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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슬 끝
꽃 피는 소리 듣다
눈 감고
아랫배 만져 본다
오 태반처럼
바알간 봉오리
아장아장 웃는
너의 발가락.
-「너를 품다」
이 시를, 남녀가 만나 정분이 나 혼인을 하여 육체의 합일을 이루고, 자식을 갖고, 정이 깊어지는 저잣거리의 평범한 사랑으로 이해해도 될까요. 우리는 이성을 사랑하는 것을 흔히 '눈에 콩깍지가 씌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자궁에서 자라고 있는 두 사람 사랑의 결실을 만져 보는 어느 순간, 태동하는 생명체를 느끼는 것으로 저는 이 시를 이해샜습니다. 우주에서 억만 겁의 우연과 필연을 거쳐 만나 사랑을 하게 된 두 사람만의 러브스토리로 생각해도오답은 아니겠지요. '아랫배'와 '태반'과 '발가락'을 시어로 선캑하여 「너를 품다」를 쓴 고형은 "보드라운 이불 밑으로 반쯤 비어져 나온/ 저 성스러운 발의 맨 얼굴"(「뒤꿈치」), "팔꿈치 양쪽 모두/ 굳은살 타고 난 사연"(「팔꿈치」),"얼굴 저렇게/ 단감 빛인 걸 보면"(「바래길 첫사랑」) 하면서 사람의 몸 어느 부분을 가리키면서 사랑의 순간을 떠올립니다. 묘사가 아주 구체적이어서 독자인 저는 충분히 실감하는 것입니다. 서울 사람들의 주요 데이트 장소인 양수리는 이렇게 뵤사하셨지요.
강 건너 문호리
수평으로 뻗는 불빛
달 푸른 금곡리
수직으로 꽂히는 별빛
그 강물에 누워
알몸으로 젖는 밤
남한강 둥근 팔이
북한강 허리 감고
배꼽 한가운데
쑥뜸처럼 연꽃 밀어올리는
두물머리
우주의 신방.
-「합궁」
우주 만물은 음과 양의 조화로 움직이게 되어 있지요. 자연도 그러하거늘 우리 인간도 남은 여를, 여는 남을 그리워하게끔 되어 있나 봅니다. 이 시에서 저는 너무나도 짙은 에로티시즘을 느꼈는데,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일까요? 특히 남자는 죽을 때까지 이성에 대한 환상을 뇌리에서 지우지 못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 시는 음양의 조화를 남녀상열지사라기보다는 자연의 순리 내지는 우주의 법칙으로 승화시켰다고 봅니다.
자, 이제 비로소, 두 번째 시를 볼까요. '물건방조어부림1'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네요. 형의 고향 경남 남해군의 삼동면 물건리에 있는 '방조어부림'이 천연기념물 제 150호라고 알고 있습니다. 방조어부림은 마을의 주택과 농작물을 풍해에서 보호하는 방풍림 구실을 하고 있으며, 길이 1500미터, 너비 30미터 내외의 숲이지요. 이 숲에 대한 묘사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그 숲에 바다가 있네
날마다 해거름 지면
밥때 맞춰 오는 고기
먼 바다 물결 소리
바람 소리 몽돌 소리
한밤의 너울가지 그 숲에 잠겨 있네
-「천년을 하루같이」에서
이곳에서 성장기를 다 보낸 형에게 물고기는 주식이었고 먼 바다 물결 소리, 바다, 몽돌 소리는 자장가가 아니었을까요. 자연은 천년을 품어도 그 모습 그대로군요. 인간은 그 자연의 품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자손을 남긴 뒤 소멸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라짐이 과연 완전 '무'의 상태인지를 이 시를 보며 생각하게 됩니다. 시에서 읽히는 시인의 생명관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지요. "물결 소리", "바람소리", "몽돌 소리"에서 태고의 숨소리가 묻어납니다. 태곳적부터 있어 온 바다에서 듣는 바람 소리는 우주 만물의 근원 중 하나가 아닌지요. 그 바람 소리가 바로 살아생전 인간의 호흡이었다는 것이지요. 고향 노래는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그 숲에 사람이 사네
반달 품 보듬고 앉아
이팝나무 노래 듣는
당신이 거기 있네
은멸치 뛰고 벼꽃 피고
청미래 익는 그 숲에 들어
한 천년 살고 싶네
물안개 둥근 몸
뽀얗게 말아 올리며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에서
그 방풍림이 있는 마을에서 "반달 품 보듬고 앉아" 이팝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형은 자연과 인간이 혼연일체가 된 경지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인간이 이룩한 이 물질문명은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 배척하지요. 도심에서 어떻게 별을 볼 수 있습니까. 흰 와이셔츠를 하루밖에 못 입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데, 형은 "은멸치 뛰고 벼꽃 피고/ 청미래 익는 그 숲에 들어" 한 천년 살고 싶은 꿈을 피력합니다. 그곳에서는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사루 수 있으니,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무한한 자유가 느껴집니다. 무릉도원이, 천국이 그런 곳일까요. 하지만 경험해 볼 수 없으니 이렇게 한편의 시로 그 세계를 그려 보는 것일 테지요. 남해 바래길연가 중 첫 번째 시편을 읽어 봅니다.
