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니엘기도회 간증 요약[왜? 라는 질문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욥기2:7-10)]-박수영/박숙희 선교사(11월 7일)
□ 저는 박수영 선교사의 아내 박숙희 선교사입니다.
- 사실, 여기는 제가 설 자리가 아닙니다. 2주 전 친정어머니가 소천하셔서, 저도 한국에 오게 되었고,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귀한 자리에 와서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열기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김은호 목사님께서 저에게 먼저 간증하면 좋겠다는 권유를 하셔서, 갑자기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는 살면서 어느 순간 갑과 을을 따지며 산다는 것입니다. 누가 좋은 거죠? 누구나 갑의 위치를 원합니다. 갑이 주는 혜택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갑이 무엇인지 알려드리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생명의 주인이라고 고백하면, 갑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 갑이 아니라, 이 생명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갑으로 여기는 것이 맞습니다. 생명이 있어야 먹을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즐길 수도 있고, 꿈꿀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생명을 우선시 하면 상실감과 실망감이 생깁니다. 생명에 집중하지 않고, 생명 위에 있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살면 그 인생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갑이신 하나님이 그 인생을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갑이신 하나님은 장애와 정상의 차등을 두지 않으십니다.‘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가 우리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각처에서 함께 기도하고 사모하는 모든 성도님들께 하나님이 갑이 되길 원합니다.
- 저는 23세에 결혼했습니다. 20일 만에 결혼했습니다. 만난 지 40분 만에 결혼을 결정하고, 바로 팔장 끼고, 언니에게 가서 “언니, 나 결혼해야 될 것 같아.” 그리고, 다음날 오빠에게 “나, 결혼해야 할 것 같아.”, 그 다음날 상견례를 했습니다. 상견례 한 날 혼인신고하고, 20일 만에 결혼식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결혼하는 모든 과정 가운데 그분의 강하고, 신실하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이 시간, 박수영 선교사가 그 과정을 이야기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모든 일들이 참여하신 모든 성도님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로 임하시길 원합니다.
□ 저는 하나님이 고치고 계신 뇌성마비 환자입니다.
- 박수영 선교사입니다. 저는 너무 부족하고 어눌한 사람이라, 이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앞섭니다. 왜냐 하면 제가 드러날까 봐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드러나시길 원합니다.
- 지금까지 산 삶이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움을 겪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고통이든, 삶의 무게에서 오는 괴로움이든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에 불행이 오기 시작하면 한 번에 한 개만 오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엎친 데, 덮치게 만듭니다. 아프다고 비명조차 지를 수 없도록 만듭니다. 저도 하나님이 없었다면 고난의 연속 가운데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 욥기를 보면 욥은 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사탄이 그의 몸을 칩니다. 이미 악에서 떠난 욥을 하나님이 왜 치셨는가? 사실은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왜?’라는 질문의 연속입니다. 질병도 한 번에 고쳐주시면 좋겠는데, 50년 동안 이 뇌성마비 환자를 이렇게 조금씩 고쳐가고 계십니다.
- 저는 여러분 보시기에 어눌하죠? 얼굴은 잘생겼습니까? 저는 거울을 볼 때마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을 통해 하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제가 왜 선교사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 저를 교회로 인도한 특별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 저는 정상으로 태어나 3살까지 잘 자랐습니다. 3살에 뇌염주사를 맞았는데 열이 오르기 시작해 45도까지 올랐습니다. 어머니는 민간요법 차원에서 ‘담요에 말아서 아랫목에 놔두고 땀 쭉 빼고 나면 좋아지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열이 소뇌로 올라가서 소뇌 기능의 90%가 소실되어, 경직성 뇌성마비 환자가 되었습니다. 뇌성마비 환자라고 하면 송명희 시인을 떠올리면 됩니다.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셨을까요? 어머니는 불교신자였습니다. 어머니는 좋다는 약은 다 먹이고, 굿도 했지만 낫지 않았습니다. 더 굳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고강도의 물리치료를 했습니다. 그 고통이 싫어서 엄마에게 차라리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 제가 지능은 있다고 생각한 어머니는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로 보내고 싶은 마음에 매일 업어서 초등학교에 등교를 시켰습니다. 저는 휠체어조차 탈 수 없는 몸이었고, 거의 학교 의자에 묶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시험을 볼 때에도 어머니가 내 말을 통역해 주어야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시험만 보면 제가 1등을 했습니다.
