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남,북)크고작은 모든 강줄기 길이는 대략 6만 2천km |
이중에 이름있는 강(유역면적 200㎢이상)은 약 3백개이며 거리는 23,391km, 실거리를 따진다면 2만5천km에 이른다. 남한 구간의 이름있는 강줄기는 모두 109개이며 거리는 7,733km 실거리는 약 8천400 km 남짓될듯 지금까지 걸음한 강은 낙동강.한강.금강.섬진강.영산강.금호강.위천.반변천.내성천.남강.황강.밀양강.소양강,북한강.홍천강.평창강.달천.섬강.보성강,감천.태화강.형산강.만경강.동진강.안성천.삽교천. 오십천.영강.논산천 모두 29개 누적거리 4,387km 거리상으로는 남한 구간 절반을 조금 넘었다.
|
운주군 동상면 대아리
지난 여름에 지나온 만경강의 대아 저수지 따라 올라와 계곡길로 곧장 올라가면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가 나오지만
오늘은 찾아볼곳이 한곳 더 있어 왕사봉 방향으로 오르게 된다.
잠시 산행 복장으로 갈아입고
모처럼 새로운 분이 찾아 오셨지만 잘해 드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없고, 저의 갈굼 상대로 안성 맞춤이라 ...
그런데 이분 어지간한 남정네 10명 정도는 상대할 애교 작렬의 입담을 가지고 계신다.
"그동안 노송님 갈굼 하셨는데 오늘 방장 한번 죽어 보라며 ..."
대아리 계곡따라 잠시 올라오면 좋은 임도길은 끊어지고 왕사봉 방향으로 오름길은 지난 가을에 떨어진 참나무 낙엽이
무성하여 진행이 더디고 오름길의 경사도가 심한편이다.
길이 있냐고 물으신다면 당연 없는길이죠
힘들어 하시는 소송님과는 반대로 생글 생글 웃으며 이런길이 너무 좋다며 오르시는 깽님
오늘 두분 나당 연합 펼치듯 연합 작전을 하시려는듯 같이 붙어 다닙니다.
땀좀 흘릴 정도의 짧은 시간에 금강 남쪽 마루금인 왕사봉 언저리 700봉에 오르게 되며
이곳 왕사봉 남쪽 능선과 금남 정맥길의 태평 봉수대 두곳 모두 논산천 발원천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길이가 비슷하여
어디서 부터 발원지를 찾아야 할지... 인공 위성 지도를 보며 이리보고 저리보고 갈등한곳이다.
다만,정맥길의 태평 봉수대가 50m정도 더길어 봉수대 방향으로 이동하게 되며 혹시 모를 발원지를 놓칠세라 이곳
인근의 물줄기가 어디서 시작 되는지도 찾아보게 된다.
왕사봉 남쪽 능선 688m에
겨우 몇컵 정도 분량의 물이 남은 왕사 평전(平田)에 지난밤 묏선생이 놀다간 흔적만 보이는 웅덩이가 보인다
이곳을 또 다른 논산천의 발원지로 남겨두고 태평 봉수대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긴다.
이곳이 논산천 발원지가 맞던 아니던 이물을 마신다면 논산분들 복받은듯
가야할 금남정맥길의 태평 봉수대
짧은 산죽길을 지나고
금강과 만경강 분수령인 금만봉(金萬峰)
이곳 분수령에 내린 빗물이 남,동쪽으로 떨어져 흐른다면 운일암 반일암을 거처 용담댐으로 흘러들어 아름다운 천리 금강이
되고,서쪽으로 흐르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릇(댐.저수지)중 가장 깨끗한 그릇에 담기는 대아 저수지를 저처 만경강
이 되고,북쪽으로 흐르면 논산을 거처 금강에 합류하는 금강의 젖줄이 된다.