별에서 왔다가 별로 돌아간 사람들이
그토록 머물고 싶어 했던 이곳
처음붜 우리 귀 기울이고
함께 듣고 싶었던 그 말
한때 밤이었던 꽃의 씨앗들이
드디어 문 밖에서 열쇠를 꺼내드는 풍경
목이 긴 호리병 속에서 수천 년 기다린 것이
지붕 위로 잠깐 솟았다 사라지던 것이
푸른 밤 별똥별 무리처럼 빛나는 것이
오, 은하의 물결에서 막 솟아오르는
너의 눈부신 뒷모습이라니!
-「달의 뒷면을 보다」에서
남해 바래길 4코스가 '섬노래길'이지요? 남해지맥 끝 빗바위가 있는 곳 말입니다. 그곳에서 보는 달은 도회지에서 보는 달과는 다른 모양인가 봅니다. 송정 솔바람해변을 지나 설리 해안 구비를 돌아서 보면 달의 뒷면이 보입니까. "오, 은하의 물결에서 막 솟아오르는/너의 눈부신 뒷모습이라니!"는 달의 의인화이면서 자연의 인격화라 저는 숨이 멎는 감동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에서 탕생하는 시는 상당수 소통불능의 난해한 경지라 저는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마는데, 그래서 '감동'을 느끼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감동도 깨달음도 충격도 주지 않고 궁금증만 주는 시가 우리 시단의 '대세'라고, 의도적으로 시를 어렵게 쓰는 것이 유행이 된 이 시대에 형은 순수서정시의 본령을 지키고 있는 몇 안 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쓰고 있는 이 글을 읽고 주례사비평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서정을 버리고 초현실이라도, 포스트모던이라도 제대로 취한 것일까요. 야구장에서는 기교파 투수보다 정통파 투수가 인정을 받지만 시단에서는 기교파 투수를 더욱 값지게 생각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느덧 시는 아버지여 대한 추억을 더듬는 시로 옮겨 갑니다. 이번 시집에는 유독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오는 시가 많습니다. 고향을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두 분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나 봅니다.
천자문 처음 배울 때
아버지는 왜 그렇게 천천히 발음했을까
집 우(宇)
집 주(宙)
남해군 서면 정포리 우물마을
유자나무가 많은 그 마을에선
우물에서 유자 향이 났고
꿀 치는 벌통에도 유자꽃이 붕붕 날아다녔다
-「집 우(宇), 집 주(宙」에서
형의 고향마을이 남해군 서면 정포리 우물마을이라고요? 유자나무가 많은 그 마을에서 나고 자란 형은 아버지의 말씀이 잊히지 않나 봅니다. "한 그루만 있어도 자식 공부 다 마친다는/ 저 유자나무, 대학나무 없어도/ 집만 잘 앉히면 된다고/ 네가 곧 집이라고"하신 말씀의 뜻을 지금에 와서 깨닫게 되었다고요. 그래요, 집이 우주지요. 인간이 한평생 찾아 헤매던 유토피아가 알고 보니 아침마다 문을 열고 나가던 집이라는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시적 화자를 시인과 동일인으로 본다면 형의 아버님은 젊은 시절에 북간도를 떠돌다 "중년 넘어 타박한 길 공복으로 건너온 뒤" 형이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 즉 회갑 때쯤 돌아가신 것같습니다.몸이 불편해서 집안에서 주부가 하는 일을 했고 어머니가 나가서 일을 하신 게 아닌지요?