- ‘공부라도 잘하면 사회에서 인정받겠지?’ 하는 마음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아이들이 저를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괴롭혔습니다. 친구도 없는 늘 외로운, 칭찬보다 비난에 익숙한 생활이었습니다. 저 때문에 가정의 불화와 재정의 궁핍이 있었습니다. 늘 저의 소원은 부모님이 싸우지 않는 것과 죽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던 중에 6학년이 되었고, 친구 한 명을 만났습니다. 이 짝꿍은 다른 친구들과 달랐습니다. 제 고민은 ‘왜 이 친구는 다르지?’였습니다. 이 친구는 공책 필기를 항상 두 권씩 하느라 바빴습니다. 한 권은 저를 주기 위해 썼습니다. 화장실 가는 것이 가장 힘들었는데, 이 친구가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이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그 때는 제가 말을 많이 더듬던 시절입니다. “너는 뭘 바라고 나에게 이렇게 잘해 주니? 나는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 친구가 예수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영아, 너도 예수님을 만나면 변할 수 있어,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저는 예수를 믿어서 교회 나간 것이 아니라, 이 친구가 좋아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집이 아닌 장소에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학교와 달라 보였습니다. 교회가 좋아졌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교회 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교회 나간다고 비오는 날 저를 처음으로 때렸습니다. 저는 교회 나가고 싶어 계속 나갔습니다.
□ 교회 나간 후 병에 차도가 생겼습니다.
- 어느 날 제 몸에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혼자 앉아 있을 수도 없었는데, 앉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어머니는 제가 교회에 나가서 몸이 변했다고 믿었습니다. “수영아, 너는 이제부터 교회를 나가라. 나는 절에 열심히 다닐게”, 그랬던 분이 지금은 권사님으로, 저의 후원자로 기도해 주고 계십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성경 안의 하나님으로 묶어 두려고 합니다. 문둥병자도 구약시대에서나 고쳐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완전하고 신실하십니다. 지금도 뇌성마비 환자, 뇌종양 환자를 고치고 계십니다. 저는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일어서게 되었고, 걷게 되었습니다. 물론 절룩거리고, 제 몸에 성한 곳이 없었지만, 학교도 계속 다니게 되었습니다.
□ 목회자가 되겠다는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 중학교 2학년 때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교회에서 수련회를 간다고 하는데 바닷가로 간다고 합니다. 저도 가고 싶어 어머니에게 사정해서 갔습니다. 마지막 날 기도회를 하는데,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그 음성에 따라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습니다. “어눌하고 장애를 가진 몸이지만 저를 사용하길 원하시면 제가 복음을 위해 이 몸을 드리겠습니다.” 하고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저의 소망인 신학교에 가게 되었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사역을 하고 싶은데 어느 교회도 저를 써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3년 동안 100통의 이력서를 써서 교회마다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사역한 경력이 없으면 전도사 시험을 칠 수 없었습니다. 3년 만에 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학교를 휴학하고, 다시 공부해서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하고 수석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컴퓨터 아이템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 제가 다닌 교회에서 3주 동안 필리핀 단기선교를 가는데, 컴퓨터 잘하는 총무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갈 테니 중학교 때 목회자 서원기도 한 것 좀 지워 주십시오.” 하고 따라 갔습니다. 3주 내내 하나님에게 사인을 받았고, 그곳 선교사님들로부터 ‘청년 같은 사람이 이곳에 와야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 한국에 오자마자 다 정리하고 복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1년 만에 러시아 모스크바 선교센터에 컴퓨터를 전문으로 가르칠 사역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단기선교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경직성 뇌성마비인데, 추우면 더 빨리 경직됩니다. 러시아는 추울 때 영하 40도입니다. 부모님의 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갔습니다.
