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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체(體)와 용(用)이 따로 없다는 변론
내가 학문을 한 것이 얕고 고루하여, 오직 선유(先儒)들이 정해 놓은 말씀을 그대로 지킬 줄만 알아 명백하게 곧이곧대로 공부하였는데도 아직 통투하게 알지 못하니, 이 밖의 유심(幽深)하고 현묘(玄妙)한 이론은 실상 미칠 겨를이 없었다. 그러므로 지난날에 비록 “마음은 체(體)와 용(用)이 없다.”는 한 구절을 가지고 와서 묻는 친구가 있었으나, 한 번도 이것을 깊이 생각하여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김이정(金而靜)이 보여 준 연로(蓮老)의 글을 보니, 오로지 이 구절을 가지고 부연하여 말을 만들어서 서로 변론하고 질정하려 하였는데, 그 뜻이 매우 깊어서 쉽사리 엿보아 헤아릴 수 없었다. 이에 우선 내가 들은 선유의, “마음은 체와 용이 있다.”는 말씀을 가지고 밝히려 한다. 이 설들은 모두 유래가 있으니, 적(寂)과 감(感)을 체ㆍ용이라 한 것은 《주역(周易)》에 근본 하였고, 동(動)과 정(靜)을 체ㆍ용이라 한 것은 《대기(戴記)》에 근본 하였고, 미발(未發)과 이발(已發)로 체ㆍ용이라 한 것은 자사(子思)에 근본 하였고, 성(性)과 정(情)을 체ㆍ용이라 한 것은 《맹자(孟子)》에 근본 하였는데, 모두 마음의 체와 용에 대한 것이다. 대개 사람의 한 마음이 비록 천지(天地) 사방에 가득하고 고금(古今)에 뻗치며 유명(幽明)을 꿰뚫고 온갖 은미함에 투철하다 하더라도 그 요점은 체와 용 두 글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체와 용이란 이름이 비록 선진(先秦) 시대의 글에는 보이지 않지만 정자(程子)ㆍ주자(朱子) 이래로 여러 유현들이 도리를 논하고 마음을 논함에 모두 이것으로 주장을 삼지 않은 것이 없어서, 강론하고 변석하여 밝혀지지 않을까 두려워하였으며, 진북계(陳北溪)의 심설(心說)에서 더욱 극진히 말하였으니, 언제 한 사람인들 마음에 체와 용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지금 연로(蓮老)의 말에 “마음에 실로 체와 용이 있기는 하나 그 근본을 찾아보면 체와 용이 없다.” 하였다. 나는 들으니, 정자가 말하기를 “마음은 하나뿐인데 체를 가리켜 말한 것도 있고 용을 가리켜 말한 것도 있다.” 하였으니, 이제 이미 체와 용이 있는 것을 가리켜 마음이라 하였다면 마음은 이미 충분히 설명하였다고 하겠다. 또 어찌 따로 체와 용이 없는 마음이 근본이 되어 마음의 앞에 있을 수 있겠는가. 또 연로가 말하기를, “동(動)과 정(靜)이란 실제 이(理)이고, 체와 용이란 빈말이다. 도리는 본래 체와 용이 없고, 동과 정을 체와 용으로 삼는다.” 하였다. 나는 생각건대, 도리에 동과 정이 있기 때문에 그 정(靜)한 것을 가리켜 체라 하고 동(動)한 것을 가리켜 용이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리의 동(動)하고 정(靜)하는 실상이 곧 도리의 체ㆍ용의 실상인 것이다. 또 어찌 따로 체와 용이 없는 하나의 도리가 있어 근본이 되어서 동과 정에 앞서 있을 수 있겠는가. 연로가 또 말하기를, “체란 글자는 형상(形象)의 측면에서 나왔고 용이란 글자는 동(動)의 측면에서 나왔으니, 동하기 전에 어찌 용이 있었겠으며, 형상이 있기 전에 어찌 체가 있었겠는가.” 하고, 또 소자(卲子)의, “본래 체는 없다.”는 말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체가 없으면 용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였다. 