 밟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우리는 사소한 행복에 목숨을 거는, 오늘도 자랑스런 문산인이다.
* 감사합니다. 추워 나서기 쉽지 않은 날에도 참석하여 즐거운 하루를 선사해주신 여러 선생님들, 그리고 일일이 전화로 못 오시는 사정을 전해 주신 여러 선생님들. 그 마음들이 모여 올 해의 마지막 산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응원해 주시고 힘을 보태 주신 여러 선생님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임진년 한 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이 많이 생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산도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한 해가 되기를 빌겠습니다....새해 복 많이 지으시고, 받으십시오.....^^
첫댓글 그 많은 산행 중 손이 곱아 밥을 먹기가 그랬던 적은 없었단 기억으로 제일 추운 산행이었지 싶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도록 쌓인 낙엽을 사락사락 밟으며 걷던 겨울 산행의 공감각적이던 그 느껴움, 오시지 않은 이는 정녕 모를 묘미였지요. 언제나처럼 얼큰한 하산주의 그 따습고 푸근하고 그윽한 기억속으로 다음 산행을 기다려봅니다. 산행기 쓰신 국장님, 한해가 가는 끄트머리, 해피하고, 해피한 날되기를 빕니다. 그리고 발목을 다치신 혜연총무님, 좀 어떠한가요? 빨리 쾌차하셔요...^^^^
낙엽 정말 많았어요
후기를 쓰야하는데 무척 바쁘다보니 필감이 오지 않는 걸 어떻해요
그날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영혼처럼 우는 낙엽의 소리를 듣는다"
겁고 행복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힌 표현입니다
.....문산이 있었기에
올해도
그리고 문산을 위해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십시오
...........
그리고 발목을 다치신 혜연총무님
빨리 쾌차 하시어요
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