어머니는 일하러 가고
집에 남은 아버지 물메기국 끓이셨지
겨우내 몸 말린 메기들 꼬득꼬득 맛 좋지만
밍밍한 껍질이 싫어 오물오물 눈치 보다
그릇 아래 슬그머니 뱉어 놓곤 했는데
잠깐씩 한눈팔 때 감쪽같이 없어졌지
얘야 어른 되면 껍질이 더 좋단다
맑은 물에 통무 한쪽
속 다 비치는 국그릇 헹구며
평생 겉돌다 온 메기 껍질처럼
몸보다 마음 더 불편했을 아버지
- 「 아버지의 빈 밥상 」에서
메기 껍질 같았던 아버님의 한스런 생애, 이 시 속의 일화를 저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님 생의 스토리가 집약되어 있는 시는 「미완의 귀향」일 터인데, 이 시에 대한 감상은 독자의 몫으로 돌려놓겠습니다. 시는 어느덧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경운기 타고 장안치다가 크게 다쳤을 때 상한 발 더 시릴라 몸뼈 속에 넣어 주던 어머니는 "생선 함지 하루 종일 다리품 팔아/ 남은 갈치 꼬리 모아 따순 저녁"(「어머니 핸드폰」)을 마련해 주셨지요.
물건방조어부림 제 2편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 일어난 일을 갖고 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학 마치고 대처로 공부 떠나자
머리 깎고 스님 된 어머니의 암자
논둑길 겅중 뛰며 마당에 들어서다
꾸벅할까 합장할까 망설이던 절집
\선잠 결 돌아눕다 어머니라 불렀다가
아니, 스님이라 불렀다가
-「그 숲에 집 한 채 있네」에서
"저 송아지는/ 왜/ 안 팔아요?"라는 질문에 "아,/ 어미하고/ 같이 사야만 혀." (「저무는 우시장」)라고 답하는 것처럼 모자는 함께 살아야 하는데 아버지와의 사별과 출가한 어머니와의심리적 이별은 형의 마음에 쓸쓸함이나 외로움은 물론, 세상의 예절과 종교의 경계 사이에서 갈등하게 했군요. 어머니 앞에서 "꾸벅"할 거쇼이냐 "합장"할 것이냐는 갈등이야말로 속세와 탈속의 세계를 확연히 구분하는 것이 아닐는지요. 아마도 그래서 형은 시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시인은 언제나 그러한 경계에 서서 갈등하고 고민하는 숙명을 안은 존재이지요. 그 어머니가 핸드폰으로 들려주신 말 속에서는 동생에 대한 형의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야야 춥고 힘들어도 그때만 하겄느냐
니 동생 준답시고 배급 빵 챙겼다가
흙 묻을라 바람 마를라 오매불망
신발주머니에 넣고 오던 그 맘만 있어도 견딜 테니
-「어머니 핸드폰」에서
군것질거리 흔하지 않던 그 시절, 배급 빵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었지요. 그것을 동생 주겠다고 신발주머니에 넣고 오던 아들의 마음이 이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다 극복하게 할 거라고 어머니는 말씀해 주십니다. "이제는 잔가시 골라 건넬/ 어머니도 없구나"(「혼자 먹는 저녁」)라는 구절은 보니 어머니는 지금 이 세상에 계시지 않나 봅니다. 가족사 이야기는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만 형의 세상사에 대한 관심사도 저를 감동시킵니다.
천 원짜리 한 장이면
미얀마 소아마비 아이 다섯 구하고
캄보디아 지뢰밭 삼분의 일 제곱미터 걷어 내고
아프가니스탄 어린이 다섯 명에게 교과서와
방글라데시 아이들 스무 명에게
피 같은 우유 한 컵씩 줄 수 있고
몽골 사막에 열 그루의 포플러를 심을 수 있다는데
종로1가 커피빈 화사한 불빛 그늘
반들반들 참기름 두른
천 원짜리 김밥집에서
연거푸 두 번이나
천국의 문을 넘는
나의 목구멍이여.