나는 생각건대, 체와 용이란 두 가지가 있다. 도리에 대하여 말한 것이 있으니, ‘아득하여 조짐이 없으나 만상(萬象)이 빠짐없이 갖추어 있다’는 것이 그것이고, 사물에 대하여 말한 것이 있으니, ‘배는 물에 다닐 수 있고 수레는 육지에 다닐 수 있으며 배와 수레가 물과 육지에 다닌다’는 것 같은 것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주자가 여자약(呂子約)에게 회답하는 편지에서 말하기를, “형이상(形而上)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아득한 것이 실로 체가 되고, 사물에 발현하는 것이 용이 된다. 형이하(形而下)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사물이 또 체가 되고 그 이(理)가 발현하는 것이 용이 된다. 따라서 일률적으로 형이상을 도(道)의 체라 하고, 천하의 달도(達道)인 다섯 가지를 도의 용이라 할 수는 없다.” 하였다. 지금 배와 수레의 형상을 체라 하고 물에 다니고 육지에 다니는 것을 용이라 하면, ‘형상이 있기 전에는 체가 없고 동하기 전에는 용이 없다’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아득한 것을 체로 삼는다면 이 체는 형상이 있기 전의 것이 아니겠는가. 만상이 여기에 갖추어 있는 것을 용으로 삼는다면, 이 용은 동하기 이전의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으로 본다면 연로가 말하는 ‘체는 형상에서 나오고 용은 동에서 나온다’는 것은 다만 사물의 체와 용이 아래쪽에 떨어져 있는 형이하를 말한 것일 뿐, 실상은 아득하여 조짐이 없어 체와 용이 하나의 근원인 형이상의 묘함을 내버린 것이다. 오직 그 소견이 지엽적인 형상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형상이 있기 전엔 체가 없다’ 하고 소자(邵子)의 말을 인용하여 증거하였으나, 소자의 이른바 ‘체가 없다’는 것은 다만 형체가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일 뿐 아득한 체가 없다고 말함이 아님을 알지 못한 것이다. 체를 인식한 것이 이미 완비되지 못했다면 용을 인식한 것도 완비되지 못함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아, 아득하여 조짐이 없는 것이, 건곤(乾坤)에 있어서는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의 체가 되어서 만상이 이미 갖추어 있고, 사람의 마음에 있어서는 지극히 허(虛)하고 지극히 정(靜)한 체가 되어서 만 가지 용이 모두 갖추어 있으며, 사물에 있어서는 문득 발현하고 유행하는 용이 되어서 때에 따라 곳에 따라 있지 않은 데가 없는 것이다. 여자약이 말하기를, “마땅히 행할 도리가 달도(達道)가 되고 아득하여 조짐 없는 것이 도의 본원이 된다.” 하니, 주자가 비판하기를, “다만 이 당연한 이(理)가 아득하여 조짐 없는 것이고, 이 이(理) 밖에 따로 아득하여 조짐 없는 한 물건이 있는 것이 아님을 모름지기 보아 알아야 한다.” 하였다. 그러므로 정 선생(程先生)이 이미 체와 용이 한 근원임을 말하였고, 또 현(顯)과 미(微)는 사이가 없음을 말했던 것이다. 