□ 하나님의 강권적인 인도로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 사역을 열심히 했지만 결혼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저의 모습도 그렇고, 자녀에 대한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는 결혼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굳어져 있었습니다. 러시아는 별빛이 너무 아름다운데, 그 별빛보다 더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있습니다. 러시아 아가씨들은 정말 예뻤습니다. 그 때 나이 27살이었습니다. 제가 날마다 눈으로 범죄하고, 생각으로 범죄했습니다. 그래서 결혼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보통 작정기도로는 안 될 것 같아, 40일 동안 작정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 기도한 지 21일 만에 위문편지가 한 통 왔습니다. 어떤 여자 전도사님이 예쁜 글씨체로 썼는데, 오해할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내 기도 끝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도를 더 열심히 마치고, 한국에 비자 연장을 핑계로 그 전도사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찾아갔더니, 그 분이 봉투 하나를 주시는데, 청첩장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실망했습니다. 러시아로 다시 돌아가려는데 극동방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장애인으로 선교사를 하신다고 들었는데, 인터뷰를 통해 장애인들에게 소망을 주셨으면 한다고 하였습니다. 방송에 참여해서 방송이 끝날 무렵, 저의 기도제목을 묻는데, 저는 결혼기도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공개청혼이 전국방송을 타게 되었습니다. 전국에서 많은 전화를 받았습니다. 6명을 만나봤는데, 모두 장애인이었습니다. “하나님, 저도 평생 장애인으로 고생하는데, 제 아내까지 장애인이면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만나지 않았습니다.
- 금요일에 철야인도를 하러 가는데, 삐삐에 전화번호 하나가 찍혀 있어서 그 여자 분과 전화 했습니다. 한 시간을 통화했습니다. 하나님이 배우자로 확신을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각자 사역이 있어 월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하나님께 두 가지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첫째는 제 짝이 맞으면 만나서 1시간 안에 프로포즈를 할 것인데, 무조건 승낙 받게 해주세요. 둘째는 제가 가족들의 반대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니, 가족들의 찬성을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십시오.
- 월요일에 나갔습니다. 저는 당연히 장애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기 전에 살짝 봤는데 너무 예쁘고 긴 머리의 여자였습니다. 게다가 정상인이었습니다. 저는 보자마자 한숨이 나왔습니다. ‘내가 오르지 못할 나무이구나. 나하고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들어가면서 앉기 전에 포기했습니다. 예의상 40분 동안 내 이야기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빨리 프로포즈하고 일어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40분 만에 프로포즈를 했는데, 그녀는 “제가 거부할 의사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순간 제가 더 놀랐습니다. 그녀는 막 울기 시작했습니다. 제 안의 보배를 봤다고 합니다.(이 부분의 자세한 간증은 나중에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오면서 제 팔짱을 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것은 아내는 결혼 신고할 때까지 저의 뇌성마비를 몰랐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가리신 것입니다. 아내가 언니한테 저를 데리고 갔습니다. “언니, 나 결혼해야 할 것 같아.” 하니, 언니가 “시간이 부족하지만 준비할게.” 일찍 돌아가셨던 아버지 대신 오빠가 그 역할을 해서, 허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목사님인 오빠에게 저를 설명할 수 없어서, 그 동안 받았던 상장과 자격증을 가지고 갔습니다. 아내가 “오빠, 결혼해야 할 것 같아.” 라고 이야기 하니 “그래, 오빠가 준비하마.” 목사님도 저의 장애를 몰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상견례를 했습니다. 끝나고 나서, 숙희씨, 20일 뒤에 결혼식 할 텐데, 그 때 가서 결혼식 하고 혼인신고 하는 것과 지금 혼인신고 하고 그 때 결혼하는 것이 똑같지 않냐고 물으니, 똑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난 지 70시간 만에 공식적인 혼인신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신고를 하자마자 아내의 눈이 뜨여 저의 어눌함과 비뚤어진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 아내가 하나님께 가서 물었습니다. “숙희야, 나는 죽은 자도 살린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아내는 ‘그래, 하나님이 괜찮다면, 나도 괜찮아.’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켜가고 계십니다.
- 결혼식을 하고 러시아로 가서 신혼생활 하다가 아이를 낳기 위해 한국으로 나왔고, 학부과정 이후에 하는 MDB과정을 거치면서 선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장애인이라 펀드가 조성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사역 자리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태국으로 가서 16년 동안 교회개척 사역과 신학교 사역을 했습니다. 아내는 찬양사역자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사역자로 도왔고,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하나님이 태국에서 멕시코로 선교지를 옮겨 주셨습니다. 현지의 조그만 한인교회를 섬겼습니다.
□ 아내도 저와 같이 하나님께서 고치고 계신 질병을 갖게 되었습니다.