-「김밥천국」
우리 중 누가 김밥 두 줄을 먹으면서 미얀마의 소아마비 아이와 아프가니스탄과 방글라데시의 가난한 아이들을 생각하겠습니까. 형은 그 아이들을 위해 헌금하지 않고 내배를 채우는 일에 급급한 자신의 가슴을 치기도 하고, "중동에서 이슬람 순례객 몇백 명이 깔려죽고/ 북핵 6자회담은 결렬 위기에 봉착했으며/ 뉴욕 월스트리트에선 성난 황소가 객장을 짓밟는다"는데 화자는 "신촌에서 신선설농탕먹고/ 이대 후문 프린스턴스퀘어에서 미국 시를 읽다가/ 을지로 3가 양미옥에서 곱창 먹고/ 홍대 앞에서 캘리포니아 와인"(「네토피아 가상 제국」)을 마신다며 자책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반성적 사유는 세월호 사건을 무심히 보아 넘기게 하지 않습니다.
거기엔 없었다.
1852년 버큰헤이드호의 세튼 대령도
1912년 타이타닉호의 스미스 선장도 없었다.
뭍에서 3킬로미터밖에서 안 되는 그곳에는
아무도 아무도 없었다.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의 밑바닥에 못을 긁어
슬픔을 기록할 사람도 없었다.
젖은 빵을 씹던 가롯 유다의
흔적조차도 그곳엔.
-「성(聖) 수요일의 참회」에서
예수를 은화 30세겔에 판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괴로워하다가 돈을 대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돌려주며 "내가 죄 없는 사람을 배반하여 그가 피를 흘리게 하였으니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하고는 결국 목을 맵니다. 우리네 세월호 사건 때는 선장과 선원이 학생들에게 배에서 잘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는 자기네들만 탈출을 감행했습니다. 이 사건을 접한 형은 "헤아릴 수 없는 비극의 밑바닥에 못을 긁어/ 슬픔을 기록할 사람도 없었다"고 개탄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도덕불감증에 대한 비판은 결국 왜 우리는 남탓만 하고 살아가는가 하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우리는 한 입으로 "혀를 놀려/ 죄 짓는 동안" 또 한 입으로 "혀를 오므려/ 용서를 비는"(「거룩한 구멍」)데 "생각할 때마다/ 감았다 뜬 눈.// 그 사이 오므렸다 벌린/무수한 입."(「자기 앞의 생」)이 의미하는 것도 우리의 양심과 책임에 대한 질문이 아닌가 합니다.
자, 이제 다시 형의 고향마을 이야기를 들어보며 이 편지를 마무리 지을까 합니다.
남해 서면 정포리 우물마을에서 보았다
윗물과 아랫물이 서로 껴안고
거룩한 몸이 되어 반짝이는 땅
봄마다 다시 돋는 쑥뿌리 밑으로
우렁우렁 무링 되어 함께 흐르며
연초록 풀빛으로 피어나는 사람들.
-「정포리 우물마을」에서
정포리 우물마을이라니 바다에서 가까운데도 깊은 우물이 있었나 봅니다. "윗물과 아랫물이 서로 껴안고/ 거룩한 몸이 되어 반짝이는 땅"에서 곡식을 심어 수확하던 사람들, 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낚던 사람들을 형은 "스스로 길이 되어 흐르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시의 마지막 연을 보며 저는 지금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청정공간이 바로 정포리 우물마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21세기에 들어 서정이 거의 다 죽어 버렸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시를 읽고 연구하는 저 자신이 언어 실험실 속의 모르모트인가, 미로 학습을 하는 학동인가 하는 생각에 내심 우울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형의 시는 아직까지는 서정시가 이 땅에서 명운이 다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네요. 저 먼 『시경』의 「매화 열매를 던지며」나 유리와의 「황조가」에서부터 시작된 서정시의 물결은 남해 앞바다까지 이어져 내료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형의 시가 많은 독자의 가슴에 철썩이는 남해 앞바다의 물결 소리로 남기를 바라면서 여기서 그만 펜을 거둬들여야겠습니다. 다시 또 물건방조어부림에 가서 물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을 날을 꿈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