체와 용 두 글자는 생동하여 죽은 법(法)이 아니며, 원래 포함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묘함을 다할 수 없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이것으로 헤아려 본다면 어찌 한갓 체란 글자가 형상의 측면에서 나왔다 하여 형상이 있기 전에는 체가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어찌 용이란 글자가 동(動)의 측면에서 나왔다 하여 동하기 전에는 용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어찌 태극을 성인이 억지로 이름 지어 놓은 것이라 하여 체와 용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주자(朱子)가 〈태극도설(太極圖說)〉의 풀이에서 체와 용 두 글자로 반복하여 밝혔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란 그 향하는 곳을 알 수 없으므로, 맹자는 다만 마음이 두루 흐르고 변화하여 신명불측(神明不測)함이 오묘하여 잃기는 쉽되 지키기는 어려움이 이와 같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 마음의 용이 사물에 발현하는 것을 설명한 것이다. 만일 마음에 체와 용이 없다고 한다면, 이런 상황에서 용의 근원을 어디에서 찾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항상 생각건대, 성현의 글은 용이하게 읽을 수 없고, 의리는 정미하여 쉽게 궁구할 수 없으며, 서로 전하는 종지(宗旨)는 경솔히 고칠 수 없고, 이론을 세워 남을 깨우치는 것도 경솔히 발할 것이 아니다. 학문을 하는 데는 높고 기이하고 현묘(玄妙)한 생각을 갖지 말고 우선 마땅히 본분(本分)의 명리(名理)에 의거하여 아주 가깝고 평범하며 명백한 공부를 하여 연구와 체험을 오래 쌓으면, 자연히 날이 갈수록 고심(高深)하고 원대하여 끝이 없는 곳을 볼 수 있을 것이니, 그리해야만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논한 것은 본래 고묘(高妙)함을 지극히 하여 마음을 말하려고 한 것인데, 도리어 체와 용을 형기(形器)에 국한시키고 심(心)과 성(性)을 망매(茫昧)한 지경에 몰아넣었으니, 자기의 학문에만 해가 될 뿐 아니라 후생(後生)으로 하여금 서로 모방하여 빈말만 배우게 할 것이니, 사문(斯文)에 폐단을 끼치는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득이 심중에 있는 것을 다 말하는 것인데, 연로가 보고 어떻게 여길지는 모르겠다.
일찍이 들으니, 옛날 현인 중에도 의론이 너무 고매(高邁)한 자가 있어 역시 이런 병통을 면하지 못했다 한다. 예컨대 양구산(楊龜山) 같은 이는 도의 고묘(高妙)함을 극언(極言)하여 “인과 의로는 도를 다할 수 없다.” 하였으니, 이것은 곧 장자(莊子)ㆍ열자(列子)가 인의를 부족하게 여겨 도를 아득하고[窈冥] 어둠침침하다고[昏默] 한 말과 같다. 호오봉(胡五峰)은 성(性)의 고묘함을 극언하여 “선(善)으로는 성을 말할 수 없다.” 하였으니, 이것은 선이 비근(卑近)하여 성에 누(累)가 될까 염려하다가 도리어 고자(告子)의, “성(性)은 여울물과 같아 동쪽으로도 서쪽으로도 흐를 수 있다.”는 말로 떨어진 것이다. 호광중(胡廣仲)은 동(動)ㆍ정(靜)의 묘함을 극언하여 “동ㆍ정 이외에 따로 동과 상대되지 않는 정과, 정과 상대되지 않는 동이 있다.” 하였는데, 이것은 지금 연로가 말한 “형상이 있기 전에 어찌 체가 있었겠으며, 동하기 이전에 어찌 용이 있었겠느냐.”는 설과 말은 비록 다르나 뜻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동ㆍ정을 추하고 천근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전에 상대할 것이 없는 것을 가리켜 동ㆍ정의 묘라 하고, 하나는 체와 용을 추하고 천근하게 여기기 때문에 이전에 체ㆍ용이 없는 것을 가리켜 도의 묘라고 하고 또 마음의 묘라 한 것이다. 