이곳 금만봉은 호남정맥과 금,남호남 분기봉인 조약봉에서 분기되어 연석산-운장산-인대산-대둔산-
계룡산-부소산까지의 도상거리 127km의 금남정맥 산길이며, 금강 발원지 뜬봉샘에서 시작 군산 앞바다까지 401km의
강줄기이기도 하다
조선 영조때 만들어진 산경표에는 역사성을 예우한(저의 생각이니 딴지는 걸지 마시고) 정맥길 중
한북 정맥길의 한양이 내려다 보이는 수도 서울의 삼각산 (북한산 상장봉), 그리고 낙남정맥길 김해 분산(盆山) (조선 성종
임금의 명으로 만들어진 *동국여지승람(영조때 만들어진 산경표의 원조격)에는 낙남정간이라 되어 있음)은
김해가락국 500년 도읍지이며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탄생된 구지봉이 자리하는 김해의 분산(盆山)을 예우한것도
그렇고, 산경표에는 이곳에서 백제의 수도가 자리하던 곳으로 산길을 이어지게 만들어져 있으니,700년 역사를 잊지 못했거
나 조선 영조시대 힘있는 사대부들의 외침이 부여로 향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영조때 사대부들의 사치풍조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었지만 영조는 언제나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했을터 산경표 역시 농업의
기반이 되는 10대강 (압록강-낙동강-두만강-한강- 대동강-금강-임진강-섬진강-청천강-예성강)아마도 산경표의 저자는
이곳에서 농업의 기반이 되는 금강의 물줄기를 안고 끝부분 군산으로 가고자 하였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지금 이자리에서 금남정맥길의 금만봉(싸리봉)있는곳에서 좌측 산길은 남당산-미륵산-봉화산 -금성산 -장계산이 자리하는 금강 하구로 산자분수령 원칙을 안고 이어진다.
금강을 고스란히 감싸고 흐르는 산줄기인 셈이지만
자연적인 산길과 인간적인 산길 그가운데 인간이 살수 있었던 역사속의 산길
그리고 신라 오악(태백산.계룡산.팔공산.지리산.토암산)중에서 서악이라는 계룡산을 따라 부여의 부소산으로 지나는
금남 정맥길을 만들어 내며 700년 역사성을 예우 하느라 금강을 온전히 둘러싸는 산길을 포기한다.
작은 싸리재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와 운주군 고당리로 이어지는 임도길
삼국시대의 백제땅인 이곳은 백제 최후의 방어선인 셈이며 나라가 위급할때 꼭 지켜할곳 중 육로인 탄현 그곳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수많은 크고 작은 전투를 벌인 백제와 신라
하지만 642년(선덕여왕 11년) 합천 황강변의 대야성(취적산 해발 90m)) 전투에서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과 그부인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딸)이 죽고 1천여명이 포로가 된다, 이로 인해 김춘추와 선덕여왕은 당나라에 17여년간 끈질기게 외교적?
도움을 청하게 되니 그로부터 수년뒤인 660년 당나라와 연합 결성이 되어 7월 백제 멸망의 꿈을 이루게 된다.
(참고:대야성 합락은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이 부하 장수의 부인을 겁탈 하면서 열받은 부하장수가 백제군과 내통하여
무너진 계기가 되니 사위와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춘추가 엄청 열받아 몇날 몇일 눈한번 깜빡이지 않았다고 한다.)
백제(654년)의 충신 두분 성충과 흥수가 상소를 한 탄현이 어디일까
한명의 군사가 창을 들고 능히 만명을 상대할 수 있는곳이라야 한다.
660년 음력 7월 초 신라군 황산벌로 집결하니
신라군 출동 루트는 경기(이천)- 충주-충북괴산-보은(삼년산)-옥천-대전(식장산)-황산벌로 보는 루트와
경주 -대구-김천-황간-영동-금산-논산-황산벌로 보는 루트로 크게 2가지 학설로 구분
신라군 5만명 이동수단
8명이 횡대로 진행시 1천명이 한무더기로 진행했다고 본다면
5만 병졸이 약10km의 거리로 진행
신라군이 탄현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은 계백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예상한듯 부인과 자식을 먼저 보내며
5천 결사대를 만들어 황산으로 향한다.