- 태국 사역 중에 있었던 간증이 있습니다. 사역 8년쯤에 아내의 몸에 이상 신호가 발견되었습니다. 아이는 8살이 넘었는데, 유즙이 나오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뇌 검사를 하라고 해서 했더니 호르몬 수치에 이상이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보통사람의 200배 수치가 나왔다고 합니다. MRI를 찍어보니 3.5cm 뇌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님, 왜 이러십니까? 하나님, 저 하나로 부족하십니까? 저희는 기도할 힘도 없었습니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시신경과 대동맥 사이에 있어 수술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끝까지 침묵하셨습니다. 아내에게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당신이니까 주셨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 한국에 치료차 와서, 함께 기도원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기도원에서도 계속 침묵하시던 하나님이 마지막으로 보여주신 것은 태국에서 더위에 지쳐 집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수없이 지나가는 태국의 영혼들을 보여주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전하겠느냐? 그 질문에 대해 '하겠다'는 대답을 하고 기도원에서 나왔습니다.
- 방사선 치료를 못해, 약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MRI를 찍었는데, 0.5cm로 줄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고치시는 것도 하나님, 안 고치시는 것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 인내를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시는 섭리
- 하나님이 더 이상 저를 안 고치시고, 저는 살다가 몸이 경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하시기에 그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제가 잘나서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들고 계시기에,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기에,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 분명 고통의 자리가 많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왜?' 라는 질문이 인내를 통해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모시고 살고 있습니까?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 바보입니다. 성경말씀대로 살면 바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바보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십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 장애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나는 안돼!’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늘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육체 뿐만 아니라 마음이 병든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죽음에 매여 살면 안됩니다. 우리 육체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과 그 회복의 능력을 믿으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 능력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실 일을 믿음으로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모두의 삶, 그 현장에서 어눌하고 삐뚤어진 것을 온전하게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 여기 계신 분들은 저를 아십니다. 이제 저희는 아는 사이가 됐습니다. 이제 거룩한 부담감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아는 사이로서 저희를 위해 하루 1분만 기도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1분만 사고 싶습니다. 선교는 기도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선교 현장의 삶을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 부부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 딱 1분만 기도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결어 및 기도
-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이 참 많습니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좌절하고 스스로 인생을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왜?’라는 질문 속에 담긴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 이 간증을 통해 듣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고난을 고난으로만 보지 마십시오. 고난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기 위하여 기도합시다. 고난 속에 쌓아두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보게 도와 주옵소서. 고난 속에서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하옵소서. 우리 중에 고난을 당한 분이 계십니까? 절망치 말고 다시 주님께 힘입어 다시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분이십니다.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일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기도 가운데 편견을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이 일하셨기에 박수영 선교사님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간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편견을 버리십시오. 오늘 밤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여러분의 기도제목 가운데 일하길 원하십니다. 특별히 결혼을 앞두고 인생의 반려자,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하는 분이 계십니다. 다니엘기도회 기간 중에 내게 주신 반려자를 만날 수 있게 도와 주십시오. 이 시간 다 같이,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기 위하여, 만남의 축복을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 가운데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 참 많습니다. 왜 이런 고난이 찾아왔는지, 왜 이런 엄청난 풍랑이 우리 가정에 몰아쳤는지, 왜 우리 자녀에게 이런 일이 닥쳤는지, 주님, 이해되지 않아서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왜’ 라는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절망하고 포기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을 보내주셔서, ‘왜’라는 질문에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있음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십시오. 고난만을 바라보게 하지 마십시오. 인생의 풍랑만을 바라보게 하지 마십시오. 문제만을 바라보지 말게 하시고, 고난의 한복판에서 나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이 다니엘기도회 기간 동안 편견이 사라지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기 원합니다. 하나님, 일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일하시면 아무리 악한 자도 주께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가출한 자녀도 돌아올 수밖에 없고, 반드시 치유되고,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이 다니엘기도회 기간 동안에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게 도와 주옵소서. 특별히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멘토와 스승을 만나게 하시고,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하시고, 좋은 교회를 만나게 도와주옵소서. 이번 다니엘기도회 기간 동안에 우리 교회 가운데 은혜의 기념비가 세워지길 원합니다. 우리의 기도제목 가운데 은혜의 기념비가 세워지게 도와주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을 간증하는 간증의 주인공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