이는 그 소위 묘한 곳이 다만 하나의 체와 용, 한 번 동하고 정하는 사이에 있고, 이 밖에 따로 묘한 곳이 없음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훌륭하게도 주 부자(朱夫子)께서 호광중의 말을 반박하기를, “동과 상대가 되지 않으면 정이라 이름 할 수 없고, 정과 상대가 되지 않으면 동이라 이름 할 수 없다.” 하였으니, 나도 역시 “이미 정을 가리켜 체라 하였다면 다시 체가 없다고 가리켜 말할 곳이 없고, 이미 동을 가리켜 용이라 하였다면 다시 용이 없다고 가리켜 말할 곳이 없다.”고 말하겠다. 그러므로 세 선현의 설을 합하여 그 병통이 있는 곳을 보면 연로의 병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心無體用辯
滉爲學淺陋。惟知謹守先儒定本之說。白直加工。而猶未通解。此外幽深玄妙之論。實未暇及也。故前此朋友間。雖有以心無體用一句來問者。曾不以是入思議。今得金而精所示蓮老書。專以此句。敷衍爲說。要相辯質。其立意奧邃。未易窺測。姑以所聞先儒心有體用之說明之。而其說皆有所從來。其以寂感爲體用。本於大易。以動靜爲體用。本於戴記。以未發已發爲體用。本於子思。以性情爲體用。本於孟子。皆心之體用也。蓋人之一心。雖彌六合亙古今。貫幽明徹萬微。而其要不出乎此二字。故體用之名。雖未見於先秦之書。而程朱以來諸儒所以論道論心。莫不以此爲主。講論辯析。惟恐不明。而陳北溪心說。尤極言之。何嘗有人說心無體用耶。今蓮老之言曰。心固有體用。而探其本則無體用也。滉聞程子曰。心一而已。有指體而言者。有指用而言者。今旣指其有體用者爲心。則說心已無餘矣。又安得別有無體用之心爲之本。而在心之前耶。又曰。動靜者。實理也。體用者。虛說也。道理本無體用。而以動靜爲體用也。滉謂道理有動有靜。故指其靜者爲體。動者爲用。然則道理動靜之實。卽道理體用之實。又安得別有一道理無體用者爲之本。而在動靜之先乎。又曰。體字起於象上。用字起於動上。動之前何嘗有用。象之前何嘗有體耶。又引邵子本無體之說曰。無體則無用可知。滉謂體用有二。有就道理而言者。如沖漠無眹而萬象森然已具。是也。有就事物而言者。如舟可行水。車可行陸。而舟車之行水行陸。是也。故朱子答呂子約書曰。自形而上者言之。沖漠者固爲體。而其發於事物之間者爲之用。若以形而下者言之。則事物又爲 體。而其理之發見者爲之用。不可槩謂形而上者爲道之體。而天下之達道五爲道之用。今以舟車之形象爲體。而以行水行陸爲用。則雖謂之象前無體。動前無用。可也。若以沖漠爲體。則斯體也不在象之前乎。以萬象之具於是爲用。則斯用也不在動之前乎。以此觀之。蓮老所謂體起於象。用起於動。只說得形而下事物之體用。落在下一邊了。實遺卻形而上沖漠無眹體用一源之妙矣。惟其滯見於形象之末。故謂象前無體。而引邵說以證之。殊不知邵子所謂無體者。只謂無形體耳。非謂無沖漠之體也。認體旣不得該徧。則認用之不得該徧。不待言而可見矣。嗚呼。沖漠無眹者。在乾坤則爲無極太極之體。而萬象已具。在人心則爲至虛至靜之體。而萬用畢備。其在事物也。則卻爲發見流行之用。而隨時隨處無不在。呂子約謂當行之理爲達道。而沖漠無眹。爲道之本原。朱子非之曰。須看得只此當然之理沖漠無眹。非此理之外。別有一物沖漠無眹也。 故程先生旣說體用一源。而又必有顯微無間之云也。夫以體用二字。活非死法。元無不該。妙不可窮如此。以此揆之。豈可徒以體字起於象上。而象之前未嘗有體乎。豈可便謂用字起於動上。而動之前無用乎。豈可以太極爲聖人之所强名。而謂之爲無體用乎。朱子於太極圖說解。反復以體用二字明之。 況人心莫知其鄕。孟子只謂心之周流變化神明不測之妙。得失之易而保守之難如此。正是說此心之用發見於事物之間者。苟以謂心無體用。則不知於此何從而有此用乎。故滉常以爲聖賢之書未易讀。義理精微未易窮。相傳宗旨。未可輕改。立論曉人。未可輕發。爲學。莫把作高奇玄妙想。且當依本分名理上。做切近低平明白底功夫。硏窮體驗。積之之久。自然日見其高深遠大而不可窮處。乃爲得之。今此所論。本欲極其高妙而言心。