탄현으로 지목되는 첫번째 대전시 동구 세천동의 식장산 자락은 한명이 만명을 대적할곳이 못되며
철종(1861년)때 만들어진 대동 여지도에 나오는 금남정맥길의 백령고개(백암산에서 인대산으로 가는 길) 산이 험준하기는
하지만 성충과 흥수가 말한 한명이 만명을 상대할 곳도 못되는 곳이다(지도 참고)
당나라와 사비성에서 만나기로 한 날짜(660년 7월10일)는 다가오고 갈 길급한 신라의 5만 대군이 한여름 타오르는
태양과 함께 식수 찾아가며 고을마다 성마다 백제군과의 싸움을 피하며, 부여로 갈수 있는곳 바로 이곳 진안군 주천면
운일암 반일암을 넘어 싸리재로 가는길이다
영동군 이후로는 금산은 백제의 땅이기에 전쟁을 피하며 가야하고 물이 있어야 하고 물의 도움을 받으며 험준한 산길을 버리고 가야하는길
경주ㅡ대구ㅡ성주ㅡ김천ㅡ영동ㅡ금산에서 전북 진안의 하루에 해가 반나절만 뜬다는 깊은 골짜기 운일암 반일암을 지나
현, 금남정맥길 싸리재를(경주-싸리재까지 거리상 250km) 운주군 고당리의 병풍바위 협곡만 넘어가면 탑정까지 (싸리재-
황산벌 35km)별다른 싸움없이 모두 피해서 갈수있는 곳이다
신라군을 봤을때 다소 위험한 바위 협곡을 2km를 지나면 대불리가 나오며 대불리에서 싸리재 까지 큰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곳이다
신라는 이곳 협곡을 지나 대불리(중리마을 )에서 싸리재를 지나 병풍바위 협곡과 천등산을 우측에 두고 운주를 지나
탑정호까지 (장선천-논산천)물길따라 별 저항없이 지났을것으로 보여진다
그당시 군사들의 보급 문제로 하루 30km 진행시 경주에서 황산벌까지 대략 300km 10일이면 당도 할 수 있는 거리다.
신라군은 험준한 백암산과 인대산 대둔산의 날까로운 지형을 고스란히 우회해서 연산에서 계백장군이 이끄는
오천 결사대와의 일전을 벌일 수 있다
싸리재가 성충과 흥수가 말한 탄현이 라면 실로 전략적 요충지가 분명하고 백제가 이곳을 지켰다면 전쟁에 이겻을
가능성도 많아 진다.
첩첩산중 수많은 성에서 지키는 백제의 군사들과 큰 싸움없이 모두 피하며 갈곳 안일 반일 2km의 협곡만 통과하면 백제의
수도 사비성까지 순식간에 지나갈수 있기에 신라로서는 모험을 해볼 만한 곳이였으며 성공한것이다
나는 백제인
살아남은 녀석이 강한 녀석이지
싸리재에서 봉수대로 오르는 중에
읽어 보시고
지나온 금만봉과 왕사봉 방향 그리고
능선 안쪽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논산천이 되었다가 금강이 되는 물이며
능선 넘어로 흐르는 물은 모두 호남평야의 젓줄인 만경강이 된다.
금남정맥길의 백암산과 멀리 대둔산 방향
운장산에서 이어지는 북두봉와 멀리 금강의 용담댐이 지척이다.
보이는 산에서 흐르는 물은 모두 천리(千里) 금강이 되어 무주-영동-대청호-신탄진-세종-공주-부여-강경-익산을 지나
군산 앞바다로 흘러든다.
대불리와 운장산
올해까지 32개 강이 목표지만
내년이면 이름있는 강은 모두 마칠 수 있을것 같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했으니, 나이 60전에 우리나라 절반이라도 찾아볼 수 있을듯
보이는게 다는 아니라는 말에
묵묵히 조망을 즐기며
오늘 논산 지역까지 가면 퇴근 하시게 되는 깽님
곰잡는 장갑이라며 무척 즐거워 하시며
내일 아침에 퇴근 하시는 할배님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논산천을 찾아 왔으니 발원지가 어디일까
1번 왕사봉 남쪽 계곡입니다.
왕사봉 평전에서 흘러내린 빗물이 계곡으로 흘러드는 곳이고
2번 금남 정맥길의 태평 봉수대에서 정맥갈림길에서 계곡으로 흘러드는곳
3번 태평 봉수대에서 정맥길따라 700m거리 안부에 위치하는 물줄기로서 거리는 조금 짧지만
논산천 발원지로 알려도 무방할곳으로 보이는곳이다.
강줄기 하구로부터 가장 멀리까지 와서 찾아봐야 하기에
이곳 금금정맥과 태평 봉수대 분지점에서 계곡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이제부터 인심좋은 논산으로 흐르는 논산천 65km 시작인것이다.
