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예수 재림은 정말 확실한 사실인가?
1. 재림에 대한 의문들
2020년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 전염병은 많은 사람들에게 종말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 주었다. 지구와 인류의 종말을 믿고 있는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급변하는 지구촌의 모습들을 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이제 세상의 종말이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재림을 지구의 종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진행되고 있는 세상의 여러 가지 징후들을 보면서 예수 재림의 임박함을 감지하는 기독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성경의 증언들과 그 재림의 실상과 목적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살펴보는 것은 시의적절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 글은 종말론의 도표나 종말사건의 순서를 정리하려고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이 우주적인 사건은 인간들이 도표로 작성해 낼 수 있는 단순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다시 살펴보겠다는 것인가? 그것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속에 들어있는 재림에 대한 의문과 질문들을 한번쯤 재정리하여 재림의 확실성과 그 기다림의 성격을 다시 한 번 규명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사실 오랫동안 재림을 생각하고 연구하고 기다려온 우리들의 머릿속에 아직도 풀리지 않는 몇 가지의 근본적인 의문들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재림은 정말 확실히 일어날 사건인가? 그분은 언제 재림하실 것인가? 지금이 바로 그 마지막 때인가? 가장 확실한 재림의 징조는 무엇인가?
재림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가 필요할 것인가? 만일 재림이 계속 예상을 빗나가서 지연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할까? 오늘 오실 것처럼 생각하고 순간순간을 살아가라는 설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에 대하여 성경말씀에서 하나하나 해답을 찾아보면서 성경적 재림신앙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재림은 정말 확실한가?
갤럽여론 조사연구소가 18세 이상의 한국인 남녀 1946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종교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람은 세상의 종말이나 내세를 기대하거나 믿는 비율이 아주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인의 67%가 천국을 믿고 84%가 지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비해 한국인은 38%만 천국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지옥은 28%만 믿고 있다.
극락이나 천국은 딴 곳이 아니고 이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60.7%나 된다. 극히 현세 중심적 사고방식이다. 위의 통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한국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나 내세의 축복보다는 현재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재 병이 없고 사업이 잘되고 만사가 형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극히 기복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일반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재림에 대한 기대나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위의 통계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극히 낮다. 단지 재림은 현실 도피적인 사람들을 끌어 모아 자기 목적을 이루려는 일부 사이비 종교들에 의하여 주로 이용될 뿐 교회 강단에서 힘 있게 전파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 재림의 강력한 확신과 소망 가운데서 태어나고 오늘날까지 성장해 왔다.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약성서 시대는 물론이고 중세의 암울한 박해 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재림의 신앙이야말로 모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현재의 고민과 고통을 이겨내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소망의 근원이 되어왔다.
3. 성경이 재림을 보증한다
재림의 확신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어떤 재림에 대한 이론도 우리는 배격한다. 그릇된 재림관이야말로 기독교인들의 삶을 치명적으로 해친다. 신약성경은 300번 이상 예수님의 재림을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에 대해 말씀하셨고(마 24:30; 26:64)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려가시겠다고 거듭 약속하셨다(요 14:3, 18, 19, 28).
그 약속은 천사도 다시 한 번 보증하였고(행 1:11) 바울도(고전 15:23; 살전 4:16, 살후 2:8; 딛 2:13) 베드로도(벧전 1:7, 13; 벧후 3:10-13) 반복해서 확인하였으며, 요한계시록에는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하실 어린양의 다시 오심에 대한 기대와 승리의 노래가 책 전편에 흘러넘치고 있다.
이렇게 확실한 약속을 믿지 못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성경 전체를 부인하는 것이요 나아가서는 기독교의 중심교리 전체를 거절하는 것이나 같은 것이다. 이렇게 확고한 약속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기대하지 않는 것은 성경의 모든 약속에 대해 흥미가 없는 증거이다. 재림의 소망이 없이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불안하고 무의미하게 되고 만다.
그리고 현재의 고통과 신음 속에서 의롭고 경건하게 살고자하는 의욕마저 사라지게 된다. 재림의 소망이 없는 신앙은 마치 목적 없이 달리는 끝없는 경주같이 피곤하고 재림 없는 구원은 결국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는 나와 어린동생 둘만 남겨두고 곧잘 시장에 가시곤 했다. “집 잘보고 동생 울리지 마라. 엄마가 맛있는 것 사 올께.” 그런 말씀을 남기고 가신 어머니는 해가 기울도록 오실 줄을 몰랐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동안에 별의별 일이 다 생기곤 했다. 둘이 싸리문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노라면 동네 거지가 오기도하고 무서운 개가 들어오기도 했다.
동생은 울다울다 지쳐서 내 무릎에 엎드려 잠이 들고 나도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로 엄마가 가신 언덕 쪽을 원망스레 바라보며 목이 빠져라 어머니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지나가시면서 안쓰러운 얼굴로 혀를 차시곤 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들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서러운 나를 심술궂게 놀리고 겁주는 것이었다.
“야! 내가 보니까 너희 엄마 도망가더라. 기다려도 소용없어. 이제 오지 않을 테니까.” 내가 약이 올라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보고서야 아주머니들은 무엇이 그렇게 고소한지 깔깔거리면서 가시곤 했다. 나는 그 뒤에다 대고 울면서 소리쳤다. “우리 엄마 안 도망갔어. 아줌마는 거짓말쟁이야.” 사실 우리 어머니는 늦게 오시기는 했지만 어김없이 저녁때쯤 돌아오셨다.
땅거미가 질 무렵 우리가 거의 기진맥진 할 때쯤, 드디어 어머니의 모습이 언덕 위에 나타나면 나는 부리나케 동생을 깨워 둘이서 엎어지며 자빠지며 언덕 위를 향해 달려갔다. 어머니도 급한 걸음으로 뛰어내려 오시면서, 우리는 언덕 중턱에서 한데 어울려 마음껏 만남의 기쁨을 누렸다. 우리 형제는 그 동안의 서러움도 무서웠던 기억도 다 잊은 채 엄마 치마자락을 한쪽씩 붙잡고 엿가락을 입에 문채 자랑스럽게 집에 들어오곤 했던 기억이 난다.
시장가신 엄마도 안 돌아 오신일이 없는데, 다시 오겠다고 여러 번 약속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돌아오실 것이다. 단 한번 말씀하신 것도 반드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그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분께서 꼭 오셔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죄악의 역사가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과 악을 심판하시는 일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 믿음도 헛되지 않을 것이다. 슬픔과 죽음 그리고 고통은 끝나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인류 최대 최고 최후의 소망이며 무법과 불법이 지배하는 인간 세상을 최종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그리고 그 재림은 가설이나 환상이 아니며 지구 인류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서 일어날 실제적인 사건이다. 그리고, 오늘날 세상의 흐름과 형편을 감안할 때 주님을 속히 오셔야만 한다.
알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