而乃反滯體用於形器。歸心性於茫昧。非但於自己學問有害。使後生相倣效一例。學爲虛談。其流弊斯文不少。故不得不盡底蘊以言之。不知蓮老見之以爲何如也。嘗聞昔賢有議論過高者。亦未免此等病痛。如楊龜山極言道之高妙。而謂仁義不足以盡道。此卽莊,列小仁義。而以道爲窈冥昏默之說也。胡五峯極言性之高妙。而謂善不足以言性。此慮善之卑近累性。而反墮於告子湍水東西之說也。胡廣仲極言動靜之妙。而謂動靜之外。別有不與動對之靜。不與靜對之動。此與今所論象之前何嘗有體。動之前何嘗有用之說。言雖異而意則同。蓋一則以動靜爲粗淺。故指其前無對者。以爲動靜之妙。一則以體用爲粗淺。故指其前無體用者。以爲道之妙。亦以爲心之妙。殊不知其所謂 妙處只在一體一用一動一靜之間。此外別無妙處也。善乎朱夫子之破胡說曰。不與動對。則不名爲靜。不與靜對。則不名爲動。愚亦曰。旣指靜爲體。則更無可指爲無體處。旣指動爲用。則更無可指爲無用處矣。故合三賢之說。而觀其病處。蓮老之病可知矣。
[주1] 연로(蓮老) : 연방(蓮坊) 이구(李球 : ?~1573)를 가리킨다. 자는 숙옥(叔玉)이며,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이다.
[주2] 김이정(金而靜, 1562~1620) :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으로 본관은 순천(順天). 휘는 允安, 자는 이정(而靜), 호는 동리(東籬). 할아버지는 효행으로 천거되어 사헌부감찰 지낸 김자순(金自順), 아버지는 건공장군(建功將軍)에 추증된 김박(金博), 어머니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셋째 형인 이의(李漪)의 딸이다.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에서 태어났다. 11살 무렵에 소고(嘯臯) 박승임(朴承任)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이후에는 류운룡(柳雲龍)과 류성룡(柳成龍)에게 배웠다. 1588년(선조 21) 생원과 진사 양시에 동시에 합격하여 스승인 류성룡의 뒤를 이을 재목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해(金垓)를 대장으로 한 안동의진(安東義陣)에 가담하였다. 1605년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을 제수받아 임진왜란으로 황폐해진 역로(驛路)와 해이해진 역졸들의 기강을 회복시키는 데 전력하였다. 1611년(광해군 3) 내섬시직장을 제수받았다가 곧 가례낭청(嘉禮郎廳)으로 개배되었다. 다음해 53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조정으로부터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을 제수받고 품계가 당상관인 정3품 통정대부로 승진하였다. 1613년에 대구부사(大丘府使)를 제수받아 탐학한 관기를 바로 잡고 백성을 교화하는 데 힘썼다.
문집으로 『동리집(東籬集)』이 있다. 문집의 권1~2는 시(詩)로 구성되어 있고, 권3에는 소(疏) 3편, 4권에는 서(書), 기(記), 제문(祭文), 잡저(雜著)가 실려 있다. 권5는 부록으로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제문(祭文), 만시(輓詩) 화천추향봉안문(花川追享奉安文)이 실려 있다.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광연리에 있다. 류운룡을 주향으로 하는 화천서원(花川書院,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광덕리 소재)에 배향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