금강 지류인 논산천을 이루는 물줄기로는
금남정맥 태평 봉수대에서 계룡산을 공주시 계룡면 향지리 거처 논산시 개척면의 불암산까지 이어지며
남쪽으로는 왕사봉-용화산에서 강경천을 데리고 논산천으로 합류 시키는 유역면적 662㎢강이다
진행경로
한동안 비탈진곳으로 내려와 계곡이 형성되는 지점
갈수기이며 요즘 같은날은 물줄기 찾기가 힘들다.
지도보며 찾아가는길에
계곡이 형성된곳을 찾아 푸른 이끼를 찾는게 시급하다.
가시밭길이 좋으시다는 깽이님
100m이상 내려 왔지만 아직까지 습기가 보이지 않고
마른 나무가지와 칡덩쿨이 무성하다.
덩쿨이 무성한 계곡길에 커다란 배낭은 그저 부담스러울뿐이고
노송님
요리조리 잘도 빠져 다니시는 깽이님
630미터 지점에서 찾은 물
흐르지 않고 고여 있지만 그래도 만족하며
계곡길 빨리 벗어나려 해본다.
계곡을 다 빠져 나와
등산화 속으로 나도 데리고 가라면 들어앉은 이물질 제거하고
금남정맥 태평 봉수대 안부에서 흘러내린 계곡물
논산천 계곡 최상류의 진도견(백구와 블랙탄)
이녀석들이 싼 오줌물이 65km의 논산천으로 흘러들며 사람을 살찌우고 벼농사의 대풍을 이른다.
금강 발원지 최상류에는 외국산 엘크사슴 키우는곳이 발원지인데...
왕사봉 평전에서 흘러내린 계곡
철지난 그자리에 쑥부쟁이가 늦은 향기를 품어 내는길
왕사봉,태평봉수대.안부에서 흘러 내린물이 모두 모여 계곡을 형성하고
아래로 아래로 흘러들어 더욱 멀리서 찾아온 금강에 합류하게 된다.
확 밀어뿌까!~~
계곡 굴다리 일일 사용료 10만원
시맨트 임도길 따라 내려오니 운주계곡 켐핑장이 나온다
한여름에 이곳은 물반 인간반이 있을뿐
그어떤것도 보이지 않을듯 하다
다만 이곳 논산천은 특별히 즐겨 볼것들은 없지만 금남정맥길이 백제 최후의 방어선이라면
꿈꾸는 백마강과 더불어 백제인의 혼(魂)인 담긴 강이라 보여진다.
남의집 감 홍시 따는 신공을 발휘 해 보지만
2%부족한 신체를 극복 못하고
길가 감나무에는 수확하다 만 연분홍 감 홍시가 남아있는곳이 많아
키높이의 녀석들만 따서 먹으며 점심 해결한다.
평소에 조금만 드신다는 깽님
빨리가서 라면, 아이스크림 사드려야 할텐데
황량한 들판에 콩타작 하시는 농민분들
특이하게 트럭으로 콩타작 하신다.
너도 감이냐며 모두가 홀랑벗고 비슷한 크기로 대롱 대롱 매달려 있다.
마짝 마르면 곶감이란 이름으로
백제 5천 결사대 중 한명이라해도 될듯한 갱이님.
조그만 배낭에 귀여운 입담 많큼은 인정 해 드립니다.최고
무시 시레기가 곱게 말라가고
삼국시대 신라군들이 싸리재를 넘어 이길로 넘어 왔다면
편안하게 사비성으로 갔을것 같고
싸리재를 넘어 이곳까지 맑은 계곡물과
적당한 경사진곳으로 해넘이가 이어지니
반은 그늘이고 반은 햇볕이 남아있다.
계곡이지만 느낌이 참 좋은곳 그렇다고 말년에 이곳에서 살고 싶지는 않다.
길가에 자리하는 초가집 포차
한여름에는 왁자지껄 하던 곳이겠지만 이곳은 차한대 겨우 올라가는 싸리재 때문에 거의 막다른 길이라 보면 되고
초겨울에는 해도 일찍 넘어가고 손님이 완전 끊어진곳이다
길가에 자리잡은 포차 분식에 들러보니 주인 아주머니와 할머니께서 김장할 배추를 절이고 계신다
염치불구 하고 라면 되냐고 하니 난로에 굵은 장작 하나 넣으시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하신다.
달리 급할것도 없고 배낭을 벗어 한쪽에 세워두고
해물파전 하나와 이곳 산에서 주우셨어 만들었다는 도토리로 만든 묵을 써비스로 주신단다.
