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국민회와 홍범도의 대한독립단, 신민단 만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 참전하였다.
그 중 간도국민회는 1919년 4월에 결성된 무장독립 단체로서 캐나다장로회 지회를 기반하여 세워졌다.
무장독립단체로서 가장 많은 회원, 8천명이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구춘선이 회장, 안무가 국민회군 사령관이었다.
결성당시 본부는 연길현 하마탕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왕청현 대흥구진에 속하였다
통신 사무업무는 영국더기로 불리워진 용정의 캐나다장로회 제창병원 지하실에 두었다.
하마탕은 조선인들이 1890년 전후하여 개척한 마을로서 1912년에 의란골 (하마탕)교회와 보진학교가 세워졌다.
간도국민회 회장이었던 구춘선은 용정교회 설립멤버이기도 하며 후에 하마탕교회를 설립하고 장로로 장립을 받았다.
그는 간민교육회, 간민회 임원으로 활동하며 연변 조선인들의 교육과 생활, 권익 보호 그리고 독립운동과 민족의식의 앙양을 위하여
활동하였으며 간도국민회 회장으로서 독립군 무기 구입에 심혈을 기울여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의 승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하마탕은 연길시에서는 120여 km, 왕청현으로 부터는 50여 km 떨어진 오지이나 마을 양면이 낮은 산지에 둘러쌓인 큰 들판 가운데
있어 식량학보와 일제로 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었다. 러시아가 핍박하면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독립투사들이 하마탕으로 피신하였다.
사진은 동네 어구에 있는 하마탕개척기념비.(2007년 2월 제작 설치)
하마탕 마을 앞에 펴쳐진 너른 들판
하마탕 마을의 집들, 한국바람으로 많은 집들이 비어 있다고 하였다.
마을 표지판 뒷면에는 2000년대가 되어 일어난 마을의 쇄신과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마을 앞쪽의 가옥들
마을 좌측 길에 위치한 집들
하마탕이라고 써있는 대형 구조물, 마을 입구 길 우편에 있다.(2019년에 세워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