고향이 논산이시라는 주인분이 라면과 막걸리만 계산 나머지는 써비스란다
언제나 처음 오시는 분들께 라면과 이이스크림을 사드리는데
이곳에서 깽님께 라면을 사드리게 된다.
막걸리는 별맛은 없고 할배와 둘이 한잔씩만 나누어 마신다.
초가집 포차
너무 맛나게 먹었기에 고맙다며 배곱인사 드리고 논산천 따라 이어간다.
선야봉 주위로 둘레길이 있는 모양이다.
선녀와 나뭇꾼
선녀옷 절도범에 선녀 발가벗고 목욕한것 몰래 구경 했으므로 잡혀 갈 녀석인데
그당시나 지금이나 목욕하는 모습 구경하는건 꽤 괜찮은 구경꺼리 였던것 같다.
세월따라 가는길이며 흐르는 물처럼 가는길
언제나 물처럼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막히면 돌아가고
모든 사물에 생명을 주는법을 배우고자 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되지 못하니
그저 속인(俗人)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참 많이도 걸음 했으니 산길 해안길 휴전선길 강길 약 3만 km가 다 되어 가는듯하다.
흰머리에 흰수염 몇년뒤면 할배소리는 자연스럽게 들을듯
금고당 마을을 지나 짧은 협곡이 나온다.
삼국시대 성충과 흥수가 말한 싸리재(탄현이 맞다면 운일암 반일암,그리고 이곳 협곡이라면 신라군를 막을 수 있는 천혜의
방어 장소로 충분하다.
우측은 금남정맥길에서 벗어난 선야봉 좌측으로는 선녀봉이 자리하는 협곡은 한여름에 많은 사람들이 찾을것 같아
계곡물이 더러워지는건 불보듯 뻔한일이다.
짧은 계곡 협곡길이 이어지고
선녀봉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지만 바닥에 달라붙은 짙은 청태(물이끼)가 가득 자란다.
상류로 켐핑장과 팬션의 영향으로 논산천도 그렇게 깨끗하지 못하니 눈에 보인다고 모두 믿을 수 없는곳
선녀봉 아래로 자리잡은 계곡으로는 온통 평상이 자리한다.
여름에는 피서객으로 몸살 날듯한 이곳 계곡도 겨울이 되니 조금 한가해진듯
물 소리 마져 여유롭고
운주군 금당리에서 본 천등산(天燈山)
하늘에 불 밝힌다는 천등이 고개를 내민다.
작아도 당돌한 산인 천등산은 대둔산 도립공원에 밀려 많은 산객들이 찾는 산은 아니지만 암릉미가 아름다운 산이다.
산아래 어느 농민이 가을 걷이가 끝난 밭에서 뭘 태우시는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해빠진 시간 이제 퇴근시간 다되어 가시는 깽님
집에 간다고 좋아 죽는다는 표정
내일 아침에 하얀 쌀밥에 고등어 한마리 노릇하게 구워 오시면 좋겠다 하니
갱님은 택도 없는 소리라며 손사래 치시고
천등산 아래 자리잡은 법용 유원지
논산천 임도길로
멀리 금산군 진산면 인대산과 운주군 산북면 대둔산에서 흘러온 괴목동천을 건너는 원장교를 건너며
천등산 주유소 앞에서
덥거나 춥거나
강행에 오시면 누구나 드실 수 있는 꽁꽁 아이스크림
할배님은 적응이 되어 즐거워 하시고
깽님은 아주 질색을 하시고
첨성대
이곳에도
논산천 발원지부터 이곳까지 장선천 이었지만
완주군 운주면 완창리를 벗어나 논산시 양촌면 신리기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논산천(論山川)으로 불리우며 지나게 된다.
양촌면 인촌리 어느 농가 앞을 지나니 하얀털 한뭉치가 돌아 다닌게 보여
렌턴을 빛춰보니 백구 강아지다.
지난날 서해 어느 바닷가에 눈이 엄청 내리던날 겨울밤
개집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들판 염전에 백구 한마디가 눈을 덮어쓰고 엎드려 있다가
기지개를 펴며 온몸을 흔드니 등에 쌓였던 눈이 바람에 날리던 그 백구가 생각난다.
이녀석 부디 마음씨 좋은 주인 만나 사랑 받으며 오래 오래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